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ctor’s Life – ① Jorge Perez
호르헤 페레즈와 클리포드 아인스타인, 두 명의 세계적인 컬렉터가 〈보그〉를 컨템퍼러리 아트의 보고라 할 만한 자신들의 집으로 초대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집이나 예술품을 넘어 삶으로 이어지며 예술이 더 나은 세상에 어떻게 기여하는지에 대한 전설적 사례를 추가한다. – ① Jorge Perez
마이애미 다운타운에는 페레즈 미술관(Perez Art Museum Miami)이 있다. 헤르조그 & 드 뫼롱이 지은 이 건물은 건축 비평가들로부터 “지난 20년 동안 미국에 지어진 미술관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건 이 건물이 마이애미 특유의 기후와 자연, 지형을 능동적으로 재해석한 진보한 공간이라는 의미다. 동시에 도그마로 확립된 추상적인 화이트 큐브 대신 큐레이션에 따라 변신하는 내부는 이 미술관이 마이애미의 문화적 지형을 바꾸고 있음을 상징한다. 페레즈 미술관은 2013년 아이웨이웨이 개인전을 필두로 동시대의 미술 신을 마이애미의 뜨거운 대기 아래에 부려놓았다. 특히 지난해 열린 사라 오펜하이머의 전시는 남다른 규모와 양질의 큐레이팅으로 마이애미의 예술 역사를 다시 썼고, 남미 출신이 50% 이상인 이 도시에서 남미 미술을 집중 조명했다. 우리가 갔을 땐 남미 조각가이자 키네틱 아트의 대가인 훌리오 레 파르크(Julio Le Parc)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었다.
“훌리오 레 파르크는 지금 90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컴퓨터 없이 모든 것을 손으로 빚어내죠. 빛과 그림자, 조각과 그림자의 상관관계를 예술로 펼쳐 보입니다. 따라서 이 전시는 50년대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잃어버린 시대를 보여주는 자리죠. 수십 년 전, 팔레드 도쿄에서 만난 이후 그는 나의 존경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그는 여전히 나의 아내에게 농담 삼아 애정을 표하곤 하지요. 저는 그렇게 생동감 넘치는 그의 삶의 감각을 사랑합니다. 그것이 예술에 반영된다고 생각해요.” 성큼성큼 걸어와 스스럼없는 대화를 도출하는 이 남자는 이 미술관과 같은 이름을 가진 호르헤 페레즈(Jorge Perez)다.
마이애미 미술관이었던 이곳은 페레즈가 평생 모은 현대 미술품과 현금을 합해 4,000만 달러(한화로 470억원 정도)를 기부하면서 페레즈 미술관으로 개명했다. 우리는 각 도시마다 위대한 박애 정신을 가진 사람들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들러본 적이 있다. 구겐하임, 휘트니, 스미소니언… 하지만 미국에서 히스패닉 이름을 가진 뮤지엄은 페레즈가 처음이며, 따라서 이곳은 하나의 상징이 될 것이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좌중을 휘어잡는 페레즈가 말했다. “이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중요한 대화를 진지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공헌자가 되어야 합니다. 엄청난 기쁨이자 책임감이죠.”
다음 날, 코코넛 그로브에 위치한 페레즈의 집에 초대받아 갔을 때 나는 그 책임과 기쁨이 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대서양을 향해 펼쳐진 수영장 딸린 정원에서 안토니 곰리의 사람 형상 조각을 보고 있는데 유일한 동양인이었기 때문인지 젊은 남자가 다가왔다. 자신을 멕시코시티에서 온 예술가라 소개한 그가 칵테일을 권했다. “페레즈는 매년 이런 자리를 마련합니다. 그는 우리 같은 아티스트들을 직접 만나며 남미 미술을 지원하죠. 조건 없는 애정이 남미 미술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인정하는 편입니다.” 인터뷰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집을 꼼꼼히 둘러보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페레즈의 집은 1층부터 3층까지, 거실, 서재, 침실, 부엌, 게스트 룸, 아이 방, 욕실, 계단, 정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작품으로 들어차 있었기 때문이다(클래식한 고급 주택인 이 집 말고도 올 화이트의 집을 한 채 더 갖고 있다고 했다). 어쨌든 페레즈의 집이 유달리 이국적으로 다가온 건 이 집을 채우는 작품들이 그간의 전시나 행사에서 자주 봐온 리스트도 아닐뿐더러, 작품을 배치한 방식도 매우 사적이기 때문이었다.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작품, 몰랐던 남미 작가들의 존재를 이 집에서 대거 발견했다.
