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우리, 당신 그리고 나! 론 뮤익이 창조한 시대의 자화상
소설가 줄리언 반스가 쓴 예술 에세이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에는 론 뮤익을 다룬 글이 실려 있습니다. 제목이 의미심장하죠. ‘이것은 예술인가?’ 이 글은 1997년 런던 <센세이션> 전시의 스타였던 그의 ‘죽은 아빠’로 시작하는데, 아마 당시에 론 뮤익의 작품은 정말이지 센세이셔널했을 겁니다. 그리고 이 글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미술에 대한 소고를 거쳐 이런 문장을 마지막 문단에 내놓습니다. “예술이 주는 지속적인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의외의 각도에서 접근해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감탄을 자아내는 힘이다.” 저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론 뮤익의 개인전을 보면서, 반스의 문장이 매우 절묘했음을 알았습니다. 마침 그날은 바쁜 일정 때문에 전시장을 뛰다시피 해야 했는데요. 그러다 보니 평소와는 다른 각도로 작품을 볼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저는 론 뮤익의 다양한 인간 형상의 작업에 이끌려 번번이 걸음을 멈췄습니다. 그들이 저를 불러 세웠습니다. 자신을 자세히 보라고 말이죠. 감탄이 절로 나오더군요.



호주 출신인 론 뮤익은 현대 인물 조각의 개념과 형태를 모두 근본적으로 새롭게 정의한 미술가입니다. 전통적인 조각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재료를 활용해 전혀 새로운 조각을 보여준 것이죠. 머리카락이나 옷차림은 물론 얼굴의 땀구멍까지 정교하게 묘사해내는 그의 조각은 사람보다 더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작가가 면밀하게 조정하거나 왜곡하는 작품의 크기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작업의 크기가 곧 내용인 셈이죠. 전통 조각에서도 크기는 권력과 지위를 상징했고, 크기를 통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론 뮤익의 거대한 이들은 결코 거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일상적이어서 비루해 보이거나, 너무 사실적이어서 기이해 보이거나, 너무 현실적이어서 비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스케일을 변화시킴으로써 인간의 존재를,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과 통찰력을 제안하는 건 론 뮤익의 전매특허입니다.



전시는 작가의 자화상 격인 ‘마스크 II’를 비롯, 침대에 비스듬히 누운 여성의 형상과 시선을 통해 론 뮤익 작품의 핵심적 특징을 함축한 ‘침대에서’, 닭과 대치하고 있는 유머러스한 장면을 제시하는 ‘치킨/맨’, 죽음에 대한 오랜 고찰이자 전 세계에서 선보인 해골의 거대한 설치 작품 ‘매스’ 등 총 48점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전시장을 다니다 보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작품을 본 듯합니다. 이런 착시는 론 뮤익이 다름 아닌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각각의 작품이 품은, 하지만 작가가 일일이 알려주지 않는 각각의 사연은 그 자체로 놀라운 정도로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이 거대한 인간 형상의 작품을 오랜 시간 노동을 거쳐 제작한 작가는 결국 조각이 아니라 각각의 살아 있는 세계를 만들어낸 겁니다.




론 뮤익이 다루는 작품 세계의 보편성은 이 유명한 작품들과 평범한 우리의 삶을 이어줍니다. 예컨대 ‘마스크 II’는 숨소리마저 들리는 듯 생생하지만, 작품 뒤쪽은 텅 비어 있기 때문에 종국에는 조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실제와 허구의 경계를 오가면서 론 뮤익은 기억, 몽상, 일상적 경험을 바탕으로 대상에 대한 비범한 연민을 담아냅니다. 그들은 불안해 보이고, 고독해 보이며, 치열해 보이고, 나른해 보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라는 것을, 론 뮤익은 어떤 현대미술가보다도 명징하고 명쾌하게 보여줌으로써 시대의 자화상을 그려냅니다. 그래서일까요, 미술관을 나오는 길에 마주친 수많은 타인을 보면서 그들도 그들의 삶을 살겠지, 했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이들이 돌연 사랑스러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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