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Green Grass of Home
봄나물 밥상이나 다이어트 샐러드 같은 소소한 소재에 불과하던 채소가 2017년 푸드 트렌드의 중심에 섰다.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그린 토픽 여덟 가지.
GMO 제2라운드
정권 교체의 바람이 식탁에까지 미치고 있다. “GMO 표시제를 모든 제품으로 확대 적용하고, 학교 급식에서도 GMO 식재료를 제외하겠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먹거리 공약의 배경은 이러하다. 한국이 지난해 수입한 GMO 작물은 무려 214만 톤. 1인당 40kg의 GMO를 소비한 셈으로 한국은 식용 GMO 최대 수입국 중 하나다. 사실 안전성에 대한 논란은 지난 20년간 계속돼왔고, 지난 2월 정부는 개정된 기준하에 유전자 변형 DNA가 ‘남아 있는’ 모든 원재료를 표시하고 있다. 하지만 열처리, 추출, 여과 등 고도의 정제 과정을 거치면서 유전자 변형 DNA가 ‘남아 있지 않은’ 식품은 표시 대상에서 제외됐다. 카놀라유, 외국산 대두, 옥수수 전분이 들어간 고추장이나 물엿, 불고기 양념 등이 여기에 속한다. 시민 단체에선 더 강화된 표시제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신념에 따른 주장과 과학적 해석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죠.”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노봉수 교수는 GMO의 선택은 개인의 자유지만, 표시제 강화에 대한 주장은 소비자의 알 권리와 맞물리며 필연적으로 불거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고 설명한다.
식약처는 지난 5월 업무 보고에서 어린이집, 유치원 급식에 Non-GMO 재료를 쓰도록 하고, 공공 급식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새 대통령의 의지가 식탁 위로 출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곳곳에 소용돌이가 도사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공약이 시행될 경우 관련 식품 가격이 최대 세 배까지 상승할 거라고 예측한다. 학부모들의 반응은 뜨겁지만, ‘예산’이란 장애물을 맞닥뜨리게 될 거란 얘기다. 현재 전국에서 유일하게 초·중·고등학교까지 Non-GMO 급식을 시행하는 광명시의 경우 연간 4억원의 예산이 GMO 퇴출에 쓰이고 있는 상태니 말이다.
베지터블 + 이코노믹스 = 베지노믹스
“채식주의자만을 위한 음식이 아닙니다.” 육식주의자도 사랑하는 채식 버거, 뉴욕 임파서블 버거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고기 한 점 들어가지 않는 식물성 패티가 완벽한 풍미와 식감을 구현해내면서 가볍게 성공 궤도에 오르더니, 빌 게이츠, 구글 등 글로벌 기업에서 거액의 투자를 유치해내며 베지노믹스 시장의 선두 주자로 나섰다. 베지터블과 이코노믹스의 합성어, 베지노믹스가 2017년 푸드 시장의 키워드로 부상한 것이다. 마켓 리서치 기관 민텔은 채식 시장의 확장을 올해의 빅 이슈로 예견했고, 시장조사 업체 유로모니터는 대체 육류 시장 규모가 곧 30억 달러에 육박할 거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고기는 물론이고 인공 달걀로 만든 마요네즈, 버터를 넣지 않은 초콜릿, 육수부터 고명까지 채소만으로 만든 라멘 등 식물성 단백질은 이미 식문화 곳곳에 안착했다. 국내 베지노믹스 시장도 2조원대를 돌파했다. 온라인 쇼핑몰 11번가는 2015년 채식 콩고기 매출이 전년 대비 210% 상승했다고 답했고, 옥션의 올해 1분기 채식 식품 판매량은 전년 대비 최대 300% 증가했다.
아보카도의 불편한 진실
현재 전 세계는 아보카도와 뜨거운 열애 중이다. 2015년 미국에서 소비한 아보카도는 40억 개, 중국은 2016년에 2만5,000톤을 수입했다. 웰빙 푸드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아보카도. 하지만 업계인들은 이를 ‘그저 10년 바짝 벌 수 있는 현금 작물’이라고 부른다. 아보카도의 주 생산지는 멕시코인데, ‘그린 골드’로 불릴 만큼 수익률이 높은 탓에 소나무를 싹 베어내고 그 자리에 아보카도 나무를 심고 있다. 게다가 더 많은 생산량을 위해 막대한 양의 화학비료도 불사한다. 엄청난 양의 물을 필요로 하는 아보카도 재배 조건도 생태계 악화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칠레에서는 바싹 타버린 농가가 속출하고 식수마저도 부족한 상태. 또 멕시코의 신흥 마약 카르텔이 아보카도 사업에 뛰어들면서 사태는 더 심각해졌다. 대규모 기업형 농장은 열악한 노동 환경을 쉬쉬할 뿐. 난감한 현실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보탬은 농장의 재배 방식을 보증하는 토양 협회의 인증 마크(Soil Association)를 확인하고, 먹지도 않은 채 버려지는 아보카도를 줄이는 알뜰한 습관 정도다.
유대인의 식사법, 코셔
정결한 K마크, ‘코셔(Kosher)’를 알고 있나? 마돈나와 마크 저커버그가 자주 찾는 ‘코셔 레스토랑’이라는 타이틀로 한 번쯤은 접해 봤을 이 단어는 사전적으로 ‘적당한’ ‘합당한’이라는 뜻이다. 전통적인 유대인의 의식 식사법에 따라 식물을 선택, 조제하는 방법으로, 코셔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제품의 모든 원료, 설치, 제조 과정이 엄격한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현재 전 세계 정식 코셔 인증 기관은 약 1,000여 곳. 코카 콜라, 네슬레, 하인즈 등이 이를 취득했다. 국내에서도 먹거리에 관심 많은 깐깐한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코셔가 서서히 전파되고 있다. 다이어트를 하거나 디톡스 중인 스타들의 인스타그램에서 자주 눈에 띄는 파지티브 호텔의 ‘PH 지중해 블렌드’가 대표적인 예. 밀싹, 브로콜리, 라임, 시금치 등 사용되는 채소가 모두 코셔 인증을 받았다.
