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할머니의 빈티지 스커트 컬렉션, 632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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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빈티지 스커트 컬렉션, 632벌의 이야기

미국 미네소타 출신의 여성 오드리 휴셋(Audrey Huset)은 지난 2022년 9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생전 춤을 추며 휴일을 즐겼고, 아코디언을 연주했으며, 아주 열정적으로 빈티지 울 스커트를 수집했죠. “할머니는 한때 1,000개가 넘는 스커트를 가지고 계셨을지도 몰라요.” 휴셋의 손녀 매 콜번(Mae Colburn)이 미국판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전한 말입니다. 역시 미네소타 출신으로 현재는 브루클린에 거주 중인 콜번은 낡고 버려진 천을 활용해 러그를 만드는 아티스트입니다. 그녀는 할머니가 간직하고 있던 스커트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콜번과 콜번의 부모 모두 스커트를 러그로 재활용할 생각이었죠. 콜번의 가족은 아주 옛날에도 할머니의 오래된 스커트로 러그를 만든 적이 있었거든요. “어린 시절, 집에 있던 많은 러그들이 그렇게 해서 만든 것이었어요.” 이런 경험은 콜번이 러그를 소재로 작업하는 아티스트가 된 데에도 영향을 미쳤죠.

할머니가 남기고 간 스커트를 정리하면서 식구들은 생각을 바꿨습니다. 러그로 만드는 대신 모든 스커트를 기록하고 보존하기로 말이죠. ‘할머니 스커트 아카이빙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한 겁니다. “우리 가족의 공통 관심사와 전문 분야를 생각해 보면, 진작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였어요.” 콜번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각각 대학 의류학과와 사진학과 교수였고, 콜번은 미술사를 전공했습니다. “예전부터 저는 예술의 영역이나 패션 관점에서 여러 직물에 관심을 뒀어요. 대학에 다니는 내내 직물에 대해 많은 조사를 했고, 보고서를 썼죠.”

1987년에 찍은 가족사진에는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오른쪽은 할머니 오드리, 왼쪽은 증조할머니 로라입니다.

그렇게 가족의 학문적 배경을 바탕으로 프로젝트의 닻을 올렸습니다. 콜번과 가족은 색상, 무늬, 실루엣이 다양한 632개의 빈티지 울 스커트를 분류하고, 정리하고, 사진을 찍었죠. 실제 스커트들은 콜번의 브루클린 스튜디오에 보관돼 있으며, 가끔 일반인에게 공개될 예정입니다. 디지털 아카이브는 웹사이트에 공개돼 항상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요. 미국판 <보그>는 콜번에게 이 프로젝트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할머니는 어떤 분이었나요? 할머니의 스타일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할머니는 매우 따뜻하고 상냥한 분이었어요. 웃는 얼굴이 아름다웠죠. 할머니는 기쁜 일이 있을 때 아낌없이 축하해주었어요. 휴일을 온몸으로 즐겼고요. 춤을 추고 아코디언을 연주하면서 말이에요.

할머니는 젊은 시절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에 있는 회사에서 비서로 일했는데, 당신의 커리어를 무척 자랑스러워하셨어요. 회사에 다니던 시절 할머니의 모습을 제가 직접 본 적은 없지만요. 제가 할머니에 대해 기억하는 건 1990년대부터니까요. 저는 그 무렵이 할머니의 전성기였다고 생각해요. 할머니는 항상 매우 단정하면서도 캐주얼한 스타일을 고수했어요. 허리에 밴딩이 달려 신축성 있는 슬랙스와 패턴이 그려진 스웨트셔츠를 즐겨 입었죠. 항상 검은색이나 흰색의 리복 프린세스(Reebok Princess) 운동화를 신었고요.

엄마 말에 따르면, 할머니의 스타일은 옛날에도 근사했대요. 제가 기억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요. 예를 들어, 할머니는 당신께서 입은 빈티지 스커트 디자인에 맞게 재킷과 장갑, 모자를 직접 만드셨다고 해요. 모든 의상을 맞춤으로 준비한 거죠. 그 모든 걸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가 재봉틀을 정말 잘 다루셨기 때문이에요. 전문가나 다름없었죠!

