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스 라만의 작업실
알고리즘으로 가구를 제작하고, 3D 프린터로 아름다운 의자를 탄생시킨 이 남자를 디자이너라고만 부를 수 없는 이유를 암스테르담의 작업실에서 발견했다. 디자인의 미래가 전무후무한 문법으로 다시 쓰이는 중이다. 이름하여 요리스 라만식의 멋진 신세계.
쿠퍼 휴잇 국립 디자인 박물관의 홍보 자료에서 당신을 ‘디자인계의 젊은 거장’으로 언급한 걸 알고 있나?
다행히, 몰랐다.(웃음) 내가 지금 38세이니, 50년 후에 보자. 그전까지는 차라리 ‘언더도그(게임에서 이길 확률이 적은 약자)’를 자처하겠다.
지금처럼 디지털 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에서 활동했다면 당신은 어떤 예술가가 되었을까?
나는 문화 성장의 선두에 있고 싶고, 기술 발달의 물결을 타고 싶다. 인류가 처음 불을 피웠을 때부터 기술은 공포인 동시에 아주 흥미진진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어느 시대에든 어떤 종류의 예술가든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가장 파괴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르네상스나 산업혁명 시대가 예술가로 살기에 가장 흥미로운 때가 아닐까. 시대를 훨씬 앞서 연구를 중심으로 감성과 기술을 결합한 다빈치를 존경하는 이유다.
2011년 첫 개인전으로 만났을 때 ‘본 체어’ 시리즈를 이야기하던 당신은 과학과 디자인에 미친 사람 같았다. 지난 7년 동안 있었던 가장 큰 변화라면 어떤 걸까?
우리는 점점 더 생산성을 강화했다. 순수하게 실험 자체에서 하고 싶은 것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실험을 하려면 새 작업장이 필요했고, 이곳으로 왔으며, 당신이 잘 아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했다. ‘본 체어’는 우리가 산업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의 과도기에 있음을 시각화하기 위해 만든 건데, 결과적으로 내가 궁극적으로 기술을 어떻게 다루고 싶었는지에 대한 첫 예시가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세 아이가 생겼고, 이 사실은 여러모로 세상을 보는 관점을 확장시켰다. 우리 아이들이 물려받을 세상에 무언가를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강해졌다.
당시에 나눈 이야기 중 ‘모두를 위한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많이 남았다. ‘메이크 미(Make Me)’ 같은 디자인 플랫폼말이다. 당신의 작업과 어떻게 만날까?
디지털 생산은 이른바 디자인의 민주화를 보장했다. 물론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발달 속도는 다르고, 그래서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른 아이디어’였던 메이크 미 플랫폼에서 확인했다. 거기서 한발 진화한 ‘메이커 체어’는 무료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고, 어디에서나 생산할 수 있다. 3D 프린터를 갖고 있지 않다면 3dhubs.com에서 주문하면 된다. 이 플랫폼은 이제 맥도날드보다 더 많은 곳에서 생산하고 있다.
비트라와 플로스 같은 브랜드와 협업했지만, 당신이 언급한 디자인의 민주성은 오히려 이케아 같은 브랜드와 만났을 때 더욱 빛을 발할 것 같다.
완전히 동의한다. 당신이 언급한 브랜드와도 대화 중이다. 하지만 어떤 협업이든, 산업 세계와 미래의 디지털을 합치는 것, 혹은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나만의 아이디어를 개발할 시간을 갖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전시에서 대규모 다축 프린팅 기술(MX3D)로 만든 작품을 여러 점 선보인다. 이 기술의 필요성을 깨달은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 덩어리들을 프린트한 후 모든 가능성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 후 다리 프린팅 같은 프로젝트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걸 ‘요리스 라만 랩’에서 하는 건 말이 안 되었다. 이 기술의 잠재력이 조각적 사물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광대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MX3D 기술은 내 실험의 진전을 의미했다. 가능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고, 그래서 시도했다. 물론 당시 모든 전문가가 내 아이디어에 회의적이었다. 재미있는 건 방법을 발견해서 드디어 ‘프린터’ 단계로 발전시켰을 때조차 그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가능했다!(웃음) 우리가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다.
당신의 작품을 보면서 비로소 3D 프린팅 기술의 존재를 체감할 수 있었다. 3D 프린팅의 미래가 시스템의 변화이자 사고의 혁신임을 증명하는데, 어떤 철학에 기반한 건가?
100여 년 전 헤릿 릿펠트(Gerrit Rietveld) 같은 초기 모더니스트 선구자들이 했던 걸 돌이켜보곤 한다. 이 모더니스트들은 새로운 산업 제조법에서 영감을 얻었고, 디자인의 심미성을 중시했으며, 또한 변화시켰다. 전에는 상상도 못했지만, 지금은 원색 혹은 강철 튜브에 앉는 게 익숙해졌다. 디지털 생산의 새 범주는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변화시키고 있고, 디지털 생산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하게끔 우리를 밀어붙인다. 디자인, 생산, 마케팅, 판매, 유통, 심지어 재활용 방식까지 사회 각층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변화를 믿는다.