핫 그린 = 퍼플
올해의 트렌드 컬러 그리너리 덕분에 온 세상이 싱그럽게 물들었지만, 식탁만큼은 예외다. <포브스>와 <텔레그래프> 등 외신이 꼽은 2017 푸드 트렌드 중 하나가 바로 퍼플 푸드이기 때문. 주목할 성분은 안토시아닌. 탁월한 항산화 효능 덕분에 오래전부터 슈퍼푸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려왔고, 콜레스테롤의 축적을 막아주는 것은 물론 우울증에도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적양파, 비트, 가지 등이 대표적인 보라색 채소. 최근에는 보라색으로 변신한 감자, 무, 옥수수, 콜리플라워도 쉽게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마키베리! 칠레 남부가 원산지인 마키베리는 미국 브런스윅 연구소의 테스트 결과에 따르면 항산화 능력을 나타내는 오락(ORAC) 지수가 아사이베리의 4.1배, 아로니아의 6.6배에 달한다. 국내에서 열매를 직접 구하긴 어렵지만 원액이나 분말 형태로 구입할 수 있으니 참고하길.
슈퍼 곡물의 함정
고대 이집트인들도 즐겨 먹은 신의 곡물! 몇 해 전부터 각종 찬사를 받으며 슈퍼 곡물로 떠오른 아마시드에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달 수입산 곡물 30종에 대해 안전성 검사를 실시한 결과 아마시드 제품 여섯 개 모두에서 중금속 카드뮴이 0.246~0.560mg/kg이나 검출됐기 때문. 카드뮴에 반복적으로 장기간 노출되면 폐가 손상되거나 이타이이타이 병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 독성 물질, ‘시안배당체’도 문제다. 차움 푸드테라피센터 엄은비 영양사는 그 자체가 유해한 것은 아니지만, 섭취 시체내에서 사이안화수소를 생성하기 때문에 온몸이 파랗게 변하는 청색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아마시드는 열처리 후 섭취하는 것이 좋고, 1회 섭취량은 4g, 하루 섭취량은 16g을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
WASTE ZERO
2017년 식음료 업계의 화두는 낭비와의 전쟁. 전 세계적으로 먹지 않고 버려지는 음식물은 매해 13억 톤. 미국 내에서 단지 못생겼다는 이유로 전체 농산품 중 26%가 버려진다. 환경 단체는 물론 유명 셰프와 기업에 이르기까지 못생긴 채소를 재활용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네덜란드의 젊은 창업자가 만든 못난이 채소 수프, ‘크롬코모(비틀린 오이)’를 시작으로, 녹즙을 만들고 남은 유기농 채소 잔여물로 만들어진 샌프란시스코 포레이저 프로젝트의 베지 칩스도 화제가 됐다. 미국 내 팜 투 테이블(농장 식재료를 식탁까지 가져오는) 캠페인의 선구자인 셰프 댄 바버는 착즙 찌꺼기를 활용한 치즈 버거, 버려지는 셀러리 줄기를 활용한 테이블 장식 등 보다 창의적인 해석을 덧붙였다. 현재 미국에서는 못난이 채소 판매 캠페인에 14만여 명이 서명한 상태고, 월마트를 비롯한 대형 유통업체도 못난이 채소의 판매에 동참하고 있다.
미세 먼지를 먹고 자란 채소
1급 발암물질인 미세 먼지가 콧속으로 들어가 폐에 차곡차곡 쌓인다는 것은 초등학생들도 아는 사실. 그렇다면 대한민국 하늘을 무겁게 덮고 있던 나머지 미세 먼지의 행방은? 중력에 의해 대부분의 미세 먼지는 땅으로 가라앉는데, 이때부터 2차 재앙이 시작된다. 미세 먼지 중 수용성 중금속이 비와 함께 토양에 스며들고, 다시 식물의 뿌리를 통해 생태계로 진입하는 것. 중국과학원 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지난 2012년 베이징에서 포집한 대기오염 물질 중 납, 망간, 구리 등 수용성 금속의 양은 캐나다 에든버러에서 포집된 양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태초 먹거리>의 저자 이계호 교수는 중금속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체내에 서서히 축적되어 각종 만성질환은 물론 태아에게까지 전달되는 치명적인 성분이지만 토양이 한번 오염된 이상 섭취를 막을 근본적인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채소 섭취를 그만둬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소는 섭취하는 것이 옳습니다. 섬유질과 항산화 성분이 많은 채소, 과일류, 요오드 성분이 많은 해조류 등을 위주로 하세요. 그나마 침묵의 살인자로부터 내 몸을 방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니까요.”
- 글
- 이지나
- 에디터
- 백지수
- 포토그래퍼
- ALIQUE, GETTYIMAGESKOREA
- 메이크업 아티스트
- 바이올렛 (Violette)
- 헤어 스타일리스트
- 디에고 다 실 바(Diego Da Silva)
- 네일 아티스트
- 메구미 야 마모토(Megumi Yamamoto)
- 푸드 스타일리스트
- 클라우디아 피카(Claudia Fic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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