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Midnight Blue

2017.05.11

Midnight Blue

요조가 정규 3집 앨범 〈나는 아직도 당신이 궁금하여 자다가도 일어납니다〉를 영화로 만들었다. 전례 없는 크로스오버 창작물을 내놓은 요조 는 초여름의 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처럼 반짝거렸다.

밤하늘을 닮은 펄 컬러의 맥시 드레스가 요조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해준다. 맥시 드레스는 YCH.

밤하늘을 닮은 펄 컬러의 맥시 드레스가 요조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해준다. 맥시 드레스는 YCH.

머리가 파래졌다. 용기를 내봤다. 사실 색깔보다 길이가 더 중요한 문제였다. 자르고 나니까 하고 싶은 건 다 해보자 싶어 이 색 저 색 바꿔보고 있다. 보라색, 분홍색, 빨간색을 거쳐 지금 파란색인데 가장 마음에 든다.

행동이 달라진 건 없나. 머리 스타일에 따라 발걸음도 달라진다. 조금 더 ‘개구지게’ 바뀐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스스로 의식할 만한 행동의 변화는 없다.

파란 머리에 옷을 맞춰 입는 건 보통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분홍색으로 염색했을 때 미처 생각을 못하고 분홍색 패딩에 빨간색 목도리를 하고 나간 적이 있었다.(웃음) 파란색은 좀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 같다. 보라색, 분홍색, 빨간색일 때는 사람들이 별로 쳐다보지 않았는데 지금은 버스 정류장에 서 있기만 해도 아주머니들이 말을 건다. 어딜 가도 다 쳐다봐서 나쁜 짓은 절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정규 3집 앨범을 영화라는 포맷으로 공개한다. 어떻게 이런 기획을 하게 되었나. 앨범의 의미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뮤지션 입장에서 다섯 곡 이상이 담긴 앨범을 만들 때는 나름의 서사를 가지고 임한다. 트랙 순서를 정하는 일에도 고심한다. 하지만 지금은 1번부터 차근차근 듣기보다는 무작위로 한 곡씩 듣는다. 거기에 아쉬움을 느끼다가 영화를 떠올리게 됐다. 영화를 보듯 끝까지 앉아 있으니 1번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정주행하는 효과를 얻게 되겠구나, 재미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혼자 오랫동안 했다. 회사 대표님에게 얘기했을 때 너무 재미있다고 했지만 또 굉장히 주저했다. 영화를 만들어본 적도 없고, 제작비가 들어가니까. 그렇게 1년을 끌다가 “손익에 대해서는 내려놓자. 재미있는 일이고 전례가 없으니 그냥 하자” 이렇게 됐다.

영화의 주제가 죽음이라고. 우연히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 세 사람이 옆 텐트에서 자고 있는 노인을 발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누구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살면서 잊기도 하고 그러다가 문득문득 지인의 죽음 같은 걸 겪으며 다시 진지하게 생각하는 상황이 생긴다. 유독 나는 그 빈도가 평균치보다 잦은 사람인 것 같고, 죽는 일에 대해서 정말 자주 생각하는 편이라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노래도 같은 테마로 죽음에 대해 썼다.

창작물에는 자연스럽게 관심사가 반영된다. 관심사가 어디로 이동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나. 확실히 사랑에서는 멀어진 것 같다. 옛날에는 행복하고 달콤한 순간에 대해 썼는데 지금은 아예 그쪽으로는 머리가 안 돌아간다. 이 나이에는 ‘핑크핑크한’ 사랑이 잘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불륜’이라는 곡도 등장했나 보다. 그나마 사랑 노래로 만든 거다.

영화를 먼저 찍었나, 곡 작업이 먼저였나. 영화가 먼저였다. 곡을 먼저 완성하면 영상을 음악에 맞춰야 하는데 영상 전문가가 아니니까 너무 어려울 것 같았다. 몇 년 전에 써놓은 시놉이 있었고 감독님의 도움을 받아서 같이 시나리오 작업을 마쳤다. 그렇게 영상을 찍었고 시간을 재서 그 길이에 맞게 다섯 곡을 만들었다.

러닝타임 30분 동안 다섯 곡의 노래가 온전히 재생되는 건가. 영상과 음악을 따로 작업했으니 음악이 영상에 끼치는 영향을 크게 실감했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음악이 거세된 영상을 보고 엄청 심심해했는데 나는 그렇지 않더라. 얘도 내가 너무 잘 아는 애고, 얘도 너무 잘 아는 애라서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동화가 되었나 보다. 음악 없이 영상을 봐도, 음악을 입혀도 위화감이 없었다. 오히려 편집할 때 객관성을 잃은 것 같아 주변 사람들한테 많이 물어봤다.

