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Porno
포르노는 나쁜 단어로 여겨왔다. 하지만 페미니즘 포르노를 만나면서 인생에 또 하나의 유희를 얻었다.
포르노 <포에트리 브로셀>은 남자가 폴 댄스를 추고, 여자가 책장을 넘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바르셀로나의 은밀한 카페에서 성적 판타지를 들려주는 ‘시인’이자 직원들의 이야기가 세 편의 옴니버스로 구성된다. 처음으로 노트북의 ‘10초 앞으로’ 버튼을 누르지 않고 시청한 포르노였다. 부가세까지 1만1,000원의 다운로드 비용이 아깝지 않았다. 이는 에리카 러스트라는 스웨덴 출신의 영화감독이 만든 페미니즘 포르노다. 페미니즘과 포르노라는, 평행선 같은 단어의 조합이라니.
<포에트리 브로셀>의 인상적인 신을 얘기한다면, 우선 콘돔을 끼운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선 섹시한 도둑이 남자의 집에 침입해 콘돔을 끼우지 않고 섹스 하는데 이는 ‘임신’을 훔치기 위해서였다. 임신을 위한 자발적 섹스. 영화 속 여성들은 주체적으로 상대를 고르고 섹스에 주도권을 쥔다. 물론 상대(남자든 여자든)의 동의를 얻는다. 양성애자인 여성 바텐더는 두 명의 알렉스(남자, 여자)에게 작업을 걸고 양다리 연애를 한다. 사실이 드러나고 애인들이 화를 내자, 바텐더는 떠난다. “프랑스 독립영화라면 셋이 같이 살자고 하겠지만” 게이인지 스트레이트인지 묻는 질문에 이별을 결심한다.
에리카 러스트의 영화는 기존의 포르노가 비난받는 요소를 제거했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삼고 무시하고 모욕하며 성에 대한 비현실적인 환상을 심는다는 것. 한마디로 여성이 어떤 존재이고,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심각한 거짓말을 한다는 것. 에리카 러스트를 위시한 페미니즘 포르노에서 여성은 스스로의 의견, 욕망을 가진 성적 주체이며, 다양한 젠더, 신체의 인물이 등장한다. 또 삽입 전에 이야기와 관계가 있다. 여성이 피해자였던 포르노의 대안으로 남성을 비하했던 ‘팜므 포르노’와는 당연히 다르다.
페미니스트 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 여성은 익명을 요구하며 이렇게 얘기했다. “일반적인 포르노에서는 여성이 남성의 성욕을 위한 도구라는 불쾌함과 섹스 장면이 주는 각성이 동시에 찾아오면서 혼란스럽죠. 하지만 대안이 없기 때문에 이런 포르노를 소비하며 불쾌감은 최대한 억누르고 각성만 즐기는 쪽으로 자신의 취향을 튜닝해가는 여성이 많아요. ‘저 정도의 불쾌함은 괜찮아’라는 식의 타협이 계속되죠. 그러다 실제 섹스에서도 타협한 욕망이 진짜라고 믿어요. 이런 환경이 남성 위주의 섹스 담론을 만드는 데 기여해요. 하지만 페미니즘 포르노가 다양하게 등장한다면 여성은 더 이상 자신의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불쾌감을 억누를 필요 없겠죠.” 다만 에리카 러스트는 자신의 작품을 ‘여자를 위한 포르노’라고 불리길 원하지 않는다. “제 관객의 절반은 남성이에요. 성별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영화 수준으로 제작된 고품질의 성인물을 보고 싶어 하니까요.” <포에트리 브로셀>을 관통하는 관능적인 음악과 기지 넘치는 시나리오(여자 도둑이 임신을 훔치러 간다니!)는 저질 로맨틱 코미디보다 훨씬 낫다.
