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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사랑하고 때론 슬퍼하며 삶을 이어갈 여성들에게

2025.03.18

일하고 사랑하고 때론 슬퍼하며 삶을 이어갈 여성들에게

〈보그〉는 ‘보그 리더: 2025 우먼 앤 워크’를 열어 열심히 일한 여자들에게 뜨거운 축복을 건넸고, 영감과 이야기는 어느 때보다 풍성했다.

잡지사 에디터로 근무한 지 7년이 돼간다. 나의 주된 일은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쓰고, 셀러브리티와 스태프를 섭외하고 그들의 일정을 매끄럽게 조율하는 것. 다른 팀원과 적절하게 화합하는 일도 소홀할 순 없다. 꽤 익숙해진 일상이지만 여전히 매일매일 일과 씨름한다. 어떤 날은 내 경험과 실력에 자신만만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투명하게 드러나는 미숙함과 한계에 좌절한다. 일 때문에 힘들지만, 일 덕분에 행복하다. 연례행사로 자리 잡은 ‘보그 리더’를 기념해 <보그> 3월호 커버 스타로 나선 22인을 인터뷰하는 과정 역시 순탄하진 않았지만 그들과의 대화는 빠짐없이 즐거웠음을 고백한다. 긴장감의 이유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는 페기 구의 말에서 용기를 얻었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무한정 늘어지는 대기 시간을 얼마든지 웃으며 견딜 수 있다는 민니의 애티튜드 앞에서는 진심 어린 존경심이 피어올랐다.

3월 14일과 15일, 레스케이프 호텔에서 열린 ‘보그 리더: 2025 우먼 앤 워크(VOGUE LEADERS: 2025 Woman and Work)’는 각자의 소임에 충실히 살아가는 여자들과 일의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고 위로와 용기를 건네는 자리였다. 14일 저녁에는 <보그> 3월호 커버를 함께한 럭셔리 브랜드의 홍보 전문가 40명을 초대해 패션·뷰티계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열정과 희비를 나누는 프라이빗 디너를 열었다. 플라워 스타일링 팀 덤불이 붉은 꽃으로 수놓은 테이블 위에서 이야기는 새벽까지 계속됐다. 다음 날인 15일, 코미디언 송은이와 김숙, 정치학자 김지윤과 경제 전문가 전은환, 보테가 베네타 아시아태평양(APAC) CEO 김하정, 배우 김신록, 가수 이상은이 이끈 토크 세션은 가장 열정적인 시간이었다. ‘일과 여성’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다양한 커리어와 통찰로 무장한 연사를 선정했다. 탁월한 진행 실력으로 그들의 커리어 여정에 충분한 경의를 표하고, 관객에게는 예리한 인사이트를 건넨 MC 이승국은 그 사이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느꼈다고 터놓았다. “대부분 30년 가까이 한 가지 일을 끈질기게 지속해온 연사들에게서 단순한 사명감, 책임감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일에 대한 깊은 애정과 자부심, 단단함을 느꼈습니다. 이들의 지혜와 연륜과 위트를 바로 옆에서 느낄 수 있는 진행자의 특권에 감사했죠. 관객의 열의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연사의 아주 사소한 발언도 놓치지 않으려는 무서운 집중력, 자신에게 울림을 주는 이야기에는 적극적으로 ‘그게 어떤 말인지 안다’며 공감하는 무언의 연대로 가득한 현장이었어요.”

