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 아메르의 시선
‘여성’과 ‘여성을 둘러싼 세상’을 예술로 풀어내는 가다 아메르. 그녀는 분노를 동력으로 갈망과 사랑을 담아 불완전한 세상에 골몰하는 탐험가다.
예술가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다. 그들의 생각은 관람객에게 전달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그 여부가 예술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순 없지만 분명한 건 명확하게 전달될 때 관람객은 그들의 새 언어에 전율한다는 사실이다. 가다 아메르(Ghada Amer)는 자신의 우주를 끊임없이 작품으로 표현하고 통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가다. 이집트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이주, 여러 문화권을 경험한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면에서 진화해온 화두인 ‘여성’에 관한 질문을 자수 회화, 조각, 도자기, 정원 작업 등 자신이 창조한 방식을 통해 표현해왔다.
그녀는 남성의 전유물이던 회화 대신 오랫동안 여성의 매체로 여기는 ‘바느질’로 작업을 한다. ‘자수 회화’로 화폭에 담긴 레터링, 여성의 삶 혹은 포르노 잡지에서 차용한 이미지는 절대적 흡입력으로 보는 이를 매료시키고 이면에 대해 계속 상상하고 생각하게 하는 힘을 지녔다. 그뿐 아니라 청동 조각으로, 도자기로,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으로, 식물로 끊임없이 새 매체를 찾아 세상 밖으로 메시지를 쏟아낸다. 2013년 한국 전시에서 선보인 ‘파란 브래지어의 소녀들(The Blue Bra Girls)’은 이집트 폭력 시위 현장에서 구타 당한 여성을 담은 작품이었다. 투명한 알처럼 생긴 3차원 공간에서 억압받는 사회를 향한 저항 정신과 여성의 용기에 대한 예찬을 읽은 사람들은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가다 아메르의 시선은 낮고 거칠고 불편하며 울퉁불퉁한 땅을 향한다. 도자기가 상대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예술로 여겨졌다는 사실은 오히려 도자기에 대해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된다. 자신을 둘러싼 불합리한 환경에 대해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배제되고 차별받고 이용당하는 ‘여성’은 그녀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생명력 있는 주제지만 그녀의 관심은 동양과 서양, 예술과 공예의 경계까지 뻗어 있다.
가다 아메르는 인스타그램에서 #ladyghada를 태그로 사용한다. Ghada(가다)는 아랍어로 ‘Lady(숙녀)’를 뜻한다. 뉴욕 할렘의 주택가에 위치한 그녀의 작업실에는 불완전함과 불합리함에 안주하지 않는 숙녀들의 흔적이 가득했다. 작품 활동의 동기로 분노를 꼽았지만 할렘의 작업실은 분노의 기운보다 담대하고 따뜻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이틀 전 인스타그램(@ghadaamer)에 올라온 순백의 그림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나요.
나는 지금 새로운 흰색 그림 시리즈를 작업하고 있습니다. 늘 그랬듯 실을 풀로 붙이고 흰색으로 칠한 후 실을 떼내 모두 다 도려내면 ‘온통 실과 매듭 자국’만남아요. 실과 매듭은 둘 다 점자 같은 질감을 만듭니다.
흑백 혹은 단일 컬러 작품도 선보였지만, 당신이 작품에서 선보인 선명한 컬러와 컬러의 조합은 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이번 시리즈에서 컬러를 배제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번 시리즈에서 내 관심을 끄는 것은 컬러가 아니라 그림 표면입니다. 화이트 페인팅은 그저 흰색 한 가지가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흰색을 취급합니다. 이런 그림은 또한 점자를 다루는 작품이라 감동적입니다. 이런 평면 그림에 3차원을 두드러지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6월 2일 개막해 2019년 1월 6일까지 진행 중인 ‘투르’ 전시에서 선인장 페인팅 작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선인장 페인팅은 어떻게 시작한 작품인가요.
1998년에 로사 마르티네스가 큐레이팅하고 발렌시아에서 개최한 <마르 데 폰도(Mar de Fondo)>라는 단체 전시회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입니다. 그리고 2018년 선인장 그림을 되살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선인장 그림은 선인장과 에케베리아속의 다육식물로 만든 추상 작품이에요. 이 작품의 목적은 1950년대 미국 추상화가, 특히 사각형을 찬양하는 조셉 앨버스에 대해 언급하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유명한 여성 화가가 거의 없었고 여성 개념예술가와 유명한 여성 추상예술가도 전혀 없었죠. 이런 종류의 그림이 매우 데카르트적이고 또 아주 전형적으로 남성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서구 예술사에서 여성들은 왜 그리고 어떻게 배제됐는가’가 내 작업에서 항상 의문점이자 비평 대상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역사적으로 아트 분야에서 남녀는 동등한 기회를 갖지 못했어요. 성차별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나요.
