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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하는 투자

2018.06.18

응원하는 투자

경제나 재테크에 대해 잘 모르는 ‘경알못’. 가진 거라곤 약간의 종잣돈과 확고한 취향이 전부. 신문 경제면보다 문화면이 익숙한 취미 생활자라면 크라우드펀딩에 눈을 돌려보자. 착한 요술 램프를 발견할지도 모르니까.

기적은 이번 주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일확천금을 기대하느니 염력이라도 배워 바닷물을 가르는 쪽이 더 현실성 있어 보인다. 이번 생은 틀렸다. 저축예금의 금리는 2%를 밑돌고, 8 · 2 부동산 대책 이후 땅테크니 똑똑한 한 채니 하는 부동산 투자는 엄두가 안 난다. 무려 112조원의 유령 주식 배당 사고를 낸 증권시장도 불안하다. 비트코인은… 하아. ‘존버’와 ‘가즈아’를 부르짖던 개미들의 영혼이 모쪼록 안녕하기를 바랄 뿐이다. 대체 돈은 누가 버나? 서점에 깔린 그 많은 재테크 서적과 성공담은 전설 속 알라딘의 요술 램프에 불과한 걸까?

크라우드펀딩의 신세계를 알게 된 건 얼마 전이다. ‘텀블벅’으로 대표되는 리워드형 크라우드펀딩은 아마 익숙할 것이다. 대중을 의미하는 크라우드(Crowd)와 자금 조달을 뜻하는 펀딩(Funding)을 조합한 이름처럼 기업이나 개인이 불특정 다수의 소액 투자자로부터 사업 자금을 모으는 방식이다. 그 시작은 <걸리버 여행기>로 유명한 아일랜드 작가 조나단 스위프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생전에 그는 ‘아이리시 론 펀드’라는 저소득계층을 위한 소액 자금 대출 프로그램을 고안했는데, 이와 같은 발상은 1980년대 이후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의 대출 프로젝트로 이어진다. 무담보 소자본 창업 지원으로 가난을 구제한 이 은행의 총재 무하마드 유누스는 200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온라인 플랫폼 기반의 크라우드펀딩이 전 세계적으로 자리를 잡은 건 미국의 대표적인 소셜 펀딩 서비스 킥스타터가 등장하면서부터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통해 사업의 첫 시동을 걸었다. 삼성과 애플보다 먼저 스마트 시계를 출시하고, 3D 프린터 등 신기술을 빠르게 선보이며 2013년에 이미 4억8,000만 달러의 펀딩액을 모금했다. 킥스타터에서 가장 많이 펀딩을 받은 제품 리스트만 쭉 모아도 한 해의 글로벌 트렌드가 한눈에 보일 정도다. 얼리어답터를 위한 전자 제품부터 책, 음반, 공연, 새로 생긴 식당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요즘은 투자자들에게 관련 굿즈가 제공되는 리워드형 펀딩보다 투자형 펀딩이 인기다. 여러 사람에게 투자금을 모은 뒤 주식이나 채권을 발행해 수익금을 배분하는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을 국내에 도입한 건 2년 전부터다. 한국예탁결제원 크라우드넷에 따르면 현재까지 투자자 2만5,000여 명이 500여 억원을 투자했다. 시장은 계속 성장하는 추세다.

방법은 간단하다. 일단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서 현재 진행 중인 펀딩 프로젝트 중에 관심 있는 분야를 검색한다. 지난해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돌풍을 일으킨 <너의 이름은.>처럼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이나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에 투자할 수도 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진행한 펀딩에서 5분 만에 모집 금액 5,000만원을 달성한 이 영화는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금액을 200% 증액, 총 1억9,000여 만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투자자들은 영화 관객 수에 따라 투자 배당을 받는다. 관객 수가 50만 명 미만이라면 기본 표면금리 10%(만기 6개월 환산 5% 금리), 그 이상이라면 정산 시점의 최종 관객 수에 따라 추가 이자가 지급된다. 예를 들어 200만원을 투자했다면 관객 수 50만 명 이상은 220만원이 되고, 100만 명 이상이라면 240만원, 500만 명 도달 시엔 300만원을 돌려받는 식이다. 2017년 국내 개봉 일본 영화 역대 1위를 차지한 <너의 이름은.>의 누적 관객 수는 367만 명이었다. 투자자들은 연 환산 80%의 수익을 얻었다.

