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 Power Girl
공민지는 요즘 자작곡을 출근송으로 듣고, 쉼 없이 춤 연습을 하다가 ‘정말이지 춤은 내 인생인가 보다’ 생각한다. 투애니원 이후의 공민지, 공민지의 두 번째 챕터.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지난해 11월 투애니원의 공식 해체 소식은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아이돌이란 이별을 전제로 한 만남이라는 걸 떠올려보더라도 아직 때가 아니었다. 자연스러운 하산이 아니라 등산 중 일어난 사고 같았다. 8년 전 네 명의 소녀들이 던진 뜨거운 ‘Fire’ 한 방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래서일 것이다. 멤버들이 SNS에 단 댓글 하나도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불화설 같은 가십을 기대하는 사람도, 이들의 해체를 눈물로 지켜본 팬도 단 한 가지만은 확신하고 있었다. 이대로 멈출 소녀들이 아니라는 것.
투애니원이라는 과거의 영광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와 다시 우리 앞에 서는 첫 번째 주자는 막내 공민지다. 말보다 춤이 더 익숙해 보였던 단발머리 소녀는 혼자가 되고 비로소 입을 열었다. 예능 프로그램 <언니들의 슬램덩크 2>는 공민지의 첫출발이다. 걸 그룹에서 나와 걸 그룹을 준비하는 아이러니한 도전이다. “다가가기 힘든 이미지를 내려놓고 싶었어요. 완전 세고 뭔가 때려 부술 것 같은 이미지가 있는데 솔직히 그렇지는 않거든요. 무대에서 열정적인 건 사실이지만요.(웃음) 팬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회사 처음 옮겼을 때 해보고 싶은 예능 프로그램 리스트를 PPT 파일로 만들어서 ‘이거 시켜주세요’라고 했어요. <런닝맨> <냉장고를 부탁해> <해피투게더> 등을 적었던 것 같아요.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만족하고 있어요.” 언니들과 놀러 가는 마음으로 출연하고 있지만 예능 신생아의 길이 쉽지는 않다. “제가 나름 ‘진지충’이라서 농담과 진담을 잘 구별 못해요. 숙 언니랑 진경 언니가 ‘이럴 땐 진지하면 안 돼’ ‘이건 농담이야’ 조언해주고 계십니다.”
어쩌면 지난 8년보다 더 방대하게 ‘자연인 공민지’를 노출한 공민지는 미니 앨범으로 컴백을 앞두고 있다. 투애니원 시절 공민지는 무대마다 세상을 놀래킨 춤꾼이었다. 몸을 거대한 이성으로 규정한 자가 니체였던가. 공민지는 몸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는지 보여준 최초의 여자 아이돌이었다. 공민지가 완성한 ‘보는 음악’에는 즉각적이고 본능적인 울림이 있었다. 그녀의 춤은 걸 그룹을 그저 수동적인 존재로 느꼈던 사람들과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일종의 해방감을 안겨줬다. 인간문화재 고(故) 공옥진 여사의 손녀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타고난 춤꾼이라는 정체성이 강해졌다. 지금도 유튜브에는 공민지의 춤사위가 담긴 영상이 ‘레전드’라는 제목을 달고 돌아다닌다. 이번 미니 앨범에는 그녀의 특기가 확장되어 담긴다. “‘춤 하면 민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주무기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퍼포먼스를 많이 강화했어요. 정말 숨을 못 쉴 정도로 타이트한 안무가 들어갔습니다.(웃음)” 얼마 전 공민지의 인스타그램에는 모션 티저가 올라왔다. 리듬을 공깃돌처럼 자유롭게 가지고 노는 파워풀한 춤동작을 넋 놓고 본 사람이 25만 명을 넘었다. 댓글에는 불꽃 이모티콘이 줄을 이었다.
