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디아모와 현대무용수 최수진의 동행
<보그>와의 더 특별한 협업을 위해 최지윤, 서보권 무용수와 함께 보테가 베네타의 안디아모(Andiamo) 백을 소품으로 활용한 멋진 안무를 구상했다. 보테가 베네타 의상을 입고 움직인 소감은?
안디아모가 이탈리어로 ‘가자(Let’s go)’라는 의미라는 말을 전해 듣고, ‘이동’의 의미에 집중해 역동적으로 안무를 구상했다. 계속 무언가를 향해 가는 것처럼 보이는 동작과 무용수들끼리 서로 밀고 당기며 함께 전진하는 듯한 활기찬 느낌을 실은 이유다. 보테가 베네타 의상이 꽤 묵직해서 생각보다 더 거친 여정이긴 했지만,(웃음) 활짝 펴지는 치맛자락이 움직일 때마다 파동을 일으켜 시너지가 더해진 것 같다. 춤을 추는 내내 옷에 응축된 에너지를 고스란히 느꼈다.
무용과 의상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평소 선호하는 무용 의상이 있다면?
의상으로도 캐릭터를 명확히 구현해야 하는 발레나 한국무용과 달리, 현대무용은 의상을 고르는 데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청바지 같은 일상복도 자주 입고, 의상의 특이점에서 영감을 받아 안무할 때도 많다. 나는 춤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컬러와 디자인을 결정하는데, 컬러나 패턴으로 포인트를 주는 옷을 선호하는 편이다. 요즘에는 프로젝션 매핑을 활용하는 안무가 많아서 화이트나 스킨 톤 의상을 자주 입는다.
발레를 했던 고모의 영향을 받아 초등학교 4학년 때 발레를 시작하며 춤에 입문했다. 언제부터 당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나? 몸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일은 당신에게 어떤 자유를 선사하나?
춤을 시작하기 전에 원래 피아노를 꽤 오래 쳤다. 그러나 춤은 악기의 도움 없이 오직 내 몸만으로도 풍성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서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또 발레나 한국무용은 주인공이 명확한 것과 달리 현대무용은 무용수 스스로 캐릭터와 춤을 구축해간다는 것도 좋았다. 토슈즈를 벗어 던지고 현대무용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 자체가 더 자유로운 춤을 추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물론 모든 것이 나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그 자유가 때론 고통이 되기도 하지만, ‘나’다운 춤에 골몰하는 창작의 과정에서 느끼는 희열이 정말 크다.
2007년 동아콩쿠르와 서울국제콩쿠르 현대무용 부문에서 수상하며 인정받은 후 무대가 더 넓어졌다. 이후 뉴욕 앨빈 에일리 학교와 시더 레이크 컨템포러리 발레단(시더 레이크 발레단)에서 활약하며 미국으로 터전을 옮겼다. 낯선 여정과 모험을 즐기는 사람인가?
새로운 것을 굉장히 좋아하고, 도전을 반기며, 행동력도 좋은 편이다. 특히 시더 레이크 발레단에서의 시간은 무용수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서로 다른 인종과 환경을 가진 친구들과 함께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고, 우리의 공연을 보러 와주는 관객을 환대하며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무척 뜻깊었다. 지난해 <스테이지 파이터>에 코치로 함께 출연한 매튜 리치도 그때 만난 친구 중 한 명이다. 시더 레이크 발레단 친구들과는 아직도 서로 연락하면서 끈끈하게 지낸다.
춤에 관해 당신이 가장 꾸준히 고민해온 것은?
늘 ‘어떻게’가 제일 고민이다. 어떻게 출까, 어떻게 표현할까, 결국 그게 전부고, 동시에 그게 가장 어렵다. 답을 찾는 방식은 그때그때 다른데 상대 무용수를 보면서 얻는 자극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전시를 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영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영감이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무용수는 내 몸과 분투하며 보내는 시간이 제일 많기 때문에 결국엔 내 감정에 집중해야 답을 찾을 수 있다.
