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만찬
정우성과 이정재 그리고 하정우, 한국 영화계의 브랜드가 된 세 남자가 의기투합한 기획사 ‘아티스트 컴퍼니’ 는 소명 의식과 존재감을 동력으로 순항 중이다. 1주년을 자축하기 위해 소속 배우 19명과 〈보그〉가 함께 준비한 이 자리는 ‘아티스트’의 야망과 포부를 밝히는 최초의 만찬이자, 멋쟁이들이 쇼 비즈니스계를 점령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공표한다. 가장 이상적인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은 무한한 기대라는 말은 그들을 위한 것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때늦은 한기가 거짓말처럼 걷힌 4월의 어느 날, 용인 산 아래의 캠핑장은 만찬 준비로 새벽부터 분주해졌다. 천막과 의자를 마련했고, 밥차에서는 아침을 차렸으며, 메이크업 밴과 의상을 가득 실은 트럭이 속속 현장에 도착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났을 스태프들이 하나둘씩 집결했고, 100여 벌이 훌쩍 넘는 의상이 걸렸다. 육중한 고목 테이블과 베이지색 텐트가 채 자리 잡기도 전, 두 남자가 같은 차에서 함께 내리며 기다란 그림자를 초록색 잔디 위로 늘어뜨렸다. 이정재와 정우성. 대한민국에서 가장 고유한 영역을 개척한 두 배우는 오늘 파티의 호스트로 등장해, 그 존재만으로 지난 몇 달간 준비한 오늘의 파티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우리 둘이 그렇듯, <보그>와도 20년 넘는 사이지요, 아마? 이런 이런 분들과 함께 이런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알리기에 <보그>만 한 친구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어느 때보다도 부드럽고 여유 있는 표정의 이정재는 창립 1주년을 맞이해 회사를 공식적으로, 화보를 통해 소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날이 갈수록 더욱 다채로운 활동을 보여주는 두 사람은 지난 1년 동안에도 쉼이 없었다. 정우성은 지난가을 <아수라> 홍보로 만난 이후 <더 킹>을 선보였고, 지금은 <강철비>를 촬영 중이다. 이정재는 바로 전날 <대립군> 제작 발표회로 뉴스를 도배했고, <인천상륙작전>을 개봉했으며, 얼마 전 <신과 함께>의 촬영을 마쳤다. 그러나 그 사이 한 번도 아티스트 컴퍼니에 대해 공식적인 언급을 한 적이 없었고, 두 남자가 만들었다는 이 회사의 정체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정우성의 말마따나 “생각보다 빠르게 이 업계에서 의식할 만한 회사”가 되지 않았나. 그러므로 오늘 자리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성공을 자축하거나, 세를 과시하는 게 아니라 텃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던 이들이 잠깐 손 털고는 근사한 옷을 빼입고 세상을 만나러 온 날인 셈이다.
“사업적인 측면에서는 신경을 덜 쓸 수 있게 되었어요. 이제 회사를 직접 꾸려나가는 건 재능 있는 스태프들의 몫일 것이고, 저희가 더 좋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연기를, 원래의 일을 더 열심히 잘하는 것이겠죠. 나날이 진화하는 배우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야말로 아티스트 컴퍼니에 궁극적인 도움이 되는 저희의 역할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 이정재
“연기력이나 외모보다 인성을 가장 먼저 본다는 것이 이 회사와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런 친구를 데리고 우리가 트레이닝하고 가이드 하면 분명히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모두에게 있어요. 물론 책임감도 생겼죠. 전에는 혼자 작품 선택하고 연기했다면, 이제는 회사에서 어떤 질문이 오면 답도 해줘야 하고 공유도 해야 하고 회의도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재미있어요.” . – 하정우
이정재는 영입이 가장 어려운 배우가 누구였냐는 질문에 1초 정도 망설이다 하정우를 들었다. 하정우의 존재는 설사 두 남자가 치기 어린 우정으로 의기투합하여 뚝딱 회사를 차렸다고 우기더라도, 그게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며 이 조직에 다양한 결을 만들어내는 단서다. 우정에서 출발했을지언정 그 지점에만 머물지는 않겠다는 의지 역시 그로 인해 드러난다. 배우 경력 14년 차인 하정우가 지난 13년 동안 몸담았던 소속사를 마침내 떠났을 때 모두들 그의 행보에 주목했고, 다름 아닌 이 회사를 선택했을 때 궁금증은 증폭됐다. 대체 어떤 회사이길래, 무슨 조건이었길래? 이정재와 정우성은 거의 7개월 동안 하정우와 논의를 거듭했다. 연기할 때를 제외하고는 좀체 흥분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하정우가 ‘당신이 기대하는 그런 특별한’ 터닝 포인트 같은 건 없었다는 투로 말한다.
