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보그’가 기록한 현대판 미인도

2025.04.03

‘보그’가 기록한 현대판 미인도

‘美人’을 둘러싼 분투는 늘 치열했다. 기준과 해석 또한 시대와 유행마다 달라지며 끝없는 이견을 일으켜왔다. 2025년 4월, 국립무용단은 신작 〈미인〉을 통해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에 집중한다. 단아와 절제의 미학으로 무장한 나비춤과 승무, 강직하고 역동적인 칼춤, 넘치는 생명력이 차오르는 북춤, 삶과 죽음의 진리에 겸손히 순응하는 베가르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서영희가 디자인한 옷과 오브제를 입고 춤추는 국립무용단 무용수들은 한국적인 멋과 흥을 펼치며 평면적인 신윤복의 ‘미인도’를 가뿐히 넘어선다. 그리하여 〈보그〉가 기록한 현대판 미인도.

4월 3일부터 6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펼쳐지는 <미인>으로 관객을 만나는 국립무용단 무용수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 <보그> 카메라 앞에 먼저 섰다. 의상·오브제 제작 감독 김지원과 의상·오브제 디자인을 맡은 서영희는 무용 의상보다는 무용과 패션의 융합이라는 관점에서 <미인>의 옷을 손수 디자인했다. 무대에서 눈에 띄게 하기 위해 라이팅 장식을 더한 고깔과 무용수가 손에 쥔 한 쌍의 목단꽃에서 느껴지듯 형광색에 가까운 알록달록한 색채가 의상 전반에 즐겨 쓰였다.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물론 준비는 완벽했다.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국립무용단 소속 무용수들(김미애·박혜지·이승연·이요음)이 이 무대만을 위해 패션 스타일리스트 서영희와 그의 솜씨 좋은 벗들이 함께 디자인한 의상을 입었다. 4월 3일부터 6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펼쳐지는 공연 <미인>을 위한 포스터와 <보그 코리아> 화보 촬영을 동시에 진행하는 날까지도 촬영장에 모인 모든 이들은 사진에 어떤 ‘미인’의 모습이 담길지 가늠하지 못했다. 그러나 말군 바지를 입고 날렵한 칼을 들고 민첩하게 춤을 추는 무용수와 오래전 과거의 신비로운 미인도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 미스터리한 매력을 뽐내며 나비춤과 승무를 추는 무용수를 번갈아 바라보며 나는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아름다움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고 조심스럽게 결론지었다.

꽃 역시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소재다. 오간자를 자르고 천에 수를 놓는 작업을 즐기는 최은정 작가를 초대해 패브릭 꽃으로 <보그> 화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

예술의 영역에서 아름다움이란 나와 대상을 잇는 다양한 질서다. 우리는 주로 명징하게 보이는 무언가에 이 형용사를 갖다 대지만, 실은 아름다움이란 보이지 않는 세계와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열어준다. ‘아름’이라는 단어가 ‘나’를 의미하는 것처럼 아름다움은 주체마다 다르게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무용 역시 그 감춰진 무언가를 몸의 언어로 풀어내는 예술이다. 그리고 나는 2025년 봄, 아름다움의 은밀함을 무용과 패션의 관계로 극대화한 국립무용단의 신작 <미인>을 사진가 최나랑의 시선을 통해 새롭게 바라보는 특권을 얻었다.

