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ep The Magic
에르메스에는 생산과 유행 대신 오로지 오브제의 쓸모와 아름다움만 고민하는 아틀리에가 있다. 소재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쁘띠 아쉬’를 탄생시킨 주인공은 파스칼 뮈사르.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는 키네틱아트로 전시공간에 숨을 불어넣었다.
끊임없이 세상에 ‘유형’의 존재를 내놓는 입장이라면 언젠가 그 유형의 존재의 순환에 대해 고민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회수’나 ‘소각’을, 또 누군가는 ‘재활용할 수 있는 재료로 전환’을 선택할 때 에르메스는 좀더 낭만적이고 동화적인 방식으로 꺼져가는 생명에 경쾌한 숨을 불어넣는다. 켈리 백을 재단하고 남은 가죽, 한 귀퉁이가 깨져버린 주전자, 조각조각 남은 실크 스카프에 아티스트와 장인이 창의적이고 숙련된 솜씨를 부리면 팔찌, 편지함, 모래시계와 같은 완벽하게 새롭고 사랑스러운 오브제로 탄생한다. 이것이 에르메스가 자신들이 세상에 내놓은 존재를 책임지는 방식이자 제2의 삶을 제안하는 방식 ‘쁘띠 아쉬(Petit H)’다.
쁘띠 아쉬는 에르메스 6대손이자 아티스틱 디렉터 파스칼 뮈사르(Pascale Mussard)의 어릴 적 기억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건축가였고, 어머니는 남다른 이야기꾼이자 여행가였다. 언제든 배낭을 메고 나갈 준비가 되어 있던 어머니는 여행에서 만난 물건을 가져오곤 했다. 그녀의 증조할머니는 모든 물건을 보관했다. 파스칼 뮈사르는 증조할머니의 방을 ‘보물이 가득한 벽장’으로 기억한다. 그 안에는 리본, 뜯어진 편지, 종이 가방까지도 보관되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상은 지금과 달리 물건이 부족했고 어떤 물건이라도 재사용될 지점을 찾아야만 했다. 파스칼 뮈사르는 그때부터 모든 물건을 소중히 다루면서도 수십 년이 지나 자신이 그 물건을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2010년의 어느 날, 35년이 지나도 여전히 자신이 에르메스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쁘띠 아쉬를 떠올렸다.
에르메스의 장인들은 폐기물을 상자에 보관하는 습관이 있었다. 버릴 수 없다는 건 그만큼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뜻했다. 파스칼 뮈사르는 쁘띠 아쉬를 전개 하며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이란 없다’는 믿음을 재확인하고는 ‘지속 가능할 것’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프랑스 팡탱에 위치한 아틀리에에서 만드는 쁘띠 아쉬는 1년에 두 차례 다른 도시를 찾는다. 월드 투어는 단순히 쁘띠 아쉬를 선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도시의 아티스트와 전시 공간을 새롭게 창조해내고, 그 도시 자체를 프로젝트의 소재로 삼아 쁘띠 아쉬 컬렉션을 추가해나간다. 지난해 11월 서울 전시를 위해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를 ‘마법의 숲’으로 탈바꿈시킨 작가는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다. 정연두 작가가 창조한 세계에서 쁘띠 아쉬는 마치 살아 있는 존재처럼 자리했다. 나무에는 가죽 원숭이가 매달려 있거나 겅중겅중 뛰어다녔고, 연잎에는 실크 스카프로 만든 주머니가 살포시 앉아 있었다. 새소리를 들으며 꽁꽁 얼어버린 폭포와 푸릇푸릇한 녹음을 동시에 마주하고 바닥에 깔린 나무껍질을 헤치고 걷다 보면 경계 없는 계절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정연두 작가는 쁘띠 아쉬를 접하고 ‘계절의 변화’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자연이란 우연에 의해서 만들어지지만, 한편 변화가 있어야 다른 아름다움이 생깁니다. 며칠 전까지 도산공원은 노랗게 물들어 있었지만 지금은 나뭇잎이 다 졌고 하얀 눈이 오기 전까지 변화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대되는 계절과 지나간 계절의 아름다움을 공간에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는 자연이 정연두 작가에게는 ‘사적’인 존재였다. “학생 때 1년에 100일은 등산을 했어요. 80년대 말에는 알다시피 데모가 많았고, 학교에는 늘 화염병이 불타고 있었어요. 그 시절 용기 있는 사람은 데모를 하고 돌을 던졌지만 저는 용기가 별로 없었어요.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미술 교육은 견딜 만한 게 없었고 그렇게 등산을 하며 자연 속에서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뭔가를 배운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아, 이렇게 장대한 자연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만 했지만요. 예술가 한 명 한 명이 각각의 피스를 작업하는 쁘띠 아쉬 역시 저에게는 굉장히 사적인 경험처럼 느껴졌어요. 쁘띠 아쉬라는 사적 경험이 제가 만든 자연의 사적 경험 속에 들어가면 어떨까 했습니다.”