나는 아티스트 컴퍼니가 이정재와 정우성의 배우로서의 소신과 직업의식, 그러니까 일종의 ‘기업 철학’이 드러나는 적확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정우성은 ‘아티스트’에 방점을 찍는다. “색을 하나로 규정짓고 싶진 않아요. ‘이정재 컴퍼니’ ‘정우성 컴퍼니’ ‘하정우 컴퍼니’이기도 하고, ‘배성우 컴퍼니’가 될 수도 있죠. 사실 배우들 대부분이 회사에 무한 의지하는 동시에 무책임하게 위탁해버리기도 해요. 하지만 정재 씨나 나나, 스스로의 매니지먼트가 뭔지 경험했고 중요성을 알고 있어요. 배우들에게도 의견과 가치관,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었어요. 개개인이 주체적으로 아티스트 컴퍼니의 이름이 되어야 하는 거죠.” 이번에는 이정재가 기억을 더듬었다. “꽤 여러 이름이 나왔어요. 10여 개를 두고 2주 정도 고민한 것 같아요. 한 9일째 되는 날 문득 아티스트 컴퍼니가 떠오르더군요. 익숙해지는 데 며칠 걸렸지만, 모두들 동의했어요.” 당시 조언자 중 한 명이었던 현대카드의 정태영 부사장은 내친김에 CI 작업을 맡음으로써 ‘개업 선물’을 대신했다.
이솜은 최근 크랭크업한 영화 <소공녀> 현장을 혼자 출퇴근해서 다니고, 스케줄 조정도 스스로 했다. “제가 그러겠다고 회사를 설득했어요. 걱정이 되셨는지, 자주 연락하고 아예 현장으로 찾아오기도 했죠. 진심으로 챙겨주시는 게 느껴져요.”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모든 영화표를 모아둘 정도로 독실한 시네필인 이솜의 가능성을 알아본 건 두 사람이었다. “다른 소속사도 만나보라 하셨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 두 선배님을 현장에서 모두 겪어본 터라 의심할 여지가 없었거든요. 지금 같은 분위기가 변치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녀에 따르면 정우성은 스태프를 아우르는 따뜻함이 매력이고, 이정재는 카리스마 있게 후배들을 이끄는 타입이다. “개인적으로 두 분이 이 일을 정말 좋아하고, 설레어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그대로 느껴지지 않나요?”
드디어 이정재와 정우성이 카메라 앞에 섰다. 자연스러운 것만큼 유지하기 힘든 자세도 없건만, 노련한 두 남자는 아름다움이 천재성의 한 형태라는 말에 완벽하게 동의하도록 만든다. 크리에이티브하다는 건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하는 것이라는 진리 역시 이들의 전매특허. 한국 영화는 비디오로 보는 거라는 인식이 팽배하던 시절부터 배우가 영향력 있는 대중 예술가로 우뚝 서기까지, 20년 넘게 두 사람은 한국 영화의 흥망성쇠를 주도하기도, 그런 흐름에 휩쓸리기도 했다. 비록 이정재의 모든 작품이 성공한 것도, 정우성의 모든 연기가 호평받은 것도 아니지만, 이들을 언급할 때 어떤 작품이 흥했고 망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영화계에서 받은 혜택을 모험과 변신의 기회로 환원했고, “언젠가는 터질 것이다”라는 관계자들의 얄팍한 기대를 배반하고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렇게 정교하고 뚝심 있게 스스로를 창조할 수 있는 배우가 또 있을까? 그런 점에서 하정우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형들이 25년 가까이 굳건히 지켜온 맷집이라고 할까요, 지구력이 놀라운 것 같아요. 저보다 10년 이상을 더 이 세계에 있었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잘해올 수 있었는지 노하우가 궁금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옆에서 보다 보니 엄청나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더군요.”
