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21 Melrose Place
로스앤젤레스의 팝 문화를 자신의 DNA에 새겨 넣은 올리비에 루스테잉. 〈보그〉가 발맹 첫 LA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그를 만났다.
VOGUE KOREA 지난해 서울에서의 인터뷰 이후 <보그 코리아>와 1년 만의 만남이군요. 어떻게 지냈어요?
OLIVIER ROUSTEING 늘 그렇듯 무척 바쁘게 보냈어요. 컬렉션 룩을 여섯 번 만들었고, 로레알 화장품, 파리 국립 오페라단 발레복 등 전혀 새로운 장르와 협업했고, 또 광고 캠페인도 내가 직접 촬영했고. 음, 여행도 좀 다녔어요. 그리고 이틀 전에 이 스토어를 오픈했죠. 어젯밤에 여기 도착했는데, 오늘 파티를 열고 내일 아침 곧장 파리로 돌아가야 해요. 한 달간 여름휴가를 가려면 9월 컬렉션을 미리 준비해야하거든요.
VK 미국 서부의 첫 번째 발맹 스토어가 문을 열었군요. 피팅룸은 커다란 드레스룸 같고, 매장 뒤편에 아름다운 정원도 있네요. 의류 매장이 아닌 누군가의 빌라로 걸어 들어온 기분이에요.
OR 맞아요! 집 같죠? 매장 컨셉은 여기 들어오는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겁니다. 파리 스토어에 가봤나요? 거기와도 비슷하죠. 저는 모든 발맹 스토어가 손님들을 반기는 분위기였으면 좋겠어요. 그거야말로 럭셔리라고 생각해요. 고급 옷을 판다고 자만하지 않고 모든 손님에게 편안함을 선사하는 브랜드가 진정한 ‘럭셔리 브랜드’죠. 또 프랑스풍의 터치를 중요하게 여겨요. 지구상 어디에 있는 발맹 매장을 방문해도 파리지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말이죠.
VK 미국 내 두 번째 스토어를 로스앤젤레스에 오픈한 이유가 있나요?
OR 저한테 로스앤젤레스는 정말 특별한 곳이에요. 10대 시절 내내 LA의 음악, 영화, 문화, 그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았으니까요. 저에게 LA는 아메리칸드림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발맹 스토어는 꼭 여기 있어야만 했죠.
VK 요즘 로스앤젤레스는 패션과 예술의 도시로서 재평가받고 있어요. LA에서 영감을 얻거나 이곳에서 작업하는 아티스트도 점점 늘어나고 있고요. 당신도 그중 한 명이군요.
OR 로스앤젤레스는 다양함을 상징해요. 어떤 경계나 한계도 없죠. 출신, 인종, 나이, 외모와 상관없이 새로운 것을 환영하는 곳입니다. 어떤 장르의 문화든 새롭고 신선함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이 도시에서 패션계 사람들이 영감을 받는 게 당연해요. 이곳 사람들은 옷을 입을 때도 겁이 없고, 도전 정신이 강합니다. 그런 식으로 어떤 스타일도 소화 가능하죠.
VK LA에 킴 카다시안을 비롯해 친구들이 많고, 서른 살 생일 파티도 여기서 열었죠? 파리와 LA의 라이프스타일은 굉장히 다르지 않나요?
OR 파리와 가장 다른 건 LA의 삶이 건강함을 추구한다는 사실이에요.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고 운동도 중요히 여기죠. ‘글래머’의 개념도 달라요. 파리에서 글래머러스한 여자란 살짝 무관심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부유하는 세련된 여성입니다. 하지만 이곳 여자들은 자신감과 에너지가 넘쳐요. 파리가 약간 상류층에 의해 돌아가고 엘리트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분위기라면 LA는 훨씬 더 여유 있고 사람들을 반기죠.
VK 이 매장에서는 여성복, 남성복은 물론, 키즈 라인과 새로 론칭한 액세서리 컬렉션도 판매 중이에요. 반응은 어떤가요?
OR 발맹 특유의 스타일이 액세서리 디자인에도 잘 어울린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특히 우리의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과 보디 콘셔스 드레스를 즐겨 입는 여자들이 과연 발맹 가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었는데, 굉장히 반응이 좋아요. 무엇보다 디자이너로서 여자들이 제가 만든 가방을 들고 다닌다는 사실이 뿌듯하더군요. 발맹 하우스와 저에겐 새로운 도전이었죠.
VK 액세서리와 더불어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의 베이식 아이템도 선보이고 있는데, 그런 것들을 통해서 발맹 고객층을 좀더 확보했다고 느끼나요?
OR 물론이죠! 우리에게 그 작업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특히 럭셔리 브랜드 가운데 발맹은 젊고 대중문화를 잘 파악해 신선함을 추구하는 브랜드지만, 동시에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패션 하우스 중 하나예요. 저의 팔로어들과 패션과 음악을 사랑하는 멋쟁이들이 발맹 브랜드를 살 수 있고, 더 저렴한 제품을 통해 발맹이라는 브랜드가 새로운 오디언스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중요해요.