MX3D를 활용한 ‘드래곤 벤치’는 로봇이 공중에서 큰 규모의 아름다운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이 사실을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나?
우연한 설정이었다. 스테인리스 스틸이 기본적으로 아주 강하기 때문에 지지대가 필요하지 않았다. 보통 3D 프린팅은 겹겹이 쌓인 금속 레이어로 이뤄지고, 이 레이어들이 크게 경사졌을 때 마찬가지로 프린트된 구조물이 지탱한다. 스테인리스 스틸의 기본 속성 덕분에 프린팅 도중에 무너지지 않았고, 그래서 공중에서 그리는 식의 프린팅이 가능했다. 재료의 특성은 아티스트에게 큰 영감을 줄 수 있다.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와 작업 과정의 계산은 어떤 사고의 메커니즘을 거쳐 현실화되나?
로봇을 포함해 여럿이 하는 탁구 경기로 본다. 내가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여러 전문가로부터 그 아이디어를 되받아치는 피드백을 얻는다. 그리고 인간은 절대 구현할 수 없는 놀라운 회전력을 가진 컴퓨터 알고리즘에 공을 다시 넘긴다. 이 과정은 내가 스매싱을 할 때라고 생각할 때까지 계속된다.(웃음)
세상의 수많은 대상 중 가구의 형태를 띤 것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도기에 있는 시대를 보여주는 심미적인 시 같은 정지된 순간을 기계의 발달 속에서 창조하는 걸 좋아한다. 산업 시대가 어떻게 디지털 시대로 변화 중인지, 기계의 한계에 갇혀 있던 무언가가 디지털 생산 도구를 통해 어떻게 유기적인 형상과 기하학적 기울기로 발전하는지 등. 가구 중에서도 특히 의자는 매우 보편적인 아이템이라, 이야기를 전하는 훌륭한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된다.
암스테르담에 지어질 최초의 3D 프린터 다리는 오래된 도시와 디지털 신세계가 만나는 아름다운 은유다. 7년 전에 만났을 때는 집을 짓고 싶다고 했는데, 다리 다음에는 무엇을 계획하고 있나?
(웃음) 잘 모르겠지만, 건축학적 범위에서 프린팅하는 예시가 될 수 있는 일련의 스크린을 만들고 있다. 몇몇 프로젝트를 위해 건축가들과도 협업하고 있다. 공개 가능한 프로젝트는 빌딩 파사드를 프린팅해 그걸 식히면서 조각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획기적인 건 달에 프린팅하는 것일 테지만 말이다. 거짓말이 아니다. 그와 관련해 여러 명이 우리에게 연락을 취해왔다.
다음 결과물이 무엇이 될지 예측하기도 하나?
나의 경력은 로코코 라디에이터에서 출발했는데, 디자인 장식과 기능성 사이의 장대한 대결에 관한 것이었다. 요즘도 여전히 형식에서 근거를 찾는다. ‘본’ 시리즈 가구는 과학자들과의 협업 혹은 최첨단 기술의 첫 번째 예시였다. MX3D는 매우 실험적인 과정이었고, 오늘날까지 즐겨 쓰는 첨단 도구를 직접 만들게끔 했다. 하지만 다음 차례가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신의 철학, 즉 장인 정신이 깃든 공예가 디지털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디지털 도구는 망치 혹은 끌과 비슷하다.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다루는 도구다. 게다가 최종 결과물만 중요한 건 아니다. 대단한 걸 만드는 것만큼 즐거운 시간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버튼 하나 누르는 것과 같은 시대에서 모든 의미를 잃을지도 모르니까.
끊임없이 무언가를 증명해야 하는 입장이라, 관객들의 반응도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매 전시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얻나?
때로는 우리조차 우리 작업이 너무 추상적이라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전시에 매우 감성적으로 반응한다. 그뢰닝게 뮤지엄 전시에서는 미래가 아름답고 흥미진진할 수 있다는 걸 보고 진심으로 감동을 받은 관객이 많았다. 뉴스, 소설, 영화 등 대중매체는 지나칠 정도로 미래를 디스토피아로 그리는 경향이 있다. 내 전시를 통해 모든 것이 가능할 미래에 절망하는 게 아니라 설렐 수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나 나에게나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예술 조각 작품을 보면서는 무엇을 배우고, 어떤 점에서 영감을 얻나?
어떤 면에서 나는 조각가이지만, 내 작품은 내가 어떻게 정의되는가의 문제와는 또 다른 맥락에 놓여 있다. 혹은 최소한 디자인의 역사, 혹은 미래와 관련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미술계는 그 자체로 영감의 세계이고 거대한 관념과 감정을 초월하는, 쓸모없어 보이는 무언가를 만드는 조각가들이 가끔은 솔직히 부럽기도 하다. 올해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에 참여하며, 오프닝에서 론 뮤익의 해골 설치작과 노래하는 소규모 합창단을 봤다. 마법 같은 경험이었다.
