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스스로를 위한 즐거움을 창출하는 옷” 로렌조 세라피니
알베르타 페레티를 위한 로렌조 세라피니의 비전.

“지금까지 많은 시인이 로맨스에 대해 훌륭하게 표현해왔습니다. 우리 대부분이 그것을 느껴봤거나 느끼길 갈망하죠. 내가 말하는 건 세상이 아름답게 휘몰아치는 순간입니다. 늘 변함없이 예측 가능해 보이던 존재가 갑자기 달라지고 살짝 모호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심장이 빨리 뛰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런 감정이요.” 밀라노 산트 암브로에우스(Sant Ambroeus)에서 로렌조 세라피니(Lorenzo Serafini)는 몸짓을 섞어가며 로맨스가 주는 강렬한 감정적 전율에 대해 설명했다. “요즘 로맨스가 패션에 등장하면 대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데 그친다는 것이 의아합니다. 시대극처럼 다뤄지면서, 결코 현대적이거나 미래적이지 않죠. 로맨스는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현대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파고든 부분은 바로 이것입니다. ‘로맨틱하면서도 진보적인 모습, 즉 사랑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은 어떤 모습일까?’” 그가 덧붙였다.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로맨스의 감정적 전율은 공교롭게도 잠재력으로 가득한 세라피니의 현재 상황과 묘하게 닮았다. “지난 몇 달간은 정말 강렬하고 흥미진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 9월 세라피니는 1984년 알베르타 페레티(Alberta Ferretti)의 세컨드 라인으로 출발한 필로소피 디 로렌조 세라피니(Philosophy di Lorenzo Serafini)의 책임자로서 10주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세라피니를 비롯한 회사 전 직원에게 ‘엄청난 충격’이라고 할 만큼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페레티가 메인 라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직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한 것이다. 알베르타 페레티는 1981년부터 밀라노에서 꾸준히 컬렉션을 선보여온 명성 높은 하우스다. 바로 다음 달 세라피니는 그의 후임자로 임명되었고, 즉시 데뷔 컬렉션 작업에 착수했다. “정말 쉴 틈이 없었습니다.”
세라피니가 첫 알베르타 페레티 쇼를 공개하기 하루 전날. 무대가 펼쳐질 팔라초 도니체티(Palazzo Donizetti)는 1920년대 아르누보 양식의 웅장한 건물로, 1994년부터 하우스 쇼룸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세라피니는 이곳이 전혀 낯설지 않다. 필로소피 스튜디오가 같은 건물 위층에 있기 때문이다. “객석 규모는 알베르타의 기존 쇼보다 훨씬 작을 겁니다. 하지만 관객을 밀라노의 ‘우리 집’으로 초대하고 싶었어요. 새로운 인물이 무대를 준비했지만, 이 브랜드의 정체성은 40여 년 동안 강렬하게 유지돼왔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죠.”
“알베르타의 정신을 이어가면서도 나만의 비전과 본능을 통해 재해석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라피니가 이번 컬렉션에 선보일 투알(Toile, 샘플용 흰색 원단으로 만든 의상)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알베르타는 실제로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어요. 현실 세계에 뿌리를 두면서도 그들과 꿈과 환상을 공유했습니다.”
크리지아의 마리우치아 만델리(Mariuccia Mandelli), 블루마린의 안나 몰리나리와 함께 알베르타 페레티는 1980년대 밀라노 패션계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독립적이고 기업가적인 여성복 디자이너로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했다. 첫 번째 패션쇼를 열기도 전부터 페레티는 이미 고향 카톨리카(Cattolica)에서 졸리(Jolly)라는 부티크를 운영하며 여성의 욕구에 대한 감각을 키워왔다. 흥미롭게도 카톨리카는 세라피니가 태어난 곳에서 불과 몇 마일 떨어진 곳이다. “알베르타의 작업은 언제나 섹시하기보다는 감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우아함과 가벼움을 잃지 않는 절제된 스타일이죠. 그녀의 옷은 여성 스스로를 위한 즐거움을 창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 점이 아주 큰 영감을 줍니다.”