“걸음마를 뗀 후 음악만 나오면 어디서든 춤을 췄다.” “아기가 갑자기 없어져서 어디 갔나 둘러 보면 스피커 밑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마치 구전되어온 신화같이 들리지만 모두 공민지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공민지는 가족들의 전폭적인 서포트를 받으며 춤꾼이라는 외길로 들어섰다. 그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뮤지션은 마이클 잭슨. “저는 정말 ‘마이클 잭슨 빠’예요. 뮤직비디오는 100번도 넘게 돌려봤어요. ‘Smooth Criminal’ ‘Bad’… 일일이 다 말하기 힘들 정도예요. 어셔, 비욘세도 제 인생에 획을 그으신 분들입니다. 하하.” 거울을 보며 이들의 시그니처 동작을 셀 수 없이 따라 했고 나중에는 자신의 춤에 접목도 시켰다. 남자의 춤으로 불리는 팝핀 댄스도 공민지는 좀더 섹시하게, 좀더 파워풀하게 자신만의 댄스로 선보였다. 공민지가 생각하는 최고의 무대는 강렬한 ‘한방’이 있는 무대다. “사람들을 ‘와!’ 하게 만들 수 있는 ‘한 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리를 찢는다든지, 헤드뱅잉을 한다든지… 거기서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것 같거든요. 저 역시 마이클 잭슨의 무대를 보면 ‘미쳤다!’는 느낌을 받아요. 계속 머릿속을 맴돌아서 그것만 생각하게 되고요.” 사전에 어느 정도 안무를 짜지만 공민지의 ‘한 방’은 프리스타일에서 나온다. “춤에 있어서는 야생마처럼 풀어주셨어요. ‘하고 싶은 대로 해라’였죠. 어떤 춤을 출지 생각이 안 날 때는 그냥 몸을 맡겨요. 무대에 섰을 때 사람들의 함성이 들리고 에너지가 오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죠!”
화려한 퍼포먼스가 공민지다운 솔로 앨범 계획이라면 자작곡과 빼어난 보컬은 공민지의 숨어 있던 면모다. “춤으로 알려져 있지만 발라드를 진짜 좋아해요. <복면가왕>에서 김범수 선배님의 ‘보고 싶다’를 불렀어요. 휘트니 휴스턴, 티나셰를 좋아해요. 나중에는 아델 같은 음악도 해보고 싶어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공민지는 솔로 앨범을 준비한 적이 있다고 했다. ‘내가 제일 잘 나가’ 활동 이후니 열아홉 살 때다. 미디엄 템포의 곡이었고 무대 동선까지 맞춰놓은 상황이었는데 회사 내부 사정으로 취소됐다고 했다. “당시에는 스스로 부족한 게 많다고 생각했어요. ‘염려병’이 도져서 이렇게 나가도 되나 싶은 생각도 있었고요.” 솔로 무대는 그때부터 수도 없이 상상했던 무대다. 얼마 전 산다라 박은 <말하는대로>에 출연해 투애니원 멤버들 때문에 열등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멤버 모두 비슷한 고민이 있었을 것 같아요. 저는 보컬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잘할 수 있는 중저음 파트만 연습했는데 첫 앨범을 내고 나서부터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 등 높은 음역대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의 곡을 엄청 따라 불렀어요.” 그 시간이 있었기에 솔로로 나서는 마음은 이제 염려보다 설렘에 가깝다. “지금은 랩보다 노래가 더 좋아요. 감정선을 찾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흥얼거리기만 해도 너무 좋아요.”
사실상 마지막이었던 2집 활동 이후 2년의 공백 기간 동안 공민지는 LA 댄스 스쿨에 갔다.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고 춤에 목이 말랐다. 전 세계 춤꾼들이 모인 곳에서 또 한 번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엄청난 힙합 스피릿이 있었죠. 그동안 접해보지 못한 동작이 많았어요. 잘 추는 애들은 확 보이거든요. 그런 친구들이랑 같이 춤을 추니까 제가 동작을 외우는 속도가 느린 거예요. 무섭다 싶었죠. 해외 뮤지션 친구들을 만나고 미국에서는 음악을 어떻게 만들고 유통하는지 그 과정도 지켜봤다. “굉장히 자유롭고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음악을 다채롭게 들었고 이번 앨범에 반영된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자유로운 소울이나 경쾌하고 해피한 분위기들”.
