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물방울
우리 것에 대한 가산점을 내려놓고 점검해본 한국 와인과 전통주의 현주소.
샤토미소 레드 와인 충북 영동의 농부가 직접 재배한 포도로 대나무 통에서 숙성한 와인.
그랑꼬또 농촌진흥청이 개발해 각광을 받고 있는 포도 품종 청수로 만든 화이트 와인.
베리와인1168 블루베리로 만든 와인. 국내에선 포도 외에 다양한 과실로 와인을 만든다.
재즈 아일랜드 경기도 가평에서 생산한 로제 와인.
오미로제 세계 최초로 오미자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이다.
와인의 이방인 혹은 이단아 “낙지볶음과 제주 돔베고기 수육에 오미로제 스파클링 2008을 곁들인 적 있어요. 매콤, 달콤, 새콤, 짭조름한 양념, 수육의 촉촉함이 스파클링 버블의 알싸한 텍스처와 조화를 이뤘죠. 잊히지 않는 마리아주예요.” 콘래드 서울의 수석 소믈리에 김성국은 오미로제를 마시려고 부러 매콤한 음식을 찾곤 한다. 검은색의 묵직한 보디가 언뜻 돔 페리뇽이 떠오르지만, 레이블에는 한글로 ‘오미로제’라고 써 있다. 우리나라에도 와인이 있었나? 그러고 보니 롯데주류에서 밀짚모자를 쓰고 웃는 농부 사진과 함께 마주앙 영천 영동의 소개 자료를 보낸 적 있다. 생각보다 많은 한국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와이너리만 150여 개, 광명동굴에선 2018년 한국 와이너리 맵도 발행했다.
경기도 광명시의 광명동굴 내부에서는 170여 종의 한국 와인을 시음 및 판매한다. 일명 ‘와인동굴’로 국산 와인을 한곳에 모아 파는 유일한 곳이다. 40여 개의 와이너리가 있는 영동 지역의 와인을 한 잔 마셨다. 와인이라기보단 과일 향이 확 올라와 과실주 같다. 한국 와인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과실로 와인을 만든다는 것이다. 사과, 매실, 다래, 감, 복분자, 오미자 등 다양하다. 한국 와인에서 포도와 다른 과실의 비율은 3:2 정도다. 과실주와 전통주, 수입 와인이란 세 개의 원을 겹쳐 그리면 한국 와인은 가운데 교집합이다. 세 가지 특징을 갖고 있지만 솔직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 마트에 가면 와인 코너가 아닌, 과실주나 전통주 옆에 셋방살이를 하며, 와인 소매점에선 찾기 힘들다. 국산 와인도 엄연한 와인이다. 과실주는 과즙과 알코올을 섞는다. 사과즙에 알코올을 섞으면 사과주, 복분자즙에 섞으면 복분자주다. 하지만 와인은 생과를 으깨서 과실 안의 당분과 효모라는 세균이 결합하면서 발효의 과정을 거친다. 포도뿐 아니라 사과를 발효하면 사과 와인, 복분자를 발효하면 복분자 와인이다.
물론 와인의 주종은 포도다. 하지만 세계적인 술 제조용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시라, 샤르도네, 리슬링 등을 한국에서 재배하려 하면 겨울에 얼어 죽거나, 살아남아도 맛과 향이 약해진다. 여름이면 비가 많이 오는 우리나라에서 포도는 수분은 많아지고 당분은 줄어 와인을 만들기엔 부족한 품종이 된다. 같은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포도로도 와인을 만들기 쉽지 않다. 자연스레 포도 말고도 다양한 과실 와인이 만들어진다.
첫 한국 와인도 1969년 생산된 애플 와인이다. 한국 와인에서 굳이 전성기를 찾는다면 1970년대다. 곡물이 술로 낭비(?)되는 것을 우려한 정부에서 비곡물로 만든 ‘국민주 개발정책’을 펼치면서 동양맥주㈜가 대규모 포도원을 조성한다. 1977년 출시한 마주앙이 그 선두 주자. 하지만 내수 잔치는 와인 수입화 앞에서 무너졌다. 2001년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포도주랍시고 사놓은 두꺼비사의 와인이 소주보다 못한 취급을 받던 기억이 떠오른다. 2008년 한국 와인이 다시 그들만의 리그를 시작했다. 국가에서 과수확된 과실을 와인으로 만들어 부가가치를 올리자는 계획을 품고 와인 농가를 지원했다. 어찌 보면 한국 와인의 본격적인 역사는 10년이 채 되지 않은 셈이다. 우리가 한국 와인을 대할 때 어느 정도의 아량이 필요한 이유다.