승무는 장삼에 붉은 가사를 걸치고, 백옥 같은 고깔과 버선코가 유난히 돋보이는 차림으로 추는 춤이다. 서영희는 가사 끈에 테일러 깃 디테일을 가미했다. 커다란 고깔로 얼굴을 가린 무용수가 수줍지만 단단한 몸짓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국립무용단의 신작 <미인>은 특정한 ‘상(象)’을 중첩해서 보여주기보다 변화무쌍한 안무와 이미지를 아우르며 관객의 시선을 보이는 것 너머로 이끈다. 무대 위에서는 산조 춤과 살풀이, 칼춤, 놋다리밟기, 나비춤과 승무, 강강술래, 북춤, 부채춤, 베가르기, 탈춤을 장면별로 구성했다. 안무는 지난해 방영된 <스테이지 파이터>에서 한국무용 코치이자 전국 투어 공연 총감독으로 활약한 정보경이 맡았다. 그는 작품의 큰 축을 이루는 전통 춤과 미인이라는 개념을 국립무용단의 신인 무용수부터 경력과 연륜이 쌓인 중년 무용수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몸에 쌓인 세월과 춤 선을 통해 풀어낸다. “각각의 전통 춤은 춤의 형식과 표현 방식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와 어원을 재해석해 현재 활동하는 젊은 안무가의 시선을 통해 표현하는 식으로 완성했습니다. 예를 들어, 작품 첫 장면에 나오는 산조 춤을 연출할 땐 악기가 흩어져 따로 놀았다가 함께 어우러져 논다는 산조의 어원에 집중했죠. 그렇게 전통적인 산조 춤의 본래 안무를 구현하기보다 산조 음악이 가진 형태에 집중해 무용수들이 흩어졌다가 모이는 패턴을 만들어냈습니다. ‘먹었다 풀어내고, 쥐었다 놓아버리는’ 호흡을 대입하면서요.”

<미인>의 탈춤에서는 무용수가 탈을 쓰지 않는다. 몸의 리듬이나 음악의 장단, 춤사위가 이미 충분히 탈춤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달빛 아래 등장한 신비로운 두 여인. 핫 핑크 태슬을 머리에 쓴 무용수 박혜지와 이요음이 쌍둥이처럼 일사불란하게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자유분방하게 산조 춤을 춘다. 속옷 살창고쟁이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옷은 덧치마를 짧게 입는 형식으로 스타일링했다.

마찬가지로 <미인>의 탈춤에서는 무용수가 탈을 쓰지 않는다. 몸의 리듬이나 음악의 장단, 춤사위가 이미 충분히 탈춤을 표현하기에 무용수들이 헤드피스로 착용하는 태슬(Tassel, 의상이나 오브제 장식으로 다는 술)의 움직임으로 탈춤을 형상화했다. 연출은 평창 동계 올림픽 개회식과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무대에서 연출가로 활동 중인 양정웅이 맡았다. 최근에는 황정민 주연의 연극 <맥베스>, 박해수 주연의 <파우스트>로 대중과 친숙해졌다. 2021년에 상업 영화 <더 박스>를 연출하기도 한 양정웅은 전통 무대와 영상을 교차하는 시도 또한 거침없이 펼친다. 그러나 무용 연출은 또 다른 새로운 시도였다. “무용은 시처럼 느껴졌어요. 소설과 달리 다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점에서요. 한국의 패션, 춤, 음악, 공간 등 다양한 요소를 해석하며 창조되는 다의성과 다양성을 연출의 핵심으로 삼아 콜라주 같은 작품을 구성했습니다.”

관록의 무용수 김미애가 촬영의 포문을 열었다. 장영규의 음악 아래 혼신의 힘을 다해 부채춤을 추는 그에게서 사진가 최나랑은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엄청나게 토해낸다”는 느낌을 받았다.

화보 촬영장에 결집한 전문가들을 한 명씩 만나 <미인>에 관한 정보를 더듬거리듯 채집하는 사이 내 머릿속에서는 <미인>과 ‘미인’의 개념에 대한 생각이 콜라주처럼 연결되어 낯선 풍경을 이뤄가고 있었다. 화보 촬영이 진행된 2월 말까지만 해도 안무의 초기 단계만 완성된 상태였기에 무용수들은 <보그> 카메라 앞에서 각 의상과 춤의 상징적인 매력과 무용수의 몸에 밴 춤사위에 기반해 즉흥적인 움직임을 선보였다. 이들은 패션모델처럼 멈추어 포즈를 취하지 않고 느릿느릿 계속 움직였고, 사진가 최나랑은 바닥에 엎드리거나 사다리에 올라탄 자세로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끈질기게 주시했다. “안무를 수행한다기보다는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엄청나게 ‘토해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진가로서 평소 즐기는 톤 앤 매너에 무용수라는 피사체를 넣었더니 생각지 못한 색감과 형태, 조화가 생겨 신기했어요. 오직 이 순간을 위해 만든 의상과 함께 그들의 손끝과 발끝이 이루는 감정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었죠.” 최나랑의 소감이다.