영상에 맞춰 곡을 만드는 건 완벽히 새로운 작업이다. 작업 시간은 얼마나 걸렸나. 전주 국제영화제에 출품하는 게 첫 목표였는데 영상 작업이 늦어져서 곡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원래 곡 쓰는 데 굉장히 오래 걸리는 편이라 전주 국제영화제는 포기하고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내야 하나 했는데 정말 한 달 만에 곡이 나왔다. 회사도, 나도 깜짝 놀랐다. 레드불을 먹으면 힘이 나는 건 미래의 에너지를 미리 끌어와서 쓰기 때문이라던데 이번에 내가 그랬던 것 같다. 앞으로 낼 앨범의 에너지를 다 끌어다가 한 달 동안 불태워버리고 앞으로 10년 동안 노래를 못 쓰게 될 것 같은 생각이 진지하게 들었다. 영화 찍으면서 은연중에 무의식의 자아가 그런 걸까. 아, 모르겠다.

기존에 없던 형식이라 설명도 힘들었을 것 같다. 나와 회사 대표님만 이 컨셉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사람들은 “이게 어떻게 앨범이 돼요?” “뮤직비디오인 거예요?” “OST인 거예요?” 자기만의 해석을 하면서 물어봤고 나는 일일이 설명을 했다. 시나리오에서도 젠더적인 특성을 다 지우고 싶었다. 남자와 여자가 나왔을 때 우리가 유추하는 로맨스 같은 감정을 다 배제하고 싶었다. 배우들은 어려워했다. “얘하고 얘하고는 어떤 사이예요? 그냥 친구예요? 아니면 썸이에요?” 물어보면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나는 여러분이 유치원생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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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고생한 작업이라 알릴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며 홍보에 나섰다. 데뷔하고 처음이다. 다 같이 고생한 작품인데 한 명이라도 더 알고 봐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일단 영화제에 출품해서 홍보를 시작해보고자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 신청을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통과했다. 비경쟁 한국 단편 부문으로 상영될 예정이다. 영화 촬영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난관이었다. 음악 작업 할 때 겪게 되는 난관이라는 건 컴퓨터가 고장 난다거나 ‘곡이 안 나와!’ 같은 나의 역량의 문제다. 그런데 영화 촬영은 날씨가 안 좋아진다거나 하는 문제가 예고 없이 터졌다. 스태프, 배우 등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이라 책임감의 무게도 무거웠다. 내가 어리바리 잘못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게 됐다. 진짜 티 안 내려고 했는데 되게 시험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영화 작업은 음악 활동에 어떤 자극을 주었나. 책방을 하면서 뮤지션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었다. 책방이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실상 내적 땀을 되게 많이 흘리는 일이다. 그런 일에 매여 있다 보니까 기타 잡고 ‘띵가띵가’ 하면서 영감을 찾거나 멍 때리는 생활을 못했다. 언젠가부터 뮤지션이 아닌 것 같은 느낌도 많이 받았다. 영화를 찍었지만 앨범을만들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기분 좋은 자극이 있었다.

작년에 그림책 <이구아나>를 내며 책을 산 사람들에게 음악이 담긴 CD를 제공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 역시 음악을 전달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었나. 뮤지션으로 감각을 영원히 잃어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조바심 때문에 어떻게든 음악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과 동화책을 사는 사람들에게 은밀하게 선물을 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동화책은 그냥 예전부터 내고 싶었다. 4~5년 전에 써놓았던 얘기다.

제주도로 이사를 했다고. 책방 무사도 제주도로 이전을 준비 중인가. 다시 오픈 준비 중이다. 서울 사는 사람들은 내가 제주도 간다고 그러면 진짜 좋겠다고 부러워한다. 서울과 제주도를 왔다 갔다 한다고 하면 힘들겠다고 한다. 나에겐 도시 생활과 시골 생활을 오가는 생활이 좋다. 도시 생활에 약간 염증을 느낄 때쯤 제주도에 가서 동네 떠돌이 개들과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다가, 주변에 중국집도 없고 부족한 편의 시설에 불편함을 느낄 때쯤 서울로 온다.

