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령의 아름다움과 용기에 대하여
김성령은 과거의 영광에 머무는 은막의 여왕이 아니다. ‘실시간’이 더 궁금한 사람이다. 응당한 아름다움보다 전진하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사람. 매 순간 전성기를 갱신하는 사람. 데뷔 30년을 맞은 김성령은 여전히 새 꿈을 꾼다.
인터뷰가 있던 날, 습관처럼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둘러봤다. 전날 처음 방송한 드라마 <너도 인간이니?>가 여전히 검색어 순위에 올라 있었다. 인공지능 로봇이 재벌가의 권력 전쟁에 뛰어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에서 김성령은 인공지능 로봇을 만든 과학자이자 로봇을 만들 수밖에 없는 사연을 가진 어머니로 등장했다. 며칠 전, 아니 그 전주에도 김성령은 쏟아지는 인터넷 뉴스 한복판에 있었다. 조직 후견인 역할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영화 <독전>은 관객 수 400만 명을 돌파했고, 나만의 맛집 공개를 불사하며 솔직한 토크를 선보인 <라디오스타>는 그날 밤 시청자들의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주었다. 올해는 김성령의 미스코리아 데뷔 30주년이다. 누군가에게는 생의 전부일 수 있는 경이로운 숫자를 축하하기 위해 <보그> 촬영을 준비하며 새삼 우리가 김성령의 과거사를 뒤적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성령은 과거의 영광에 머무는 은막의 여왕이 아니었다. ‘실시간’이 더 궁금한 사람이었다. 응당한 아름다움보다 전진하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사람. 매 순간 전성기를 갱신하는 사람.
“언젠가 어느 기자가 그러더군요. 내가 그동안 7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고. 깜짝 놀랐어요.” 30년이 자기 포장을 멈춰야 할 정도로 긴 시간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객석 점유율 1위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영화 <독전>은 김성령이 30년이라는 시간에 정체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김성령이 연기한 오연옥이라는 인물은 그동안 영화에서 서막을 여는 역할을 담당한 어떤 인물보다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동작과 대사 사이에서 생기는 리듬감, 쇳소리 같던 음성. 무엇보다 나는 김성령의 노련한 동작 하나하나가 오연옥이라는 인물이 도대체 어떤 경험치를 가졌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게 해서 좋았다. 분량과 무게감은 흡입력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었다. 물론 분량과 마케팅 사이 간극으로 불만도 터져 나왔다. 관객들은 걸출한 캐릭터를 발견한 기쁨을 맘껏 누리지 못한 채 그녀의 퇴장을 맞이해야 했다. 아쉬웠다. “나야 알고 들어갔으니까 아쉬울 건 없죠. 탄탄한 제작사와 좋은 배우들과 감독님을 경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되게 좋았거든. 마케팅을 그렇게 한 거지. 예고편 보고 너무 민망해서 바로 전화했잖아요. ‘뭐야, 내가 주인공이야? 왜 이러는 거야?’ 마케팅적으로 논리는 있었죠. 조진웅이라는 배우가 도장 깨듯이 한 사람씩 처단해나가는 내용이고 첫 번째 주자가 나였으니까요. 마케팅적으로 이용한 거죠. 댓글이나 트위터 반응 찾아보면 욕도 많이 먹고 있지만 잘한 거예요. 제겐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여자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이견도 많지만 <독전>은 흥미로운 여성 캐릭터가 포진한 작품이었다. “진서연이 극 중에서 방울이로 나오는데, 내가 ‘방울 령’ 자 쓰거든요. 그 역할을 내가 해야 했다고 우스갯소리 하고 그랬어요. 진서연 배우는 대본 리딩 때 처음 만났는데 한국에서 잘 볼 수 없는 소울과 필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되게 멋있어서 검색해봤더니 사진이 실물을 못 담더라고. 그다음부터 서연이 만날 때마다 옷도 네 스타일대로 입으라고 얘기하고 그랬어요. 좋은 배우지, 뭐. 