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진짜’ 아버지는 누구인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를 보면서 든 생각, 왜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변주하여 반복하는가?
“내가 너의 아버지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그 유명한 대사 “I’m your father”를 즉각적으로 떠올리실 테지만, 이 지면에서 다룰 내용은 이 장르와는 좀 다르다. 베일에 싸인 아버지의 정체 때문에 고뇌하거나 고민하는 슈퍼히어로에 관해 얘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스타워즈> 시리즈도 슈퍼히어로물이기는 하다.)
이 주제를 떠올린 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이하 ‘<가오갤 2>’)를 보면서다. 확실히 마블과 DC로 대표되는 슈퍼히어로물은 다양한 슈퍼히어로들로 개별성을 뽐내지만, 결과적으로 ‘아빠 찾아 삼만리’ 테마의 변주다.
<가오갤 2>는 좀 다를지 싶었다. 주로 지구를 활동 무대로 활약하는 슈퍼히어로들과 달리 ‘가오갤’ 멤버들은 우주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일 뿐 아니라 판타지 세계가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멤버 중 리더인 피터 제이슨 퀼스/스타로드(크리스 프랫)는 ‘워크맨’으로 주목 같은 1980년대 팝 넘버를 애청하며 미래 배경 속에 자연스럽게 과거를 끌어안는다.
물론, 피터가 애지중지하는 카세트테이프가 어머니의 유산이라는 사실이 복선이기는 했다. 그렇다면 피터 아버지의 생사는? 이에 대한 의문을 풀어줄 내용이 <가오갤 2>의 핵심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나 달라, 피터는 절체절명의 순간, 아버지와 상봉하게 된다. “I’m your dad, Peter.” 근데 이 아버지의 정체가 좀 황당하다. ‘에고’(Ego)라는 이름의 ‘행성’(Planet)이다.
아시다시피, 피터는 외계 출신의 아버지와 지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외계에서 온 슈퍼맨이나 지구에서 나고 자란 대부분의 슈퍼히어로와는 좀 다른 출생의 비밀 아닌 비밀이다. 더군다나 아버지가 그냥 외계의 존재도 아니고 행성이라니!
파격은 여기까지. 피터의 아버지는 알고 보니 사람 모양의 에고를 앞세워 은하계의 곳곳에 자손을 퍼뜨린 전력이 있다. 그리고 자신, 즉 행성을 이어받을 후계자를 하나하나 찾아 나서 적임자를 찾은 게 바로 피터다. 그러는 동안 고아 신세가 된 피터를 데려다 키운 건 다름 아닌 욘두(마이클 루커)이었다. 그러니까, 피터에게는 아버지가 두 명이다. 생물학적 아버지 에고와 실질적인 아버지 욘두다.
두 명의 아버지를 가진 슈퍼히어로는 피터 말고도 또 있다. 외계에서 온 슈퍼맨/클라크에게는 크립톤 행성에서 그를 낳아준 아버지 조엘과 지구에서 그를 기른 아버지 조너선 켄트가 있다. 배트맨은 또 어떤가. 조실부모한 브루스 웨인은 웨인 가문의 집사이자 대리 아버지인 알프레드의 보호 속에 성장할 수 있었다. 굳이 두 명의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피터 파커/스파이더맨은 실종된 부모 대신 삼촌 집에서 사는 처지고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은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가 버키에 의해 살해된 사실을 나중에야 알고서야 경악한다.
많은 슈퍼히어로가 출생 배경과 관련해 혼란을 느끼는 설정은 미국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슈퍼히어로물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최전선에 선 오락물이면서 미국 역사의 트라우마를 읽을 수 있는 좋은 텍스트다. 세계 평화를 운운하며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은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물을 빌려 자신들의 힘을 과시한다.
그래서 이들 작품을 보고 있으면 위험한 총을 손에 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를 연상시킨다. 그와 같은 이율배반적인 정체성은 자신들의 역사를 고스란히 반영한 주인공의 출생 배경과 연결된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래 미국은 개척정신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포장했다. 하지만 말이 신대륙이지 원래 이 땅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을 몰살하고 그 위에 제국(?)을 건설한 미국의 역사는 피와 폭력으로 출발한 셈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슈퍼히어로는 개척의 아버지와 폭력의 아버지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낮에는 평범한 인간으로, 밤에는 범상치 않은 가면을 쓰고 두 개의 이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슈퍼히어로의 운명. 좀 다를까 싶었던 <가오갤 2> 또한, 질기디 질긴 할리우드 슈퍼히어로의 세계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처지다. 몸은 미래 배경에 존재하지만, 정신은 1980년대에 묶여 있는 피터 제이슨 퀼스/스타로드는 그렇게 미국 역사가 품은 기원의 양면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 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 에디터
- 윤혜정
- 포토그래퍼
-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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