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Lucky Four
까만 밤에 별, 사랑으로 불 지핀 낙원… 위너의 <Our Twenty For>는 걷기보다 달리고 싶은 기쁜 우리 젊은 날에 대한 이야기다.
8월 4일 오후 4시 위너의 신곡 ‘Love Me Love Me’와 ‘Island’가 공개됐다. 4월 4일 오후 4시에 ‘Really Really’와 ‘Fool’을 발표한 지 정확히 4개월 만이다. 앨범 재킷에는 숫자 4 모양을 한 섬이 에메랄드빛 바다 한복판에 둥둥 떠 있었다. 강승윤, 이승훈, 송민호, 김진우, 이 네 명이 휴양지가 되어주겠다는 암시일까. 멜론, 네이버, 지니, 벅스, 소리바다 등 음원 차트 순위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위너의 신곡은 순식간에 불이 붙은 폭죽처럼 밤하늘을 반짝거림으로 물들였고 우리의 플레이리스트에 매끄럽게 안착했다.
삶의 어떤 순간은 음악으로 기억되는데 위너의 ‘Love Me Love Me’와 ‘Island’는 2017년 우리가 꿈꾼 ‘기쁜 우리 젊은 날’을 환기하는 매개체가 될 것 같다. 음악을 풍경으로 확장시킨 건 음원과 동시에 공개된 뮤직비디오탓이 크다. 하와이에서 촬영했다고 전해지는 뮤직비디오에서 위너 멤버들은 푸른 바닷가를 향해, 기이한 절벽을 따라, 담벼락을 타고 달리고 또 달린다. 얼굴 근육이 시키는 대로 마음껏 웃고, 몸이 움직이는 대로 자유롭게 춤을 추고, 트램펄린 위에서 공처럼 튀어 오른다. 태양을 향해 달리지만 어느새 태양이 이들을 따른다. 근심 없는 모험가들의 달리기는 눈이 부시고 찬란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단어, 청춘. 하지만 젊은이들을 얘기할 때 등장하는 가장 흔하고 솔직한 그 단어를 아이돌 멤버를 보며 떠올린 적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청춘이란 반항, 희망, 가능성, 분노, 대책 없는 낙천주의, 불확실 등의 범벅과도 같은데, 아이돌은 빈틈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위너에게 이번 앨범은 아이돌을 걷어낸 20대 또래 삶에 대한 갈망과 갈증이 담긴 작업물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것, 그럼에도 못하고 있는 것. 파도와 함께 떠나 사랑의 불을 지피고, 영원을 꿈꾸며 춤추고 사랑하는 것. 우리는 어쩌면 모두 같은 꿈을 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조건 여름이어야 했기에 밀어붙였던 컴백. 4월에 발표했던 ‘Really Really’가 음원 차트에 건재한데 신곡을 발표하는 건 위너에게도 소속사 YG에도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두 곡 모두 오래전에 작업해둔 데모곡이에요. ‘Love Me Love Me’는 후렴 작업을 굉장히 빨리 해놨던 곡인데 다시 들어보니 여름 느낌이 잘 맞더라고요. 의미적으로 가사를 한번 틀고 싶었어요. 사랑하는 것도 좋지만 받는 것도 좋으니까 ‘사랑해’보다 ‘사랑해줘’라고 말해봤어요. ‘Island’는 원래 좀더 어두운 섬이었어요. 상대방에게 ‘네가 갇혀 있는 섬에서 나와’ 같은 내용이었는데 섬‘ 으로 떠나자!’ 일‘ 탈하자!’ 같은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서 가사를 싹 바꾸고 멜로디를 더 즐길 수 있게 작업을 한 거죠.” 요즘 멤버들로부터 ‘천재 작곡가’로 불리는 강승윤이 들려준 노래 탄생 배경이다.
