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봄날엔 수채화 전시

2025.03.25

봄날엔 수채화 전시

김정자, 수평 45, 1984, 한지에 수채 물감, 64×87.5cm

여러분에게 수채화는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수채화 하면 어릴 적 미술 수업이 생각납니다. 크레파스를 쓰던 저학년을 지나, 고학년이 되어서야 수채화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제가 ‘언니’가 된 듯해 우쭐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중섭, 물놀이하는 아이들, 1941, 종이에 펜, 수채 물감, 14×9cm

수채화는 스며들기, 번지기, 투명성, 즉각성 같은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물의 맑음이나 유연성에 따라 다른 세계를 펼쳐내죠. 하지만 미술계에서 수채화는 경시되곤 했습니다. 습작이나 드로잉처럼 유화 작품을 위한 전 단계로 치부하고, 화가의 세계가 완성되기 전 ‘과정’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았죠.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는 그런 편견을 벗어나 수채화를 단독 장르로 조명하는 전시 <수채: 물을 그리다>를 9월 7일까지 엽니다. 이중섭, 장욱진, 박수근 등 한국 대표 작가 34인의 수채화 작품 100여 점을 선보입니다. 모두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입니다.

특히 이중섭의 수채화가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엽서 크기의 그림으로 아이들이 투명한 물에서 뛰노는 모습인데요, 수채화이기에 물의 투명하고 산뜻한 감촉이 전해지지 않나 싶습니다.

전현선, 나란히 걷는 낮과 밤, 2017~2018, 캔버스에 수채 물감, 112×145.5cm

전시에선 전현선 작가의 작품 또한 반가웠습니다. 이 작가는 지난해 3월 열린 <보그> 연례행사 ‘보그 리더’에서 작품을 전시했죠. 최근엔 작가의 작품 덕분에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의 쇼윈도가 작은 숲처럼 탈바꿈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선 그녀의 대형 작품 앞에 소파가 마련되어 오래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윤종숙, 아산, 2025, 벽화, 가변 크기, 국립현대미술관 제작 지원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봄 언덕처럼 화사한 작품이 맞이합니다. 윤종숙 작가가 현장에 제작한 벽화입니다. 이는 환경 위기에 미술관의 역할을 되새기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기존 전시장 구조물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전시도 새롭게 보여주고자 벽화를 그린 것이죠. 작가가 내면의 풍경을 밑그림 없이 즉흥적인 붓놀림으로 표현했습니다.

이인성, 계산동 성당, 1930년대, 종이에 수채 물감, 34.5×44cm

전시는 총 세 섹션으로 나뉩니다. 먼저 1900년대 초 수채화가 도입되던 시기의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수채화는 종이, 붓, 물이라는 재료로 수묵화의 직간접적 영향 안에서 성장합니다. 전시에서 가장 오래전에 그려진 작품은 서동진 작가의 ‘역구내’로 1929년 작입니다. 1930~1940년대 수채화를 이야기할 때 이인성 작가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인성 작가는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수채화 ‘카이유’로 특선을 차지했고, 1935년 제22회 일본수채화회전에 ‘아리랑 고개’로 최고상을 수상했습니다. 그의 다른 수채화 작품을 전시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추상적 형태의 수채화를 감상할 수 있는 전시 ‘수채: 물을 그리다’.
박서보, 묘법 No.355-86, 1986, 캔버스, 종이에 수채 물감, 194×300cm

전시의 두 번째 섹션은 자연환경의 묘사뿐 아니라 내적 성찰과 정신세계를 수채화로 표현한 작품이 자리합니다. 전시의 마지막 섹션은 추상적 형태입니다. 우리 화단에 큰 영향을 끼친 단색화 경향의 작품군을 수채화 영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죠. 그중 하나인 박서보의 ‘묘법 No.355-86’은 한지를 수채 물감에 적신 뒤 손으로 밀어서 텍스처를 완성한 작품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여러 조각품을 관람할 수 있는 개방 수장고.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는 옛 연초제조창을 리모델링해 2018년 12월 개관한 국내 최초의 수장형 미술관입니다. 그렇기에 이곳 1층과 3층에는 개방 수장고(Open Storage)가 자리합니다. 특히 1층의 개방 수장고에는 니키 드 생팔, 키키 스미스, 김윤신, 문신, 김종영 등 국내외 작가의 조각 160여 점이 전시됩니다. 14m 높이의 알루미늄 받침대마다 작품이 늘어서 있죠. 이곳은 여름에 가도 서늘합니다. 작품 보존을 위해 온습도를 조절하기 때문이죠. 기회가 된다면 도슨트 시간에 맞춰 관람하길 권합니다.

    피처 디렉터
    김나랑
    포토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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