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기억의 저편

2017.11.06

기억의 저편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건축물 중 하나인 르 코르뷔지에의 라 투레트 수도원에 이우환의 작품이 조용히 자리 잡았다.

Relatum - dwelling (B)

지난 10여 년간 라 투레트 수도원(Le Couvent de La Tourette)을 관할해온 도미니크 수도회(Dominican Community)는 현대미술 전시를 개최하며 세계적인 주요 아티스트들에게 기회를 제공해왔다. 유일한 조건이 있다면 작품이 라 투레트 수도원의 성격이나 기능과 잘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라 투레트 수도원은 1956년부터 1960년 사이에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에 의해 지어졌는데, 본래 도미니크 수도원에 합류하기 위해 7년 동안 수학하는 100여 명의 학생들을 위한 장소였다.

르 코르뷔지에는 안드레 보겐스키(Andre Vogensky), 이안니스 크세나키스(Iannis Xenakis)와 함께 노출 콘크리트로 건물을 설계했고, 부분적으로 흰색의 플로킹(Flocking, 분말 모양의 털로 장식한 원단) 페인트를 칠해 변화를 주었다. 커다란 유리창은 직각 구조의 아주 얇은 시멘트 선으로 나뉘었다. 예배당과 그 지하실은 순수주의자인 르 코르뷔지에의 옅은 노란색과 녹색, 잿빛이 도는 붉은색이 이 공간을 장식하는 가장 주된 색으로 꾸며졌다.

이 공간의 전시를 위해 선정된 아티스트들은, 당연하게도, 화려한 색채를 대담하게 구사하는 화가들이 아니라 프랑수아 모를레(François Morellet, 2009)부터 베라 몰나르(Vera Molnar, 2010), 미셸 베르주(Michel Verjux, 2016) 그리고 마니에리즘적(매너리즘) 작가인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2015)까지, 흰색, 회색, 검은색 등을 즐겨 사용하는 절제된 미니멀리즘 학파의 주요 작가들이다. 올해 리옹 비엔날레와 연계된 행사의 하나로 한국 작가인 이우환(Lee Ufan) 작가를 전시에 초대한 것은 어떻게 보면 그가 이 광물질 건물이나 건물의 엄격한 형태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우환은 유리와 돌처럼 생체 형태의 오브제 등 일곱 개의 다양한 설치 작품을 선보이는데, 광물성이 강하게 표출된 건물의 질감과 절제된 외관과 조화를 이루며 대화가 가능한 작업으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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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항 방(Relatum Room)에는 연회색 화강암이 자리하고 있는데, 황백색의 닥종이를 재료로 작은 파빌리온의 형태를 이룬 얇고 구조적인 선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다. 이것은 침묵의 방(Chambers of Silence)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다도나 아무런 장식 없는 친밀감과 침묵을 위해 주어진 공간이다.

이우환 작가가 종이를 사용한 건 1969년이었으니, 어쨌든 이는 작가가 이 수도원에 매료되어 다시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종이를 다시 사용했다는 의미다. 또한 그가 좀더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도록 하는 근원으로 돌아갔다는 점은 적어도 구조적으로 작품 설치 공간이 제한된 건축물에서 이루어낸 위대한 역설이다.

르 코르뷔지에가 제기한 도전에 맞서 이우환 화백이 제시한 해답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친밀감을 건드리며 경계를 초월하고자 하는 그의 욕망을 보여준다. 그는 종이와 철판 등을 이용해 수도원 여기저기에 작은 임시 구조물을 파빌리온의 형태로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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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공간과 형태 사이의 균형은 조용한 대화를 위한 충분한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뭔가를 알아내는 데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해 있지만 고요하고 매끄러운 구성 요소가 힘을 풀어주어 양질의 침묵과 명상의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당시 수학자이자 건축가, 작곡가였던 크세나키스는 이 수도원에서 조화로운 창문을 만드는 작업을 맡았는데, 이미 나이가 많았던 르 코르뷔지에는 자신보다 젊은 그로부터 활기를 얻었고 예배당, 식당, 보행로, 프라이버시를 위한 독실, 공부하기 위한 공간을 결합해 거대하고 복잡하며 놀랍도록 흥분되는 건물을 완성시켰다. 예비 수도사들이 함께 지내고, 교육받고, 공부하는 공간인 이 수도원은 전시 기간동안 나이 든 수사들을 몇 명 모아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 및 미술 애호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도미니크 수도사들은 다른 수도사들 집단이 전통과 보수주의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을 때도 종종 현대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그들이 롱샹 성당(Notre-Dame du Haut, Ronchamp, 1953~1955)이라는 걸작을 완성한 르 코르뷔지에에게 수도원의 건축을 의뢰한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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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스트 건축가들이 설계한 현대적인 교회는 도시 및 수도사 집단에 의해 만들어져 유행을 따르는 편이었고, 건축가들에게는 거의 정해진 예전 형식의 골조를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큰 자유가 주어졌다. 덕분에 결국 작업에 착수하기 전에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을 다양한 형태와 디자인이 탄생하게 되었다. 당시는 교회에 대한(더욱 정확하게는 교회의 건물과 내용물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받아들이던 시대였다. 1962년 교황 요한 23세(Pope John the XXIII)가 출범시킨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 제도가 다른 종교를 환영하면서 자신들의 관례를 개방하고자 한다는 새로운 열망을 증명했다.

이우환 작가는 즉위하는 교황에 따라 주기적으로 진보하거나 후퇴하는 이들의 전통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한 셈이다.

    김승덕(르 콩 소르시움 공 동 디렉터)
    에디터
    윤혜정
    사진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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