부채의 주름과 옷의 디테일이 비슷한 결로 이어지도록 속옷과 겉옷의 주름을 부채처럼 잡아서 율동감을 일으켰다.

비단 화보 촬영을 병행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미인>은 처음부터 한국무용과 패션의 만남을 기대하며 탄생한 작품이다. 의상·오브제 제작 감독은 김지원, 디자인은 <미인>에 담긴 스타일리시한 면에 주목해 <보그> 화보를 기획한 서영희가 전담했다. 김지원 감독은 1994년 한복 브랜드 ‘옷짓는원’을 시작해 수많은 전통 무용과 창작극 의상을 작업했고, 평창 동계 올림픽 개회식 한복과 청와대 국빈 행사 의상을 담당해온 한복계의 수장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2023년에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개최한 ‘한복 패션쇼’와 ‘조선시대 전통한복 특별전’에 참여했고, 같은 해 올해의 한복인상을 수상했다.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도 꾸준히 김지원과 긴밀하게 협업해온 디자이너 서영희는 25년 동안 <보그>에서 패션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해온 ‘코리아니즘(Koreanism)’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김지원과는 2024 파리 올림픽 코리아하우스 한복 패션쇼와 올해 8회를 맞이하는 한복 박람회 ‘한복상점’에서 호흡을 맞췄다.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 망자를 좋은 곳으로 옮긴다는 의미를 담은 베가르기. 진오귀굿에 나오는 넋당석을 모자로 바꾸어 디자인했다. 정교한 무늬와 장식으로 가득한 새하얀 의상을 입은 무용수가 등장하자 꿈을 꾸듯 황홀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김지원과 서영희는 무용 의상보다는 무용과 패션의 융합이라는 관점에서 <미인> 의상을 디자인했고, 스타일과 움직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즉흥성에도 주목했다. 허공에 옷감을 자유자재로 흩날리는 무용수들처럼 서영희가 먼저 디자인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무용 의상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형광 컬러를 포인트로 활용하고, 상의는 타이트한 반면 하의는 볼륨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 와이어 페티코트를 입히고, 산조 춤 의상에서는 속옷 살창고쟁이를 부각하고, 부채춤에서는 부채처럼 옷 전체에 주름을 잡아 율동을 극대화하고, 살풀이춤에 소품으로 쓰는 한삼을 목에 건다거나, 탈춤에서는 검은색 의상과 상반되도록 안감과 한삼을 화려하게 만들고, 베가르기 의상은 한껏 풍성하게 디자인하기 위해 지전(종이로 만든 무구)을 옷감처럼 활용한 식이다. “헤드피스도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보그> 촬영 내내 무용수는 형형색색의 태슬을 머리에 쓰고 춤을 췄다. 미래적인 인상을 주는 헤드피스 덕분에 전통적인 음악과 춤, 의상에도 무용수들은 지극히 현대적인 분위기를 발산했다. “<보그> 화보를 작업할 때마다 좋은 아이디어를 건네받은 헤어피스 제작 감독 박규은이 이번에도 큰 도움을 줬습니다. 넋당석(망자를 태우는 배)을 모자로 표현하는 아이디어를 구현한 것은 물론 나비춤 모자와 승무 고깔, 펜싱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칼춤 모자를 함께 만들었죠.”

얼굴을 가리는 펜싱 마스크에서 영감을 받아 앞이 가려지는 모자를 제작했다. 알록달록한 저고리와 조끼, 말군 바지를 입고 칼춤을 추는 이들에게 느낄 수 있는 용맹한 아름다움이 있다. <미인>은 수많은 이들이 서로의 아름다움에 귀를 기울이며 합심해 완성한 미(美)에 대한 총체적인 찬가다.

