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화의 꽃, 숲
국립현대미술관에 거대한 민들레 홀씨가 착륙했다. 최정화 작가는 일상 속 물건으로 ‘꽃, 숲’을 창조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마당에 자리한 ‘민(民)들(土)레(來)’가 요즘 삼청동에서 가장 인기 있는 포토존이 되었다. 관람객이든 행인이든 모두 멈춰서 사진을 찍는다.
가장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만든 작품이 디지털을 끌어당긴 것 같다. ‘민들레’는 디지털 용광로, 아날로그 활화산이다. 2014년부터 기념 촬영의 대상이 되는 작품을 하겠다, 예술은 필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쓰던 식기 7,000여 개를 모았으니 어마어마한 사연이 담겼다. 이야기 숲이라고 할 수도 있다.
‘민들레’는 참여형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서울, 부산, 대구를 돌며 시민들로부터 생활용품을 수집했다.
자기가 쓰던 물건을 갖고 온다는 건 대단한 정성이다. 사연을 함께 받았는데 “10년 동안 내게 라면을 끓여줬던 냄비, 잘 가라” 같은 메시지도 있었고, “Made in Italy”라고 적혀 있는 파스타 그릇도 있었다. “다른 생을 살아라”처럼 새롭게 탄생하라는 메모를 많이 보내줬다. 그렇게 새로운 생각이 집적된 새로운 에너지 덩어리가 생겼다. ‘민들레’는 빅뱅이고 에너지 덩어리다. 예술은 나의 것이 아니다. 물질을 쌓아서 정신을 만드는 거지, 예술은 가져가는 그들의 것이다. ‘우리 집에 있는 밥그릇, 냄비가 이렇게 예뻤어?’ 거기까지가 내 역할인 것 같다.
실내 전시 공간에서 장막 사이를 걸어가는 느낌이 특별했다. 어떤 공간이 되길 바랐나.
어차피 연출할 거면 연극이나 무대처럼 다 일치되었으면 했다. 새벽에 해가 뜨고 환하게 밝았다가 어스름이 내려앉으면 그림자 길을 산책하듯 말이다. 아름다움과 아름답지 않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전시장에 온 관객은 자기가 필요한 부분만 가져가면 된다. ‘Your heart is my heart’라고 얘기하곤 하는데 당신이 본 세상 그리고 삶이 예술이다.
빛을 설치한 ‘꽃탑’도 있고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한 작품 ’어린 꽃’도 반짝거린다. 당신에게 빛은 어떤 의미인가.
누구나 개인의 신전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정화수 문화가 있다. 큰 그릇이든 작은 그릇이든 빌던 소반이 개인의 신전 아닌가. 빛은 자연과 인간을 매개해주며 더 잘 보이게 비춰준다. 음양은 빛과 그림자, 볕과 그늘이다. 가장 인간적인 부분을 건드리기 위해 빛이라는 장치가 필요했다.
꽃탑을 보면서 사람들이 산길에 쌓곤 하는 돌탑 생각이 났다. 돌을 쌓을 때면 정성을 다하는데 실제 작업할 때도 그런 마음일까.
절대적으로 같다. 쌓는다는 건 기원, 염원, 희구다. 아들 대학 보내달라는 것도 있겠고 돈 잘 벌게 해달라는 것도 있겠지만 모두 다 같다. 탑은 땅에서 하늘로 연결하는 것이다. 첨탑, 기둥, 나무처럼 서 있는 모든 존재는 자기 뜻을 땅과 하늘로 연결한다. 그렇게 출발한 게 무속 신앙이다. 라스코 동굴벽화에 소를 그린것도 사냥의 성공을 바란 것 아닌가. 예술의 출발은 염원이고 개인 이전에 부족, 가족 전체를 위한 것이었다. 돌을 쌓든 마음을 쌓든 물질을 쌓든 모두 인간은 혼자가 아니라는 얘기일 것이다.
꽃탑 146개 각자의 조형미에 감탄했다. 물건을 쌓을 때 여기까지 쌓아야겠다는 느낌이 오는 순간이 있나.
있다. 매번 다르지만 번갯불이 번쩍하듯 불현듯 찾아오는 느낌이 있다. 직관적이라고 할 수도 있고 본능이자 감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떤 물건에도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어떤 존재로부터 아름다움을 느끼나.
오래 남는 것. 지속되는 것, 누구나 알 수 있는 것. 아주 쉬우면서도 아주 진해서 센 것. 우리가 쓰던 물건이 박물관에 남으면 유물이 되는 건데 아무 물건이나 유물이 되는 건 아니다. 여기 바닥에도 돌이 있지만 정말 생각을 가지고 찾으면 자기 돌이 따로 있다. 정령, 에너지, 기 같은 것이 있다. 나는 플라스틱에서 출발했지만, 내가 쌓는 플라스틱과 남이 쌓는 플라스틱이 다를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돌을 보면 자기 형태를 알려준다”고 말했는데 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여기 삼청동에 앉아 있지만 종로 사무실에 있는 물건, 청계천에 있는 물건, 파주에 있는 물건을 쫙 불러서 모으면 그날 작품이 만들어진다. 둔갑술 같은 건데 재료끼리 이야기하고 맞춰서 다른 답이 생기는 것이다.
생물과 사물의 중간쯤 되는 건가.
그렇다. 있었던 게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사라지는 걸 살려내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생축망축’ , 즉 생도 축하하고 죽음도 축하한다. 둘이 만나서 연결돼야 생사의 윤회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있었던 걸 잊게 만드는 공동묘지이기도, 하나의 꽃밭이기도, 보물단지이기도 하다. 공통된 것은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마음이다.
작품명에 꽃이 자주 등장한다.
인간을 향한 것이다. 눈부시게 하찮은 것과 꽃을 볼 때 마음이 둘 다 같다. 거룩한 일상을 꽃으로도 표현했다. 처음에는 쓰레기를 두고 꽃이라고 했다. 난지도를 멀리서 보며 꽃밭으로 생각했고 그동안 만든 많은 플라스틱 작품을 인공의 꽃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니다 세상만사가 다 꽃이다 싶었다. 김춘수의 ‘꽃’처럼 호명하고, 보고, 그다음 마음으로 안아주는 것. 그러면 근본적으로 훌륭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 에디터
- 조소현
- 포토그래퍼
- 김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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