일단 계단에 걸린 작품의 면면만 보자. 쿠바 출신의 촬영 감독 마리오 가르시아 호야(Mario García Joya), 브라질 작가 우스 제메우스(Os Gémeos), 미라 스셰데우(Mira Schedel), 코스타리카 출신의 프리시야 몽헤(Priscilla Monge), 페데리코 에레로(Federico Herrero), 쿠바-아메리칸인 루이스 크루스 아사세타(Luis Cruz Azaceta), 아프로 쿠바인 마누엘 멘디베(Manuel Mendive), 아바나에서 활동 중인 루벤 토레스 요르카(Rubén Torres Llorca) 등등. 수적으로도, 양적으로도, 차라리 남미 예술의 보고라 불러도 좋을 매혹적인 페레즈 컬렉션의 향연이다. 페레즈는 포옹, 비주, 악수로 점철된 파티의 세리머니를 끈기 있게 마무리한 후에야 소파에 앉았다. 그리곤 멕시코판 <보그>의 인터뷰를 거절하고 <보그 코리아>를 만나기로 했다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내가 집을 잘못 찾은 줄 알았다.(웃음)
오전 7시부터 테이트 모던 미술관, 휴스턴 미술관 관계자들과 미팅이 있었다. 특히 테이트 모던은 가장 큰 라틴 아메리칸 컬렉션을 구비하고 있다. 9시부터는 남미 미술로 전시를 열 잠재적 미술관과 전 세계 갤러리스트, 아티스트들이 150명 정도 모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마드리드 시장과의 미팅, 미술관에 새 조각을 선보인 하우메 플렌자(그의 작품은 정말 어메이징하다!)의 웰컴 파티까지, 이번 주에 40여 개의 이벤트가 날 기다리고 있다. 어젠 저녁만 네 번 먹고 새벽 1시에 돌아와서 그냥 기절해버렸다.
12월 초는 마이애미의 모든 예술 관계자들이 1년 중 가장 바쁜 기간이다. 어제 파티는 무엇을 축하하는 자리였
나?
2013년 마이애미 미술관이 페레즈 미술관으로 바뀔 때 4,000만 달러를 기부한 이후, 다시 5,000만 달러를 추가로 기부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금 널리 회자될 사건이다.(웃음) 이건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미술관의 존재, 더 나아가 도시의 문화적 인프라에 대한 이야기다. 이렇게 큰 꿈을 가질 만한 계기가 있었나?
40년 전 아트 컬렉팅을 시작할 때부터 내가 모은 예술 작품이 미술관에 존재하길, 다른 사람들이 이를 함께 즐길 수 있기를 원했다. 또한 마이애미가 다른 대도시와 동등하게 ‘중요한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계적 수준의 문화 중심으로서의 미술관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나는 아름다운 작품을 물론 좋아하지만, 다른 이유로도 작품을 좋아하기도 하고, 더욱이 그것이 내 삶을 바꾸는 현상을 더 흥미롭게 느낀다. 나는 아트 컬렉팅에서 박애주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 기빙 플레지’라는 걸 들어본 적 있을 거다.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이 생전엔 재산의 50%를, 사후엔 90%를 기부하겠다 약속한 선언 말인가? 마크 주커버그, 엘론 머스크 등 더 기빙 플레지에 서명한 억만장자가 140여 명에 이른다고 들었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우리 재단은 예술을 비롯한 많은 것을 기부한다.
마이애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높게 솟은 고층 건물이다. 아트바젤 이전에는 예술과는 별 관련 없었을 도시를 예술 도시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야심을 품은 건 마이애미의 어떤 점에 영감을 받았기 때문인가?