칠레의 와이너리를 방문한 적 있다. 운두라가라는 와이너리를 차로 달렸다. 한참을 달리자 마을이 바뀌었다. “여긴 어느 와이너리인가요?”라고 물었더니 가이드가 답했다. “아직 운두라가인데요.” 반면 국내의 150여 개 와이너리는 가내수공업의 농가형이다. 대부분의 농부가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고, 병입하고, 홍보까지 도맡는다.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로컬, 개성, 수작업 등을 추구하는 현대의 트렌드와 어울린다.
문제는 와인이라면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맛이다. 김준철 한국와인협회장도 공감한다. “70년대부터 와인을 만들었지만 양조에만 신경 쓰고 포도 품종 육성은 놔버렸죠. 거기서부터 빗나갔어요. 포도 품종 연구는 10년도 채 되지 않은 셈이죠.” 리슬링이란 포도 품종을 3,000여 평 재배해본 그는 지금도 집에서 피노 누아 두 그루를 기른다. “제가 할 수 있는 시도는 다 해보고 싶어요.” 지금까지 한국 와인의 포도 품종은 캠벨이 압도적이다. 병충해에 강하고 습기가 많은 기후에도 잘 자란다. 거봉도 많이 쓰며, 일본 품종인 머스캣 베일리 에이(MBA)도 국내에서 잘 생육한다.
이들은 알이 크고 수분이 많아 즙을 짜면 색이 옅어 한국 와인은 진한 보라색이 아닌 로제 색이 많다. 당도는 16~17브릭스. 보통 안정적으로 숙성되고 맛이 유지되려면 와인의 알코올이 12~13도 정도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당도가 22~25브릭스여야 한다. 당분을 효모라는 세균이 갉아먹으면서 발효하는데, 당이 부족하면 발효가 덜 일어나 알코올이 8~9도에서 멈춰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와인에선 가당을 한다.
작년부터는 가당 없는 한국 와인이 출시됐고,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포도 품종이 성과를 내고 있다. 청수, 청포랑, 청향이 그들이다. 특히 청수는 많은 전문가들이 기대하는 품종. 샤르도네에 비견하며 와이너리 일곱 군데가 청수로 와인을 만들고 있다. 화이트 와인 하면 떠오르는 맛보다는 시큼하고 상큼하다. 광명동굴 와인연구소장인 최정욱 소믈리에는 한국 와인을 ‘다른 시선’으로 보길 바란다. “한국 와인에서 수입 와인의 맛을 기대하면 안 됩니다. 독립적인 카테고리라 생각해주세요. 한국 와인의 개발도 수입 와인 따라잡기가 아니라 우리 식탁에 어울리는 형태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와인은 음식과 뗄 수 없다. “서양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자기네 음식에 맞게 와인을 만들었죠. 예를 들어 오븐에 구운 고기를 먹으면 수분이 부족하고 느끼하기에 와인으로 리프레시를 해주죠. 우리나라는 그 역할을 김치가 하고요. 흔히 소믈리에들이 좋다고 얘기하는 타닌과 산미의 밸런스가 좋고, 보디감이 묵직한 와인은 우리 식탁과 어울리지 않죠. 지지고 볶고 끓이고 양념도 센 우리 식탁에는 맑고, 약간 달면서 음식의 감칠맛을 살려주는 와인이 필요해요.” 그는 부안에서 특산물인 백합 조개를 매콤하게 요리해 오디 와인과 곁들였다. “궁합이 정말 잘 맞았어요. 지역 특산물과 어울리는 한국 와인을 개발하고 매칭하는 작업이 더 이뤄져야 해요.”
김준철 한국와인협회장은 한국 와인의 ‘지역성’을 강조한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유럽 와인과는 경쟁이 안 되죠. 우선 지역 특산물과의 마리아주, 와이너리로의 여행 등 경험의 관광을 권해야죠.” 주말 농장에 가듯 와이너리로 여행 가는 가족의 풍경이 떠오른다. 개인적으론 김슐랭, 박슐랭이 나올 만큼 전 국민이 미식 탐험가인 요즘의 유행을 이용하면 어떨까 싶다. 덜 알려진 한국 와인의 영역을 개척하며 자신만의 마리아주를 개발하는 것을 힙한 문화처럼 만들어보는 것.
