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Crush
그가 말했다. 일상의 우도환은 예민하게 몰아붙이는 면이 있지만, 연기하는 우도환은 시간을 타고 흐르는 바람과 같고 싶다고. 내면의 세밀한 감성을 쌓아 올려 아무렇지 않은 듯 세상 밖으로 투박하게 자신을 내던져보겠다는 용기, 우도환이 진짜인 이유는 지금부터다.
우도환의 얼굴은 두 가지를 말하고 있다. ‘이 정도로 날카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순수해질 수도 있어요’라고. 이 두 가지를 좌우하는 키는 당연히 눈빛인데, 쌍꺼풀 없이 가늘고 긴 눈매는 그를 이분화하는 가장 훌륭한 도구가 된다. 동공의 크기와 늘어나는 눈매의 끝을 얼마나 조절하느냐에 따라 순수했다가 서늘해지고, 선하다가 비열해진다. “배우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요즘 제가 가진 눈빛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마음 먹기에 따라 선과 악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이중적인 매력의 이 눈빛이 수많은 오디션을 거치는 동안 어느 때는 너무 ‘광’을 발해서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원하는 캐릭터에서 멀어지기도 하는 요인이 되었지만, 지금은 그 눈빛이 다 하고 있다.
본격 사이비 스릴러 드라마 <구해줘>는 낯선 소재만큼이나 출연진도 신선하다. 그중에서도 ‘석동철’ 역할은 원작에도 존재하지 않아 섣부른 추측이라든가 캐릭터의 일치성을 논할 수도 없는 캐릭터. 다행히 원작이 있는지도 모르고 오디션에 임한 덕분에, 그는 감독이 원하는 진짜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동철’이는 올해 제가 보낸 시간의 전부인 것 같아요.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캐릭터를 실제로 해 보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오롯이 ‘동철’이가 될 수 있도록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물론 사투리 때문에 속으로 많이 울었지만요.” 드라마를 보면, 그가 서울 태생이라는 게 의심스러우리만치 자연스럽게 사투리를 구사하지만, 처음 두 달 동안 사투리를 연습하면서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좌절’이라는 문 앞에서 서성여야 했다. “동철이를 둘러싼 상황이나 감정적인 것을 표현하려면 먼저 언어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했어요. 그런데 첫걸음이 제대로 떼어지지 않으니 감정을 꺼내놓는 건 두 번째 숙제였죠.” 그의 말을 빌리자면, 정말 죽을 만큼 했단다. 누군가가 되기 위해 한껏 자신을 낮추고 다듬어 결국엔 승리한 것. 두 번째 방송이 끝나고 우도환은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친구가 외면한 또 다른 친구를 구해내느라 이른바 ‘멋짐 폭발’ 액션 연기를 해 보였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 자리가 주어진 것. 상처로 얼룩진 가정환경과 천성적인 반항아 기질, 여기에 ‘깡’까지. ‘동철’이는 여자들이 드라마 속 ‘남주’에게 기대하는 판타지의 결정체라고 설명했지만 정작 우도환 자신은 물음표를 띄운다. “드라마 준비하면서 일주일에 서너 번씩 감독님과 만나 의견을 나눴는데 저희의 목표는 ‘남자들이 좋아하는 남자’가 되자는 거였어요. 학창 시절 남자들이 한 번쯤 지나온 시간에 대한 얘기기도 하거든요.” 그렇지만, 드라마 주제가 던지는 무게를 알기에 어느 쪽으로든 보는 이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면 그것으로 족하다.
데뷔 7년 차. 80여 차례의 오디션 끝에 그가 착석한 자리는 아직 ‘신인’ 배우다. 알 만한 작품을 댄다면 영화 <마스터>와 지금 방영 중인 드라마 <구해줘> 정도. 이보다 앞서 시선이 간 건 <우리 집에 사는 남자>라는 드라마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스터>에서 장렬히 전사하는 ‘스냅백’을 먼저 떠올린다. “<마스터>는 진짜 예상 밖이었어요.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영화를 찍고 있을 때였는데 머리가 반삭에 가까울 정도로 짧았죠. 손질할 외모가 없으니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로 오디션에 나섰고, 어차피 안 될 거란 생각에 제멋대로 연기한 것 같아요. 불리할 땐 제가 말이 많아진다는 사실도 깨달았죠.” 외모적 불리함을 이겨내고 결국 ‘스냅백’은 우도환 차지가 됐다. 그의 인생에서 최고의 반전이 일어난 날이다. “매일 일기를 쓰는데 <마스터> 오디션 본 날 ‘내 인생에서 가장 못 본 오디션’이라고 쓰여 있더군요. 결국 정답은 없었던 건데, 내가 나를 잘 알지 못한 건 아닐까 반성했어요.” 100번에서 조금 빠지는 오디션을 거치면서, 모르는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하는 방법은 ‘내가 가장 멋있을 때 만난다’였기에 다듬고 또 다듬은 후에야 카메라 앞에 섰을 것이다. 누군가는 “쓸 게 하나도 없네”라는 칼끝보다 날카로운 말로 그의가슴에 상처를 내주었고, 캐스팅으로 연결되지 않는 지난한 시간을 견디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가장 안정적인 지점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 많은 경험과 실패는 우도환이라는 배우를 만드는 데 훌륭한 재료가 되었다.
