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년 동안 새 옷을 한 벌도 사지 않았습니다

‘노-바이(No-buy, 구매 안 하기)’ 1년 도전의 여섯 달째, 갑자기 새로운 원피스가 사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들었다. 구매의 짜릿함이나 설렘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딱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거기 있었다. 무릎까지 오는 길이의 A라인 블랙 스커트. 그 친구를 내 옷장에 데려다 놓으면 굉장한 변화가 일어날 것만 같았다. 나는 재택근무를 하며, 작년 대부분은 푸에르토리코의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개 산책을 하러 외출한 게 전부였다(2019년부터 푸에르토리코에 거주 중입니다). 옷장 속이 점점 지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새로운 옷을 사지 않겠다는 다짐을 지켜냈다. 잘 입지 않던 블렉 드레스의 상단을 잘라내고, 고무줄 허리 부분만 남겨두었다. 넉넉한 티셔츠를 위에 입으면 옷을 잘라 입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없을 테고, 열대지방에서의 개 산책길에 어울리는 시크한 새 스커트를 갖게 되는 셈이었다. 다시 활기가 돌아왔다.
요즘 노바이 챌린지가 점점 더 인기를 얻고 있다. 과소비가 지갑과 지구 모두에 해롭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2023년 첫 책 <No Meat Required> 출간 투어를 다녀온 뒤 이 도전을 결심했다. 투어 중에는 책 낭독을 위해 새로운 옷을 많이 사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브루클린에서 열린 출간 행사에는 어깨 라인이 인상적인 마라 호프만(Mara Hoffman)의 블랙 드레스를, MIT 강연에는 다소 넉넉한 블랙 캐시미어 스웨터를, 독자들과 만나는 다른 행사에는 여유로운 핏의 코스 점프수트를 입고 152cm인 내 키를 보완해줄 마크 제이콥스 플랫폼 슈즈를 신었다. 그 옷들은 그 순간에 딱 알맞았고 만족스러웠지만, 동시에 내 옷장이 얼마나 과하게 부풀어 있었는지도 깨닫게 해주었다.
브루클린에서 산후안(San Juan)으로 이사하면서 내 스타일 역시 날씨와 생활 방식, 나이에 맞춰 바뀌었다. 나는 늘 패션에 관심이 있었지만, 서른이 넘어선 후에야 비로소 스타일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시점을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강력한 개입이 필요했다. 새로운 옷을 사지 않는 1년은 내가 더 신중한 패션 소비자가 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미 소규모 지속 가능 브랜드나 빈티지 옷(특히 가죽 제품)을 주로 구매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것이 항상 더 낫다’는 소비문화 속에서 스스로를 멈추는 연습이 필요했다. 그래야만 내가 입는 옷과 옷을 입는 이유를 재정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음식, 그중에서도 식물성 식단이 환경과 동물을 위하는 쉬운 생활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주제로 글을 쓴다. 패션이 환경과 동물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옷 소비 방식을 바꾸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온라인 세일과 상점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정작 나는 집에서 일하고, 특별히 필요한 옷도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생활 환경의 변화 덕분에 같은 실루엣의 옷을 반복해서 입는 게 더 쉬워졌다. 나를 평가할 사람은 나뿐이었으니까. 또 본래도 미니멀하게 입는 편이다. 단색을 주로 입고, 박시한 티셔츠와 오버사이즈 셔츠를 좋아하며, 가끔 도트 무늬, 빨간색이나 초록색 룩을 껴입어 포인트를 준다. 내 교복들은 노바이 챌린지에 큰 도움을 주었다. 평소에 힘을 주고 싶은 날은 신발을 바꿔 신는 집착도 마찬가지였다.
속옷, 운동복, 잠옷 같은 건 충분히 갖고 있었기 때문에, 오직 신발만 노바이 규칙에서 예외로 두었다. 도시에서 걷는 일이 많기 때문에 샌들 몇 켤레는 해지리라 예상했고, 실제로 세 켤레가 닳아버려 결국 닥터마틴의 플랫폼 샌들을 새로 장만했다. 그랬더니 반려견 산책의 새로운 친구가 되었다. 사실 신발은 나를 가장 기쁘게 해주는 패션 아이템이다. 예를 들어, 엄마 생일날 쇼핑하다 우연히 발견한, 큰 폭의 할인을 하는 드리스 반 노튼의 은색 하이힐을 발견했을 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너무 특별했고, 너무 쌌다. 100달러 이하의 가격으로 득템한 빈티지 페라가모 펌프스도 마찬가지였다.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정도 예외는 내가 끝까지 노바이 규칙을 지키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됐다. ‘식물성 식단’에 대한 글을 쓰면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게 얼마나 쉽게 실패로 이어지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규칙을 살짝 비트는 건 챌린지를 끝까지 이어가는 데 도움을 줬다. 게다가 그 은색 하이힐은 오래된 청록색 드레스에 생기를 불어넣어 여름에 있을 사촌의 결혼식에 어울릴 만한 옷차림이 되었다.

연말이 다가오자, 결심이 흔들렸다. 마음이 약해진 것이다. 친구가 운영하는 빈티지 숍이 연말 팝업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운영하는 소규모 브랜드는 이 시즌에 가장 많은 수익을 내기 마련이다. 그리고 진열대에서 브룩스 브라더스의 낡은 턱시도 셔츠가 눈에 띄었다. 내 옷장 속 필수품인 버튼다운 셔츠를 재해석한 느낌이었고, 친구의 사업은 충분히 지원받을 만했다. 결국 그 셔츠를 샀다.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이건 규칙을 깬 게 아니라, 오히려 합리적인 소비처럼 느껴졌다. 노바이 챌린지의 핵심은 무심코 옷을 사지 않는다는 의미였고, 이런 ‘의식적 구매’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성과처럼 느껴졌다.
공식적인 노바이 1년은 끝이 났지만, 여전히 새 옷을 사지 않고 있다. 사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최근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심포지엄에 초대받았을 때는 인터넷 쇼핑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옷들을 바탕으로 어떤 조합이 가능할지 상상하기부터 했다. 턱시도 셔츠가 마침내 데뷔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엄마가 빈티지 숍에서 사다 준 아끼는 검정 가죽 스커트를 꺼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이젠 제 공식 석상 패션이 되었네요).
지금은 지난 1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았던 옷, 낡아서 더는 입기 어려운데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옷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다. 잘 신은 신발과 셔츠는 수선 계획도 세웠다. 노바이 챌린지는 옷장을 새롭게 정리하게 해주었고, 덕분에 더 멋지게 옷을 입게 되었다.
추천기사
-
패션 트렌드
무심한 듯 시크하게, ‘노력 없는 스타일’이라는 환상
2025.04.04by 김현유, Daisy Maldonado
-
라이프
4월, 코엑스를 방문해야 할 이유 3
2025.03.27by 이정미
-
패션 아이템
2025년 헐렁한 청바지를 입는다면, 이 컬러로!
2025.04.08by 황혜원, Renata Joffre
-
패션 뉴스
‘보그 살롱: 워드로브 with COS’에 초대합니다!
2025.04.08by VOGUE
-
셀러브리티 스타일
100만원 플립플롭 대신 다코타 존슨이 신은 해독 슈즈!
2025.04.11by 황혜원, Daniel Rodgers
-
아트
김영하부터 김창완까지, 삶을 사유하는 산문집 3
2025.04.09by 이정미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