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김환기, 두 천재의 아내 김향안
시인 이상의 부인이었고, 훗날 김환기 화백과 사랑에 빠져 결혼한 모던 레이디 김향안의 생애.
김향안은 경기 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영문과를 다니던 시절, 오빠의 소개로 시인 이상을 만났습니다. ‘우리 같이 죽을까, 어디 먼 데 갈까’라는 지극히 시인스러운 이상의 고백으로 두 사람은 사랑을 시작했고, 멀쩡한 여대생이 그 길로 짐을 싸들고 나와 1936년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이상은 결혼 4개월만에 시인으로써의 도약을 위해 동경으로 떠났고, 1937년 4월, 폐결핵으로 숨을 거둡니다. 동경으로 달려가 임종을 지키고 이상의 유골을 한국으로 들고 온 김향안은 한 동안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했죠.
그러던 중 김향안은 무명의 서양화가 김환기를 소개받게 됩니다. 이미 이혼 경력이 있는데다 딸을 셋이나 둔 남자였기에 김환기는 적극적으로 구애하지 못하고 편지로 서신을 교환하며 마음을 표현했죠. 김향안의 부모는 자식이 있는 남자와 개가하는 것에 크게 반대했지만, 그녀는 ‘사랑은 믿음이고, 내가 낳아야만 자식인가’라며 1944년, 김환기와 재혼했습니다. 김향안의 본명은 변동림이었는데, 결혼을 반대하는 가족과 연을 끊으며 남편의 성을 따라 김향안으로 개명했습니다. 대단한 사랑이죠?
1955년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 김향안은 파리 소르본느와 에콜 드 루브르에서 미술사와 미술평론을 공부했습니다. 이대 교수직을 마다하고 김환기도 아내를 따라 파리에 갔고, 두 사람은 1964년 미국으로 건너가 줄곧 뉴욕에서 살았습니다. 서양의 미술세계를 경험한 것은 김환기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74년 김환기 화백의 죽음 이후 김향안은 고인의 작품을 모으고 돌보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978년 환기 재단을 설립해 김환기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는 데 일생을 바쳤죠. 1994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개인의 사비로 만든 최초의 미술관인 환기 미술관을 부암동 산기슭에 열었습니다. 미술관 설계는 당시 보스톤에서 활동하던 세계적 건축가 우규승이 맡았고, 퐁피두 미술관 관장이었던 도미니크 보조도 참여했습니다. 요즘은 서촌과 부암동이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미술관을 찾는 발길도 예전보다 많아졌죠.
2004년 2월 29일, 김환기 화백이 세상을 떠난지 꼭 30년만에 김향안 여사도 뉴욕에서 별세합니다. 허드슨강이 내려다보이는 웨스트체스터 공동묘지, 그토록 묻히고 싶어했던 남편의 묘지 바로 옆에 나란히 눕혔습니다. 예술가의 아내로써만이 아니라 수필 <파리와 뉴욕에 살며>,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등을 발간하고, 개인전을 여는 등 스스로도 예술가였던 그녀의 인생. 한국 예술사에서 두 천재의 아내로 영원히 기억될 김향안의 이야기였습니다.
- 포토그래퍼
- COURTESY OF WHANKI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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