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 I Do
셀프 웨딩, 얼터너티브 웨딩, 스몰 웨딩… ‘내 맘대로 결혼식’을 준비하는 요즘 여자들의 ‘내 맘대로 웨딩드레스’.
대학 친구였는지 회사 동료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대략 10년 전에 참석한 20대 후반 지인의 결혼식은 최단시간 내에 신속하게 해치우는 게 최우선인, 번거롭기 짝이 없는 관례처럼 진행됐다. 하루를 두 타임으로 나눠 하나의 홀에서 두 번의 결혼식을 치러야 하는 웨딩홀의 스케줄이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줄 서서 들어간 중국집에서(맛집이라기보다 어디든 붐비는 점심시간이기 때문에) 자리에 앉자마자 서빙된 짜장면 그릇에 코를 박고 먹어 치운 후 입 닦을 새도 없이 바로 일어서는 그런 느낌이었다. 돌이켜보면 20대에 결혼한 내 또래 지인들의 결혼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릴 적 결혼식에 기대했던 신성하거나 로맨틱하거나 감동적이거나 느긋하고 행복에 겨운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시끌벅적하고 때때로 상스러운 말과 고성이 오가는 시장 바닥에 가까웠다.
“이미 10년 전부터 적지 않은 수의 커플들이 대안적인 형태의 셀프 웨딩을 시도해왔습니다. 그래서 저도 2010년에 이 일을 시작하게 됐고요.” 이미영은 웨딩드레스를 전문적으로 수선하고 리폼, 제작하는 ‘마이 스포사’를 7년째 운영하고 있다. 이곳을 찾는 예비 신부들은 대부분 장소부터 드레스까지 색다른 결혼식을 준비한다. “유럽에서 직접 구입한 빈티지 웨딩드레스나 해외 직구한 드레스를 몸에 맞게 수선하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드레스 숍의 뻔한 드레스를 빌려 입을 바에야 그 돈으로 나만의 웨딩드레스를 장만하겠다는 생각이죠.” 남다른 드레스에 대한 욕구도 크지만 최근에는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신부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본식에 입었던 웨딩드레스를 피로연에서 색다르게 연출할 수 있도록 볼레로와 랩 스커트로 리폼하거나 가지고 있던 아이보리색 미니 드레스를 변형해서 애프터 드레스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결혼식 후에는 웨딩드레스의 스커트 길이를 짧게 잘라서 파티 드레스로 만드는 경우도 많죠.”
최근 앤디앤뎁의 김석원과 윤원정 부부가 ‘뎁 세레모니’를 론칭하게 된 데에도 이런 분위기가 한몫했다. “이제 한국도 신랑 신부의 의지에 따라 다양한 시도가 가능해졌습니다. 어른들 또한 과거에 비해 유연한 사고를 하고 있고요.” 윤원정은 스몰 웨딩이나 셀프 웨딩보다 대안이라는 뜻의 ‘얼터너티브’ 웨딩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덧붙이며 말했다. “뎁 세레모니에서 제가 추천하는 아이템은 스트레치 레이스 톱과 스커트로 구성된 세퍼레이트예요. 발목까지 내려오는 티어드 스커트는 아랫단을 떼어내고 미디 길이의 데이 드레스로도 활용할 수 있죠.”
요즘 패션계에서 유행하는 건 또 다른 방식으로 영리하고 실용적인 동시에 패셔너블한 예복이다. 평소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컬렉션에서 드레스를 고르는 것이다. “호텔 결혼식장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어두운 분위기와 강렬하게 쏘는 핀 조명밖에 떠오르지 않았어요. 게다가 공주풍의 웨딩드레스는 상상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들거든요.” <마리끌레르> 패션 에디터였던 김누리는 아예 처음부터 거대한 웨딩드레스를 입을 생각이 없었다. 그 대신 웨딩 촬영용으로 셀린 2014 리조트 컬렉션의 크림색 슬립 드레스와 본식에서 입을 발렌시아가 2015 S/S 컬렉션의 무릎을 살짝 덮는 깔끔한 실루엣의 격식 있는 드레스를 구입했다. 그리고 피로연에서는 프로엔자 스쿨러 2013 F/W 컬렉션의 70년대 꾸레주풍 미니 드레스를 입었다. 이 드레스는 그녀의 남자 친구가 프러포즈를 하면서 선물한 것이다. “그전부터 이 드레스가 마음에 든다고 주입시켰거든요.” 수줍지만 장난스레 웃으면서 말했다. “컬렉션 의상이 기본적으로 비싸긴 하지만 마침 세일 기간이어서 웬만한 웨딩드레스 숍의 한 벌 대여비보다 적거나 비슷한 비용이 들었어요.” 김누리는 결혼식을 치른 후에도 한동안 드레스의 출처나 결혼식 비용에 대해 꽤 많은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를 받았다. 사실 셀프 웨딩은 웨딩드레스뿐 아니라 결혼식장에 울려 퍼질 배경음악, 대접할 음식, 장식할 꽃 등 신경 쓰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초혼 연령은 매년 높아져서 2015년에는 30세에 이르렀고, 부모님에게 등 떠밀리듯 치르는 결혼식이 아니라 자신의 예산으로 차근차근 결혼식을 준비하는 30대들에게는 웨딩 플래너에게 일임하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합리적이다. 웨딩 업체에서 들이미는 청구서에는 이미 거품이 너무 많고 일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특별한 의식을 남들과 똑같이 치르기엔, 이른바 머리가 굵으니 말이다.