10여 년 전 정연두 작가는 그 시절의 경험을 되살려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아>라는 영상을 만든 적이 있다.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아>는 제목 그 자체로 이미 모순을 담고 있다. 불가능이다. 부모님 방에서 시작해 카메라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약국, 시골의 논밭, 구름 낀 산 정상까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소로 이동하는 모든 과정을 기록했다. 파스칼 뮈사르는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아>를 보고 정연두 작가와 일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굉장히 느린 필름이었어요. 그런데 느린 속도로 진행되다가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마법처럼 무언가 일어났어요. 그 순간이 굉장히 시적으로 느껴졌어요. 이렇게 히스토리를 풀어가는 작가라면 정말 같이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한편 정연두 작가가 에르메스 아틀리에와 뮤제오를 방문해서 느낀 감정은 ‘인간적’이라는 거였다. 브랜드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물 자체가 ‘인간적’이었다. “아카이브에서 파스칼 뮈사르 증조할아버지 의 담배 케이스를 봤어요. 실제로 전시에 사람들은 담배를 작은 박스에 넣어서 다녔고 나중에는 가족들이 재떨이로 사용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전시에 실제로 설탕을 넣고 보관하던 케이스도 봤어요. 당시에는 설탕이 귀한 존재였으니까요. 그렇게 과거가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는 아카이브에서 사물의 인간적인 매력을 처음으로 느꼈어요. 그리고 아틀리에에 갔는데 가죽을 자르고 남은 조각을 가지고 뭔가 재미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는 장인들을 봤어요. 그들은 재료에 각자 자신의 인간적인 면을 불어넣고 있었어요.”
파스칼 뮈사르는 쁘띠 아쉬의 각 오브제가 연구소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비빔밥 참을 만든다고 가정했을 때, 야채와 고기, 달걀노른자를 표현해내야 하니 기존에 사용하지 않았던 테크닉이 필요해요. 솔루션을 찾는 과정이 곧 도전인 셈이죠. 사실 장인은 동일한 제스처를 반복하면서 무형문화재처럼 숙달되어가는 분들이에요. 그런데 쁘띠 아쉬는 해본 적이 없는 일을 해야 하는 작업이에요. 처음에는 장인이 ‘해본 적이 없다’고 하면 저는 ‘잘됐네, 이제 하면 되겠네’라고 얘기했고, 다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여러 분야 장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니 ‘구멍을 뚫어보면 어떨까’ ‘가죽을 뒤집어보면 어떨까’ 서로 아이디어를 교환하게 되었고 혁신적인 오브제가 나왔어요. 쁘띠 아쉬가 기존 에르메스와 차이점이 있다면 각기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장인들이 횡적으로 모여 연구한다는 지점뿐입니다.”
에르메스는 쁘띠 아쉬 아틀리에를 ‘기초 연구와 응용 연구를 위한 실험실’로 부르곤 한다. 전통 기법과 첨단 기술은 알루미늄과 가죽의 결합 같은 흥미진진한 결과물로 탄생한다. 정연두 작가의 말처럼 쁘띠 아쉬는 대단히 사적이고,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시적이다. 파스칼 뮈사르는 깨진 디캔터 두 개를 이어 붙여서 만든 모래시계를 어루만지며 “에르메스에는 시간이 모든 걸 한다는 말이 있어요. 꿈은 생필품이고 일상에는 꿈이 필요해요”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쁘띠 아쉬는 서울을 찾으며 한복 형태의 장난감, 두루미, 부채, 기와 모양 참, 189개 가죽 조각을 이어 만든 호랑이 등 한국으로부터 영감을 듬뿍 받은 작품을 선보였는데 이는 쁘띠 아쉬가 새로운 도시를 방문할 때 건네는 작은 ‘보답’이다. “처음 쁘띠 아쉬를 시작할 때 자투리 소재를 활용하고 다른 소재와 결합하되, 뭔가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목표였죠. 그런데 파리 이외의 도시에서 시노그래피 아티스트들을 만나며 그들이 입는 방식, 그들이 사용하는 재료에 궁금증이 생겼어요. 그래서 에르메스 매장에 추가해야 하는 오브제, 행운의 숫자, 중요한 동물이 무엇인지 등에 관해 설문지를 돌렸어요. 쁘띠 아쉬 판매가 늘면서 보답을 하고 싶었고 제가 방문한 나라에서도 모티브를 얻어서 만들고 있어요. 저는 쁘띠 아쉬를 ‘Special Offer’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쁘띠 아쉬의 즐거운 모험 정신은 경제적으로 혹은 환경적으로 어떤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냈을까. 파스칼 뮈사르는 장인들에 대한 오마주로 대답을 대신했다. “우리는 평소 장인에 대해 오마주를 던지지만 보석 같은 원재료를 찾아다니는 숨은 장인들에게 오마주를 표하고 싶습니다. 이분들은 어딜 가야 가장 질 좋은 캐시미어를 직조하는 장인이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항상 메종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가 무엇인지 알고자 합니다. 저희 장인들은 작업을 하다가 잘 안 되면 ‘아버지한테 혹은 할아버지한테 물어보세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세대, 3세대에 걸쳐 장인으로 일하고 계신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30년 된 이 상자의 나사는 어떻게 만들었냐’고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있어요. 쁘띠 아쉬의 영향이 에르메스에도 퍼진 것 같아요. 남는 펠트지나 깨진 접시가 있으면 필요하지 않냐고 물어보는 해외 지사 직원도 생겼고, 모든 아틀리에에서 재료나 물건을 대할 때 한번 더 고심하는 분위기로 변했어요. 시간은 많이 걸리겠지만, 오래 지속된다는 점에서 환경적으로도 분명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 믿고 있습니다.”
- 에디터
- 조소현
- 포토그래퍼
- 김영훈, Courtesy of HER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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