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oline
이보다 프렌치 시크를 더 명확히 규정한 여자는 없다. 캐롤린 드 메그레가 이태원 중심부에 섰다.
“우 선 당신 발에 키스부터 해도 될까요?” 6월 21일 오후, 서울 한남동의 디뮤지엄에서 만난 캐롤린 드 메그레 (Caroline de Maigret)가 내 발을 보며 물었다. “우선 당신 발에 키스한 다음, 함께 놀러 가야겠죠? 어디서, 어떻게 놀아야 재미있을지 알고 있을 것 같아요.” 샤넬 하우스의 앰배서더이자 모델, 뮤직 프로듀서인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녀가 나와의 만남에 이토록 열정적이었던 건, 나를 가브리엘 샤넬이라고 생각하고 대해달라고 한 내 부탁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애프터 파티는 어디로 갈 거예요? 한국 여자들과 함께 즐겁게 놀아요, 오늘.”
캐롤린을 만난 건 그날 오픈한 샤넬의 마드모아젤 프리베 전시장이었다. 가브리엘 샤넬과 칼 라거펠트의 창의적 세상을 만날 수 있는 전시장을둘러보던 그녀가 감탄했다. “놀라운 건 샤넬의 세상이 현대적이라는 사실이에요. 네온 불빛이 꾸뛰르 드레스를 통과하는 저 작품을 보세요. 미래적인 분위기와 장인들의 작품이 완벽히 어우러지고 있어요.” 이 세상을 창조한 가브리엘 샤넬을 만나면 발에 키스 세례부터 바치겠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녀는 제게 소중한 페미니스트 아이콘입니다. 우리 할머니의 몸을 해방시켰어요. 몸을 옥죄는 코르셋을 벗어 던질 수 있도록 말이죠. 그건 곧 우리 여자도 삶을 즐기고, 커리어를 선택하고, 남편 혹은 연인을 만날 수 있음을 의미했어요.”
어린 시절 잠시 모델 일에 몸담았던 그녀는 2002년 패션계를 떠났다. 파트너인 야롤 푸포(Yarol Poupaud)와 뮤지션을 발굴하고, 영화음악을 작업하는 등 음악 프로듀서로서 새 삶을 이어갔다. 다시 패션으로 돌아오게 된 건 우연이었다. 2010년 프랑스의 어느 패션지에서 준비한 인터뷰를 위해 칼 라거펠트를 만났고, 그가 즉석에서 캣워크에 서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리하여 생트로페에서 열린 2011 크루즈 쇼에 올랐고, 그 후 샤넬 앰배서더로서 인연을 잇고 있다. 최근엔 가브리엘 백 광고 모델이었으며, 샤넬과 함께 자신의 취향을 모은 사이트(cdmdiary.com)를 운영한다.
“제게는 무척 소중한 관계예요.” 7년간 함께 해온 샤넬과의 관계에 대해 그녀가 설명했다. “샤넬 하우스는 가치관을 지닌 브랜드예요. 그 가치관이 저의 그것과 같죠. 패션보다 여자와 스타일이 우선이며, 우리 여자들에겐 자신이 누군지, 자신의 스타일이 어떤 건지 깨닫게 돕죠. 세월에 구애받지 않는 스타일을 선보이는 것도 중요해요.”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함께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당신도 잘 알겠지만, 가브리엘 샤넬은 늘 아티스트와 함께했어요. 음악, 사진, 회화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그녀 주변에서 영향을 끼쳤어요. 그것 역시 제가 바라는 삶의 모습이에요.”
샤넬과 함께한 덕분에 그녀는 어느새 파리지엔 스타일, 프렌치 시크 등의 대명사가 됐다. 지난 2014년에 파리지앵처럼 사는 법에 대한 책(<How to Be Parisian Wherever You Are: Love, Style, and Bad Habits>)을 선보인 것도 자연스러운 결과다. “미스터리가 있어야 해요.”