당신의 작품은 보기에 아름다운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런 형태의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유추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논리적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선보일 테지만, 비디오 영상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어떤 물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작업 전반을 정확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것, 즉 우리가 하는 일의 매력적이고 실험적인 측면도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이 과정은 최종 결과물만큼 중요하다. 단지 3D 프린터 전원 버튼을 누르는 일이 아니라, 기계와 사람 사이의 소통과 협력에 관한 것이다.
디자인의 피상성을 더욱 근원적인 고민과 접근으로 극복하고 있다. 동시에 당신이 꿈꾸는 디자인은 매우 혁명적이지만, 아무나 경험할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의 작품은 비싸다. 그 간극에서 갈등은 없을까?
내게는 우리 랩이 가장 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할 의무가 있다. 이것이 우리를 세상에서 특별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믿음이고, 이것이 당신이 언급한 갈등보다 더 크다. 이와 동시에 우리가 실험하는 로봇 등의 제작 도구를 현실 경제로 불러들이려고 한다. 때로 우리가 만드는 무언가의 영향력은 대량생산된 제품이나 다운로드 가능한 청사진 혹은 기술을 구현하는 회사 전체로까지 확장되기도 한다. 물론 아름다운 실험으로만 남을 때도 있지만.(웃음)
디자인과 철학의 개념과 실행력이 퍼즐처럼 맞아떨어져 세상을 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진 경험을 한 적이 있나?
그건 역사와 미래 속 ‘진화’ 혹은 ‘혁명’과도 관련이 있다. 내가 현재와 미래, 세상 돌아가는 큰 그림을 살펴보길 좋아하는 것도 무엇보다 그것에 매혹되기 때문이다. 난 열두 살 때부터 시간표를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 다이어리에 적었고, 시간표 형식과 그림으로 표현했다. 점점 더 많은 정보를 추가하게 되었고, 그건 세상의 발전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지금 우리는 그것을 초단타 주식부터 1주 단위의 개인 행복, 10년 단위의 거시 경제, 1,000년 단위의 기후 변화에까지 이르는 실시간 데이터에 연결 짓는 중이다. 빅뱅으로까지 확장되는 이 작업은 아득한 미래에 절정에 달할 것이다. 실제 모두가 사용하고 주문 제작할 수 있게끔 만들고 있다. 이 모든 건 나의 개인적인 시간표에서 시작됐다.
‘디자인의 경계를 다시 쓰는 사람’의 세 아이들은 아빠를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라 생각할까?
발명가라고 할 것 같다. 그럼 난 현재의 발전을 바탕으로 미래 세계의 사물과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고 얘기해줄 것이다. 나는 일종의 창의적인 필터다. 세상에 대한 온갖 정보를 흡수하고, 그것을 우리가 만드는 것을 통해 여과한다. 유능한 공예가 혹은 알고리즘과 작업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는 예술가에서 건축가, 영화인까지 어떤 작업에든 잠재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당신이 시골 출신이라는 점과 함께 유연한 교육제도가 이런 식의 작업을 가능하게 했을 거라 예측했는데, 어떤가?
특히 아카데미 에인트호번은 나만의 진리를 찾을 수 있는, 이를테면 고글을 손에 쥐여주었다. 빠르게 발전하는 세상에서는 이 고글의 존재가 더욱 중요147artist하다. 진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미래는 더욱 예측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생각을 발전시키는 법, 변화하는 세상에서 유연하고 자율적인 사고를 하는 법을 교육받았다는 면에서 난 운이 좋았다.
아직도 공상 과학 소설을 쓰고 있나?
실제 과학을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라 미래주의 소설이라 부르는 게 나을 것 같다. 주로 작업을 위한 영감으로 사용하지만, 영화에 쓰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예를 들어, 몇 년 전에 클레먼스 판 블리테르스베이크(Clemens van Blitterswijk)라는 과학자와 함께 반감기 램프를 만들었다. 그는 최근에 (암컷의 난자를 사용하지 않고) 줄기세포에서 처음으로 생쥐 배아를 ‘창조’했다. 이런 과학은 언제나 나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오늘날 과학과 기술의 관계 혹은 영향은 너무나도 급진적이라, 과학이 허구보다 더욱 낯설게 느껴질 정도다.
당신은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행복한 미래주의자다. 그런 사람은 어떤 미래를 기대할까?
미래는 새로운 철학, 심리적 도전의 압력솥이 될 것 같다. 생명공학의 궁극적 결말은 생물학적 삶에 전례 없는 영향을 미치며 우리를 불멸하게 할 테고, 디지털 혁명은 진화의 다음 단계가 될 인공 슈퍼 지능을 생산할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그곳에서 지내고 싶도록 가능한 한 멋지게 만들려고 한다. 미래가 흥미진진한 이유는 효율성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놀이, 아름다움, 유머, 예상치 못한 모든 것, 그리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의 혁명적 변화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에디터
- 조소현
- 포토그래퍼
- 이큰아름, 국제갤러리 제공
- 글쓴이
- 윤혜정(국제갤러리 에디토리얼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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