박물관에 아예 작품을 전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성차별을 느낍니다. 미술 시장에서 가격을 확인할 때도 그렇습니다. 남성 작가와 여성 작가의 작품 가격은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중간 경력을 가진 예술가가 되는건 매우 어렵지만 여성이라면 정말 최악이죠.
‘Cactus Painting’ ‘Happily Ever After’ , 멜(Melle) 비엔날레에서 선보이는 ‘Love Grave’ 모두 변화 가능한 재료, 즉 식물로 작업했습니다. 전시회가 끝날 때는 방문객들에게 선인장을 판매하는 계획도 있다고 들었어요. 같은 모습으로 보존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셈인데 아쉽게 느껴지진 않았나요. 작품의 영속성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식물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고 어떤 식물은 시들어 죽으면 대체 가능하죠. 이러한 작품은 영구적일 수도 있어요. 작품에서 자연을 활용하는 것을 좋아해요.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보존된 미술 작품보다 아름답기 때문이에요. 선인장을 판매하기로 한 건 박물관 교육 부서를 위해 약간의 돈을 모으기 위해 낸 아이디어예요.
매체를 넘나드는 작업을 해오고 있지만 당신의 작업 세계에서 ‘자수 회화’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작업 방식이 완성된 순간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포르노 이미지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글쓰기에서도 자수를 사용합니다. 첫 자수 작품은 ‘5인의 직장 여성(Five Women At Work)’(1991)이었어요. 청소하고, 쇼핑하며, 요리하고, 아이를 돌보는 여성 네 명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다섯 번째 여성은 그녀들을 수놓고 있는 나 자신이었어요. 나 자신의 성명서였습니다. 여성이 역사에서 거부당했기 때문에 나는 ‘회화’를 거부하고 싶습니다. 여성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전형적인 도구인 자수로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포르노 이미지를 사용하기 시작한 건 1993년 말이에요. 여성의 순종적 이미지를 훨씬 더 순종적인 또 다른 이미지로 대체하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반복함으로써 내가 생각하는 그림을 완성할 수 있기를 원했어요.
포르노 잡지로부터 이미지를 차용할 때 주로 어떤 이미지를 고르나요.
내가 좋아하는 이미지를 선택합니다. 매우 개인적 선택이에요.
당신의 작품 속 여자들은 도톰한 입술에 가슴이 큰 편이에요. 이른바 ‘여성성’이 강조된 듯 보입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여자에 대한 외모적 고정관념을 더 강하게 표현하나요. 작품 속 여자들은 무엇을 대변하나요.
이런 종류의 ‘룩’을 선택합니다. 내가 살고 있는 시대가 가진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기 때문이에요. 여성들은 젊고 백인이어야 하고 섹시한 입술에 가슴이 커야 하며 날씬해야 하죠. 나는 흑인, 중동 사람, 아시아인 대신 일부러 이런 여성의 ‘룩’을 선택해요. 지배적 그룹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모든 여성을 포괄하며 이 문제를 보다 보편적인 이슈로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과거 인터뷰에서 “모든 여성은 그들의 몸을 좋아해야 하고 유혹의 도구로 이용해야 한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 어떤 의미로 한 말인가요.
일부 페미니스트가 여성의 몸은 부재해야 하며 중요하지 않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유혹이 금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내게 여성의 몸에 대한 종교의 억압을 상기시킵니다. 세상은 죄를 두고 늘 여성을 비난합니다. 여성은 몸이 있어서 강력한 존재이고 우리는 이 사실을 인식해야 하며 필요할 경우 남자가 그들 자신의 근육과 체력을 인식하는 것처럼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되고 그 힘을 사용해야 합니다.
여성이라는 주제에 천착하게 된 어떤 강렬한 사건이 있었나요.
예술학 석사 학위(MFA)를 얻기 위해 프랑스에 있는 예술 학교의 회화과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당시 여성들은 그 학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매우 놀랐어요. 그곳은 프랑스였고 내가 기반을 잡은 지 2년 후이자 전문성을 얻기 시작하던 1986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나는 예전에는 한번도 여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었어요. 항상 내가 태어난 이집트에서만 여성들이 무시당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전 세계적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어요. 여성은 아직도 내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유일한 주제예요.
