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카보스
선인장, 바하 오지, 코르테스해, 솜브레로, 원색, 그리고 열정
반년간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했다. 페루, 볼리비아, 칠레를 거쳐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에 도착했을 때였다. 영화 <해피 투게더>에서 장국영이 가고 싶어 했던 ‘세상의 끝’. 그곳에서 자기 몸집만 한 배낭을 멘 여행자를 만났다. 그녀는 멕시코에서부터 과테말라, 파나마를 거쳐 이곳으로 왔다. 그녀는 위에서 아래로, 나는 아래에서 위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나는 그녀가 밟았던 멕시코까지 올라가고 싶었다. 프리다 칼로의 나라, 아즈텍 문명의 황금향을 향해. 하나 나의 여행은 콜롬비아에서 멈췄고, 멕시코는 엘도라도가 됐다. 2년 뒤, 나는 여행자가 아닌 <보그> 에디터로 멕시코에 간다. 멕시코인들조차 가고 싶어 하는 휴양지, 로스카보스(Los Cabos)로. 로스카보스는 ‘맨 끝’이란 뜻이다. 세상의 끝, 우수아이아처럼 ‘끝’이란 글자는 두근거린다. 이곳은 태평양과 코르테스해를 양옆에 둔 바하칼리포르니아의 끝이며, 암석과 사막이 함께한다. 그 풍경에 압도되어 멕시코 중에서도 로스카보스를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LA에서 비행기로 2시간 반이면 가는 데다, 할리우드 스타들의 별장과 타이거 우즈가 설계한 골프장이 있다는 점은 걱정스러웠다. 낮에는 챙이 넓은 솜브레로로 태양을 피하고, 밤에는 라마털로 만든 판초로 몸을 데우는 멕시코적인 풍경이 휴양지라서 퇴색되진 않았을까.
오히려 이곳은 아즈텍 문명과 현대가 깍지를 낀다. 예를 들어 카밀라 카베요 같은 여성은 셀린 원피스에 멕시코 전통 레보소(스카프)를 어깨에 두른다. 거칠게 자란 선인장으로 가득한 사막을 뒤에 두고, 선인장에서 추출한 천연 오일을 파는 고급 매장이 있다. 구 시가지인 산호세 델 카보(San José del Cabo)에는 갤러리가 밀집한 거리가 있다. 매주 목요일 ‘아트 워크(Art Walk)’가 열린다. 갤러리들은 밤늦게까지 문을 열고 관람객을 맞는다. 멕시코 전통 미술부터 미디어 아트까지 다양하다. 하루는 광장의 교회에서 결혼식이 있었다. 순백의 신부 옆으로 마리골드꽃으로 머리를 장식한 프리다 칼로 하객들이 모여든다. 밤에는 캉캉 치마를 연상케 하는 전통 복장의 여성들이 하로초를 춘다. “하로초는 슬픈 역사를 갖고 있어요. 에르난 코르테스가 멕시코를 정복하면서 스페인의 춤인 세기디야가 쿠바, 푸에르토리코, 멕시코의 춤과 섞여 지금의 하로초가 만들어졌죠. 아이러니하게도 하로초가 우리의 밤을 위로합니다.” 그들은 나이트 파티를 즐기기 위해 사라졌다. 로스카보스는 그런 곳이다.
나는 아침이면 테킬라를 가미한 커피를 마시고, 해변을 산책했다. 말도 모래를 튀기며 뛴다. 원하면 말이나 낙타를 타고 해변과 사막을 돌아볼 수 있다. 저 멀리 낚싯배가 보인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청새치가 잡혔다는 비공식 기록이 있을 만큼, 청새치의 수도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처럼 누군가는 긴 싸움을 했을 것이다. 매년 세계적인 낚시 대회가 여섯 차례 열리는데, 우리도 원하면 프로들의 낙원에서 찌를 던질 수 있다. 7~10월이면 하루 평균 6~10마리의 청새치가 잡힌다. 8~12월에는 알을 낳기 위해 집으로 돌아오는 바다거북을 만날 수 있고, 12~4월까지는 혹등고래, 향유고래, 밍크고래를 보러 떠날 수 있다. 10여 개 서핑 포인트도 자리한다. 5월의 나는 요트를 타기로 했다. 카보 산 루카스(Cabo San Lucas)에는 보트 800여 척이 정박해 있었다. 보트 너머로 호텔과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밤이 되면 디제이가 뜨거운 파티를 열 것이다. 나의 보트는 태평양과 코르테스해가 교차하는 지점에 장엄하게 솟은 암석, 엘 아르코(El Arco)를 향해 달린다. 해변, 암석, 사막, 그 너머 끝없이 파란 하늘이 펼쳐진다. 후아라체(가죽으로 된 샌들)을 신은 남자가 테킬라 한 잔을 준다. “우리는 손에 소금을 묻히지 않아.” 그는 라임을 반으로 잘라 소금에 찍은 뒤 입에 머금었다. 그리고 샷! 죽음조차 축제로 만들 만큼 멕시코인은 열정적이고 환하다. 애니메이션 <코코>의 소재였던 ‘죽은 자의 날’뿐 아니라 평소에도 해골 인형과 장식품이 거리마다, 집집마다 가득하다. 무덤은 아름다운 꽃과 색색의 깃발로 꾸몄다. 이들에게 삶은 꿈이고, 죽음은 부활이다. 그래서 꿈처럼 황홀하게 살 줄 아나 보다. 모두 친절하고 마냥 환히 웃는다. 나는 무지개색으로 칠한 해골 도기를 사 들고 귀국했다. 내 하루도 꿈같길 바라며
- 에디터
- 김미진
- 포토그래퍼
- Damien Kim
- 모델
- 강소영(Soyoung Kang@Aile Company), 아밀나 에스테바오(Amilna Estevao@The Society Management), 케이티 무어(Katie Moore@Marilyn Agency)
- 피처 에디터
- 김나랑
- 헤어
- 요이치 도미자와 (Yoichi Tomizawa@Art Department)
- 메이크업
- 겐토 우쓰보(Kento Utsubo using M∙A∙C Cosme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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