우연인지 필연인지, 오는 7월 말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는 최동훈의 차기작 <도청>에서는 유난히 아티스트 컴퍼니의 식구들이 눈에 띈다. 이정재, 김의성, 염정아까지, 한 영화에서 만나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이들은 출연을 결정한 후 같은 기획사에서 재회하게 됐다. 맏언니 격인 염정아는 하정우와의 인연으로 아티스트 컴퍼니에 합류했다. “첫 미팅 자리에서 세 분을 모두 만났어요. ‘이거 참 이상한 느낌인데?’ 했죠. 이들이라면 같이 신나게 할 수 있겠다 싶었고, 그날 바로 결정했어요.” 하루 사이에 서로 친해진 것 같다고 말한 염정아는 “함께하는 동안 서로 상처 주지 않고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파트너,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하며 혈기 왕성한 신인 배우들과 촬영하러 갔다. 잔뼈가 굵은 이 베테랑 여배우는 생경한 상황을 신선하게 탈바꿈시키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기획사’ ‘소속사’ 혹은 ‘매니지먼트 회사’라 불리는 이곳은 배우들의 안녕과 번영을 도모하는 곳이다. 스스로를 ‘식구’ ‘가족’이라 부르는 이유다. 정우성은 ‘서비스 용역업’이라 겸양을 떨었지만 한 인간의 가능성을 육성하는 ‘N차 산업’이기도, 배우와 대중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마음 산업’이기도 하다. 이런 특수성은 모든 배우들이 바라는 회사의 지향점과 예리하게 만난다. “회사의 주체가 배우이다 보니, 이들의 내면적 갈등과 고민, 심리 등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요. 감정적 교류가 절실하고, 가장 중요하죠. 마음이 잘 맞는 대상과 일할 때 실패도, 시행착오도 가치 있게 만들 수 있어요. 우리는 우리 회사가 최고라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점이 다르다 이야기해요.”(웃음)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다면 룰 따윈 없다는 정우성의 말을 듣고 나니, 아티스트의 자격 요건이 더 궁금해졌다.
“여기 모인 분들 중 연기하면서 재벌 되고 싶은 배우는 없습니다. 다만 오래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죠. 배우의 시간은 길어요. 오랜 과정 중 잘되거나 못될 수도 있고, 또다시 잘되거나 못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인성이 좋아야 해요. 의욕과 열정을 유지하되 전체적인 앙상블이 중요하다는 것도, 전체를 볼 줄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참고 배려할 줄도 알아야 하죠. 그렇게 인성이 좋은 배우에게 마음이 가요.” 이정재가 백번 강조한 ‘인성’을 하정우식으로 해석하면 이렇다.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먹고, 어떻게 자고, 어떻게 마시고, 어떻게 어울리는가가 스크린과 브라운관에 다 드러나는데, 이를 통틀어 인성이라 할 수 있겠죠. 관객이나 시청자는 본능적으로 저 배우 끌린다, 좋다, 매력 있다 판단하고, 그것은 바로 일상을 얼마나 잘 보내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흔들리지 않는 철학을 갖고 있다면 언젠간 큰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될 거라 믿어요. 그래서 착한 바보라 놀림 받더라도 그 마음 변치 말라고, 후배들에게 종종 얘기하곤 해요.”