영감은 보통 어디에서 출발하나요. 2013년 한국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 ‘파란 브래지어의 소녀들’은 정말 강렬했습니다. 이집트 민주화 혁명 당시 진압 경찰의 발길질에 쓰러진 한 여성의 파란 브래지어가 드러나는 장면을 목격한 뒤 작품에 그 기억을 담았지요.
보통 격렬한 분노에서 영감을 얻어요. 뭔가에 정말 화가 날 때 그것이 작품을 시작하는 영감이 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도자기를 캔버스 삼아 작업했습니다.
확실히 조각 쪽으로 좀더 방향을 틀고 있어요. 도자기와 청동, 스테인리스 스틸 같은 소재죠. 조각이라는 수단과 사랑에 빠져 아직도 탐색할 게 아주 많아요. 청동과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상을 만들기 시작한 2010년 이후 늘 찰흙으로 작업하고 싶었어요. 조각가로서 따로 훈련을 받지 않아 조각상을 만들어줄 사람들을 고용했고 그들을 감독만 했거든요. 그 시기에는 그것 말고는 할 게 없었고 그 상황이 절망스러웠어요. 그들이 찰흙을 얼마나 능숙하게 다루는지를 지켜보며 그대로 따라 하려고 시도했지만 할 수 없었어요. 내가 조각이라는 수단을 탐색하고 싶다면 찰흙으로 나만의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겼고 시내의 어느 학교에서 수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니치 하우스 포터리(GHP)라는 뉴욕의 오래된 학원에서요. 그곳의 책임자이자 도예가인 아담 웰치로부터 개인 교습을 받았는데 6개월 후 이것이 굉장한 도구라는 점과 내가 단순히 찰흙으로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미술 작품을 만들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물리적으로 다른 표현 방식을 찾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머릿 속에 있는 생각을 끄집어내는 행위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20년 전에 정원 작업을 시작할 당시에는 누구도 그 작업에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난 네 페인팅이 싫다. 그런데 네 정원 작업이 정말 좋다”고 말했고 그 후 신기하게도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수십 년째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작업하나요.
한 번에 두세 개 작업을 동시에 진행합니다. 크기나 과정의 차이에 따라 다르지만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 5개월쯤 걸립니다. 나는 매일 아주 열심히 많은 작업을 합니다. 미치거나 우울해지고 싶지 않아 정말 열심히 작업을 합니다. 인간이라는 조건이 내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우울증을 예방하기 위해 작업하며 작품에서 나 자신을 표현합니다. 예술의 정의를 묻는다면 ‘나를 위한 행복’이라고 밖에 대답할 수 없을 것 같군요.
전환점이 되었거나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요.
분명히 더 중요하고 전환점이 된 여러 작품이 있고 매번 그런 작품 덕분에 꾸준히 발전하는 것 같습니다. ‘생크 팜므 오 트라바이(Cinq Femmes au Travail) ’ ‘컬러 미스비 헤이비어(Color Misbehavior)’ ‘혁명 2.0_RFGA(Revolution 2.0-RFGA)’ ‘선인장 페인팅(Cactus Painting)’ ‘사랑에 대한 100개의 단어(100 Words of Love)’ 같은 작품이 그렇습니다.
페미니즘 작가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씀해오셨습니다. ‘당신은 페미니스트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떤 답변을 들려주시겠습니까.
나는 여성이기 때문에 페미니스트입니다. 그건 내 미술 작품과 상관없습니다. 나는 ‘여성’ ‘이집트인’ ‘이슬람교도’가 아니라 그냥 ‘예술가’로 분류되는 것이 좋아요. 나는 둘 중 다른 하나이고 싶지 않습니다.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지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도자기를 개발하기 위해 두 달간 멕시코에 갈 겁니다. 오는 9월 22일 텍사스에서 개최되는 댈러스 현대미술에서 단독 도자기 전시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아트 인더스트리 레지던시에서 프로토타입으로 새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상을 개발하고 있어요. 또 4×3m에 달하는 거대한 조각 그림과 흰색 시리즈물을 더 많이 만들고 있습니다.
당신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이 궁금합니다.
나는 세계가 어디로 향하는지 걱정스럽습니다. 어둠이 세계를 뒤덮은 것 같습니다.
- 에디터
- 조소현
- 포토그래퍼
- 유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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