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환경, 수려한 외모, 하버드를 졸업한 수재들… 모든 것을 다 가진 케네디가에 연속적으로 일어난 믿기 힘든 불운. 그 미스터리한 사건의 전말.
케네디 가문은 1840년대, 아일랜드인 패트릭 케네디가 보스턴에 이주하면서 시작됐다. 패트릭은 술집, 청과상 등으로 많은 재산을 모은 뒤 정계에 진출했고, 아들 조셉(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을 하버드 대학에 입학시켰다. 조셉은 금융가, 사업가로 크게 성공해 1914년 보스턴 시장의 딸 로즈 피츠제럴드와 결혼했다. 막강한 부와 정치적 영향력을 갖춘 조셉의 소원은 아들을 미국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 아버지의 야망과 매력을 물려받은 케네디가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엘리트로 성장했다. 결국, 둘째 아들 존 F.케네디가 43세의 젊은 나이로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됨으로써 가문의 꿈을 이룬 듯 보였지만, 그것은 불행의 씨앗일 뿐이었다.
조셉 P. 케네디 주니어(케네디 대통령의 형)
케네디 가문의 자녀 9남매 중 장남인 조셉 주니어. 대통령감으로 주목받던 엘리트이자 집안의 후계자였던 그는 제 2차 세계대전 참전 중 폭탄이 가득 실린 무인폭격기를 조종하다 알 수 없는 이유의 폭발로 사망했다. 낙하산 탈출까지 완벽히 계획, 훈련된 상황에서 원인 모를 폭발이 일어났고,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해 케네디 가는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존 F. 케네디(미국 제 35대 대통령)
미국 역사상 최연소로 대통령에 취임한 존 F. 케네디는 댈러스에서 지붕 없는 차를 타고 거리 퍼레이드 중 암살당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재키>에서 묘사된 것처럼 아내 재클린 바로 옆에서 머리에 총을 맞았고, 그 장면이 미국 전역에 TV로 생중계됐다.
대중들에게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지붕 없는 차를 선호했던 케네디
파티를 사랑했던 케네디 부부의 재임 시절, 백악관에서는 다양한 사교계 행사가 열렸고 그 때마다 재키의 패션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케네디가 저격 당한 직후 미합중국의 대통령직을 이양받고 있는 린든 존슨. 바로 옆에 남편을 잃고 황망한 표정의 재키가 서있다.
케네디 대통령의 장례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재키와 딸 캐롤라인, 아들 존 주니어
로즈마리 케네디(케네디 대통령의 첫 번째 여동생)
케네디 가의 첫 딸이자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여동생인 로즈마리는 종종 케네디가의 ‘잊혀진 딸’이라고 불려왔다(사진 왼쪽). 태어날 때 의사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가벼운 뇌손상을 입게된 그녀는 엘리트 주의를 강조하는 가문의 수치처럼 여겨졌고, 1941년 아버지의 권유로 받게된 전두엽 절제술이 크게 실패해 두 살 아기의 지능 상태로 평생을 요양원에서 지냈다. 그녀의 아버지는 단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고, 로즈마리는 2005년 86세의 나이에 쓸쓸히 사망했다.
캐이틀린 케네디 캐번디시(케네디 대통령의 두 번째 여동생)
케네디 대통령의 둘째 여동생인 캐슬린은 ‘데본셔 공작’ 작위를 지닌 캐번디시 가문의 후손과 결혼했으나 제 2차 세계대전 중 남편을 잃었다. 그녀 역시 1948년 프랑스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로버트 케네디(케네디 대통령의 첫번째 남동생)
케네디 대통령의 첫 번째 남동생으로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 기자, 사법 검사로 활약하다 형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법무부 장관을 맡았다. 국민들의 신임이 두터웠던 그는 대통령 후보로 출마해 1968년 6월 5일, LA에서 예비 후보 연설을 하고 나오던 중 암살당했다. 그 날 그가 했던 ‘On The Mindless Menace Of Violence’ 라는 제목의 연설은 세기의 명연설로 남아있으며, 그 비극적인 하루는 영화 <바비>로 각색되기도 했다.
에드워드 케네디(케네디 대통령의 막내 남동생)
케네디 대통령의 막내 동생(사진 맨 앞의 어린 소년)으로 30세에 정치에 입문해 민주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점쳐졌다. 하지만 1969년, ‘채퍼퀴딕 스캔들(매사추세츠 주의 채퍼퀴딕섬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한 뒤 형 로버트의 전 여비서 조 코페크니와 함께 차를 타고 귀가하던 중 바다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 자동차에서 혼자 빠져 나와 헤엄쳐서 살아난 그는 사건 발생 10시간이 지난 후에야 경찰에 신고했고, 여비서는 익사체로 발견됐다)’로 인해 대통령의 꿈은 좌절됐다. 40년 이상 상원의원을 지낸 에드워드는 2009년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패트릭 부비에 케네디(케네디 대통령의 막내 아들)
케네디 대통령의 막내 아들로 1963년 8월, 대통령직 수행 당시 태어났으나 이틀 만에 사망했다.
에드워드 케네디 주니어(케네디 대통령의 조카)
에드워드 케네디의 장남(미셸 오바마 바로 옆)으로 열두 살 때 골종양이라는 희귀암을 진단받고,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불편한 다리로도 스키를 즐기는 등 긍정적인 삶의 태도로 위기를 극복해 변호사로 성공했고, 코네티컷 주의 상원의원으로 당선돼 정치 활동을 펼치고 있다.
데이비드 케네디(케네디 대통령의 조카)
로버트 케네디의 넷째 아들로 1984년, 플로리다 팜비치의 가족 휴양지 인근 호텔에서 약물과용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케네디가 남자들에게 끈질기게 따라붙었던 루머 중 하나인 약물 복용이 일정부분 사실로 밝혀지며 가문의 명성에 큰 타격을 입힌 사건.
마이클 케네디(케네디 대통령의 조카)
로버트 케네디의 여섯 번째 아들이자 약물과용으로 숨진 데이비드의 동생. 10대 보모와의 섹스 스캔들 등 구설수가 많았던 그는 1997년 12월, 콜로라도 주의 한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다 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9세.
존 F. 케네디 주니어(케네디 대통령의 아들)
‘동시대 가장 섹시한 남자’, ‘마돈나와 데이트하는 젊고 잘생긴 잡지 발행인’, ‘자가용 비행기를 몰고 다니는 제트족’. 케네디 대통령의 아들인 케네디 주니어의 수식어다. 1999년, 사촌 여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직접 자가용 경비행기를 몰고 뉴욕을 이륙해 매사추세츠로 향하다 추락해 사망했다. 동승했던 아내 캐롤린 버셋은 캘빈 클라인에서 일했던 90년대 패션 아이콘. 그날 그가 운전한 ‘파이퍼 32 새러토가’ 경비행기의 등록번호 N529JK는 아버지 케네디 전 대통령의 생일인 5월29일을 기념한 숫자다.
아버지의 집무실 책상밑에서 놀고 있는 개구쟁이 존 주니어
아버지의 죽음을 인지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던 존 주니어가 장례식장에서 경례를 하고 있다
백악관을 나온 후 엄마, 누나, 사촌들과 함께 외출한 모습
정치에 입문하지 않았지만, 전세계 언론의 관심을 받은 채 성인이 된 존 주니어에겐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