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Complex
이제 패션 세계에서 로고는 하나의 카테고리를 형성했다. 당대 패션을 설명할 고유의 시각적 언어가 된 2018년형 로고!
New Era.’ 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리카르도 티시가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 이런 포스팅을 올렸다. 곁들인 이미지는 버버리의 새 로고와 패턴이었다. 협업 상대는 영국의 전설적 그래픽 디자이너 피터 새빌(Peter Saville). “피터는 우리 시대의 훌륭한 디자인 천재 중 한 명입니다. 버버리 하우스의 새로운 시각적 언어를 그와 함께 작업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티시의 감흥처럼 피터 새빌은 조이 디비전, 뉴 오더 등 우리에게 익숙한 밴드의 앨범 커버를 디자인했고 라프 시몬스가 캘빈 클라인의 수장으로 임명된 뒤 새 로고를 만든 인물이다. 20년 만에 대대적으로 새로 정립하는 정체성 변화 과정은 4주면 충분했다. 티시는 우선 1908년 브랜드 창립자 토마스 버버리의 로고가 매우 동시대적이라는 점에서 힌트를 얻었고, 이를 새빌이 알파벳 T와 B를 조합한 패턴으로 해석했다. 또 ‘Burberry’ 폰트를 세리프(글씨 획의 끝이나 시작을 돌출한 글꼴)에서 고딕 계열인 산세리프(세리프의 반대)로 바꿨다. 클래식보다 ‘젊음(Youth)’으로 한발 다가간 이미지다. 요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브랜드 중 세리프 로고를 쓰는 곳이 있었나? “새로운 로고 타입은 혁신적 변화입니다. 21세기에 버버리가 할 수 있는 문화적 좌표를 제안하는 방법이죠.” 9월 17일 런던에서 공개할 티시의 새로운 컬렉션에 새로운 로고와 문양을 삽입할 확률은 상당히 높다. 버버리는 지난 몇 시즌간 로고를 부각시킨 옷을 대대적으로 선보였으며, 로고 패션은 꽤 쿨한 디자인 요소가 된 지 오래기 때문이다.
유행을 선도하는 하우스 브랜드는 로고 패션을 성실히 업데이트해왔다. 디올부터 살펴보자. 2년 전 2016년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가 ‘Christian Dior’이 어깨끈에 적힌 드레스와 언더웨어를 선보인 시즌을 기억하시나? 이 디자인은 시즌에 시즌을 거듭하며 매번 히트 쳤고, ‘Dior’을 빼곡히 프린트한 오블리크 원단의 ‘새들백’은 지난여름 인기 절정의 가방 반열에 올랐다. 실비아 벤투리니와 칼 라거펠트가 이끄는 펜디도 마찬가지다. 90년대를 주름잡은 FF 로고가 2018 F/W 시즌 환생했고, 65년산 로고는 그 어느 때보다 밀레니얼 패션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인기에 힘입어 펜디는 아예 ‘FF Reloaded’라는 캡슐 컬렉션도 내놓았다. 스타들도 인증샷에 동참했음은 물론이다. 카일리 제너가 더블 F 로고 패턴 원피스와 같은 패턴의 유모차를 끄는 사진엔 ‘좋아요’가 950만 개가 찍혔고, 힙합 퀸 니키 미나즈는 새 노래 ‘Chun-Li’의 앨범 커버에 더블 F 블루종과 언더웨어를 매치하고 등장했다. 가사에도 펜디가 등장한다.(“선팅한 벤틀리를 타고, 펜디 패턴 옷을 입고”) 여기에 화룡점정은 실비아 벤투리니가 인스타그램에서 발굴한 아티스트 헤이 라일리(Hey Reilly)가 휠라(Fila)의 로고처럼 스포티하게 재해석한 펜디 로고.