제주도 집은 어떤 집인가. 그냥 작은 마당이 있는 오래된 밭거리다. 주인집이 있고 주인집 옆에 곁다리로 조그맣게 있는 집을 밭거리라고 부른다. 굉장히 오래된 집이라 화장실도 바깥에 있어서 공사를 해서 살고 있다. 집에 있으면 하늘이 많이 보인다. 바로 옆에 오름도 있고 주변이 굉장히 조용해서 산책에 최적화된 환경이다. 동네에 개들이 많은 것도 좋고 그냥 할 일 없이 멍 때리기 좋다.

제주도가 좋은 이유를 하나만 꼽아준다면. 걷고 있으면 정말 너무 예쁘다. 큰마음 먹지 않아도 그때그때 가고 싶은 곳에 한두 시간 안에 닿을 수 있다는 점도 정말 좋다. 바다가 보고 싶으면 바다로 가고, 산 느낌을 받고 싶으면 오름이나 비자림으로 간다.

맛있는 곳도 많고. 신기한 게 여행자로 갔을 때는 ‘와, 진짜 여기는 맛있는 데가 왜 이렇게 많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터를 잡고 살게 되니 집에서 대충 차려먹고 밤이면 치킨이나 짜장면을 시켜 먹고 싶어진다.

책방 무사에 변화는 없을까. 전에는 독립출판물의 경우 웬만하면 입고를 다 받아주는 편이었다. 뮤지션으로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다 보니 대중에게 전달이 안 되는 경우 스트레스가 커서 그 입장에 너무 공감을 했다. 책이 좀 별로여도 만드느라 고생했을게 뻔한데 나라도 받아줘야지 이런 마음으로 입고를 수락했다. 판매는 잘 안 되어도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책방을 위해서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입고 거절도 하고 있다. 우열을 따지겠다는 게 아니라 책방 색깔과 맞지 않으면 단호하게 잘라내는 편이 책방의 색깔을 더 뚜렷하게 만들고 그 색깔이 좋아서 오는 고객들에게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책방 일에 집중하며 뮤지션으로서 정체성의 혼란도 얘기했는데. 책방을 한 지 반년 정도 되었을 때 오래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컸다. 처음에는 책을 사러 오는 사람보다 책 외의 것을 원해서 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이를테면 인증샷 하나 찍어서 인스타에 올리기 위해 오는 사람들. 무례함 같은 것에 매일매일 상처를 받았다. 2년만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고 미련 없이 그만두려고 했는데, 1년 정도 되니까 계속 하고 싶어졌다. 거품이 빠지니까 책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 정말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진짜 손님만 남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굉장히 큰 행복을 느꼈다. 책을 매개로 좋은 인연을 맺는 행복을 오래오래 느끼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다. 진짜 돈은 안 된다. 다른 일을 더 열심히 해서라도 책방은 계속하고 싶다.

원래 성격 중 어떤 면이 책방 주인으로서 적성에 잘 맞나. 잘 들어준다는 점? 책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어떤 사람인지 모르면서 소개할 순 없으니 이것저것 물어본다. “요즘 걱정 있으세요?” “소설 읽고 싶어요, 시 읽고 싶어요?” 묻다 보면 자기 얘기가 나온다. 마음속에 어떤 숙제가 있고 그 숙제를 풀고 싶은데 책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책방에 오는 분들이 되게 많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좋다.

곡을 만들 때 친절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번 영화 작업도 그랬나. 이 영화는 죽음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까지만 알려주고 싶다. 그 이상은 듣는 사람이 자유롭게 받아들이고 나에게 꼬치꼬치 안 물어봤으면 좋겠다. 사실 누가 물어보면 어떻게 요리조리 피해갈까 연습도 한다. ‘불륜’ 같은 노래를 만들었을 때도 “진짜 불륜을 했는가? 아니면 불륜처럼 드러나지 않은 이면의 감정을 노래하려고 한 것인가?” 같은 질문을 많이 받았다. 얼마 전에도 어떤 분이 어머니가 ‘불륜’을 좋아하는데 요조 씨는 분명히 불륜을 한 것 같지만 이해하겠다고 했다며 진짜 불륜을 했냐고 묻더라.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제가 노래를 정말 잘 만든 셈이네요”라며 빠져나갔다.

‘영화감독’으로서의 목표는 무엇인가. 최대한 많은 영화제에서 상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문득문득 폭죽 터지듯 그렇게 홍보를 하고 싶다. 영화제에서 받아줘야 가능한 일이니 찔러볼 수 있는 감은 모조리 다 찔러볼 생각이다. 앞서 말했듯 홍보를 위해서라면 영혼이라도 팔 것 같다.(웃음)

    에디터
    조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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