호기심이 일어 몇 개의 한국 와인을 추천 받았다. 김성국 소믈리에는 역시나 오미로제 스파클링을 추천한다. “스파클링을 마실 때 기포의 크기와 느낌이 중요한데, 오미로제는 기분 좋은 텍스처예요. 오미자라는 베리가 주는 향기와 미감, 감칠맛은 호불호를 떠나서 무조건 한번 느껴봐야 하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업상 외국 소믈리에들과 만날 일이 많은데 자신 있게 소개하는 와인이죠.” 최정욱 소믈리에도 오미로제를 비롯한 여러 와인을 추천했다. “조금 더 대중적인 맛을 원한다면 안산 대부도에서 청수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 있어요. 보통 청포도를 가지고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데 이 와인은 캠벨의 껍질을 조금 빼서 만들다 보니 오렌지색이죠. 약간 시큼하고 상큼하면서 음식의 맛을 살려줍니다. 바닷가인 대부도에서 신선한 해산물과 곁들이니 정말 맛있어요.” 레드 와인으로는 해발 600m에 일조량이 좋아 가당 없이 와인을 만드는 영주의 샤토 소백을 꼽는다.
이전에는 한국 와인을 해당 와이너리에서만 살 수 있었다. 영천 와인을 사려면 영천의 와이너리, 김천 와인을 사려면 김천 와이너리의 홈페이지에 일일이 회원 가입해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전화 택배조차 불법이었다. 작년 7월 1일부터는 전통주 관련 법률이 바뀌면서 한국 와인을 포함한 전통주를 본사뿐 아니라 온라인 중간 판매처에서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PR5번가 대표이자 ‘대동여주도’ ‘니술냉 가이드’ 운영자 이지민이 추천해준, 오래 마시기 좋게 드라이한 전통주.
(왼쪽부터)오희 우렁이 농법으로 지은 햅쌀과 문경 오미자로 만든 스파클링 막걸리. 탄산이 풍부해 식전주로 좋다.
삼해주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8호인 김택상 명인이 새로 선보인 술. 맑은술에 가까운 탁주로 단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신맛, 쓴맛이 적당히 느껴진다.
이화백주 햅쌀과 전통 누룩으로 손수 빚은 샴페인 스타일 막걸리. 발효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생기는 탄산의 청량감과 목 넘김이 일품.
해창 막걸리 해풍을 맞고 자란 해남 쌀에 우물물을 정수해 빚는다. 누룩만으로 자연 숙성시키기 때문에 다른 막걸리에 비해 세 배 이상 시간이 걸린다. 천연의 단맛이 느껴진다.
이강주 입에 머금으면 시원하고 화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는데, 배의 시원함과 생강의 매콤함, 계피의 독특한 향이 조화롭다. 전통식품명인 제9호 조정형 명인이 빚고 있다.
오메기 맑은술 곡류 특유의 달큼한 맛과 천연 과실 향이 나는 약주. 제주도 잡곡과 맑은 물, 누룩이 주원료. ‘제주 고소리술 익는 집’에서 3대째 빚고 있다.
전통주진담 “전통주는 너무 세고 자극적이라 지속적으로 마실 수가 없어요. 어떻게 보면 매력이 없는 거죠.” 술자리에서 전통주에 대한 ‘뒷담화’를 들은 적이 있다. 어안이 벙벙했다. 전 세계에 널리 알려도 모자랄 우리 문화유산에 저런 쓴소리라니. 순간 다른 이가 거들었다. “우리 술도 맛과 질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해요. 종종 산미의 밸런스가 아쉬워요.” 소맥을 마시며 할 얘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다. 샴페인, 전통주, 사케를 비롯, 차곡차곡 ‘키핑’해둔 귀한 술과 고향에서 올라온 과메기, 이탈리아 출장에서 공수해온 올리브 같은 귀한 안주로 시작해도 술자리는 늘 ‘소맥’으로 끝났다. 그러니까 전통주는 술자리 시작점과 주인공 자리는 독차지해도 피날레를 장식하진 못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전통주의 달라진 겉모습과 장인 정신 그리고 숨겨진 정성스러운 이야기에 박수를 보냈다면 이제 근본적인 질문을 마주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과연 어떻게 하면 달빛 한 조각을 안주 삼아 밤이 새도록 우리 술을 마실 수 있을 것인가.