곧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된다. 이미 종방연까지 마친 <구해줘>는 앞으로 3주 후면 내려지고, 10월부터 <매드독>이라는 새로운 미니시리즈가 출발한다. 이번 드라마 역시 주어진 재료가 평범하지 않다. 보험 사기꾼과 그를 추적하는 보험 조사단의 이야기. 그는 여기서 김 박사 ‘김민준’을 맡았다. 이제 막 대본 리딩을 끝냈고, 오늘 <보그>와의 촬영 전에 포스터 촬영을 마치고 왔다. “트렌디한 드라마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구해줘>를 끝내고 일주일 정도 쉬어서 체력적인 준비는 갖추고 있는데, 캐릭터에 필요한 부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겠어요.” 주연배우는 삼각뿔의 맨 꼭대기에서 주변을 이끈다. 이제 우도환은 바로 그 맨 꼭대기에서 주변을 살피고 움직여야 한다. 종종 가벼운 실수에도 ‘신인’이라는 거대한 껍질이 안전망이 되어주던 시기가 지났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다. 세련된 수트를 장착하고, 매끄러운 서울 말씨로 연기해야 한다. “민준이를 연기할 때 사투리 억양이 묻어 나올까 봐 조심스러운 부분은 있어요. 물론 아직 촬영 전이니까 어떻게든 ‘김 박사’가 되도록 노력해야겠지만. 여기부터가 제 몫이겠죠.” 백번 겸손하게 노력하겠다고 애기했지만,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그는 종종 <매드독>에서 그가 보여줄 캐릭터 전개에 대해 쉼 없이 고민하는 흔적을 남겼다.
스물여섯, 청춘을 논하며 자유와 방랑에 대해 꿈을 꾸어야 할 나이. 한 번쯤 자신을 놓을 정도로 술에 취해 풀어지거나, 사랑의 열병을 앓는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시기. ‘젊음’이 곧 거대한 방패막이 되는 이 시기에 우도환은 또래와 조금 다른 시간을 산다. “하나도 불편하지 않아요. 지금 달리고 있는 이 시간이 행복합니다.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면 스트레스가 풀려요. 거기에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한적한 카페에 앉아서 좋아하는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는 거.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열아홉, 남보다 늦은 시기에 배우를 꿈꾸기 시작해서인지 우도환은 조금 다른 방법으로 자신을 다스린다. 연기를 덜어내면 과연 무엇이 그에게 남을까 싶을 정도로 본분에만 충실한 ‘배우 우도환’. “‘끼’가 많은 스타일이 아니에요. 무대에 오르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을 뿐, 가진 것이 많지 않아요. 주어진 달란트가 다양하지 않으니 제가 잘할 수 있는 걸 찾아내서 장점이 되도록 만들어야지요.”
무슨 스물여섯이 이렇게까지 자기 위치를 지키고 있는지, 끊임없이 돌려보며 꾀어내봤지만 이게 우도환이 가진 진심의 깊이다. 모든 질문의 답에는 이야기의 우선순위가 정해져 있고, 낮고 조용한 톤에 실려오는 답변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다른 건 다 포기하는 집중력, 설령 중간에 길을 잃는다 해도 절대로 포기하거나 옆길로 들어서는 일 없을. “<구해줘> 반응이 좋으니까 부모님이 많이 행복해하세요. 그런 모습들이 저를 더 행복하게 하고요. 결단의 자유가 생긴다면, 일찍 결혼해서 부모님처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 물론 쉽지 않겠죠.” 이른 결혼이 남자 스타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음을 공지하는 사이, 사실 인기나 스타라는 타이틀이 우도환처럼 ‘진심이 전부’인 친구에게 필요할까 싶어 나도 모르게 말끝을 내렸다. 혼자 있을 때 최고로 예민하고, 그 모습은 절대적으로 자신의 방안에서만 풀어놓는 일상의 우도환과 친근한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 모자와 마스크는 사절이라는 배우로서의 우도환. 이 두 간극 사이에서 자신의 무게를 잘 저울질하는 명민함을 가진 그에게 당부할 딱 한 가지, 가끔은 이 모든 시간을 몰아내고 통제권 밖으로 자신을 내던져보기를, 지금이 아니면 실수가 경험이 되는 나이는 다시 오지 않으니 말이다.
- 비주얼 디렉터
- 김민경(컨트리뷰팅 에디터)
- 포토그래퍼
- KIM YOUNG JOON
- 스타일리스트
- 홍은경
- 헤어 & 메이크업 아티스트
- 김환
- 세트 스타일리스트
- 김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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