이주영이라는 배우는 이쪽 바닥에서 워낙 잘한다고 얘기를 많이 들어서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어요. (강)승현이도 첫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잘했죠. 성격도 털털하고.” 요즘 네티즌들은 한국판 <오션스 8> 가상 캐스팅 리스트 작성에 한창인데 <독전> 이후 김성령의 지분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돌이켜보면 최근 김성령은 유독 영화라는 매체에서 몸을 사리지 않았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는 이병헌에게 “몸 좋네. 돈 필요하면 폰 때려”라고 능청스럽게 말을 건네는 호스트바 마담이었고 <역린>에서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악착같이 버티는 혜경궁 홍씨였으며, <표적> <의뢰인>에서는 직업인으로서 프로페셔널한 형사와 변호사 사무장의 모습을 보여줬다. 늘 분량은 길지 않았고, 늘 강렬한 ‘한 방’이 있었다. “영화판이 좋고 아직까지 영화 쪽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작은 역할이라도 해보고 싶어서 들어가요. 영화는 시나리오가 사전에 다 나와 있고 감독님과 얘기 나눌 시간도 충분하고 후반 작업도 있으니 나름대로는 안심하고 덤벼들 수 있는 여지가 있죠. 신기하게 영화 쪽에서는 드라마에서 보여주지 않은 역할로 캐스팅되곤 해요. <그것만이 내 세상> 촬영할 때 캐스팅 이유를 감독님한테 물어봤어요. 전혀 그런 매력이 없을 것 같은 게 매력이라고 하더라고요.” <독전> 이해영 감독도 김성령을 캐스팅하기 위해 시나리오와 캐릭터 성별을 수정했다. 영화는 아니지만 몇 년 전 윤성호 감독 역시 김성령을 모델로 ‘나이 든 배우하고만 상대역 하는 데 지친 여배우’ 캐릭터를 만든 바 있다. 언젠가 김성령은 한 인터뷰에서 아직까지 ‘인생작’이 나오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말한 바 있지만 감독들에게 끊임없이 창작 동기를 부여하는 배우는 정말이지 드물다.
5월 21일, 김성령의 인스타그램에는 케이크를 들고 있는 사진이 올라왔다. “5월 21일이 <독전> VIP 시사회였어요. 그날 집 근처에서 뒤풀이하면서 내가 그랬지.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알아? 미스코리아 진이 된 지 30년 된 날이야. 내가 오늘로 정확하게 이 바닥에서 30년 됐어.’ 웃으면서 그랬는데 센스 있는 PD가 케이크를 준비해와서 깜짝 축하를 받았네요.” 해시태그 “#30년”과 함께 남긴 한마디는 “#나도참…”이다. 30여 년 전, 김성령은 막연하게 방송 일을 꿈꾸던 학생이었다. “목소리가 특이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성우 시험이나 한번 볼까’ 생각했어요. 앵커에도 관심이 많아서 알고 지내던 패션 디자이너분에게 상의를 드리러 갔어요. 그런데 ‘네가 무슨 리포터야. 너는 그냥 비주얼이 미스코리아야. 따라와!’ 하시며 그 길로 절 세리미용실로 데려가셨어요. 미스코리아는 생각해본 적 없었고 너무 동떨어진 세상이라고 생각해서 덜컥 겁이 났죠. 87년이었는데 도저히 용기가 안 생겨서 못 나갔어요. 그리고 다음 해가 되어서야 엄마랑 미용실 원장님을 다시 찾아갔어요. 그때가 4월 1일이었는데 20일 즈음에 서울 대회가 있다고 해서 바로 나갔어요. 그런데 몇 달 준비한 애들은 다 떨어지고 나만 붙었어. 세리미용실 원장이 난리가 났지. 그전까지는 계속 마샬미용실에서 진이 나왔거든요. 나 이후부터 세리에서 줄줄이 진이 나왔지.” 지금도 유튜브에서 ‘김성령 미스코리아’를 검색하면 1988년 미스코리아 진을 발표할 당시 형광 연두색에 가까운 드레스를 입은 앳된 얼굴의 김성령 모습이 담긴 영상이 나온다. 발표 직전 사회자가 “어디까지 바라냐”는 질문에 김성령은 “제일 좋은 거요”라고 대답한다. “처음에는 여덟 명 안에만 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거기까지 가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본선 진출자 중에 녹색 드레스가 나 하나였어요. 그땐 다들 핑크, 블루, 화이트 입었지, 아무도 녹색 드레스 안 입었거든요. 색깔이 너무 눈에 띄어서 특혜 아니냐고 말도 많았죠.(웃음) 하지만 그랬을 리가요. 드레스는 원장님 아이디어로 고른 거였어요.” 녹색 드레스처럼 미스코리아 진 자리는 운명과도 같이 찾아왔다. “성격이 적극적인 편이 아니라서 엄마가 합숙 기간 동안 쫓아다니면서 얼마나 속 터져 하셨는지 몰라요. 그런데 세리미용실에서 함께 나간 친구가 보통이 아니었어요. 무슨 일이든 다 제 손을 끌고 나갔어요. 덕분에 사진 찍을 때도, 버스 탈 때도 맨 앞에 섰어요. 우리 엄마는 지금도 그 친구 덕분에 제가 선발됐다고 해요. 그 친구와는 지금도 만나요.(웃음)”