이런저런 저장 장치에 저축해둔 곡만 앨범 10개 분량은 될 거라는 재능 넘치는 창작자들은 어디서부터 영감을 얻는가. “사실 저희가 최근에 다른 촬영 때문에 괌에 다녀왔어요. 곡 작업은 회사 작업실에서만 계속 이뤄지기 때문에 리프레시하기가 힘들어요. 괌에서 상상하던, 그리고 보던 이미지가 표현된 것 같아요. 괌, 하와이를 연속으로 다녀오니까 청춘의 이미지가 야자수 같아요.(웃음) 가서도 야자수 사진만 다른 각도로 엄청 찍었어요.”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영감을 얻은 위너 덕분에 앨범 <Our Twenty For>는 순식간에 ‘퇴사송’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출퇴근길에 들었다가는 사표를 던지고 싶어지니 조심해야 한다. 특히 김진우가 달콤한 목소리로 ‘넌 까만 밤에 별, 다른건 안 보여, 난 너의 것. 너와 함께 춤추고 싶어’, ‘회색 빌딩 감옥 안에서 널 구해줄게, 야자수 아래 시원한 샴페인’ 같은 파트를 부를 때 정말 위험하다.
‘흥’이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무대는 또 어떤가. 위너는 지금까지의 무대 가운데 가장 안무에 힘을 준 무대로 ‘Island’를 꼽았다. “저희가 그냥 흔들고 있는 걸로 보실 수 있는데 속으로 힘이 엄청 들어가는 춤이기 때문에 하고나면 헥헥거려요.(강승윤)” “사실 저희가 땀 안 흘리는 아이돌로 유명하거든요. 아이돌 사이에서 쟤네들은 뭔데 뽀송뽀송하냐고 그러기도 했는데…(웃음) 연습생 때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숨 가쁨입니다. 땀이 나오는 정도가 아니라 흠뻑 젖어서 내려와요. 땀을 많이 흘려서 피부가 좋아졌어요.(이승훈)” 무대의 흥을 가장 프로페셔널하게 부추기는 멤버는 이승훈이다. “심쿵하는 혹은 보통 사람이라면 못하는 귀여운 포인트를 잘 살리는 면이 있어요. 그런 부분을 같이 모니터링하면 더 흥이 나요.(송민호)” 치밀하게 계획된 흥일까, 순도 높은 흥일까. “올라가서 그때 느낌대로 그냥 하는 거예요. 맨날 똑같은 무대를 되게 싫어해요. 저희가 지루해서!(강승윤)” “의상에 따라 달라지기도 해요. 수트냐, 캐주얼이냐, 바지통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서도 달라요.(이승훈)” “힙합스럽게 입으면 그루브가 미치는 거죠.(송민호)”
사실 위너는 선동에 능한 그룹은 아니었다. 에너지를 분출하기보다 어루만지는 쪽에 가까웠다. 3년 전 위너의 데뷔 앨범 <2014 S/S> 발표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멤버들은 ‘Grand Launch’라는 컨셉에 맞춰 런웨이를 걸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멤버들의 비장했던 얼굴과 모델이 떠난 후 런웨이에서 흐르던 위너의 첫 번째 음악이다. YG 연습생들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WIN: Who is Next’에서 우승하고 ‘Winner’라는 승리에 도취되어 있기보다, 그 길고도 절실했던 연습생 시절 귀갓길에 위로 받고 싶어 들었던 노래인 것만 같은 곡이 대부분이었다. ‘공허해’ ‘컬러링’ ‘끼부리지마’ ‘걔 세’ 등 제목 자체는 직설적이고 노골적이었지만 노래는 솔직하고 담담한 고백에 가까웠다. 플레이리스트에 저장해두고 아무 때나 꺼내 들어도 편안한 음악, 다른 일을 하며 듣다가도 문득문득 꽂히는 가사에 코끝이 찡해지는 음악. 이들의 노래는 팬 여부를 떠나 많은 공감을 얻었다.
