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남자
미완성을 고려하지 않는 시대. 사람에 대한 호기심으로 중무장한 채 순수와 최선의 가치를 묻는 배우가 등장했다. 우리가 처음 만난 세계, 구자성에 대하여.
구자성의 이름은 낯설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드라마 <미스티>의 ‘곽기자’는 어떤가. ‘누구도 믿지 마라’라는 스릴러 공식까지 의심해야 했던 드라마에서 선배 고혜란(김남주 분)이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믿고 나서던 말간 얼굴의 후배 기자 말이다. 크지 않은 역할이었지만 구자성이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눈길이 가곤 했다. 홀로 웃자란 기다란 풀 같았으니까. 그의 얼굴은 펜화로 그린 듯 간결했지만 정직한 힘이 담겨 있었다. 직장 내 선후배 사이는 흔한 설정이었지만 곽기자는 달랐다. 남녀 사이에 사랑이라는 감정 없이도 ‘조력’이라는 행동이 가능하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순수한 존경’이 대신할 수도 있음을 보여줬다. 여주인공의 행동에 명분을 더했고 직업인으로 빛나게 했다. ‘ 곽기자’ 캐릭터는 <미스티>가 유일하게 가진 판타지이자 드라마가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의 진화였다. 물론 이는 구자성이 지닌 순수한 열정 덕분이었다.
삐쭉하게 큰 키를 보고 쉽게 예상할 수 있듯, 그의 전력은 패션모델이다. 하늘이 선사한 근사한 기럭지에 패션을 걸치고 무수히 많은 런웨이를 걸었고, 하늘이 내린 아름다운 얼굴에 여러 컨셉을 덧입고 수많은 패션 매거진에 등장했다. 그보다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개구쟁이’로 정리되는 10대 시절과 색소폰을 부는 구자성이 있다(어릴 적 색소폰에 빠져 대학교에서 전공까지 했다). 색소폰을 연주하는 구자성의 모습을 상상하면 제법 근사하지만 재즈 선율 속에 머물 운명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고 싶은 일은 계속해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고 구자성은 뭐든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순탄해 보일 수 있지만 그동안 해오던 일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시작할 때는 그만큼 용기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늦은 나이에 모델 일을 시작하며 쉽진 않았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검색창에 ‘모델 에이전시’라고 검색하고 무작정 전화 걸어 ‘모델이 하고 싶어요’라고 했으니까요. 새벽 4시에 일어나 아르바이트 갔다가 모델 아카데미 다녔어요. 당시엔 언젠가 백화점 디올 매장 디스플레이에 반드시 내 얼굴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죠.(웃음)” 우연히 찾아온 드라마 오디션 기회가 아니었다면 <보그>의 다른 지면에서 구자성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오디션을 준비하면서 연기가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카메라로 나를 찍어보고 내 목소리를 들어보면서 저도 모르던 제 자신이 보이더라고요. 섬세한 작업에 빠져들었고 진짜 열심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구자성의 차기작은 드라마 <사자>다. 비서 역할을 맡아 박해진과 호흡을 맞춘다. 말쑥하게 수트를 차려입고 머리도 깔끔하게 빗어 올린다. 웹드라마 <더블루씨>와 드라마 <미스티>에 그저 뛰어들었었다면 지금은 잘해내고 싶다는 욕심도 부리고 있는 상태다. 가장 열심히 읽고 있는 책은 신인 배우들의 필독 도서로 손꼽히는 <마이클 케인의 연기 수업>이고, 평소 사람들의 동작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독전> 같은 영화를 보러 가도 선배들의 연기만 눈에 보인다. “<사자>의 김민기는 전형적인 비서 역할은 아니에요. 순수하고 눈치도 없어요. 장난기도 많고요. 연기지만 평소 제 모습을 보여드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제가 곧 김민기라는 생각으로 연기에 임하고 있어요. 저도 평소에 장난을 많이 치는 편이거든요.” 모든 게 신선하기만 한 남자 구자성의 실제 모습은 예능 <두니아~처음 만난 세계>를 통해 먼저 보여줄 예정이다. <두니아~처음 만난 세계> 포스터 속 구자성은 한때 목숨 걸었던 색소폰을 생존 무기처럼 들고 있다. “<정글의 법칙> 같은 프로그램을 좋아해요. 힘든 상황에서 느끼는 성취감에 동요하는 편이거든요. 사실 그냥 생선 사 먹으면 되는데 손수 잡아서 불을 지피고 요리까지 하는 과정 그 자체를 좋아해요. 비슷한 이유로 <두니아~처음 만난 세계>도 아주 재미있을 것 같았죠.” ‘혼밥’이라는 단어가 세상에 등장하기 전부터 혼자 삼겹살 구워 먹으러 다니던 ‘생존력’과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무슨 일이든 혼자 해내던 ‘독립심’은 예능 프로그램의 소중한 재료로 활용된다. 구자성에겐 지금 이 모든 상황이 ‘처음 만난 세계’ 그 자체다. 구자성은 자신을 ‘어렵고도 쉬운 사람’으로 요약해서 소개했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건 ‘파이팅’이다. “멜로디 속에 이야기가 있어서 재즈를 좋아했고 색소폰까지 전공했지만 요즘은 힘을 내기 위해 아이돌 노래를 들어요. 자기 계발서도 ‘파이팅’에 도움이 됩니다.(웃음)”
구자성은 배우를 꿈꾸던 시절 구체적인 배역을 상상해본 적도, 숱한 오디션을 보며 결과에 연연해본 적도 없다. 그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한다. “<미스티>가 방송되고 나서 의외로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주시는데, 그런 데서 오는 성취감이 있었어요. 산타가 준 선물 같은 느낌이었어요. 어떤 배역을 맡더라도 그 배역에 잘 묻어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어떤 역할이든 소화해내는 배우요.” 이 세상에 ‘최선’을 반박할 수 있는 가치가 있었나. 구자성의 순도 높은 열정은 한동안 우리를 새로운 방식으로 매료시킬 것 같다. 인터뷰 내내 ‘최선’을 강조하던 그는 세련된 말로 포부를 밝히는 대신 불쑥 이런 말을 남겼다. “그런데 사람들이 저보고 되게 애늙은이 같대요. 인터넷 뱅킹인가요? 지난주에 처음 해봤거든요. 원래 은행에 가서 송금하고 그랬어요. 그리고 과자도 김과자랑 사브레 가장 좋아해요. 김과자 진짜 맛있지 않나요?”
- 에디터
- 조소현
- 포토그래퍼
- 장덕화
- 패션에디터
- 남현지
- 헤어
- 박규빈
- 메이크업
- 김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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