Courtesy of Mae Colburn

할머니는 왜 울 스커트를 모았을까요?

할머니가 젊은 시절부터 스커트를 모은 건 아니에요. 나이가 들어서부터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당신이 입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스커트를 모았죠. 솔직히 말하면, 직접 입을 수 없더라도 그냥 좋아서 수집했다고 생각해요. 후손들에게 아름답고 품질 좋은 울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 같고요.

할머니가 수집한 스커트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할머니 스커트 아카이빙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할머니는 2022년에 돌아가셨어요. 당시 99세였는데, 정말 장수하셨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스커트를 수집한 건 아니었어요. 건강에 문제가 있었으니까요. 할머니가 돌아가실 무렵, 할머니가 모아둔 스커트들은 부모님 집 창고 한구석에 10여 년 동안 방치된 상태였어요. 할머니가 떠난 후, 우리 가족은 이 스커트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오래 고민했죠. 처음에는 울을 풀어 러그를 만들 생각이었어요. 치마 몇 개를 가지고 1제곱피트(약 0.09제곱미터)짜리 샘플을 짜 모든 스커트를 쓰면 얼마나 많은 러그를 만들 수 있을지 계산해봤죠. 결과는 놀라웠어요. 무려 1,000제곱피트(약 93제곱미터, 28평) 정도로 예상됐으니까요. 엄청난 양이죠?

상자를 열어보니, 할머니의 스커트들은 러그 재료로 써버리기엔 아까울 정도로 완벽하게 보존돼 있더군요. 게다가 역사적 가치가 상당했어요. 1900년에 조직돼 미국 최초로 여성이 주축이 된 노동조합인 국제여성의류노동조합(ILGWU, International Ladies’ Garment Workers’ Union) 라벨이 붙은 스커트를 실제로 본 적 있으세요? 1960년대 ‘펜들턴 룩’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모직물 산업에서 선두를 달리던 브랜드 펜들턴(Pendleton)의 라벨이 붙은 스커트는요? 그 와중에 크리스챤 디올 라벨이 붙은 스커트도 있었죠. 진짜 크리스챤 디올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그건 아무도 모를 거예요. 그만큼 오래됐으니까요. 보면서 이건 단순한 스커트가 아니라 하나하나가 역사를 담고 있는 기록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러그로 만들든, 어디 팔든, 박물관에 기증하든, 무엇이든 하기 전에 적어도 이 스커트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 필요할 거라고 판단했죠.

어떻게 기록했나요?

엄마는 의복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의류학자이고, 아빠는 사진가예요. 스커트를 아카이빙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가족 구성인 셈이죠. 우리는 우선 창고에 처박혀 있던 스커트를 모두 빨랫줄에 널어 신선한 공기를 쐬게 했어요. 이웃들은 어마어마한 스커트의 양에 깜짝 놀랐죠. 엄마는 모든 스커트 각각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 말씀해주셨고, 우리는 이에 대한 설명을 녹음했어요. 다음으로는 아빠의 스튜디오에 공간을 마련해 촬영을 진행했죠. 저는 웹사이트를 만들어 색상과 패턴이 비슷한 스커트끼리 정렬했고요. 온라인에서 가볍게 스크롤을 내리는 것만으로 모든 스커트를 확인해볼 수 있게끔 말이죠. 가족 각각의 재능을 살린, 아주 완벽한 팀플레이였어요.

수많은 스커트 중, 눈에 띄는 게 있었나요?

하나같이 특별했는데, 아마 전부 빈티지 제품이라서 그럴 거예요. 어떤 스커트는 새것처럼 깨끗하고, 어떤 것은 마모된 흔적이 있었죠. 아, 한 가지 기억나는 스커트가 있어요. 1950년대, 혹은 1960년대 제품으로 추정되는 임신부용 검은색 A라인 스커트예요. 이음매를 살펴보니 뒷부분이 급하게 꿰매어져 있더군요. 임신 등 삶의 여러 단계를 거치며 체형이 변한 누군가의 스커트였을 거예요. 이처럼 할머니가 수집한 스커트들은 원래 주인이 누구였을지, 여러 궁금증을 불러일으켜요.