오랫동안 나는 부동산 및 건축 관련 일을 해왔다. 미국과 남미에 우리가 지은 빌딩만 8,000채가 넘고, 상당수가 마이애미에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도시계획 전문가라 여기고 이 도시 자체를 짓는다는 일념으로 일했다. 당시 마이애미는 도시라기보다는 그저 교외 지역이었다. 오후 5시만 되면 길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사라져버렸다. 사람들이 이웃하여 살게 하려면 도시에 적당한 밀도가 있어야 한다. 미술관, 레스토랑, 오페라극장, 영화관, 쇼핑센터 등을 먼저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만든 빌딩에 장식 수준이 아니라 미술관 수준의 예술품을 가져다두었다. 1,300여 점에 이르는 프라이빗 컬렉션은 계속 시공간을 바꾸어가며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당신의 부모는 쿠바에 살았고, 당신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콜롬비아에서 자랐으며,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다. 다양한 백그라운드가 컬렉터로서의 당신에게 끼친 영향은 무엇일까?
나는 전혀 상반된 성향의 부모님을 꼭 빼닮았다. 나의 아버지는 무엇이든 팔 수 있는 비즈니스맨이었고, 어머니는 내게 책을 읽히고 미술관과 극장에 데려갔다. 나의 부모는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을 일으켰을 때 빈털터리로 쿠바를 떠나야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이 혁명이 필요했다고 회고한다. 극소수의 부자들과 대부분의 빈자들, 이 불균형의 상태로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들의 철학을 이어받았다. 나는 내가 가진 것, 즉 예술을 사회에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예술을 세상과 나누고자 하는 명분을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실천하는 컬렉터다. 두 가지 다른 태도의 시너지가 이상적인 결과를 도출하고 있다고 보는데, 어떤가?
어떤 사업이 수익성이 높다고 치자. 나는 장기적으로 이 도시에 어떤 식으로 기여할 것인지, 내 회사에 어떤 점이 좋을지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내 손주들이 지속적으로 살아가야 할 곳이기 때문에 이기적이지만 동시에 커뮤니티에 공헌해야 한다. 페레즈 미술관이 단순히 전시를 선보이는 곳일 뿐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드는 커뮤니티를 형성했다고 자부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곳 초등학생들은 모두 적어도 1년에 한 번씩 무료로 예술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다. 그들의 존재를 만나 이들을 교육하는 건 큰 즐거움 중 하나다.
40년 동안 예술 작품을 모으다 보면 고유한 흐름이나 스타일이 생겨날 것 같은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처음 미국에 왔을 때 가장 두려웠던 건 바로 남미 사람으로서의 나의 역사와 문화를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로지 남미 작품만 모으기 시작했다. 프리다 칼로, 디에고 리베라, 호아킨 토레스 가르시아 같은 대가의 명작들. 25년 정도 모은 컬렉션을 미술관에 기부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주었다. 남미 작품에만 집중하느라 놓쳤던 작품,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컬렉팅할 수 있게 된 거다. 이를테면 알렉스 카츠 같은 화가들이 내 마음에 들어왔고, 내 컬렉팅 스타일은 ‘살아 있는 아티스트’의 작품을 수집하는 걸로 바뀌었다. 살아 있다는 건 지금 생존한다는 의미인 동시에 나와 그들과의 관계가 생생하게 존재한다는 이야기도 된다.
예술가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나?
여기 있는 도리스 살세도의 의자의 제목은 ‘Untitled’다. 이 의자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부패한 정권 때문에 고통받는 콜롬비아, 삶과 기억을 잃은 암흑 같은 삶… 우린 이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결국 시멘트를 썼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모든 작품에 깃든 이런 의미를 아티스트와 나누고, 향후의 관객들과 나누고 싶다. 여기, 군테르 헤르소는 이미 죽은 예술가이지만 난 여전히 그와 함께 앉아 있다. 시공을 초월하는 아티스트들과의 유대감은 내게 매우 중요하다.
컬렉터로서 철칙이 있다면?