음주 문화 연구가 이지민은 단맛에 대한 얘길 꺼냈다. “옛 문헌을 참고해서 만든 술은 단맛이 강한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옛날에는 단맛이 귀한 맛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단맛은 흔한 맛이 되었죠.” 예전에 사석에서 만난 모 레스토랑 대표는 우리나라 밥상에는 늘 김치가 올랐으니 술이 굳이 산미를 가질 필요가 없지 않았겠느냐는 주관적 추측을 들려준 적이 있다. 김치를 먹으면서 스스로 산도를 맞췄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더 이상 단맛이 고프지도, 매끼 김치를 먹지도 않는 입장에서는 단맛과 신맛, 쓴맛의 조화가 아쉽기만 하다. 그리하여 요즘 전통주 전문가들 사이에 이슈는 ‘드라이한 전통주’다. ‘녹파주’ ‘오메기 맑은술’ ‘삼해주’처럼 깔끔하고 단맛이 거의 없는 술에 대한 관심이다. 드라이하다는 건 달지 않다는 의미다. 어떤 음식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통주를 널리 알리고 컨설팅을 하기도 하는 이지민은 전통주를 빚는 장인들을 만날 때마다 드라이 버전을 만들어달라고 청한다. 옛날 레시피 복원도 중요하지만 이미 소주, 맥주, 와인 등에 길든 사람들이 상시 마실 수 있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지금보다 카테고리가 훨씬 세분화될 필요도 있다. 탁주, 청주, 소주 같은 큰 덩어리가 아니라 ‘깔끔해서 과일 증류주가 좋아’ ‘쌀 증류주가 부드럽지’처럼 취향을 밝힐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각자 맥주, 와인 취향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지역 농산물로 만드는 술이 전통주라고 봤을 때, 경우의 수는 그 어떤 술보다 다양하다. 또한 증류주의 경우, ‘가수’를 해서 ‘센’ 이미지를 희석시키기도 한다. 40도가 기본이라면, 25도, 19도 등으로 다양하게 내놓는다. 물이 들어가면 감사하게도 가격도 함께 낮아진다. 우연이든 호기심이든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긴 시간 덜 취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막걸리만 놓고 본다면, 가가호호 섬세한 개성을 자랑했던 막걸리 맛을 ‘달달하고 텁텁한 맛’으로 전국 통일한 합성 감미료 아스파탐과의 이별도 권장 사항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워낙 쌀이 귀하니 쌀 대신 밀로 술을 빚게 했어요. 원래 양조 방식이 아니다 보니 발효와 숙성이 불안정해졌죠. 양조장은 둘쑥날쑥한 맛을 가리기 위해 아스파탐을 넣기 시작했어요. 물론 대기업이 가장 앞장섰고요. 막걸리를 마시면 머리 아프다는 얘기는 이때부터 나온 거예요.” 이지민은 장인의 이름을 라벨로 정직하게 두른 송명섭 막걸리를 꺼내서 따랐다. 직접 재배한 쌀과 누룩으로만 빚어 ‘막걸리계의 슈퍼드라이’ ‘막걸리계의 아메리카노’로 불리는 주인공이다. 깊고 맑고 깨끗하다. 막걸리를 마시고 입안이 깔끔하다고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송명섭 명인이 직접 수작업으로 만들기 때문에 빈티지 와인처럼 매번 상태가 다르다. 강동원이 좋아해서 ‘강동원 막걸리’로 불린다는 잘생긴 설명도 따라왔다. 마찬가지로 원료 표기에 ‘쌀’만 적혀 있는 해창 막걸리도 애주가들 사이에서 떠오르는 다크호스다. 6도, 9도, 12도 세 가지 버전으로 나오는데 6도가 달큼하고 상큼하고 은근하다면 12도는 진하고 풍부하고 직설적이다. 오직 찹쌀과 멥쌀의 비율로 맛을 조율한다. ‘드라이 막걸리’를 마신 사람들의 평가는 한결같다. ‘똑 떨어지고 먹기 편하다’는 것 그리고 스머프가 단체로 몰려와 축제라도 벌이는 듯한 지독한 막걸리 숙취가 없다는 것. 자연의 맛은 조화롭다.