믿기 힘들지만 김성령은 자신의 학창 시절은 평범했다고 말했다. “단발머리에 교복 입고 다녔으니까요. 이목구비가 오목조목 생겼지 눈에 확 띄는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물론 학교 다닐 때 인기는 좀 있었지만.(웃음) 조용한 스타일이라서 처음에 미스코리아 나갔을 때 주위 친구들이 많이 놀랐죠. 미스코리아 됐어도 금방 시집갈 줄 알았다고 다들 그랬어요. 그때 도와주신 분들조차 한두 해 활동하다가 결혼해서 평범하게 살 줄 알았지, 이렇게 오랫동안 활동할 줄 몰랐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만약 지금 스무 살이라면 김성령은 다시 미스코리아에 나갈까. “세상이 바뀌었는데 더 당당하게 나가야죠. 그때는 사람들 앞에 수영복 입고 나서는 게 창피했어요. ‘엄마 앞에서도 창피한데 남자애들이 보면 어떡해’ 막 그랬어요.(웃음). 지금 같으면 미스 유니버스 대회도 더 자신 있게 임했을 것 같아요. 인터뷰 요청도 오고 관심을 보였는데 당시에 영어도 안 돼서 적극적으로 못했어요. 그때만 해도 예선을 통과한 동양인이 없었어요. 그래도 만약 1차에서 단 한 명이라도 동양인을 올린다면 그건 나라고 생각했는데 그 한 명을 안 넣더라고.”
안목 있는 세리미용실 원장님이 아니었다면, 미용실 동기가 아니었다면, 디자이너 선생님이 녹색 드레스로부터 영감을 얻지 않았다면, 우리는 걸출한 배우 한 명을 놓쳤을지도 모르겠다. 김성령은 세리미용실 출신 첫 번째 미스코리아 진이기도 했지만, 미스코리아 출신 첫 번째 배우이기도 하다. 미스코리아 진 선발 후 김성령은 <연예가중계> MC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당시에 미스코리아가 연기자가 된 적은 없었어요. 처음 영화 출연 제의가 들어왔을 때 마침 앵커 역할이어서 도전해볼 만하다 싶었어요. 최고로 잘나가는 안성기 씨가 주연이었고 강우석 감독님 작품이니 놓치기 아까웠어요. 당시에 제가 ‘미스앤미스터’ 모델이었는데 정장 입고 신발 신고 앉아 있는 광고 사진을 보고 연락을 주셨대요.” 그렇게 캐스팅된 작품이 바로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다. 이 영화로 김성령은 영화제 신인배우상을 모조리 휩쓸었다. “그리고 완전 자만했죠.” 이후 몇몇 작품에 출연했지만 결혼을 했고 부산에 내려갔고 배우로서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아이를 낳고 40대가 되었을 때 김성령은 다시 연기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아이들에게 못다 핀 연예인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학교에 들어갔고 어떤 기회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드라마 <왕과 비>를 만났다. “지금까지도 그 작품만큼 열심히 한 작품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나 혼자 맨땅에 헤딩이었어요. 늘 제일 먼저 세트장에 도착했고 대사를 종이에 써가면서 외웠어요. 아파트 살 때였는데 막 소리 지르는 역할이라 이불 뒤집어쓰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그랬어요. 뭔가 잘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이번 작품만큼은 잘해야겠다는 의욕이 충만했어요. 채시라 씨와 같이 출연했는데 나보다 두 살 어리지만 선망의 대상이었어요. 좋은 배우를 만나고 부딪쳐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면 연기가 정말 늘어요. 그때의 성취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죠. 사약 먹는 장면 때문에 연말에 송년회도 안 나갔어요. 스토리상 웃는 장면이 거의 없어서 감정에 몰입하느라 사람들과 농담도 안 했고요. 지금은 안 그래요.(웃음)” <왕과 비>가 연기에 대한 열정에 불을 지펴준 작품이었다면 지금도 좋은 기억만 나는 작품은 <추적자 더 체이서>다.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정말 좋았어요. 대본도 탄탄하고 감독님도 훌륭하시고 김상중 씨, 손현주 씨처럼 좋은 배우들 있고. 누가 뒤에서 밀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배우는 그런 작품 만나면 시청률과 상관없이 아주 뿌듯해요. 한동안 사극만 하다가 <추적자 더 체이서> 이후로 진짜 다양한 캐릭터를 많이 해본 것 같아요. <야왕> <상속자들> <여왕의 꽃>으로 이어졌으니까.”
