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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계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크롬하츠 일가의 공간을 방문했다

2025.12.12

패션계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크롬하츠 일가의 공간을 방문했다

패션 제국에서 가장 두꺼운 베일에 싸인 가문을 파헤쳤다. 로스앤젤레스의 작은 차고에서 시작해 할리우드 한복판에 거대한 왕국을 세우기까지, 크롬하츠의 성공 신화는 곧 가족의 역사다.

할리우드에 자리한 크롬하츠의 대규모 팩토리에서 크롬하츠 일가는 각자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있다. 주방은 가족과 손님이 모두 모여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는 유일한 만남의 장소다.

크롬하츠. 이 단어를 듣는 순간, 세계 어디서든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매혹적인 상징이 떠오른다. 특히 고딕 십자가는 이 미국 브랜드가 30년 전부터 제작해온 시그니처 문양으로 어느새 서브컬처 럭셔리의 아이콘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1990년대 초 크롬하츠는 패션계에 폭발적인 열풍을 일으켰으며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다른 패션 하우스 못지않은 갈망의 대상이었다. 은세공 주얼리와 로고 티셔츠, 후디가 큰 인기를 끌었으나 여전히 베일에 싸인 미스터리한 매력과 유니크한 개성으로 크롬하츠는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중이다.

리처드의 ‘우드숍(Woodshop)’ 입구. 주로 흑단을 다루는 그의 작업 공간으로, 커스텀 가구와 매장용 가구가 장인의 손길에 의해 섬세하게 조각된다.

1988년 리처드 스타크(Richard Stark)가 로스앤젤레스의 차고에 차린 작은 가죽 공방이 크롬하츠의 시작이었다. 목수 출신으로 바이커 문화 애호가였던 그는 그곳에서 스스로를 위한 가죽 제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심미안과 솜씨를 둘러싼 입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고, 바이커 커뮤니티의 열렬한 지지가 뒤따랐다. 그 후 건즈 앤 로지즈, 롤링스톤스, 에어로스미스 같은 록 스타들이 즐겨 찾는 전설의 아이템이 줄줄이 탄생했다. 창립 37주년에도 크롬하츠가 지금껏 고유한 개성을 사수한 비결은 패션계의 흐름을 어설프게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1992년 CFDA 어워즈에서 올해의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꼽힌 리처드는 직접 무대에 오르지 않고 오랜 친구 셰어(Cher)를 대신 내보냈다. 크롬하츠 옷을 입은 셰어가 무대에 오르며 기존 패션계의 고정관념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메탈릭한 광채를 뽐내는 작자 미상의 아트 피스가 팩토리 중앙에 놓여 있다. 1960년대 제작된 이 금속 설치물 안에 여러 개의 작은 사무실이 숨어 있다.

초창기에 하드코어한 바이커의 전유물이던 크롬하츠는 당시 패션 시장에 없었던 세련된 비전을 제시하며 바이커 커뮤니티를 넘어 더 넓은 인맥과 친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그러면서 더 정교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필요해졌는데, 이는 리처드가 아내이자 동업자 로리 린 스타크(Laurie Lynn Stark)를 만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두 사람의 만남으로 크롬하츠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당시 수영복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린 로리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사실 리처드를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이미 약혼한 상태였어요. 하지만 그의 푸른 눈동자에서 특별한 뭔가를 느꼈고, 결혼은 이런 사람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와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전혀 예상할 순 없었어요.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바이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리처드의 옷을 보니 근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죠.”

이번 기사를 통해 독점 공개된 리처드 스타크의 사무실에는 리처드의 개인 소장품과 추억의 물건이 보관되어 있으며, 특히 그가 가장 아끼는 오토바이도 함께 자리한다. 사진으로 소개한 공간에서 리처드의 비전이 처음 구현됐다.