또 하나 인상 깊은 스커트가 있어요. 1970년대 스타일의 핸드메이드 스커트가 하나 있었는데, 그걸 본 엄마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잠깐, 이건 내가 만든 거야.” 엄마는 1971년, 시애틀에 막 문을 연 ‘스타벅스’ 카페의 첫 번째 직원이었어요. 당시 출근할 때 입을 스커트를 직접 만들었다고 했죠.

엄마가 스타벅스의 첫 번째 직원이었다고요?

맞아요. 스타벅스가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훨씬 전, 아주 옛날 이야기죠.

정말 대단한데요.

그렇죠? 엄마가 또 마음에 들어 하던 스커트가 있어요. ‘미네소타 울 컴퍼니(Minnesota Woolen Company)’ 라벨이 붙은 주니어 사이즈 스커트죠. 분홍색과 보라색이 섞인, 아주 발랄하고 힙한 스타일이에요. 미네소타 울 컴퍼니는 현재 저희 부모님이 살고 있는 미네소타주 덜루스에 본사를 두고 있죠. 요즘 엄마는 이 회사에 대해 다방면으로 조사하고 있어요. 이 스커트의 역사를 찾는 과정이죠. 저와 엄마는 언젠가 이 스커트가 미네소타주의 박물관에 전시돼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길 바라요.

Courtesy of Wool Skirts

할머니의 스커트를 입어본 적 있나요?

한 번도 입지 않았어요. 하지만 엄마는 종종 입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아티스트라면 작업물과 사적인 거리를 둬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앞으로도 입진 않을 것 같아요. 할머니의 스커트는 전부 제 스튜디오에 보관 중이에요.

빈티지 쇼핑을 좋아하시나요?

물론이죠!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빈티지 쇼핑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할머니는 빈티지 쇼핑을 할 때, 눈으로 볼 뿐만 아니라 원단을 하나하나 만져봤어요. 빈티지 아이템의 품질에는 촉감이 큰 역할을 한다고 말씀하셨죠. 할머니는 ‘유니크’라는 빈티지 숍을 제일 좋아하셨어요. 할머니랑 같이 간 적도 있죠. 할머니는 그곳에서 스커트를 정말 많이 샀다고 했어요.

디지털 아카이브를 만들어 불특정 다수에게 할머니의 스커트를 공개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여러 이유가 있어요. 일단, 스커트를 통해 20세기 의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흥미롭잖아요. 그 시기 양모 산업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어요. 이제는 더 이상 그때처럼 다양한 색과 무늬의 질 좋은 양모를 찾아볼 수 없죠. 그런 점에서 이 스커트들은 패션과 산업의 역사적 흔적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또 저는 이 아카이브를 통해 사람들이 오래된 물건을 다른 시선으로 보길 바라요. 옷장, 지하실, 창고 등 구석구석에 놓인 오래된 옷을 다시 바라보고, 그 옷에 담긴 기억과 의미를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으면 하죠.

스커트와 젠더의 관계에 대해 탐구하는 것도 저에게는 중요한 주제였어요. 스커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많은 60대, 70대, 80대 여성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그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요. 아주 옛날에는 공적인 장소에서 반드시 치마를 입어야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고 말이죠. 그리고 다들 처음으로 바지를 입고 출근했던 날을 마치 자신의 결혼식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고요. 스커트에서 바지로의 ’전환점’이 명확히 존재한다는 의미죠. 의복의 변화가 여성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처럼 여러 가닥의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아카이브를 보고 다양한 생각을 해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온라인에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종종 오프라인으로도 공개할 예정이고요!

Leah Faye Cooper
사진
Courtesy of Mae Colburn
출처
www.vog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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