김성령의 연기의 한 축을 담당하는 캐릭터로 ‘엄마’를 빼놓을 수 없다. <너도 인간이니?>에서도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로봇을 만든 로봇공학자로 등장한다. “<너도 인간이니?>는 그냥 사연 있는 엄마가 아니라 과학자 역할이라는 점을 봤어요. 이야기 중심에 있는 신이를 만든 사람이니까. 내 입장에서는 엄마 스토리의 시작과 끝이 있다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드라마가 젊은 사람들 위주로 가는 건 어쩔 수 없죠. 역할이 크고 작고를 떠나서 그 사람의 이야기가 있으면 선택하는 것 같아요.” 이민호, 유노윤호, 현빈, 서강준까지 마치 알을 깨고 나온 듯 현실감 없는 남자 배우들의 엄마 역할을 도맡았다. 김성령 역시 엄마라는 이미지의 전형성에서 가장 멀리 있는 배우였기에 이들의 모자 관계는 수긍이 갔다. 자식보다 자신의 욕망에 더 충실하거나, 내적 결핍을 자식으로 채우고자 하는 어긋난 욕심 등 김성령은 모성의 다각적 측면을 보여주곤 했다. “민호가 재벌로 나왔고 윤호도 부잣집 아들이었으니 엄마도 재벌 사모님이어야 맞는 거죠.(웃음) 그동안 미스코리아나 광고 이미지 때문에 저 역시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처음 엄마 역할을 맡은 드라마는 <걱정하지마>였어요. (이)영은이가 스무살 딸로 나왔는데 제 아이가 아주 어릴 때라 성인 엄마 역할이 낯설었어요. 그런 역할을 하면서 점점 엄마 역할에 익숙해졌어요. 그런데 난 자식과 관계가 좋은 엄마 역할만 했던 것 같아. 부모 자식 간에 대립되는 감정도 있을 텐데 그런 역할은 못해봤어요. <야왕>에서 백도경 역할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윤호의 누나 역할을 했는데 알고 보니 엄마였던 스토리가 참 좋았어요. 같은 엄마 역할이라도 많이 달랐죠. 지금 생각해도 참 슬프네요…”
50대 초반에 들어선 그녀는 여전히 아름답다. 화사하던 눈빛은 깊어졌고, 싱그럽던 자태는 우아해졌으며, 인품은 유연하고 넓어졌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걸 그룹 댄스를 선보여도 그녀를 감싼 품위는 사라지지 않는다. 나이의 무게가 무겁기만 한 사람들은 그 비결을 궁금해한다. 김성령은 사람들의 이런 관심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럴 때마다 김성경은 절대 자기처럼 될 수 없다고, 자신처럼 되려면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직업이 배우이기 때문에 매일 관리를 하는 자신의 상황과 다른 사람들의 상황을 동일 선상에 놓을 수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행동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롤모델을 김성령으로 놓지 말고,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자신을 목표로 둔다면 변화는 일어난다고 말한다. “제게 40대는 전성기였어요. 아이들도 어느 정도 키웠고 체력도 뒷받침됐고 열정도 남달랐어요. 30대에게 너희들 전성기는 시작도 안 됐다고 말하곤 해요.(웃음) 그런데 50대가 된 전 요즘 질풍노도예요. 열심히 달리던 40대가 지나고 나면 50대는 좀 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만만치가 않아요. 40대의 산을 넘으면 평지일 줄 알았는데 더 큰 산이 있더라고. 나한테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여러 가지로 갈등하는 중이에요. 50대는 중년이라고 말하기도 뭐하고, 노년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해요. 50대가 되면 확실히 신체적인 변화가 찾아와요. 관절이 아프기 시작하고 갱년기, 폐경도 찾아와요. 아이도 다 컸다고 엄마 품 떠나려고 하고 되게 급변해요. 안 보이던 주름이 보이고 탄력이 갑자기 떨어져요. 아예 60대면 주름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못 받아들이겠어요.(웃음) 40대에는 1시간만 운동해도 유지할 수 있었다면 50대는 3시간 정도 투자해야 해요. 나는 40대에 일하느라 나 자신에게 투자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는데 요즘은 엄청 관리해요.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마사지 받고 운동도 더 열심히 해요. 안 그러면 바로 티가 나요. 여배우가 나이를 거부하고 젊어지려고 너무 애쓰는 것도 별로지만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은 노력해야죠.”