에리카는 ‘X컨페션스(Xconfessions)’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유저들이 성적 판타지 시나리오를 제출하면 에리카가 매달 두 개를 골라 단편영화로 만든다. 별별 판타지가 다 있다. 1973년 작가 낸시 프라이데이가 공개 모집한 여성들의 섹스 판타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익명성, 마조히즘, 페티시즘, 근친상간, 동물과의 교접, 성매매… 누군가에겐 불편하고, 윤리적으로 금지된 것도 있다. 이 문제 역시 페미니즘 포르노에선 중요하다.
1970년대 포르노가 급속히 번창하면서 페미니스트들 사이에 큰 논쟁이 시작됐다. 사회가 여성을 규정하는 방식에 포르노가 해를 끼친다는 것. 이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범죄로 이어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포르노는 이론이고 강간은 실천”이라며 포르노는 도덕성의 문제에서 법적인 문제로 전환된다. 1980년대 페미니스트들은 ‘반포르노 제정법’을 주장했다. 금지 조항을 살펴보면, 걸리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여성이 성적인 대상이 되어 묶인다거나” 같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서 아나스타샤는 나중엔 스스로 묶이며 쾌락을 청하지 않았던가? 당시 페미니스트 잡지인 <미즈>는 이런 기사를 싣는다. “한 여성의 성적 취향이 다른 여성에게는 포르노인가?” “누군가 다치지 않는다면 오르가슴을 위한 다양한 시도는 괜찮지 않은가?”
디지털 잡지 <이온(AEON)>에서 포르노 제작자는 이렇게 말했다. “창녀라는 호칭을 사용할 때 여성 배우가 이를 원해야만 환상의 장치로 사용합니다. 모두의 동의와 앞뒤 맥락이 있다면 포르노에서 여성은 그러한 취향을 가진 성적 주체자죠. 내가 그런 행동을 즐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것을 나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포르노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노골적인 섹스 장면이 있으면 포르노인가? 그럼 라스 폰 트리에의 <님포매니악>이나 성교육을 위해 제작된 비디오도? 끝도 없다. 할리우드 영화가 수많은 하위 장르로 나뉘듯이 포르노 영화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우리는 포르노 하면 가장 저급의, 공격적인 장면을 떠올린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포르노 제작자는 이렇게 말했다. “포르노에는 나쁜 환상도 있지만, 어떤 페미니스트라도 지지할 만한 긍정적 환상이 있습니다. 포르노를 만든다고 모두 끔찍한 사람은 아니며, 남자와 여자 배우 모두 좋아하는 멋진 내용의 영화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에리카 러스트가 만드는 페미니즘 포르노의 맥락도 이러하다. 영화의 내용뿐 아니라 영화 제작 환경에 있어서도 페미니스트적이어야 한다는 것. 에리카 러스트 사단의 90%는 여성이며, 배우들이 모두 행복하고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고, 연기에 동기를 부여하며 재정적으로 공정하게 보상한다. 대표적인 젠더퀴어 포르노 배우인 지즈리는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는 이러한 윤리적인 포르노를 선택하고 돈을 내야 합니다.”
<포에트리 브로셀>을 보면서 내가 포르노를 좋아함을 알았다. 그동안은 포르노가 싫은게 아니라, 이 사회가 만들어낸 ‘남근 신화적’ 포르노를 싫어했던 거다. 이런 거지 같은 포르노를 생산해내고, 그걸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한 사회를 싫어한다. 에리카도 포르노 산업의 큰 부분이 아직도 여성 비하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섹스를 보여주며 돈을 번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을 해방시켜주는 힘을 가진, 새로운 담론의 성인 영화가 제작되고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영화뿐 아니다. 지난 1월 1주년을 맞은 <매스매거진>은 페미니스트를 위한 포르노 잡지다. 여기에는 남근이 아니라 배우들이 교감하는 진짜 표정이 나온다. 서른 중반에 취미를 하나 추가했다. 잘 만든 포르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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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김나랑
- 포토그래퍼
- PHOTO BY NIKOLA TAMINDZIC, FROM HIS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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