한편 루이 비통은 데님, PVC 등 다양한 소재에 모노그램을 빼곡히 프린트했고, 프라다 역시 20년 전의 ‘프라다 스포츠 라인’ 로고를 남녀 컬렉션에 모두 적용했다.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90년대 로고 티셔츠의 선구자였던 지아니 베르사체를 오마주하듯 베르사체와 베르수스 모든 라인에 로고 티셔츠를 색깔별로 디자인해 말 그대로 없어서 못 파는 중이다. 이 밖에도 GG 모노그램과 ‘GUCCI’ 레터링으로 표현한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구찌, 산세리프 서체를 셔츠, 코트, 모자 할 것 없이 큼지막하게 앞뒤로 박아 넣은 뎀나 바잘리아의 발렌시아가, PVC 가방부터 토트 백까지 검은색 로고를 프린트한 셀린 등 로고로 옷을 디자인하지 않은 브랜드를 찾는 게 더 쉽다.
2018년은 어느 때보다 기술적, 소재적, 디자인적으로 선택이 다양하다. 트렌드의 홍수 속에서 왜 사람들은 그토록 로고에 열광하는 걸까? 스트리트 패션, 힙합 유행으로 80~90년대의 올드 스쿨 패션이 돌아왔다곤 하지만, 몇 년째 로고의 열기는 도무지 식을 줄 모른다. 지속되는 미니멀리즘, 놈코어 패션에 대한 반작용일까? 패션계에서도 유명한 그래픽 디자인 듀오 M/M 파리의 마티아스 아우구스티니악(Mathias Augustyniak)은 요즘 디자이너들은 사람들이 시각적으로 패션을 소비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한다. “옷은 각자의 아이덴티티를 즉각적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브랜딩 없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옷은 아제딘 알라이아의 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옷만으로 3차원적 언어를 만들어내려면 그야말로 일생이 걸리죠.” 아닌 게 아니라 샤넬 트위드 재킷이야 단번에 브랜드를 알아챌 테지만, 밀물처럼 밀려오는 브랜드 틈에서 규모가 어떻든 간에 딱히 도리가 없을 것이다. 소셜 미디어에서 접하는 이미지만 하루에 수백 개이니 말이다. “대부분의 밀레니얼은 극도로 잘 만들어진 사인에 둘러싸여 자랐습니다. 베트멍이 티셔츠에 사용한 DHL 로고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그저 판다나 고양이처럼 귀여운 것에 불과하죠. 의미가 없어요. 그저 단순한 장식입니다.” 마티아스는 로고 포화 상태인 지금, 로고는 단순히 그래픽적 요소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로고 패션 유행에 기름을 들이부은 뎀나 바잘리아도 비슷한 의견이다. “오늘날은 모든 것이 브랜드화되어 있습니다. 모든 건 로고를 지니고 있죠. 저에겐 그게 현실입니다.” 로고는 말 그대로 로고라는 뜻이다. “로고는 강력한 메시지나 의미를 숨길 필요 없이, 대상에 대한 시각적 연상을 만들어냅니다.”
그런가 하면 영국 <보그>의 패션 저널리스트는 불안과 격동의 시기에 로고 패션이 주는 정서적 유대감이 있다고 해석한다. “결속을 향한 타고난 본능을 가장 직관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로고입니다.” 그러니 로고야말로 부유하는 현대인이 돈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공통의 것일지 모른다. 해시태그로 비슷한 취향을 찾고 온라인의 팔로워들과 결속력을 다지는 게 바로 지금의 세태니까. 로고 티셔츠를 사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럭셔리 하우스 브랜드가 표방하는 세계관의 울타리에 한발걸치는 셈이다.
얼마 전 거리에서 ‘VOGUE’ 티셔츠를 입은 사람을 마주쳤다. <보그 코리아>에서 이벤트로 판매하거나 선물할 때를 제외하고 정식으로 상품을 판매하진 않으니 가짜임이 분명했다. 아니면 ‘VOGUE’라는 것 또한 단순한 디자인적 요소로 볼 수 있을까? 혹은 ‘보그’라는 로고가 주는 정서적 유대감, 소속감을 느끼고자 하는 패션팬 중 한 명? 분명한 것은 이제 더 이상 로고를 감춘 ‘로고리스(Logoless)’는 매력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로고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이거야말로 패션을 가장 쉽게 즐기는 방법이니까.
- 에디터
- 남현지, 서준호
- 포토그래퍼
- 김영훈
- 모델
- 선혜영, 박새미, 위헝, 김희원, 김권영
- 헤어
- 최은영
- 메이크업
- 김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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