VK 지난해 <보그 코리아> 인터뷰에서 당신은 럭셔리가 소셜 미디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길 원한다고 말했어요. 빨라진다고 해서 럭셔리가 아닌 게 아니라고도 했죠. 1년 사이에 럭셔리 시장에서 어떤 변화가 감지됐나요?
OR 와우, 역시 내가 틀리지 않았군요! 작년에 내가 그 얘기를 할 때만 해도 SNS는 패션 하우스에 새로운 도구이고 거기엔 약간의 거부감도 분명히 존재했어요. 하지만 이제 브랜드에서 무엇보다 SNS에 열중하고, 팔로어를 늘리느라 애를 쓰고 있죠. 세상이 얼마나 빨리 변화하는지, 신기하지 않나요? 그 속도에 비해 패션계는 조금 뒤떨어지고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아요. 패션계에서 ‘모던’이란 아직도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진 드레스나 재킷을 의미하죠. 진정한 모던함은 패션을 어떻게 이용할지 아는 거예요. 이제는 럭셔리 세계가 SNS에 신경을 쓴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VK 이번 시즌 광고 캠페인을 직접 촬영했죠? 그 역시 패션을 이용하는 모던한 방식인가요?
OR 그렇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한편으론 제가 전부터 굉장 히 도전하고 싶었던 일이기도 해요. 알다시피 발맹 캠페인은 워낙 유명한 사진가들과 작업하다 보니 저절로 사진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거죠. 그래서 이번에는 자발적으로 제가 찍기로 결심했어요. 최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는 데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가 있어요. 첫째는 디자이너로서 아이디어가 좋아야 해요. 종이에 있는 스케치가 어떤 옷으로 만들어질지, 비율은 어떻게 해야 가장 예쁠지 구성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디렉터가 되는 거예요. 이건 디자이너랑은 다른 차원이죠. 디렉터들은 옷이 아닌 어떤 이미지를 만들지 상상해야 해요. 마지막으로 소통이 중요해요. 디자인과 디렉팅을 어떻게 엮어야 시너지를 발휘할지 알아야 하죠. 캠페인을 촬영할 때는 이 모든 요소를 필요로 합니다. 이 재킷을 입은 여자 모델이 어디에 어떻게 서고, 남자 모델과 어떻게 소통하기를 원하는지 아는 것은 저예요. 그러니 제가 찍으면 그 느낌을 가장 잘 연출할 수 있겠죠. 직접 촬영하는 것이 저에게는 매우 중요했어요. 모든 것을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한다는 건 뮤지션이 노래 한 곡으로 전부를 보여주는 것과도 같아요. 그런 면에서 다분히 팝적인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VK 당신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팝 문화가 이제는 패션계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된 것처럼 보여요. 처음에 당신이 광고에 팝 스타를 등장시키거나 힙합 뮤지션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때만 해도 패션계의 반응은 엇갈렸는데 말이죠.
OR 패션쇼 맨 앞줄에 앉은 손님들의 입맛만 맞춰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드디어 패션계가 깨달았어요. 패션은 비즈니스고 당연히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해요. 대중문화를 혐오하던 명품 브랜드 조차 대중문화를 좇아가고 있는 걸 보세요.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대중문화의 힘을 빌리는 거죠. 저는 VIP 단골 고객들만큼 제 옷을 살 돈이 없는 대중들도 중요시해요.
VK 어쩌면 몇몇 VIP들은 당신의 발언을 예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OR 이 럭셔리 세계에 발을 디딜 수 없는 사람들에게 패션에 대한 환상이나 꿈을 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해요. 고객으로 확보할 수 없다고 해서 그들을 무시하면 안 돼요. 저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보여주고,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죠. 심지어 어떤 부모들에게 다이렉트 메시지를 받은 적도 있어요. 자기 아이가 저를 통해 영감을 받고 학교에서도 열심히 공부한다는 내용의 메시지였어요. 한번은 부모가 자기를 입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가 저한테 감사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어요. 패션계는 환상을 만들어주고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어요.
VK 그렇다면 반대로 요즘 대중들이 켄드릭 라마나 에이셉 라키 같은 팝 스타가 직접 디자인하고 드롭하는 의상을 원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OR 그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인기가 필요한 브랜드는 팝 스타의 도움을 받죠. 스타들도 패션을 좋아하니까요. 이제는 브랜드에서만 손을 뻗는 것이 아니라 팝 스타들이 스스로 원하기도 해요. 브랜드에서는 홍보를 위해 스타들을 쓰면서 정작 그 스타들은 자신만의 컬렉션을 디자인하면 안 된다?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하지만 가수와 디자이너는 아주 다른 직업이죠. 둘 다 하는 것은 어렵지만 성공하는 경우를 볼 땐 정말 신기해요. 음악계나 패션계 어느 하나에만 속하는 것보다 둘을 섞는 것은 아주 재미있는 아이디어니까요.
VK 이번 비츠 바이 닥터드레와 발맹의 협업처럼요?