가장 좋아하는 동작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데 움츠리는 동작을 즐겨 구사하는 것 같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외로운 존재라는 인식이 있는데, 조금이나마 따뜻함을 느끼려고 그러는 건지, 외로움 속에서 스스로를 위로하려는 무의식적인 행위인 건지, 작게 움츠러들 때 나의 존재를 가장 강렬하게 인식하게 된다.
당신의 삶에서 가장 아이코닉한 순간은?
아무래도 <댄싱9>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내 춤을 알아본 순간이 아닐까. 그 전까지는 늘 내 무대를 찾아온 관객에 한해서만 내 춤을 보여줄 수 있었는데, 프로그램을 통해 가족을 비롯해 정말 많은 사람에게 내가 해외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나는 어떤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인지 ‘셀프 어필’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예술가로서 당신은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 외부로 떠나는 여행 혹은 내면에 대한 몰두 중 어떤 방식을 더 선호하나?
당연히 스스로에게 몰두하는 시간이 가장 많다. 그 외에는 시더 레이크 발레단 생활을 하면서부터 전시를 습관처럼 보게 됐다. 당시 무용단이 있던 첼시 동네가 갤러리 거리여서 주말이나 점심시간을 활용해 정말 많은 전시를 일상적으로 보러 다녔다. 지금도 나는 무용보다 전시 보는 것을 훨씬 좋아한다. 최근에 리움미술관의 <피에르 위그: 리미널> 전시를 굉장히 흥미롭게 보고 왔다. 인간이 멸종한 후의 세상을 그리는 듯한 다소 우울한 분위기의 전시였는데, 인간의 이기심과 미래에 대한 염려가 동시에 몰려왔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춤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까?
그러지 않을까?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춤은 정말 인간적인 행위다.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몸만으로 순수하게 즐길 수 있다.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아주 멀고 먼 신화에서부터 이어진 인간 삶의 아주 중요한 요소다.
무용수인 당신의 일상에 늘 동행하는 것은? 특별히 안디아모와의 동행을 상상한다면 어떤 여정이 떠오르나?
평소에는 발레 슈즈와 장갑, 양말, 상비약 정도를 넣은 큼지막한 에코 백을 들고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활보하지만, 안디아모와 동행한다면 전시나 정말 멋진 공연을 보러 가고 싶다. 그런 다음 밤에는 근사한 곳에서 칵테일을 한잔하고 싶다.
요즘은 숙명여대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최근에는 <스테이지 파이터>에서 현대무용 코치로도 활약했다. 지도자로서는 어떤 마음가짐과 철학을 안고 살아가나?
숙명여대에서 강의를 한 지는 벌써 2년이 지났다. 주로 1학년을 전담하는데, 이제는 주변 무용수들도 서른을 훌쩍 넘겼고 은퇴한 경우도 많기에,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친구들의 춤을 접하는 기회가 정말 소중하게 느껴진다. 잘하는 친구들을 보며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하고, 아직 건강하게 손수 시범을 보여주며 가르칠 수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도 든다. 수업에서 가장 자주 말하는 것은 ‘기본’, ‘매일매일’, ‘꾸준함’이다. 요즘 무용수들은 지나치게 다양한 춤과 장르에 관심을 분산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확실한 기본이 있어야만 성공적으로 변형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지금은 어떤 꿈을 위해 움직이는 중인가?
지난해까지는 어느 단체의 게스트 무용수로 활동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공식적으로 프로 무용단 생활을 은퇴했다. 열한 살 때부터 시작해 30년 동안 춤을 춰왔는데 이제까지 세 개의 챕터를 거쳐왔다는 생각이 든다. 10대부터 대학 시절까지 끊임없이 배우고 발전하던 시기, 무용단 생활을 하면서 정말 자유롭게 춤을 추던 전성기를 지나 이젠 안무를 하고 후배를 양성하는 세 번째 챕터에 이르렀다. 그때그때 고민이 다를 것 같지만, 결국 내 질문은 순간순간의 ‘어떻게’로 귀결될 뿐이다. 지금 이 순간 어떤 것에 집중할지, 어떤 목표를 갖고 임할지, 무대 위에서 훨훨 날아다니던 20~30대 때와 변함없이 침착하게 고민하며 전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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