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메오에 새겨진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유산
로마를 거쳐 이탈리아반도의 움브리아 구석구석을 누비는 ‘그랜드 투어’. 박애주의로 가득한 쿠치넬리 가문의 유산과 캐시미어가 거대한 움브리아 평원에 펼쳐졌다.

브루넬로 쿠치넬리(Brunello Cucinelli)는 파리의 에르메스나 샤넬 메종처럼 패션의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도시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솔로메오라는 작은 도시를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그 도시를 브랜드에 맞게 설계하고 있다. 솔로메오(Solomeo)는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주의 도시로, 중세도시 페루자(우리에겐 안정환의 기이한 방출로 유명해진 이탈리아 프로축구 구단의 연고 도시) 시내에서 자동차로 20분을 달리면 도착한다. 2001년 인구조사 당시 인구수가 436명일 정도로 아주 작은 도시지만 브루넬로 쿠치넬로의 허브로 점차 외부에 알려지게 됐다.
로마에서 북서쪽으로 2시간 30분을 달리면 푸른 들판이 펼쳐진 아주 작은 도시에 닿는다. 드넓은 초원과 포도밭, 언덕 위에 자리한 오래된 성채, 영화 세트장처럼 드문드문 자리한 아름다운 주택··· 브루넬로 쿠치넬리 본사와 공장이 자리한 솔로메오다. 그곳은 도시 전역을 점령한 캐시미어 브랜드를 위해 존재하는 듯했다.
1978년 창립자의 이름을 내걸고 출범한 브루네로 쿠치넬리는 우아하고 고급스러우며 편안한 이미지로 성공한 브랜드다. 로고 플레이를 하지 않아도 ‘콰이어트 럭셔리’를 내세워 이탈리아 장인 정신과 수작업 기술을 반영한 고품질 니트 브랜드로 빠르게 성장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를 발음하면 자연스럽게 단짝처럼 따라붙는 게 바로 캐시미어다.
캐시미어를 기반으로 하는 패션 하우스의 본사가 자리 잡은 따스하고 풍요로운 움브리아(토스카나와 비슷한 뉘앙스를 풍기는 지역이다)에 대한 첫인상은 인상주의 회화처럼 아름답다는 것. 작은 언덕 위에 자리한 고색창연한 고성(1982년 아내의 고향인 솔로메오로 이주 후 14세기에 지어진 이 마을의 성곽을 매입해 브랜드 본사로 만들었다)을 중심으로 간간이 마주하는 조각상과 아테네 원형극장을 표방한 넓은 야외극장, 포도 농장과 와이너리 등 자연 친화적 분위기 속에 모던한 본사가 자리한다. 두둑한 지갑을 자랑하는 패션 브랜드가 너나없이 예술 사업을 공격적으로 펼치는 반면, 창립자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솔로메오 재건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그는 직원이고 직원의 가족인 지역민을 위해 솔로메오의 오래된 건물을 재건해왔다. 운동 시설, 극장, 도서관 등을 새로 지었고 기술학교를 세워 인재를 육성했다. 덕분에 젊은이들은 안정된 직장을 얻을 수 있었고, 이탈리아 장인의 명맥도 이어졌다. 애정을 쏟는 만큼 브랜드 로고 하단에 ‘Solomei ad MCCCXCI’를 새겨 솔로메오에서 생산된 제품임을 자랑스럽게 밝힌다. 이탈리아 문화, 마을 생활, 존엄성, 존중, 교육, 친절, 역사적 장소의 보호 가치를 기리는 주제에 초점을 맞춘 광고 캠페인이 눈길을 끌곤 했는데 막상 본사를 방문해보니 가족주의를 무엇보다 우선으로 하는 하우스의 긍정적인 철학과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었다.
이같이 지역에 기반한 특성 때문인지 쿠치넬리의 주요 컨셉이 자연과 가족 친화적 영감으로 이어지는 건 아주 자연스럽다. 무채색으로 단조로웠던 캐시미어 시장에 그린, 레드 등 다양한 색상의 제품을 선보이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쿠치넬리의 F/W 시즌은 승마를 기반으로 한 매니시한 영국풍 디자인이 주를 이룬다. 솔로메오에서 전문적으로 제작한 수제 오페라 니트는 이번 시즌 프린스 오브 웨일스 체크를 접목해 멋스럽게 다듬었다. 양가죽 트렌치, 라이딩 부츠와 코듀로이가 다양한 촉감의 캐시미어와 어울리고, 컬러풀한 캐시미어 외에 쿠치넬리의 아이콘과 같은 스팽글 장식 캐시미어를 다양한 룩에 스타일링해 멋진 매력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매일 착용할 수 있는 옷은 몇 벌에 불과하지만 가능한 한 오래 입을 만한 가치 있는 옷이야말로 쿠치넬리의 정체성 아닐까. 남성복과 달리 여성복은 다양하게 변화하는 트렌드에 노출되곤 한다. 하지만 쿠치넬리는 계절마다 숙련된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한 다채로운 디자인으로 캐시미어 니트에 대한 강력한 정체성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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