OR 맞아요, 저는 닥터드레와 발맹의 협업이 갑작스럽지만 또 한편으론 무척 자연스러웠다고 생각해요. 저는 늘 음악을 사랑했고 사운드를 다루는 비츠의 기술이 좋았어요. 비츠 바이 닥터드레가 제 패션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듣고 곧바로 협업을 결정했죠. 음악은 제 인생이에요. 힘든 시기, 세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저는 음악을 선택했어요. 그들은 이런 마음을 알기 때문에 저와의 협업을 원했고요. 그야말로 패션과 음악의 순수한 만남이죠.
VK 그토록 팝 음악을 사랑하는 당신이 이번 남성복 컬렉션에선 샹송만 여러 곡 틀었더군요. 마크롱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당신이 프랑스에 선사하는 오마주였나요?
OR 쇼의 영감에 관해 물으면 저는 늘 기분에 대한 거라고 대답해요. 지금은 내 나라를 축하해주고 싶은 기분이에요. 물론 우리들의 정치적 선택도 거기에 포함돼 있죠. 제가 미국을 사랑하거나 한국을 사랑하거나 다른 나라를 사랑한다고 프랑스가 뒤처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착각을 해요. 이 세계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잊는 거죠. 여행을 좋아하고 다른 문화를 사랑하지만 저는 프랑스 사람이고 파리지앵이라는 점이 자랑스러워요. 정치적으로 보자면 저는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고 언론의 자유를 원하는 부류인데, 이런 정신 역시 내 조국을 통해 물려받은 자랑스러운 기질이라고 생각해요.
VK 인종차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요즘 당신의 런웨이를 보면 패션계의 다양성 결핍과 맞서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OR 저는 다양성(Diversity)을 추구할 때 인종이나 피부색만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다양한 몸매를 가진 여성들도 런웨이에 설 수 있어야 해요. 힙합 스타나 할머니가 영감을 준다면? 그들을 내세워야죠. 패션에서 다양성이 없다는 것은 발전이 없는 것과 같아요. 그렇다고 트렌드에 부합하려고 다양성을 추구하면 안 돼요. 다양성을 원하는 정신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죠. 다른 몸매, 다른 배경, 다른 정체성이 섞여야 패션이 발전해요. 이 세상 사람들은 너무도 다양한데 그들을 위해 만드는 패션은 전혀 다양하지 않아요. 훨씬 더 많이 필요해요.
VK 다양성이 결여되고, 변화의 속도가 느린 패션에서 당신이 여전히 존경하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하군요.
OR 저는 진정성을 존경해요. 자신의 믿음에 확신을 가지고 자기 방식에 대한 고집이 있는 디자이너들을 존경합니다. 또 미래에 대한 환상이 있고, 끊임없이 상상하는 사람을 존경해요. 제가 싫어하는 것은 남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방식을 바꾸고 이름을 알리려는 사람들이죠. 저에게 어떤 디자인이나 패션 트렌드를 좋아하느냐고 물었을 때 어떤 건 좋을 수도 있고 싫을 수도 있어요. 한 가지 정해진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대로 디자인하고 자신의 디자인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아요. 제가 여전히 존경하는 패션의 본질이죠.
VK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 절대로 옷을 만들지 않겠다”던 인터뷰와도 일맥상통하는 얘기군요. 그럼, 지금은 옷을 만들어주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OR 전 엠마뉘엘 마크롱, 우리의 대통령에게 발맹을 입히고 싶습니다. 그의 부인은 발맹을 입었지만 아직 그를 위해 작업해보지는 못했거든요. 아! 그리고 믹 재거에게도 입히고 싶어요.
VK 오늘 밤 파티를 위해 누구의 드레스를 골라줬나요?
OR 킴 카다시안, 포피 델레빈, 헤일리 스타인필드, 케리 워싱턴, 제이미 킹 등 친한 친구들이 모두 모일 거예요. 아, 그리고 오늘 밤 최고의 뮤지션이 공연을 할 거예요. 누구인지는 아직 비밀이지만(주인공은 힙합 그룹 미고스였다).
VK 마지막으로, 당신이 이 천사의 도시에서 가장 사랑하는 세 곳을 말해줄래요?
OR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말리부 해변이에요. 친구들과 모닥불을 피워놓고 즐기며 쉬다 보면 다시 아이가 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죠. 선셋타워 호텔도 굉장히 좋아해요. 그곳의 글래머와 올드 할리우드 분위기는 시대와 상관없이 아름답게 느껴지죠. 제일 좋아하는 식당은 크리스 제너와 함께 갔던 산타모니카의 ‘노부(Nobu)’예요. 벌써 세 가지를 말해버렸지만, 하나 더 말해도 되죠? 8421 Melrose Place, 발맹 스토어!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마지막 질문에 답했으니 이제 진짜 파티 타임이군요! 당신도 돌아가서 파티를 즐길 준비를 해요, 어서요!
- 에디터
- 김지영
- 포토그래퍼
- SHXPIR, COURTESY OF BAL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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