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UNDERKAMMER
951년 아킬레 마라모티는 하이퀄리티의 옷을 대량생산하고 싶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막스마라를 창립했다. 그중 트렌드를 신속히 반영하면서도 2시간 만에 제작하는 코트는 막스마라의 대표 아이템이 되었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여자들과 함께 변화해온 코트 변천사가 〈코트! 서울(Coats! Seoul)〉전을 통해 DDP에 위용을 드러냈다.
때로 전시는 일상적인 것을 특별하게 바라보게 하는 힘을 지닌다. 〈코트! 서울〉 전시는 새 시즌을 맞아 매장에 진열된 상품으로서의 코트가 아닌, 여성과 관계해온 60년 역사의 오브제로서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기회를 선사했다.
“오늘날 서울은 현대성의 정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대도시는 젊은 에너지, 예술과 최신 테크놀로지로 가득 차 있죠. 막스마라 패션 타임머신을 선보이기에 최적의 장소 아닌가요? 이것이 바로 <코트! 서울>입니다.” 전시장을 찾은 막스마라 회장 루이지 마라모티의 말처럼 막스마라의 대대적 아카이브 전시가 2017년 11월 29일부터 12월 12일까지 열렸다. 2006년 브랜드 창립 55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코트’ 전시의 일환으로 베를린(2006), 도쿄(2007), 베이징(2009), 모스크바(2011)를 거쳐 서울에 상륙했다.
브랜드의 방대한 아카이브를 같은 포맷으로 보여주는 순회 전시와 달리, 오직 서울 전시를 위해 제작된 7개 방과 중앙의 거대한 돔, 한국 작가와의 협업이 특징이다. DDP 알림1관의 방대한 공간은 밀리오레·세르베토 건축 사무소의 역작으로 채웠다. 막스마라 전속 공간 디렉터이자 뉴욕현대미술관(Moma), 국립현대미술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 전 세계 주요 박물관의 공간을 디자인해온 이들은 무엇보다 동선에 신경을 썼다.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y)이라는 뜻을 가진 7개 분더캄머(Wunderkammer)는 중앙의 돔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입구와 출구가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기에, 관람객은 돔을 중심으로 여러 방을 원하는 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돔은 이탈리아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Piazza)의 역할을 합니다. 이미 관람한 곳이라도 언제든 쉽게 다시 갈 수 있고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자세히 관람할 수 있습니다.
수십 명의 이탤리언 스태프와 DDP에 대형 건물을 쌓아 올린 건축가 이코 밀리오레가 전시관의 형태에 관해 설명했다. 자유롭게 공간을 거닐게 한 동선은 오프닝 당일 1,100여 명이 넘는 관객이 방문해도 혼잡하지 않았다. 7개 분더캄머에서는 막스마라 코트의 지난 역사를 시기별로 나누어 소개했다.
우선 1950년대 ‘창립자’ 방은 창립자 아킬레 마라모티가 여성에게 맞춰 남성복 코트를 변화시키는, 코트를 향한 그의 꿈을 주제로 삼았다. 아킬레가 실제로 쓰던 책상과 의자로 그의 사무실을 재현했으며 마라모티 일가의 의상실과 재단 관련 사업이었던 양재학교에서 쓰던 교재는 물론 가위, 사업 초기 잡지에 실린 패션 화보를 선보였다. 1960년대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방은 유럽의 패션 수도에서 뿜어져 나온 트렌드를 흡수하며 선보인 ‘팝 컬렉션’과 원단 샘플과 패턴이 늘어진 디자이너의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한 세트, 당시 TV 광고를 볼 수 있었다.
1970년대 ‘콜로라마’ 방은 새로운 형태와 소재, 색채를 도입하며 탄생한 스포트막스 컬렉션, 칼 라거펠트, 장 샤를 드 카스텔바작 등의 디자이너와 긴밀하게 협업하던 시절을 소개했으며, 1980년대 ‘아이콘’ 방은 전 세계적으로 15만 벌이 팔린 막스마라의 전설적인 카멜 코트 ‘101801’의 탄생과 아티스트들이 이를 재해석한 작품이 놓여 있었다. 1990년대 ‘포토그래퍼의 스튜디오’ 방은 SNS에서 가장 뜨거웠던 공간이다. 전설의 패션 사진가들이 포착한 막스마라 코트 이미지는 물론 리처드 아베돈과 매기 라이저의 1998 F/W 광고 촬영 현장을 재현해 관람객이 직접 카멜 코트를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경험을 선사했다. 2000년대 ‘막스마라 여성들’ 방은 막스마라가 영국 신예 여성 아티스트를 후원하는 ‘막스마라 아트 프라이즈 포 우먼’, 젊은 여배우들의 권위 향상을 위한 ‘막스마라 페이스 오브 더 퓨처’를 소개하며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이 필요로 하는 것에 기여하는 막스마라의 역할을 소개했다. 또 방 한쪽 벽면은 막스마라 의상이 등장한 패션 잡지 표지로만 꾸몄다. 2010년대 ‘패션쇼’ 방은 긴박한 백스테이지 영상을 대형 커튼에 영사했다. 또 막스마라 여성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지지 하디드, 프레야 베하 에릭슨 등 막스마라 뮤즈로 활약한 모델들의 사진, 런웨이처럼 일렬로 걸어가는 마네킹에 입힌 막스마라 코트를 만나볼 수 있었다.