나는 내가 산 작품을 한 번도 되판 적이 없다. 작품의 환전 가치 때문에 작품을 구매하지도 않는다. 주변의 조언은 듣되 그 때문에 작품을 선택하진 않는다. 확실한 것만 컬렉팅하는 짓도 하지 않는다. 내가 발견한 예술가들이 마스터가 될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저 희망할 뿐. 누군가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그들은 늘 나를 행복하게 했다. 내가 애정을 보낸 예술가들이 신뢰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었다는 걸 매번 깨닫게 하게 때문이다.
테이블에는 남미 작가들의 리스트와 쿠바 아트북이 놓여 있었다. 특히 쿠바 예술가들을 꾸준히 지원하는데, 그 예술 신을 어떻게 보고 있나?
나는 쿠바와 미국의 영화 제작자들이 오가며 교류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5~6년 전부터 쿠바에 들락거렸다. 미술관에 갔고, 큐레이터들을 만났으며, ISA(Instituto Superior de Arte)라 불리는 최고의 아트 스쿨에도 갔다. 사실 우리가 아는 쿠바 예술가들은 매우 한정적이다. 그동안 많은 예술가들이 도망갔고, 추방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예술가들이 여전히 많다. 그러면서 위프레도 람, 쿤도 베르뮤데즈 등 쿠바 예술가들의 활약을 알게 되었고, 예술사를 배웠으며 200여 점의 쿠바 예술 작품을 모았다. 아마 이곳에 폭탄이 터진다면, 세상에 알려진 쿠바 예술의 상당수가 사라질 것이다.(웃음)
최근에 발견한, 꼭 추천하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다면?
글렌다 리옹, 인티 헤르난데즈, 루이스 크루스 아사세타… 특히 젊은 아티스트 모리스는 놀랍다. 아니, 몇 사람만 꼽는 건 공평하지 않다. 우리는 거의 매일 새로운 아티스트들을 만난다. 그들의 잠재력을 발견하는 아름다운 경험을 한 후에는 나는 미친 듯이 그들의 작품을 읽고 본다. 누군가 내게 선호하는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언제나 나는 ‘다음 프로젝트’라 답할 것이다.
쿠바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당신이 해야 할 일도 더 많아질 것 같다.
지난 50년간 아바나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름다운 빌딩들은 동시에 무너지고 있다. 쿠바 정부를 도와 역사적인 건물을 잘 보존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물론 미국과 쿠바 사이는 여전히 어렵다. 오바마와 트럼프 모두 나의 친구지만, 트럼프는 쿠바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게 확실하다.(웃음)
작품을 컬렉션한다는 것은 예술가를 지지한다는 것이고, 예술가를 지지한다는 건 세상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거라고 생각해왔다. 여기에 어떤 말을 더 보태고 싶은가?
컬렉팅은 발견이라는 기쁨의 기회를 갖는 행위다. 이것은 인간으로서의 내 삶을 더 낫게 만들어준다. 나는 꽤 센세이셔널한 컬렉터다. 지성보다 감각이 중요하고, 남미 미술, 미니멀리즘, 추상, 구상, 컨셉추얼 아트, 비디오, 설치까지 경계 없이 움직인다. 물론 이 집의 모든 작품이 잘 배열되어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내게는 내가 보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는 예술가들의 재능을 존경하는 동시에 아트를 대할 때 순수한 마음이 된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나는 그 표현을 사랑한다. 이들과의 물리적, 추상적인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은 내 삶을 엄청나게 바꿔놓고 있다. 나를 비즈니스라는 안전지대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한다. 컬렉션의 기본인 자본과 관객, 가치와 평가에 대해 자유롭다는 점이야말로 당신이 다른 컬렉터와 다른 점이다. 특히 예술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당신은 소년이 되는 것 같다. 무엇이든 다 받아들일 수 있으며, 어떤 것이든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용감한 소년 말이다. 비즈니스 할 때도 그렇다. 예술이 나를 나날이 그렇게 만든다.
- 에디터
- 윤혜정
- 포토그래퍼
- LEE JAE SUNG, JAMES E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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