파리의 여자처럼 멋지고 싶다면, 가장 필요한 덕목이 뭐냐는 질문에 답변이 돌아왔다. “스스로를 잘 관리하고, 멋지게 꾸밀 줄 알면서도 삶에 다른 목적이 있는 듯 보여야 해요. 패션과 뷰티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여선 안 돼요.” 미용실에서 머리를 꾸미고 왔더라도 방금 침대에서 일어난 듯 “난 신경 안 써!”라는 태도를 지니고, 주말 동안 보톡스를 맞았어도 그 사실을 숨기고 “마라케시로 여행 다녀왔어!”라고 거짓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 누구도 당신이 다이어트를 하려고 샐러드만 먹고 하루 종일 운동만 한다는 걸 알 필요는 없어요.”
프랑스 여자가 보톡스를 맞지 않는다는 건 다 거짓말이라고 웃던 그녀가 다시 강조했다. “여자에게는 어느 정도 게임을 하려는 자세가 필요해요. 프랑스 여자들은 그 게임에 능숙하죠.” 가슴이 훤히 드러나는 타이트한 드레스보다 어깨가 흘러내릴 만큼 커다란 스웨터를 선택하는 것도 게임의 방법 중 하나다. “아슬아슬하게 어깨에서 흘러내린 스웨터를 슬쩍 끌어 올리는 순간 상대방은 제 드러난 어깨를 주목하겠죠. 그 제스처가 바로 섹슈얼한 태도예요. 세상 모두에게 가슴을 내보이면서 섹시함을 자랑할 필요 없어요. 제 앞에 앉은 상대방에게만 섹시하면 되니까요.” 가브리엘 샤넬이 여성의 손목을 드러내기 위해 짧게 재단한 트위드 재킷의 소매 부분도 바로 그런 점을 노렸다고 덧붙였다. “지적인 섹시라고 할 수 있어요. 섹시하다는건 상대방의 뇌를 건드릴 수 있어야 하거든요.”
스트리트 사진에서 스타가 된 만큼 스타일 법칙도 있다. 외출 전 거울 앞에서 한 가지 아이템을 내려놓으라던 샤넬 여사의 조언처럼 멋쟁이가 되기 위해선 중도를 지켜야 한다. “너무 많이 꾸미면 분장한 기분이고, 심플한 옷만 고집하면 지루해요. 그래서 하나의 강렬한 아이템을 간결한 옷과 믹스하는 거예요. 새빨간 셔츠일 수 있고, 커다란 스트라이프 팬츠여도 좋아요.” 무엇보다 필요한 건 자기 스타일을 깨닫는 거라고 덧붙인다. “스스로 어떤 스타일이 어울리는지 알아야 해요. 모든 사람에겐 어울리는 스타일이 따로 있으니까요.”
그녀처럼 멋진 태도를 지니기 위해선 반항의 욕구도 필요하다. 프랑스 펑크 밴드 FFF와 함께 싱글을 선보였고, 9월에는 록 밴드 Black Minou의 음악을 발표할 그녀에게 서울은 그래서 더 흥미로운 도시. 인터뷰 전날 <보그>와 함께 이태원 거리를 거닐며 화보를 찍은 경험 역시 마찬가지다. “다들 서울이 미래적이라고 하지만, 거칠고 정돈되지 않은 매력도 있어요. 펑크의 기운이 느껴지죠.”
그녀가 사는 피갈(Pigalle)이라는 동네가 매력적인 것도 그 이유다. 한때 홍등가였고 지금은 파리에서 떠오르는 동네로 손꼽히는 곳 말이다. “아직 완벽하게 깨끗하진 않아요. 뭐든 너무 정돈된 건 매력이 없거든요. 누가 디즈니랜드 같은 곳에서 그곳의 캐릭터처럼 살고 싶겠어요? 저는 현실속을 사는 현실적인 여자인걸요(a real woman living in the real world)!”
- 에디터
- 손기호
- 패션 에디터
- 김미진
- 포토그래퍼
- KIM BO SUNG
- 모델
- 캐롤린 드 메그레(Caroline de Maigret)
- 헤어 스타일리스트
- 한지선
- 메이크업 아티스트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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