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imal Kitchen
모두 미니멀라이프에 빠져 있다. 최근 트렌드는 냉장고 없애기. 정말 ‘안티 냉장고’ 가 부엌과 삶에 변화를 불러올까? 한여름에 냉장고 없이 살아봤다.
겨울에도 마지막은 찬물로 샤워할 만큼 나는 열이 많다. 그럼에도 냉장고를 없애기로 결단한 이유는 (기사를 써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냉장고 하나 없애도 삶의 질이 바뀐다는 전언 때문이다. 미니멀라이프의 유행은 부엌에까지 이르렀고, 급기야 냉장고를 없애고 있다.
냉장고 제거의 첫 단계는 ‘냉장고 음식만으로 살기’다. 냉장고가 텅 빌 때까지 그 안의 식품을 소진한 뒤에, 냉장고 없이 산다. 한 다큐멘터리에서도 같은 실험을 했다. 3인 가족의 냉장고에는 몇 개의 식품이 들어 있고, 그것만으로 몇 끼를 먹을 수 있을까? 실험 주인공인 30대 여성은 “다 먹어봤자 2주 넘겠어요?”라고 했다. 2시간 동안 털린 냉장고에서는 유통기한이 4년 지난 소시지, 3년 묵은 사골 국물,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닐봉지 등 150개의 식품이 나왔다. 가족은 40일간 냉장고 음식만 먹으며 살았다. 설마? 나도 양문형 냉장고를 털어봤다. 거의 집에서 밥을 먹지 않는 동생과 나, 둘이 사는데도 50개의 식품이 나왔다. 2주가 지나서야 다 먹었다. 동생이 나더러 “가지가지 한다”고 했다.
드디어 냉장고 없는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약속 많은 회사원이라 일주일에 3~4번만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냉장고를 열지 않았다. 밥을 하고, 참치 통조림을 꺼내고, 찬장에 넣어둔 김과 무말랭이 등을 꺼냈다. 다음 번도, 그다음 번도… 이러다가 참치가 될 것 같다. 아니면 무말랭이가. 정말 냉장고 없이 살 수 있을까? 가정에서 냉장고는 ‘신격화’돼 있다. 엄마는 시골에서 김치와 들기름 등을 보낼 때 꼭 전화를 하신다. “바로 냉장고에 넣어야 해, 알았지?” 많은 이들이 냉장고에 들어가면 뭐든 오래도록 신선하게 보관할 것 같은 환상을 갖는다. 냉장고는 ‘절대 권력자’지만 한국에서 상용된 지는 50년이 되지 않았다. 지금처럼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가정용 냉장고는 1910년대 미국에서 최초로 나왔다. 한국산은 1960년대에 120L가 출시, 70~80년대에 널리 보급됐다. 냉장고는 점점 커져 2011년에는 세계 최초로 850L급이 나왔다(물론 지금은 더 커졌다). 제품 담당자는 이렇게 인터뷰했다. “왜 자꾸 커지냐고요? 소비자가 원하니까요.”
가구 수는 점점 줄고 1인 가구는 늘어가는데 냉장고는 왜 자꾸 커질까? 관련 다큐멘터리를 만든 KBS <과학카페> 제작 팀은 이렇게 진단했다. “너무 많이 팔고, 너무 많이 산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가 냉장고의 덩치를 키웠다. 욕망이 사들인 물건이 냉장고를 채운다. 냉장고는 음식물 쓰레기를 생산하고 전기를 낭비하고 생태계를 파괴한다. 음식물 쓰레기만 절반으로 줄여도 자동차 두 대 중한 대를 세워놓는 것만큼 온실가스를 줄인다. 냉장고에 있다가 버려지는 음식의 사회적 비용은 생각보다 훨씬 비싸다.
냉장고 없이 살기를 하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뭘 먹고 사냐?”였다. 나도 궁금했다. 참치와 무말랭이의 굴레에서 어떻게 벗어나지? <궁극의 미니멀라이프>를 낸 아즈마 가나코는 “냉장을 하면서까지 오래 보관해야 하는 식재료는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흔히 냉장고로 넣어버리는 많은 식품은 상온에서도 거뜬히 버틴다. 또 절임, 발효, 건조 등의 방법으로 저장 식품을 만들고, 무엇보다 소량 사서 그날 소비하면 된다. 매일 아침 식사는 저녁에 먹다 남은 반찬을 데운다는 가나코가 말한다. “제발 힘 빼고 대충 요리하세요. 닭튀김처럼 기분을 들뜨게 하는 음식은 가끔만 드시고요.” 우린 식탁을 채우려고만 하지 않았나? 미식이 아니라 욕망으로?
‘냉장고로부터 음식을 구해내자’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디자이너 류지현은 세계의 ‘냉장고 없는 부엌’을 찾아다녔다. 유럽과 남미의 부엌에서 친환경적인 음식 저장법을 발견한다. 물론 우리는 그들처럼 땅에 파묻거나, 널찍한 창고가 있거나, ‘생태 냉장고’라는 텃밭을 갖기 힘들다. 그녀의 책 <사람의 부엌>은 “냉장고가 발생하기 전에 생겨난 지혜만 다시 모아도 냉장고 없이 밥상 차리기는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당근이나 감자는 얇게 썰어 물에 데치고 햇빛에 말리면 적어도 1년 동안 실온에서 보관할 수 있다. 그녀는 외할아버지의 사과 보관법에서 착안해, 수분을 가둬 과일을 맛있게 유지하는 그릇을 만들었다. 나만 몰랐던 사실인가? 냉장고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계절, 날씨, 본인의 여건 등을 늘 관찰하고 식재료로 이런저런 시도를 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맛이 나왔다. 하지만 냉장고의 등장으로 이 모든 관찰과 지식과 창의성은 사라졌다.
<생태부엌>의 저자 김미수는 아파트 주민을 위해 “채소와 과일을 베란다 응달에 두고 먹기부터 해보라”고 말한다. 과일이나 채소 등은 납작한 상자를 여러 개 구해 눌리지 않도록 한 층에 담아 보관하면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보다 오래 싱싱하다. 전문가들의 제안을 몇 가지 따라 해봤다. 엄마가 냉장고에 넣으라고 강력히 권한 들기름은 소금 단지에 넣었다. 1년 동안 향이 유지된다고 한다. 호박은 썰어 말려, 국을 끓일 때 필요한 만큼만 넣어 쓴다. 냉장고를 안 쓰니, 적어도 냉동식품을 먹지 않는다. 음식물 쓰레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2주에 한 번 마트에서 거하게 장을 보다가, 2~3일에 한 번 동네 슈퍼에서 한두 가지만 산다. 뭔가 생태적인 여성이 된 것 같다. 때론 냉장고의 차가운 맥주가 그리웠지만, 그때는 편의점에 들르면 된다. 아직까지 김치가 고민이지만, 이 또한 답을 찾아가면 될 테다.
한때 ‘옷장 정리’가 유행할 때 안 입는 옷을 모두 기부했다가 슬슬 다시 사들였듯이 ‘안티 냉장고’가 얼마나 갈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히 간결하고 건강해진 식탁이 만족스럽다. 또 사적인 공간이라 생각했던 식탁을, 실은 거대 자본과 욕망이 지배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올가을 이사를 가면, 아이스박스 하나만 둘 생각이다. 밤에 맥주 사러 나가기 귀찮을 때에 대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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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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