각각의 공간을 채운 막스마라 아카이브 산물(코트, 드로잉, 광고 캠페인 등)의 큐레이팅은 막스마라의 과거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인물 라우라 루수아르디(Laura Lusuardi)가 맡았다. 1964년 스타일리스트로 브랜드에 합류한 그녀는 현재 막스마라 패션 디렉터 겸 브랜드 아카이브인 ‘BAI’의 총책임자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물품은 막스마라 매장을 처음 연 이탈리아 레지오 에밀리아의 아카이브에 보존되던 것이다. “막스마라 아카이브는 다음 세대로 전승될 하우스의 역사적 기억을 대변하는 동시에, 미래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온 90벌 이상의 코트를 하나씩 골랐다. 1969년 스포트막스의 첫 컬렉션을 디자인하며 막스마라 역사와 함께해온 그녀는 자신의 디자인 스케치와 옷을 전시한 ‘콜로라마’ 방으로 우리를 데려가 카스텔바작과 함께 밀라노에서 선보인 첫 스포트막스 런웨이 쇼 의상 등 70년대의 혁신적인 분위기를 반영한 컬러풀한 코트에 대해 설명했다.
전시 프리뷰와 오프닝 파티가 열린 11월28일에는 거대한 밤하늘을 연상케 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강이연의 작품을 13m에 달하는 돔 천장에 쏘아 올렸다. ‘깊은 표면(Deep Surface)’이라는 제목의 디지털 매핑 영상을 보기 위해 관람객들은 돔 아래 마련된 소파에 동그랗게 눕기도 했다. “수개월간 코트의 생산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원단을 자르고 연결하고 볼륨을 만들고, 또 코트가 인체와 만나는 변화가 흥미로웠죠. 저는 늘 ‘경계’에 대해 작업을 하는데, 코트가 만들어내는 표면과 깊이를 키워드로 잡았습니다. 각 분더캄머로 들어오고 나가는 구심점인 돔에 제 작업이 설치된다고 생각하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이코가 디자인한 돔을 보고 전시에 참여하고 싶었어요.”
바로 그 돔 아래에서 만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안 그리피스의 표정은 환했다. 오랫동안 고심하던 패션쇼를 마친 후 백스테이지에서 만난 것처럼 말이다. “아주 감동적인 경험입니다. 전 막스마라에서 30년 가까이 일했습니다. 제 인생의 절반보다 오래 있었죠. 이제 잡지에 제 이름이 나오는 건 놀랍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전시장에서 발견하는 건 정말 기쁜 일입니다.” 이안 그리피스는 2017년 초 홀로 서울을 방문하던 경험을 기반으로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한 ‘서울 코트’를 제작했다. “한국의 ‘유기’에 영감을 얻었습니다. 한국인들이 매일 쓰던 것이지만 가치 있는 아이템이 되었죠. 막스마라 코트처럼 말입니다. 안감과 스커트, 셔츠에 황동색 소재를 사용한 랩 코트죠.” 행사장을 찾은 소녀시대 윤아는 서울 코트를 직접 입고 나타났다. “전시에서 다양한 코트를 봤는데, 서울 스페셜 코트가 특히 반가웠어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선보이며 서울과 유기를 알리는 역할을 할 테니까요.” 서울 스페셜 코트는 전시가 시작된 날부터 한국 막스마라 매장과 전 세계 주요 매장에서 만날 수 있다.
때로 전시는 일상적인 것을 특별하게 바라보게 하는 힘을 지닌다. <코트! 서울> 전시는 새 시즌을 맞아 매장에 진열된 상품으로서의 코트가 아닌, 여성과 관계해온 60년 역사의 오브제로서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기회를 선사했다. 아킬레 마라모티의 얘기처럼 말이다. “여성들이 착용하고 해석해내기 전까지 코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에디터
- 남현지
- 포토그래퍼
- CHA HYE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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