페레티와 그녀의 오빠 마시모(Massimo)는 1980년대 초반 브랜드의 모회사 에페 그룹(Aeffe Group)을 공동 설립했다. 이후 밀라노에 기반을 둔 모스키노와 가죽 액세서리 브랜드 폴리니를 인수했다. 2023년 에페는 3억1,900만 유로(약 3억3,400만 달러)의 연 매출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에페 소속의 장점 중 하나는 자체 생산을 한다는 것입니다. 컬렉션을 직접 제작하고, 폴리니와 협력해 신발과 가방을 만들죠. 이런 방식은 매우 이탈리아적이며, 효과적입니다.” 세라피니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본 투알은 부득이하게 단색이었지만, 세라피니는 완성된 컬렉션에서 색이 강조될 거라 약속했다. 이번 컬렉션은 느긋하면서도 현대적인 분위기를 띠며, 그의 로맨틱한 비전을 담고 있다. 얇은 원단 아래 겹쳐진 프린트는 흐릿하고 그림자 같은 효과를 연출하며, 난초에서 영감을 받은 또 다른 인상적인 장식 요소가 자유롭고 혼란스러운 아름다움을 불러왔다. 세라피니는 데뷔 컬렉션의 이름을 ‘진보적 로맨스(Progressive Romance)’라고 정했다. “페레티에서의 내 출발점이기 때문이죠. 2025년의 로맨스를 탐구하면서도 과거에 머물지 않고, 진보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세라피니는 2014년부터 에페에 합류했지만, 그 인연은 훨씬 오래됐다. 그는 패션 학위를 취득하던 19세 때 카톨리카에 있는 모스키노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다. “장 폴 고티에가 드나들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리파트 오즈벡(Rifat Ozbek)도 거기 있었죠. 정말 제대로 영감을 주는 곳이었어요.” 졸업 후인 1996년 그는 블루마린에 인턴으로 입사했다. “그곳에서 디자인부터 영업, 광고까지 모든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많은 것을 익힐 수 있었죠.”
2000년에는 로베르토 카발리 스튜디오에서 디자인을 시작했다. “모든 것이 현실을 초월한 듯한 곳이었습니다. 꿈을 더 크게 꿀 수 있었죠.” 세라피니가 당시를 회상했다. 카발리가 스탐페리아(Stamperia, 프린트 공방)에서 엄청난 열정과 헌신으로 놀라운 스크린 프린트 작업을 하는 것을 자주 봤다고 했다. 10년 후 세라피니는 돌체앤가바나 여성복 디자인 스튜디오로 옮겼다.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경험이었습니다. 기술과 구조, 조직력 차원에서 최고였어요. 그들은 영리하고, 창의적이고, 에너지가 넘쳤습니다.” 그리고 다시 5년 후, 필로소피와 에페에 합류했다.
세라피니와 만난 다음 페레티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녀는 브랜드에서 물러나기로 한 것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쉽지 않았어요. 가볍게 여기지 않고, 깊이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40년 경력을 쌓은 지금이야말로, 내 브랜드에 새로운 창의성을 위한 여지를 남겨둘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만든 회사의 다른 측면에도 집중하고요. 로렌조의 데뷔 쇼 전날, 정신없는 백스테이지가 아니라 패션쇼 맨 앞줄에 앉아 있을 생각을 하니 흥미진진합니다.” 그러면서 세라피니에 대해 이렇게 남겼다. “그는 우리 회사의 운영 방식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고, 여성성과 가벼움을 추구하는 내 미학을 공유하는 뛰어난 전문가입니다. 그가 이 브랜드의 새 장을 멋지게 써 내려갈 것이라고 믿으며, 패션쇼를 통해 컬렉션이 생동감 있게 펼쳐질 것을 기대하고 있어요.”
이메일을 세라피니에게 보여주자 그가 감탄했다. “와우! 알베르타가 보여준 신뢰에 늘 감사할 겁니다. 인생 최고의 찬사군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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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김다혜
- 글
- Luke Leitch
- 사진
- Courtesy of Alberta Ferre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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