결국 리처드는 로리의 전속 가죽 공급자가 되었고, 두 사람은 그날 이후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로리가 덧붙였다. “참 묘한 감정이 들었어요. 언젠가 우리가 함께 뭔가 엄청난 것을 해낼 거라고 확신했죠.” 이후 로리는 크롬하츠의 사장이자 공동 오너가 되었고, 이 커플은 각자의 창의적인 여정을 통해 브랜드 정신을 이어가는 온전한 가족을 이루었다.

할리우드 한복판에 세운 크롬하츠 공장은 현재 세 블록에 걸친 거대한 타운으로 확장됐다. 말리부의 가족 별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이곳은 수량은 극히 제한적이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독창적인 아이템을 탄생시키는 협업의 산실이다.
크롬하츠의 주얼리.

오늘날 크롬하츠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거침없이 실행에 옮기는 일종의 거대 실험실이 됐다. 금속부터 가죽, 목재, 텍스타일, 안경, 주얼리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이들의 손길을 거치면 크롬하츠식으로 재해석된다. 할리우드 한복판에 세워진 크롬하츠 공장은 맨 처음엔 작은 창작 스튜디오였지만 지금은 세 블록에 걸친 거대한 타운으로 확장됐다. 실내로 들어서면 말리부에 있는 가족 별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가 흐르는 이곳은 수량은 극히 제한적이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독창적인 아이템을 탄생시키는 협업의 산실이다. 필요에 따라 여러 유명 브랜드와 손잡으며 일시적인 돌풍을 일으키는 것과 달리, 스타크 가문은 장기적이면서도 충실한 협업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바카라와 10년 넘게 협업을 이어오며 누구나 탐낼 수밖에 없는 크리스털 오브제를 만들었으며, 도자기 기업 리모주, 레이스로 유명한 칼레와도 오랜 기간 협업을 이어왔다. 이런 탄탄한 결속력을 기반으로 크롬하츠는 해마다 세계 최정상 장인들의 전문적인 기술이 반영된 오브제를 탄생시킨다.

리처드가 소유물 중 가장 애착을 느끼는 것은 흑단 손잡이와 은장식이 달린 고무 ‘뚫어뻥’.

스테이플러, 쥐덫, 스카치테이프, 꽃병, 냅킨 등과 같은 일상적인 물건조차 크롬하츠의 손길을 거치면 독창적인 예술품으로 탈바꿈하기 일쑤다. 유명한 의사에게 의뢰받아 디자인한 청진기나 와인 저장고의 문짝처럼 단 한 사람을 위한 특별한 커스텀 아이템도 선보이지만, 그 외의 시간은 온통 창의적인 탐구에 할애한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사용되는 ‘뚫어뻥’조차도 크롬하츠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담아 정성껏 제작한다. (실제로 이것은 리처드 스타크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이다.) 한편 로리는 오랜 꿈이던 꾸뛰르 라인에 도전했다. 크롬하츠가 맞춤 제작과 한정판 아이템으로 명성을 쌓아온 만큼, 이는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인다. “저는 꾸뛰르의 수준을 지금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싶어요. 가구와 데님 작업을 함께 했던 버질 아블로는 저의 그런 생각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죠. 그는 제 첫 컬렉션을 기꺼이 함께 구상했고, 우리 곁을 떠나기 전까지 늘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어요. 버질이 부족한 자신감을 채워준 덕분에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었죠. 버질과 함께 고심했던 많은 아이디어를 아직 완벽하게 구현하진 못했지만, 곧 그렇게 될 거예요. 단지,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뿐이죠.”

로리의 꾸뛰르 의상을 입은 미니 인형. 로리는 디자인을 실물 크기로 제작하기 전에 미니어처로 먼저 만들어보곤 한다.

스타크 부부의 세 자녀 역시 창조적인 환경에서 성장했다. 로리는 장녀 제시 조(Jesse Jo)의 어린 시절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제시는 어릴 때부터 스튜디오 바닥에서 잠들곤 했어요. 딸아이의 DNA에는 창작자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 남편과 제가 괴짜 예술가, 록 뮤지션과 함께 밤을 새우며 작업에 매달리곤 했으니까요.” 싱어송라이터로도 활동 중인 제시 조는 어린 나이에 크롬하츠의 가방을 직접 디자인했다. 그녀는 요즘 공장에 마련된 음악 작업실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낸다. 창작, 사진, 춤, 부엌 테이블이나 소파에서의 휴식··· 크롬하츠 팩토리는 제시 조의 모든 욕구와 아이디어, 기술을 실현할 수 있는 창작 놀이터다.