월향 이여영 대표는 음용법을 다양하게 시도해보는 중이다. 여러 종류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전통주를 권했을 때 그리고 마셨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오랫동안 지켜봤다. 한때 의도적으로 식당에서 희석식 소주를 판매하지 않아보기도 했지만 선택지의 제거가 다른 선택지에 대한 호감으로 돌아오진 않았다. “최근에 샤부샤부집, 돼지고깃집, 양식집 등 다양한 브랜드를 론칭했어요. 막걸리 전문점을 성장시켜 막걸리를 전파한다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손님들이 막걸리를 목적으로 식당에 오지는 않거든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왔다가 곁들이는 술이 막걸리가 되게 하자’는 게 저희의 접근 방식이에요. 권하면 재미로 한 번쯤은 먹어보거든요.” 다년간의 경험으로 이여영 대표는 막걸리는 반찬과 잘 어울리는 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막걸리는 쌀과 물로 빚으니 사실 그냥 물이기도 하고 밥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식전주로 권해요. 식사가 나오기 전 배고플 때 반찬과 먹기 좋아요. 얼음 타서 온더록스로 마시는 막걸리로 접근하고 있어요.” 그녀는 명동에서 직원들과 함께 소규모 양조장을 운영하며 유자 막걸리를 빚는다. 찹쌀과 유자 껍질로 만드는데 향이 좋고 맛이 가볍다. “저희는 이 술이 막걸리라는 생각을 버리고 그냥 밸런스가 좋은 술을 만들자고 생각해요. 한 모금 마셨을 때 바로 맛있다는 생각이 드는 술, 젊은 여성과 외국인들이 마시기 좋은 술을 만들고 싶어요. 식당에서 서빙할 때마다 손님들의 리뷰를 듣고 반영하고 있어요. 목 넘김이 좋았으면 좋겠다, 보디가 너무 두껍다, 탄산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돌아와요. 인간의 입맛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내 입에 맛있는 술이 다른 사람 입에도 맛있어요.” 안동소주, 문경바람, 고운달 같은 증류주를 낼 때는 얼음을 곁들여서 ‘온더록스’로 마셔보길 권한다. ‘얼음’은 누군가에게는 낯선 향과 맛을 친근하게 바꿔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을 먼저 마시고 ‘캬~’ 하고 국물을 먹잖아요. 외국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술을 마셔요. 술이 음식을 보완해주면서 맛과 기분을 살려주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어떤 음식을 먹는가에 대해 고민이 많아질수록 전통주가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막걸리에 파전이라는 프레임은 오히려 전통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부분이에요. 피자, 치킨, 스테이크, 파스타랑도 먹을 수 있어야 꾸준히 소비되는 술이 될 수 있어요.” 이지민 역시 평소 우리가 흔히 먹는 음식과 어울려야 함을 강조한다. 최근 그녀가 밀고 있는 조합은 피자와 막걸리. 일명 ‘피막’이다. “막걸리는 빵과 잘 어울려요. 고소한 맛을 더 기분 좋게 해주죠. 막걸리의 탄산은 콜라처럼 피자의 느끼함을 잡아주기도 하고요.” 스페인 음식 주점 ‘락희펍’. 꼬치구이 & 갈비집 ‘마법갈비 요술꼬치’ 등 전통주에 관심을 가지는 식당이 많아질수록 마리아주의 종류도 늘어난다. 어떤 마리아주는 전통주에 대단히 ‘의외의’ 거부할 수 없는 이미지를 만들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식은 치킨에 소주, 아귀찜에 와인, 오이에 맥주처럼.
전통주 문화에 다양한 아이디어가 모이고 있는 지금, 전통주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과연 나는 고된 하루의 끝에서 습관적으로 전통주를 집어 들 수 있을까. 바삭바삭하고 따끈따끈한 음식을 눈앞에 두고 본능적으로 전통주를 떠올릴 수 있을까. 우울해서 머리가 터질 것 같을 때는? 소개팅에 나가서 살짝 흐트러지고 싶은 때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제철 안주를 공수해서 모였을 때는? 희망적인 건, 전통주가 ‘우리 것은 좋은 것’이라는 호소에 기대지 않기로 했다는 점이다. 전통주는 지금 가슴이 아닌 혀를 고민한다.
- 에디터
- 조소현, 김나랑
- 포토그래퍼
- 이현석
- 세트 스타일링
- 한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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