김성령에게는 미스코리아가 건넨 왕관의 무게도 견뎌야 할 짐이었다. 결론적으로 그 무게는 김성령의 우아함을 완결시켰지만 말이다. “1988년만 해도 미스코리아는 전 국민이 TV 앞에서 지켜보던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선망의 대상이었어요. 그해 올림픽이 있어서 한국을 대표하는 행사에 많이 참석했어요. 내가 한국을 대표하는 미인이라는 자긍심과 자부심이 가득했죠. 반면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걸 많이 못하고 살았어요. 우아해야 하고 품위를지켜야 하고 실수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조심하고 또 조심했어요. 당시에 여배우한테 무조건 반말하는 유명한 사진기자가 있었는데 그분에게 ‘저기요, 저한테 반말하지 말아주실래요?’ 그랬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웃음) 첫 영화 끝나고 드라마 섭외가 왔을 때도 ‘죄송한데 저는 영화만 해요’ 그랬다니까요. 그때 안 들어간 작품에 채시라인가 하희라가 들어가서 잘됐죠.(웃음) 그런데 난 그렇게 품위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집에서는 노숙자 차림으로 있고 세수도 안 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와 내가 아는 나와의 갭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언젠가 들통날까 봐. 요즘은 많이 내려놓아서 예능에서 말도 하고 그러지만요. 우아할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은 모습도 좋아들 하시니까. 그런 시대가 왔으니까.” 철부지 왕족처럼 강박적으로 지켜오던 품위는 곧고 바른 몸과 고상한 움직임, 겸손한 태도로 남았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인체는 인간의 영혼을 보여주는 최고의 그림이다”라고 했던 한 철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김성령의 요즘 화두는 ‘용기 내는 삶’이다. 여자들이 좀더 주체적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자기 자신을 더 많이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용기가 많이 부족했어요. SNS를 활발하게 하고 있지만 옳다고 생각해도 논란이 될 만한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았거든요. 미스코리아로 시작했기 때문에 철학이나 가치관을 남들에게 맞추려고 했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지 못했어요. 거짓을 말하진 않았지만 감추기만 했죠. 이젠 ‘이 바닥에서 30년 했는데 뭐가 무서워’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나 자신을 위해서 살고 싶어요.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남들이 뭐라 하건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싶어요. 때로는 정말 망가지는 역할도, 필 꽂혀서 독립영화도 해보는 거죠.”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김성령은 1년이 지나면 후배에게 물려줘야 하는 미스코리아 왕관처럼 그저 덤덤하다. “30년 동안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상을 주고 싶어요. 나도 힘들던 시간 얘기하려면 3박 4일 걸리지만 다 이겨냈고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 기특하게 생각해요. 난 좀 될 때까지 하는 경향이 있어요. 조금씩 발전하려고 노력한다고 해야 하나? 끊임없이 페달을 밟는 스타일이다 보니 기회가 온 것 같아요. 큰 업적을 이루진 않았지만 한 분야에서 30년 동안 일했어요. 내일 바로 은퇴해도 미련 없어요. 남들은 부족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봤어요. 연극, 드라마, 영화, 예능 MC, 광고 모델… 이제는 다른 생각과 다른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요. 연기만 생각하고 해바라기처럼 좋은 역할만 기다리기보다는, 좀 자유롭고 싶어요. ‘배우를 안 한다면 혹은 병행한다면 또 다른 모습을 찾을 수도 있겠다’ 같은 재미난 생각에 빠져 있어요. 한 가지 일을 30년 했으면 다른 일도 해볼 수 있는 거잖아요. 새로운 기회가 생겼을 때 감당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여전히 배우고 여전히 열심히 살고 있어요. 난 앞으로도 아주 잘할 자신은 없지만 최선을 다할 자신은 있어요.”
최신기사
- 에디터
- 조소현
- 포토그래퍼
- 김보성
- 스타일리스트
- 조세경
- 헤어
- 한지선
- 메이크업
- 박혜령
- 스타일링 어시스턴트
- 연원모, 양은비
추천기사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