위너는 올해 4월에 발표했던 ‘Really Really’가 전환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최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밝은 댄스곡 ‘Really Really’를 가지고 나왔을 때 반응이 너무나 좋았고, 좀더 가져가는 게 맞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런 분위기의 곡을 한 곡 더 내고 싶어졌죠. 지금도 사실 이렇게 밝은 장르가 위너의 색깔은 절대 아니에요. 한 발씩 내딛는 과정이고 아직 많이 멀었죠.(이승훈)” “전에는 다양한 시도를 많이 했어요. 예를 들어 미디엄템포 곡도 많았어요. 이별 이야기나 어두운 면을 다루는 음악이 많았던 거 같아서 저희 삶에 리프레시할 만한 뭔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강승윤)” “돌이켜보면 나이에 비해서 성숙한 노래만 했던 거 같아서 20대다운 발자취를 만들고 싶었어요.(송민호)”
위너의 음악이 ‘Really Really’ 전과 후로 나뉜다고 생각되는 건 “위너라는 장르가 탄생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데뷔 초 강승윤은 “위너라는 장르를 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바라던 바를 이뤘다. “제2의 누구누구 같다는 게 아니고 그냥 위너라는 말. 진짜 행복한 말이었어요. 요즘 저희 멤버들의 생각이 하나로 모이는 것 같아요. 각자의 장르도 좋지만 우리만의 뭔가를 같이 으샤으샤 만드는 쪽으로요.(강승윤)” 위너는 트렌드를 고민하는 그룹인가 물었을 때, 놓쳐서는 안 되는 그룹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트렌디한 기준 안에서 멜로디, 가사 등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그룹.
만들어지는 게 아닌 만들어간다는 방향성은 위너를 특별한 보이 그룹으로 만들어준다. 혹독한 데뷔 드라마를 썼기 때문일까. 위너는 애초에 YG엔터테인먼트라는 안전한 울타리에 기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처음부터 앨범 크레딧은 멤버들 이름으로 빼곡했고, 안무 역시 멤버들로부터 출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상관없어요. 저희랑 너무 잘 맞는 옷을 누군가가 만들어 주신다면 그걸로 활동할 수 있는 거고. 1집 앨범 때 후속곡 ‘끼부리지마’ 같은 경우는 자작 랩 말고는 작곡가분들의 곡이었어요.(강승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행착오가 되게 많았어요. 작곡가 형 곡도 녹음했고, 테디 형 노래도 녹음해봤어요. 그런데 그때마다 저희 옷 같지 않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우리만의 것을 더 보여줄 수 있는지 깨닫는 과정이 있었을 뿐 ‘우리는 아티스트야! 무조건 우리만의 곡으로 앨범을 채워야 돼!’ 그런 건 없어요(웃음).(이승훈)” “그러다 보니 작곡가 형들도 이제는 이 곡을 너희 스타일로 바꿔보면 좋을 것 같으니 작업을 해달라고 말씀해주세요.(강승윤)”
이런 노고를 높이 샀다든지, 연차가 쌓여서 돌아온 결과는 아니지만 얼마 전 YG 사옥에는 ‘위너방’이 생겼다. “원래 작곡가 형들 방에서 같이 작업을 했는데 이번에 사무실을 증축하면서 아이콘이랑 저희랑 원의 방이 생겼다는 즐거운 소식입니다.(이승훈)” 가장 안도한 건 무조건 혼자 있어야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송민호. “집 앞에 옛날에 쓰던 연습실 쪽방이 있는데 거기서 문 다 닫아놓고 혼자 했거든요. 방에서는 집중이 안 되니까요. 고양이가 뛰어다니고…”
얼마 전 위너는 숙소를 전격 공개했는데 아이돌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근사한 인테리어 잡지도 아닌 <TV 동물농장>에서였다. 고양이 세 마리, 강아지 한 마리와 와글와글 모여 사는 삶 사이, 위너의 일상이 언뜻언뜻 비쳤다. 그러고 보면 아이돌 멤버의 관계란 참 특수하다. 가족도, 친구도 아니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고 같이 산다. 관계에 대한 정의는 멤버들 각자 달랐는데 가족과 친구 사이 지점 어딘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가족과 제일 비슷해요. 가족은 맨날 보는 사람이니까 신경 안 쓰잖아요. 그런 거예요. 사실 누가 친형, 친동생이랑 놀아요. 친구랑 많이 놀지.(강승윤)” “그쵸. 숙소에 돌아가면 각자 방에 충실해요.(이승훈)” 멤버 모두 취향이 확실해서 누군가가 축구를 하자고 해도, ‘오버워치’ 게임을 하자고 해도 좋아하지 않으면 굳이 안 한단다.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 없는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 “진짜 친한 관계지만 그렇다고 집안 사정까지 100% 아는 사이는 아니죠. 그런데 멤버 중에 누가 수술하게 되면 콩팥을 떼줄 수 있을까요?(이승훈)” “줄 것 같은데요? 정말 형제라고 생각해요.(송민호)” 콩팥을 떼어주네 마네 티격태격해도 이들에겐 힘들고 좋았던 순간을 함께한 시간이 있고, 이는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느끼게 하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관계를 만들어버렸다.