트랩 같은 마니아적 취향의 음악도 좋아하지만 공민지는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대중의 기대와 자신의 취향 사이 중간 지점을 찾는 데 골몰했다. “개인적으로 힙합 음악을 좋아해요. 전체적으로 힙합을 베이스로 LA 스타일의 곡이 담길 예정이에요. 자작곡은 한 곡 수록되는데 굉장히 서정적인 발라드예요. 노래방에서 불러볼 만한 노래죠.” 공민지는 이번 앨범 전곡을 작사했다. 중 3 때부터 랩 가사를 써왔고 다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가사를 쓰고자 한다. 단순히 사랑이나 이별 얘기가 아니라 인생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노래로 들려주고 사람들이 ‘이건 내 노래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게 목표다. “또래 친구들의 고민을 유심히 들어봐요. 드라마나 영화도 사연을 중심으로 보게 돼요. 사람들 이야기로부터 영감을 받는 편이에요. 음악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단어에서 출발해서 상상하듯 글을 쓰곤 해요. 제 노래 중에 ‘슈퍼우먼’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매일 ‘출근송’으로 듣고 있어요. 일을 하다가, 삶을 살다가 지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슈퍼우먼이야, 그런 내용이에요.”
공민지가 솔로로 나서면서 밝혀진 사실이 하나 있다. 공민지를 롤모델 삼아 아이돌의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룬 여자 아이돌이 ‘한 트럭’쯤 된다는 것. <언니들의 슬램덩크 2>에서 전소미는 공‘ 민지 빠’임을 밝히며 얼굴을 붉혔고 <복면가왕>에서 깻잎소녀의 정체가 공민지로 드러나자 걸스데이 민아는 눈물을 흘렸다. 갑작스러운 고백 러시에 공민지의 반응은? “투애니원이 대단했네. 역시 투애니원이네. 뿌듯합니다.” 벌써 중견 가수가 된 거냐며 헤헤 웃었지만 공민지는 꾸준히 후배 양성을 실천해왔다. 3년 전 댄스 아카데미를 열었고 지금도 학생들의 춤 동작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평가해준다. 소속사를 옮기며 데뷔를 앞둔 아이돌 그룹 ‘마이틴’의 조력자 역할도 자청했다. “꿈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는 친구들을 많이 봤어요. 그런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저희 고모할머니, 공옥진 여사님께서 항상 후계자 양성 부분을 안타까워하셨어요. ‘나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다음 사람들이 그 열정을 이어나갈 수 있다면 좋지 않겠니?’ 같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저 역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수가 되었는데 여기서 끝난다면 아쉽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후배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얘기는 ‘그냥 무대를 즐겨라’다. “연습생들이다 보니 무대에 설 때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크잖아요. ‘너의 모습을 다 보여주고 와. 카메라를 잡아먹고 와.” 이렇게 얘기해주죠.” 공민지가 무대에 오르기 전 자신에게 거는 주문이기도 하다. “웃길 수도 있는데, ‘다 죽여버려. 너는 할 수 있어.’ 이렇게 마음을 딱 정리하고 올라가요. 이 말 한마디면 눈빛과 태도가 확 달라집니다.(웃음)”
‘죽여줬던’ 공민지는 이제 혼자 무대를 채우려고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홀로서기를 결심한 이유를 물었을 때 “그냥 저의 음악적인 부분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춤이나 음악이나 랩을 하나하나 펼쳐서 보여드리면 좋아하시지 않을까 싶었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투애니원 활동하면서 ‘전 세계에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멋진 콘서트 무대가 많았어요.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몇 개국 보여드리지 못하고 끝나니까 아쉬운 마음이 있었어요.” 투애니원이라는 빛나는 과거는 평생 공민지를 따라다닐 것이다. 끊임없이 비교 대상이 될 것이다. “부담스럽지 않다고 하면 너무 인간이 아닐 것 같아요. 투애니원은 저에게 ‘챕터 1’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뿌리이자 성장하고 자랄 수 있는 원동력이오. 지금 전 꽃이 피기 직전이에요. 딱 봉오리가 맺힌 상태.”
- 에디터
- 조소현 (피처 에디터), 손은영 (패션 에디터)
- 포토그래퍼
- YOO YOUNG KYU
- 영상 디렉터
- WOOSEONG LEE
- 헤어 스타일리스트
- 한지선
- 메이크업 아티스트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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