<마리끌레르>에서 웨딩 부록을 제작한 경험이 있는 김누리는 요즘 신부들이 전반적으로 패션에 관심이 높아져서 웨딩드레스도 모던하고 심플한 스타일을 원하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최근 속속 등장하는, 적당한 가격대에 온라인으로 구입 가능한 웨딩드레스 역시 이러한 추세를 디자인에 반영한다. 대표적인 브랜드를 평균 가격대로 줄을 세워보면 2015년에 론칭한 아소스 브라이덜, 지난 4월에 론칭한 탑샵 브라이덜, 2011년에 론칭한 앤트로폴로지의 웨딩 브랜드 BHLDN(Beholden의 약자) 순. 아소스 브라이덜 라인의 디자인 디렉터 바네사 스펜스(Vanessa Spence)는 전통적인 롱 드레스뿐 아니라 대안적인 의상, 예를 들어 케이프가 베일처럼 끌리는 점프수트나 실용적인 세퍼레이트도 컬렉션에 포함시켰다(2017년 웨딩드레스 유행은 웨딩 팬츠 같은 비전형적인 룩과 편리성에 초점을 맞춘 캐주얼한 스타일).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는 이 중 어떤 것도 80만원대를 넘지 않으면서 꽤 괜찮은 품질을 유지한다는 거다.
신세계백화점의 송지은은 그동안의 마케팅과 홍보 경험을 살려 일사천리로 결혼 준비를 마쳤다. 그녀 역시 소규모 결혼식을 원했기 때문에 보통은 돌잔치를 치르는 호텔의 작은 홀을 예약하고, 웨딩 촬영도 드레스 숍에서 웨딩드레스를 시착할 때 간단하게 촬영하는 ‘가봉 스냅’으로 대체했다. 그리고 요즘 유행인 하이 스트리트 브랜드의 웨딩드레스를 거의 살 뻔했다. “뉴욕으로 출장 갔을 때 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앤트로폴로지 매장에 들렀어요. 뉴욕에서 BHLDN 컬렉션이 있는 매장은 딱 두 군데인데, 예약 없이 바로 볼 수 있고 드레스부터 각종 웨딩 소품까지 전부 구비한 곳이 거기뿐이었거든요.” 물론 온라인으로 구입할 수도 있지만 예약하면 매장에서 직접 입어보고 수선도 할 수 있다. “드레스부터 란제리, 슈즈, 헤어 장식이나 베일 같은 소품까지 전부 포함해도 200만원대로 맞출 수 있어요. 정말 예쁜 것들이 많아서 원스톱 쇼핑으로 해결하고 싶었지만 4월까지 예약이 다 차 있어서 발길을 돌려야 했죠.”
RTW 웨딩드레스 라인은 부담 없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6개월 전부터 서둘러 예약할 필요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구입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장점이다. 막스마라 그룹 회장이자 설립자인 캐서린 구아다뉴올로(Catherine Guadagnuolo)는 2014년에 론칭한 막스마라 브라이덜 컬렉션에 대해 ‘여자들이 한 달 전, 일주일 전, 심지어 결혼식 당일에도 직접 드레스를 고를 수 있는’ 컨셉이라고 설명했다. “결혼식 6개월 전부터 드레스 숍에 가지 않으면 꿈꾸던 드레스를 입지 못할 거라는 염려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거죠.” 막스마라 브라이덜의 RTW 웨딩드레스는 이탈리아산 원단과 레이스, 실크로 만들었고 가격대는 2,000~5,000달러 사이. 방문 예약도 필요 없고, 매장에서 드레스를 고르면 신부의 몸에 맞게 수선하는 데 4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화려하고 복잡한 장식을 줄이고, 고운 원단으로 심플하고 우아한 실루엣을 연출하는 데 중점을 둬서 취향이 까다로운 신부들에게 어필할 만하다. 질도 좋고 디자인도 아름답지만 온라인으로 구입할 수 없고 취급하는 매장도 전 세계에 몇 군데 되지 않는다는 게 치명적인 단점이다. 막스마라 코리아는 특별한 날을 위한 드레스 라인인 막스마라 엘레간테에서 비슷한 느낌의 드레스를 찾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엘레간테는 온라인으로 구입 가능하고 국내 매장에서도 일부 판매 중이다.
웨딩드레스 시장이 이러한 변화를 맞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웨딩드레스도 일상복처럼 매장 옷걸이에서 벗겨내 바로 입고 싶어 하는 성격 급한 쇼핑객들, 점점 증가하는 온라인 쇼핑률, 초혼을 치르는 이들의 평균 연령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관심도 상승, 나아지지 않는 경제 상황 등. 앤디앤뎁의 윤원정은 뎁 세레모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결혼식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성대하게 치러진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한 번의 결혼식을 치르는 데 드는 비용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어쩌면 일생에 자신에게 가장 많은 금액을 투자하는 순간일 수도 있다. 그래서 얼마나 줄이고 알뜰하게 준비하는지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삶에 단 한 번뿐인 아름다운 의식을 얼마나 나답게 치르느냐일 거다. 만약 웨딩드레스를 고를 시기에 있다면, 다양해진 웨딩드레스 시장은 단순히 경제성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해진 취향의 반영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 에디터
- 송보라
- 포토그래퍼
-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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