서영희의 디자인 의도와 무용수의 입장을 매끄럽게 조율하며 새로운 무용 의상을 창조한 데는 김지원의 공이 혁혁하다. 패션쇼와 달리 무대에서 옷은 무용수의 움직임을 도와주는 역할에 충실해야 하기에 이를 위해 포기하는 디테일이 생기는 법이다. 무용수 역시 의상의 아름다움을 지켜내기 위해 해내거나 포기해야 하는 움직임이 생긴다. 제작 감독 김지원은 무용수들이 옷을 입고 춤추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세심하게 일조했다. 결국 김지원과 서영희는 무용과 패션의 평화로운 공존에 만족하지 않고 이 기회에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의상과 움직임의 가능성을 연구한 셈이다. 덩달아 이제까지 함께 한복을 만들어온 다른 때보다 훨씬 다채로운 재료를 활용해야 했다. “형태감을 살리기 위해 와이어를 썼지만 패션쇼에서 사용하는 단단한 와이어가 아니라 유연하면서 경량감이 좋은 와이어를 활용한 것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재료에 대한 연구도 만만치 않게 했죠.” 서영희가 덧붙였다.

세 명이 모이니 춤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배가된다. 역동적인 탈춤 동작이 돋보이도록 안감 색상을 강조했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의 거대한 탈과 종이 꽃가루가 한층 흥을 돋운다.

그뿐 아니다. 음악은 영화 <링> 음악을 만들며 데뷔한 후 <복수는 나의 것>, <달콤한 인생> 음악을 공동 작업했으며, 최근 드라마 <정년이> 음악 감독으로 활약한 밴드 이날치의 리더 장영규가 맡았다. 그는 굿거리와 휘모리 등 여러 장단을 변주하고, 꽹과리·거문고·장구 등 전통악기를 능숙하게 조합하며 완전히 새로운 <미인>의 무용 의상처럼 낯설고 생경한 감각을 몰고 왔다. 여기에 더해 에스파와 아이브의 뮤직비디오를 작업한 신호승이 무대 디자인을 맡으며 <미인>의 세계관은 더 풍성해졌다. 정보경은 말한다. “미인 하면 흔히 여성을 떠올리지만, 지금 제가 떠올리는 미인은 그저 아름다운 사람, 젠더리스한 존재예요.” 장영규와 신호승, 서영희와 김지원의 정의는 또 다를 것이다. 이렇듯 <미인>은 수많은 이들이 서로의 아름다움에 귀를 기울이며 합심해 완성한 아름다움에 대한 총체적인 찬가다. <미인>을 보러 온 관객 역시 70분 동안 펼쳐지는 다채로운 춤과 패션의 향연에서 저마다의 시선과 마음에 따라 서로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할 것이다. 마리아 포포바가 저서 <진리의 발견> 프롤로그에 쓴 장황한 문장처럼 무한한 아름다움을 말이다. “이 모든 것, 그러니까 토성의 고리와 아버지의 결혼반지, 해 뜰 무렵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구름,… 내 고향 불가리아의 릴라 산맥에서 들리는 양치기 처녀들의 노랫소리와 그네들이 모는 양 떼의 모든 양,… 내가 사랑하는 이의 북두칠성 모양 주근깨와 내가 그녀를 사랑할 때 부드럽게 진동하는 축삭돌기의 모든 떨림, 우리가 끊임없이 현실을 파악하고 바꾸는 도구로 사용하는 모든 사실과 환상.” (VK)

단아함과 절제의 미학이 돋보이는 나비춤은 승무의 탄생에 영향을 미쳤다. 이를 비롯해 <미인>에서는 한국적인 멋과 흥을 간직한 11가지 민속춤이 차곡차곡 펼쳐지며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코스튬 디자이너
    서영희
    포토그래퍼
    최나랑
    피처 에디터
    류가영
    양은혜(공연 기획사 스튜디오그레이스 대표, 이타미준건축문화재단 전략기획팀장)
    모델
    김미애, 박혜지, 이승연, 이요음
    헤어
    김정한
    메이크업
    박혜령
    세트
    전민규
    패브릭
    함창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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