확실히 은행보다는 훨씬 수익률이 좋다. 물론 모든 주식이나 P2P 투자가 그러하듯 원금 손실의 위험도 따른다. 또한 목표 금액의 80%를 채우지 못하면 증권 발행 전체가 취소된다. 손해 보는 건 없지만 아쉽다. 여기에서 개인의 취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 투자해야 성공률도 높아지는 법. 크라우드펀딩의 장점 중 하나는 각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점이다. 사업내용과 투자 포인트뿐 아니라 해당 기업의 연혁, 재무 상태, 향후 계획, 시장분석, 리스크 요인까지 볼 수 있고, 실시간 댓글로 질문이 가능하다.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는 스타트업 기업이 대부분이라 자신이 응원하는 기업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게 되는데, 이건 마치 다마고치를 키우는 것처럼 꽤 보람이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투자금을 통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실현할 기회를 얻고, 덤으로 상품을 홍보할 수 있다. SNS 시대에는 투자자 개인이 1인 홍보 채널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고대 명물 ‘영철버거’로 화제가 되었던 와디즈는 대표적인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다. 경기 불황으로 영철버거가 문을 닫을 위기에 놓이자 고려대학교 학생회는 와디즈에서 영철버거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당초 목표 금액이었던 800만원을 훌쩍 넘어선 5,000만원이 모였다. 영철버거는 다시 학생들 곁으로 돌아갔다. 국내 최대 규모의 투자형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를 통해 <너의 이름은.> <노무현입니다> 등의 영화를 소개했고, 기발한 아이디어 상품이 연일 업데이트되는 중이다. 청와대 만찬주로 유명한 강서맥주, 달서맥주 제조 기업 세븐브로이, 개성적인 수제 자동차로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는 모헤닉 게라지스, 걷기만 하면 기부가 되는 앱을 개발한 사회적 기업 빅워크, 제주도의 빈집을 숙박 공간으로 활용한 제주 공간 재생 프로젝트 다자요 등이다.

리워드형 펀딩도 진행한다. 디자인 캐리어와 백팩을 제작하는 샤플은 이곳에서 무려 2만 명의 서포터들에게 15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아이디어가 좋았다. 샤플 사이트를 방문한 소비자들의 ‘좋아요’ 클릭 수로 최종 디자인을 결정하는 독특한 자체 생산과 직접 유통 방식,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분실 및 도난 방지 알람과 분실 지점을 검색해주는 서비스로 이 브랜드는 큰 호응을 얻었다. 와디즈 펀딩을 통해 제작 비용을 크게 절감한 샤플은 시중가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서포터들에게 가방을 제공했고, 서포터들이 미리 제품을 만나볼 수 있는 ‘리뷰 데이’가 열리기도 했다. 크라우드펀딩을 활용하는 스타트업 기업은 자신들이 만든 상품의 첫 번째 고객이자 든든한 후원자인 투자자들을 위해 BBQ 데이, 맥주 파티 등의 이벤트를 열어 만남의 시간을 갖는 경우가 종종 있다.

와디즈와 텀블벅 외에도 오픈트레이드, 유캔스타트 등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 있다. 각각의 플랫폼을 둘러보며 끌리는 기업을 탐색해보라. 1인 가구를 위한 홈퍼니싱 제품,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트렌트에 맞춘 외식 산업과 여행 및 문화 상품, 핀테크, O2O 서비스, 코딩 교육 사업, 마니아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게임과 이색 취미용품 등 다채로운 분야의 생산자들이 간절히 투자를 기다리고 있다. 착한 기업도 눈에 띈다.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ing)는 단지 돈을 버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일이다. 환경문제, 동물 보호, 저소득층 아이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여성 인권을 생각하는 소셜 벤처에 대한 투자는 곧 나와 내 이웃의 미래를 바꾼다.

최근 정부는 개인 투자자의 크라우드펀딩 한도를 연간 총 5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확대했다. 한 기업당 투자할 수 있는 금액도 기존 200만원에서 500만원까지 늘었다. 사회적 기업의 크라우드펀딩 참여는 더욱 수월해졌다. 창업한 지 7년 이상 된 기업도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큰 부담 없이 한번 시험해볼 만한 금액이다. 경제나 재테크에 대해 잘 모르는 ‘경알못’이라도 상관없다. 약간의 종잣돈과 확고한 취향만 있다면 충분하다. 신상품에 열광하고 영수증보다 스마트폰을 더 자주 들여다보며, 여가 활동과 새로운 취미에 탐닉하는 보통 사람들도 좋은 게 뭔지는 안다. 경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생활에서 오는 감이란 게 있다. 바로 지금 내가 원하는 것에 투자하면 되니까. 혹시 아는가. 말로만 듣던 착한 요술 램프를 발견할 수 있을지. 그렇다면 내 소원은…

    에디터
    조소현
    포토그래퍼
    이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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