다섯 팀의 토크 세션을 연달아 진행한 이승국은 연사들의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함께’의 힘을 느꼈다고 증언했다. 7인의 여성 리더 모두 지금의 위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함께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으니까. “나 혼자 온 게 아니잖아요.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이하기까지, 송은이 언니를 비롯해 유재석 선배님, 이영자 언니 등 많은 사람이 저를 이끌어줬어요. 무한 사랑을 보내준 ‘땡땡이들’도 평생 잊을 수 없죠.”(김숙) “친구들과 업계 동료, 회사 식구들과 함께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일의 가장 큰 동력이에요.”(송은이) “좋은 팀원을 만날수록 부담은 줄어들죠. 시야가 넓어지면 훨씬 유연한 선택을 할 수 있고요.”(김신록) 유튜브 채널 ‘지윤 & 은환의 롱테이크’를 이끄는 김지윤과 전은환은 수많은 여자들이 공감할 만한 통쾌한 이야기를 건넸다. “삼성에서는 전통적으로 해외 발령이 나면 이틀 후 출국해서 한 달간 적응기를 갖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가족과 다 같이 나가요. 그런데 그러려면 아이들 전학시키고, 이삿짐을 싸는 등 보이지 않는 일을 책임져줄 안사람이 필요하죠. 보이는 제도는 많이 변하고 있어요. 하지만 굳어온 전통, 눈에 띄지 않는 것을 깨나가야 하는 문제가 아직 많이 남아 있죠.”(전은환) “실수는 누구나 저지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걸 잘 만회하는 것이에요. 고통과 고난 속에서 스스로를 경멸할 필요는 없어요.”(김지윤) “나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보테가 베네타 APAC 대표 김하정의 말에 나의 상사이자 까마득한 선배인 <보그> 신광호 편집장이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일하는 분야와 경력, 일에 대한 고민은 제각각이지만 모두가 잘해내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이 서로에게 너그러운 위로가 되는 순간이었다.

앞서 걸어간 이와 뒤따르는 이, 선후배와 친구, 엄마와 딸이 함께한 시간에는 지난해처럼 응원과 축배를 곁들였다. “그녀의 생각과 성찰은 늘 그녀에게 가장 좋은 동반자였습니다”라는 제인 오스틴의 문장을 비롯해 원하는 글귀를 프린트한 매니페스토 티셔츠를 맞춤 제작할 수 있는 7층 라운지, 무려 200명의 게스트가 <보그> 커버 주인공으로 거듭난 25층 포토 스튜디오에는 행사 내내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250여 년 전, 와인메이커 마리 샤를마뉴가 남편을 잃은 슬픔에 절망하는 대신 자신만의 샴페인 하우스를 세우는 데 집중한 결과인 뵈브 클리코의 옐로우 레이블, 칠레 와인의 진가를 일찍이 알아본 바로네스 여사에게 헌정하기 위해 탄생한 ‘바로네사 P’ 레드 와인이 적재적소에서 분위기를 한층 뜨겁게 달궜다. 풍성한 대화는 곧바로 이상은의 뮤직 토크로 이어졌다. DJ 소울스케이프가 포문을 연 후, “어제의 일들은 잊어/누구나 조금씩은 틀려/완벽한 사람은 없어/실수투성이고 외로운 나를 봐”(비밀의 화원)라고 외치며 등장한 이상은은 누구에게나 있는 모난 면을 어루만지며 따뜻한 피날레를 향해 나아갔다. “우리 안에는 여전히 어린아이가 있잖아요. 어른이 되면 우린 더 이상 아무것도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번아웃이 오지 않는 선에서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자연스럽게 기여하면서 즐겁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과연 우리의 ‘다음’은 뭘까? 일과 여성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와 기억을 축적한 ‘보그 리더’는 내년에는 또 어떤 담론으로 파동을 일으킬까? 보테가베네타 APAC 대표 김하정의 바람처럼, 우리가 ‘여성과 일’이 아니라 ‘사람과 일’을 주제로 대화를 꽃피울 날은 언제쯤 올까? 수많은 가능성과 기분 좋은 상상 속에서 ‘보그 리더’를 추억으로 떠나보내며 기도한다. 오늘을 통해 또 한 번 성장했을 모든 여자들과 함께 또 다른 근사한 일을 도모하며 마음껏 울고, 웃길!

피처 에디터
류가영
포토그래퍼
백승조
스타일리스트
김나현
헤어
안미연
메이크업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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