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o, Olivetti
TVN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를 보며 내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있던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외갓집에 가면 이모 방에 들어가 몰래 타자기를 쳐보곤 했었다. 요즘 세대들에겐 그저 오래된 유물로 영화 속에서 잠깐 봤거나 인테리어 앤틱 소품으로 쯤으로 느껴지겠지만…
지금의 컴퓨터 자판이 초식남 이미지라면 타자기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 같은 이미지. 한자 한자 손가락 끝으로 천천히 꾹꾹 누르거나 기관총처럼 ‘다다다다다’ 소리를 내며 즐거워했다. 그런 추억의 타자기가 1930년대 배경의 <시카고 타자기>에 주인공과 함께 등장한다. 여기에 사용된 모델은 미국 언더우드 사의 ‘No 5’.
하지만 타자기하면 이태리의 올리베티 타자기를 빼놓을 수 없다. 아리따운 금발머리의 아가씨 같은 이름의 타자기 회사는 1908년 전자기술자인 카밀로 올리베티(Camillo Olivetti)에 의해 설립됐다. 당시 1800년대부터 생산된 재봉틀처럼 크고 투박하기 짝이 없던 기계식 타자기가 올리베티 타자기를 변환점으로 미니멀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변신을 거듭했다. 지금의 애플처럼 획기적인 디자인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올리베티 타자기는 유럽 시장의 선두적인 타자기 디자인으로 명성을 알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수석 디자이너이자 산업 디자이너인 마르첼로 니촐리(Marcello Nizzoli)에 의해 더욱 간결하고 다양한 컬러로 등장했다.
‘렉시콘 80’, ‘레테라 22’, ‘발렌타인’ 등 휴대하기 쉽고, 케이스까지 앙증맞아 30년대와 50년대까지 전 세계로 팔려 나갔다. 그 후 계산기, 소형 컴퓨터, 필기 시스템 등을 비롯해 고속복사기와 다른 사무기기를 제조했지만 2000년대 초 회사는 파산했다. 이제는 타자기를 생산하는 그 어떤 회사도 없다. 내 지인은 얼마 전 경매 사이트에 고가로 나온 타자기 올리베티 레테라 22를 구입했다. “가늠할 수 없는 잉크의 농도, 투박한 폰트, 둔탁한 소리, 피아니스트 같은 엄숙한 자세 그리고 흑백이 주는 중후함.”
- 에디터
- 김미진
- 포토그래퍼
-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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