강승윤은 어릴 때부터 기타를 독학으로 익혔고, 송민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힙합을 접하고 6학년 때부터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이승훈은 중학생 때 댄서의 꿈을 처음 꿨고, 김진우는 연기자를 꿈꾸다가 19세에 가수의 매력에 눈을 떴다. 그리고 위너라는 이름으로 함께한 4년. 변하지 않은 건 딱 두 가지, 숙소 방문을 열면 팬티만 입고 자고 있는 서로의 모습과 가수로서 하고 싶은 일뿐이고 모든 것이 변했다.
“최근에 기사를 봤는데 박진영 형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아이돌에서 아티스트가 되는 것은 인기에서 인정으로 바뀌는 과정이라고. 음원 성적을 떠나서 위너만의 색깔이 있고 들을 만한 음악이라는 대중들의 반응을 들었을 때 그만한 찬사가 없는 거 같아요. 상을 거머쥐었을 때보다 더욱 뿌듯하고 뭔가 이뤄낸 거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아이돌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저희 음악을 알고 아저씨, 형들이 우리 음악을 좋아해주실 때 희열을 느껴요. 빅뱅 선배님들이나 싸이 선배님 보면 팬층이 너무나 다양하잖아요. 그게 저희의 궁극적인 목표인 거 같아요. 아이돌 가수뿐만 아니라 전 연령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멋진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이승훈)”
“높은 곳에 올라가고 많은 타이틀을 거머쥐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 많이 받고 속이 상하는 건 원하지 않거든요. 속이 다 곪아 터져 있는데 연예인이라고 겉포장만 잘하면 뭐하나요? 예전부터 그런 게 정말 싫다고 생각했어요. 과정 자체가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여기까지가 꿈이에요. 촬영장에서 저희들끼리 너무나 좋고 스케줄도 즐겁게 소화하고 있어요. 지금처럼 장난도 많이 치고 딱딱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활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강승윤)” “목표를 묻는다면 위너 앨범 하나 더 내고 내년에 솔로 활동도 하고 싶고 뮤직비디오는 어디서 찍고 싶고… 100개도 넘게 말할 수 있지만 꿈을 묻는다면 ‘게을러지지 않고 계속 나를 혹사하는 사람’입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생각을 하는 것이 제가 항상 몸에 익히려는 습관이에요.(송민호)” “저는 멤버들이 말한 모든 게 꿈이고 목표인 것 같아요.(김진우)”
사실 화보를 기획하며 21세기형 하이테크 장난감이 등장하면 어떨까 생각해서(결과적으로 해당 컷이 선택되진 않았다) 스케이트보드, 드론, 액션캠, 스마트 모빌리티 등을 스튜디오 한구석에 준비해두었다. 촬영 사이사이 멤버들은 슬금슬금 다가와 요리조리 작동해본 뒤 곧 능숙하게 기기를 다뤘다. 조심하라고 스태프들이 주의를 줬다. 스케이트보드 정신이 예술 세계의 구성 요소라던 라이언 맥긴리가 생각났다. “가장 찬란했던 순간 그런 것보다 일을 하든, 놀든 계속해서 앞으로 달려갈 힘이 있다면 청춘인 것 같아요. 저희에겐 그래요.” 몇 달 내내 젊음의 이미지로 떠올렸다는 야자수의 꽃말이 ‘부활’, ‘승리’라는 걸 강승윤은 알고 있었을까. 송민호가 올라탄 스케이트보드가 매끄럽게 스튜디오 바닥을 굴러갔다.
- 패션 에디터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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