로리에게 기댄 첫딸 제시 조. 가수 겸 디자이너로 활약 중인 제시 조가 크롬하츠의 새로운 컬렉션을 착용했다. 그녀는 크롬하츠의 정신을 이어받은 자신만의 브랜드 데들리 돌을 이끌고 있다.

리처드가 건축과 목공예에 애정을 쏟는다면, 아들 크리스티안(Kristian)은 데님 작업을 유난히 좋아한다. 그의 쌍둥이 남매 프랭키(Frankie)는 비키니 브랜드 딥트 인 블루(Dipped in Blue)를 성공적으로 론칭했고, 현재 가방 제작에 매진하고 있다. 제시 조 역시 자신의 투어용 부츠나 개인 브랜드 데들리 돌(Deadly Doll)의 새로운 아이템을 열심히 구상 중이다. “우리 가족은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건물 뼈대를 구성하는 벽돌과 같아요.” 로리가 설명했다. 할리우드의 거대한 제국과 별개로 크롬하츠는 파리의 케 볼테르에 새로운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할 예정이다. 이는 5년 전 시작된 리처드 스타크와 장 누벨의 만남이 이뤄낸 업적이다. “유명한 건축가가 어쩌다 우연히 알게 된 미국인과 이런 일을 벌이게 된 것인지, 지금도 그 인연이 신기할 따름이에요.”

로리와 개념 미술의 거장 존 발데사리(John Baldessari)의 기념사진.

크롬하츠의 본질은 브랜드 설립 순간부터 지금까지 흔들린 적 없다. “유명해지거나 부자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우린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자원을 원하는 것뿐이에요.” 로리의 말이다. 이런 접근 방식은 통했고, 크롬하츠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유명 셀러브리티의 열띤 지지를 받고 있다. 올해 멧 갈라에서 크롬하츠 맞춤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킴 카다시안과 2025 SAG(미국배우조합상) 시상식에서 크롬하츠 의상을 입고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티모시 샬라메를 떠올려보라. 전부 철저히 계획된 홍보 전략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것이었다. “우린 절대 대중의 반응이나 결과를 예측하며 움직이지 않아요. 누군가와 협업을 결정할 때, 그에 따른 결과가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미리 확신할 수도 없겠지만 말이에요. 티모시를 위해 의상을 디자인했을 때도 그가 상을 받을 줄 몰랐어요. 우린 그저 친구로서 그를 좋아하기 때문에 옷을 만들어줬을 뿐이죠. 실제로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작업은 가까운 지인이나 친구와 함께 하는 것이지, 비즈니스 전략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크롬하츠의 고딕 십자가는 이 미국 브랜드가 30년 전부터 제작해온 시그니처 문양으로 서브컬처 럭셔리의 아이콘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핏줄로 맺어진 가족이든, 가슴으로 맺어진 가족이든 크롬하츠에 유대감은 매우 중요한 가치다. 말리부? 할리우드? 파리? 이들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일까? 스타크 가문의 새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 로리는 현재 새로운 아지트를 구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곳은 그들의 사생활을 완벽하게 보호하는 요새가 되는 동시에 가족의 끈끈한 유대감을 지켜주는 은밀한 안식처가 될 것이다. VL

류가영

류가영

피처 에디터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필요하고, 무엇이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본능적인 패션 감각을 타고난 화가, 소설가, 영화감독, 셰프에게 매력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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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처 에디터
    류가영
    Héloïse Salessy
    사진
    Tyrell Hampton
    헤어
    Jesse Alexandre
    메이크업
    Zenia Jaeger(Submission Beau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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