오늘 현장에서도 이솜의 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우성과 이정재는 장장 28컷에 이르는 촬영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정우성이 후배를 독려하면 이정재는 말없이 바라보고, 김의성, 배성우, 정원중, 신정근 같은 ‘아저씨 배우’ 혹은 선배들이 알콩달콩 촬영할 때 이정재가 포즈에 대해 조언하는 동안 정우성은 시종일관 아빠 미소를 지었다. 이들은 지금 이 순간과 자신의 역할을 매우 즐기는 듯했다. “뿌듯하기도 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컨디션을 살피고, 불편한 건 없는지도 체크해야 하고… 아주 정신이 없군요.(웃음)” 정우성의 말처럼, 사소해 보이는 친절한 행위가 더없이 거창한 의도의 행동보다 훨씬 가치 있을 때가 있다.
이정재와 정우성이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세간의 관심을 받을 신인들의 촬영은 밤에 집중되어 있었다. 느닷없이 불어닥친 쌀쌀한 밤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우성, 이정재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어깨가 너무 올라갔잖아. 몸을 그렇게 쓰면 안 돼. 더 편안해지라고!” 현재 드라마 <터널>에서 열연 중인 이시아, 모델로 얼굴을 알린 손민호와 장우혁, ‘포미닛’의 멤버였던 남지현을 제외한 이들에게는 <보그> 화보가 존재를 선보이는 첫 번째 사건이 될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의미 있는 사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이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기라성 같은 선배들의 존재감과 아티스트 컴퍼니의 무게를 견디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굳이 보지 않아도 되는 시나리오를 보면서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봅니다. 신인들과 연기에 대해 대화하면서 얻고 깨닫는 것도 있죠. 하나의 업에 충실하기 위해 내 인생의 중요한 시기, 최소한 절반을 투자하는 건 당연해요. ‘이 일을 왜 벌였지’ 하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아요. 이 일은 배우로서의 나를 성장시키는, 나를 위한 사업이기도 해요.” . – 정우성
- 에디터
- 윤혜정(피처 에디터), 유준희(필름 에디터)
- 포토그래퍼
- KIM HYUNG SIK, SHIN SUN HYE, ZOO YONG GYUN
- 비주얼 디렉터
- 송선민
- 스타일리스트
- 정윤기, 최아름, 김혜정(Intrend)
- 세트 스타일리스트
- 최서윤(Da;rak)
- 푸드 스타일리스트
- 김보선(Studio Rosso)
- 헤어 스타일리스트
- 임해경(정우성, 하정우(헤어 & 메이크업), 이솜, 김의성), 태현(이정재, 장우혁, 차래형, 정원중), 김승원(고아라, 남지현, 민무제, 신정근), 김선희(이시아, 김세린, 김윤식, 손민호), 이경혜(염정아, 배성우, 한성천)
- 메이크업 아티스트
- 배경란(정우성, 이솜, 이시아, 김의성), 김하나(이정재, 장우혁, 차래형, 정원중), 오현미(염정아, 배성우, 한성천), 류현정(김세린, 김윤식, 손민호), 오미영(고아라, 남지현, 민무제, 신정근)
- 스타일링 어시스턴트
- 황선영, 김신혜, 허다겸, 조은아, 김민지, 이수진, 최이슬(Intrend)
- 세트 스타일링 어시스턴트
- 손예희, 김아영, 이동욱
- 디지털 리터칭
- 이영은(김형식), 김보름(신선혜), 김우재(주용균)
- 장소
- 용인 청룡캠프장
추천기사
-
아트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
2024.12.09by 오기쁨
-
셀러브리티 스타일
당장 따라 하고 싶은, 티모시 샬라메의 배지 패션
2024.12.12by 이소미
-
웰니스
매일 한 잔씩 강황 샷을 마셨더니 이렇게 됐습니다
2024.12.15by 장성실, Taylore Glynn
-
패션 화보
드레스에 아우터, 2024년 파티는
2024.12.14by 손기호
-
패션 트렌드
Y2K 룩에 영감을 줄 스트리트 패션 모음
2024.12.11by 황혜원
-
패션 뉴스
구찌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고향에서 연말을 보내는 방법
2024.12.11by 안건호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