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대 소설가
잘 만든 드라마 시리즈는 장편소설 이상의 경험을 제공한다. 많은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이야기를 쏟아내는 지금, 소설가는 고민이 많다.
40대의 젊은 나이에 작고한 미국의 천재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스스로가 텔레비전의 중독자임을 밝히며 텔레비전 세대의 소설가에 대해 고민했다. 텔레비전에서 넘쳐나던 냉소와 아이러니를 시청자들이 받아들이면서 80~90년대 소설에서도 그 증상이 나타났다는 게 요지다. 지금은 상황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공중파 시대가 가고 케이블 시대가 도래했지만 그마저도 거대한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으로 흔들리고 있다. 바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가 아직도 살아 있다면 이런 시대의 소설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90년대 초반, 집으로 DVD를 발송해주던 넷플릭스가 지금처럼 온라인 콘텐츠 시장을 석권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영화나 드라마를 보겠다는 수요는 당연히 인터넷이 생긴 이후로 존재했다.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고 토렌트와 불법 다운로드로 공짜로 볼 수 있지만 그것은 대안이 되지 못했다. 결국 넷플릭스 같은 편리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볼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했던 것이다. 마치 음악이 불법 MP3 파일로 유통되다가 스트리밍 서비스로 안착한 것처럼 말이다. 음악이 더 이상 파일 공유나 CD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어쩌면 영화도 넷플릭스 시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작년 초에 우연히, 가입하면 한 달 공짜라는 미끼를 덥석 물어 넷플릭스에 가입했다. 10년 차 전업 소설가로서 흥미로운 자료를 찾아보고 한 달이 지나기 직전에 끊을 마음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통장에서 꼬박꼬박 월정액으로 요금이 빠져나가고 있고, 그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만큼 보고 있다. 어쩌면 책을 읽는 시간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서 소설가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징후를 넷플릭스에서 발견했다.
넷플릭스에서 가장 신경 쓰는 콘텐츠는 오리지널 시리즈다.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미드’하고 똑같다고 보면 오산이다. 미드는 보통 한 주에 한 편 공개되고 다음 시즌을 위해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하지만 보통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는 하나의 시즌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이건 장단점을 동시에 지닌다. 아주 긴 서사의 이야기를 몰아서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쾌감을 주는 동시에, 그런 이야기의 패턴이나 허점도 쉽게 드러나버리는 것이다. 지난주 에피소드를 얼마 정도 잊어버린 채로 보는 것과는 달리, 한꺼번에 보는 시청자들은 예전보다 훨씬 똑똑해져버렸다. 그러므로 이야기에 보다 많은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아무도 엉망인 이야기에 하루를 통째로 소비하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 재미있게 본 시리즈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살펴보자. <13 Reasons Why>라는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왕따와 성폭력 때문에 자살한 여고생을 중심으로, 관련된 주변 인물을 추적하는 스릴러다. 텔레비전에서 보기 힘든 민감한 소재와 감각적인 연출로 공개 직후 순식간에 인기를 끌었다.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한 텔레비전 시리즈가 궁합이 맞는다는 것은 HBO의 메가 히트작 <왕좌의 게임>에서 증명되었다. 인기 시리즈인 <하우스 오브 카드>뿐 아니라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마인드 헌터>, <얼터드 카본>, <빌어먹을 세상 따위>, <헴록 그로브>, <그레이스> 등 소설이나 논픽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하는 시리즈를 속속 출시했으며 앞으로도 쏟아질 예정이다. 소설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300여 페이지의 소설 한 권을 영화 한 편으로 풀어내기엔 많은 압축이 필요하기 때문에 제대로 이야기를 펼쳐낼 수가 없다. 하지만 50분짜리 시리즈로 10편 내외를 만든다면 소설 원작을 토대로 살을 붙여서 조금 더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게다가 이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면 잘 쓴 장편소설 한 권을 읽는 것 이상의 경험을 할 수 있다. 물론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스토리의 시리즈도 많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개발할 때 투입되는 개발비, 위험성을 고려해본다면 원작이 있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앞서 말한 <루머의 루머의 루머>의 경우 원작을 그대로 따른 시즌 1에 비해, 원작에 없던 내용으로 사족을 붙인 시즌 2가 흥행이나 비평 면에서 참패를 당한 경우를 봐도 알 수가 있다.
넷플릭스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시리즈를 제작한다. 내가 본 것만 해도, 디스토피아 스릴러 <3%>는 브라질, 코미디 <리타>는 덴마크, <종이의 집>은 스페인, <다크>는 독일에서 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끈 원작 소설이 드라마 시리즈로 나와 전 세계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넷플릭스는 이야기의 세계화를 앞당기고 있다.
사람들이 책을 점점 멀리하면서 소설가는 사양하는 직업이라고 여겨지곤 한다. 주변에서도 그런 걱정이 많다. 하지만 넷플릭스 시대의 소설가는 어쩌면 귀한 직업이 아닐까? 텔레비전의 시대든, 영화의 시대든, 인터넷의 시대든 소설은 살아남아왔다. 나는 소설이 다른 장르보다 뛰어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역사를 통틀어 그 어느 때보다 이야기의 가치가 폭발하는 지금, 수많은 이야기에 단련된 대중을 만족시킬 만한 이야기를 가장 잘 만들어낼 사람이 소설가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인터넷 시대의 공룡 미디어 넷플릭스의 등장이 오히려 소설가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그렇다고 소설이 꼭 영상 매체에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제작자와 감독들이 굳이 소설 원작의 판권을 사들이는 이유는 소설만 담을 수 있는 그 무언가에 끌리기 때문이다. 그게 무엇인지는 나도 말로 잘 설명할 수가 없다. 친한 소설가인 김언수 형이 원작 소설 <설계자들>의 판권을 상당한 금액에 전 세계에 파는 것을 보면 한국 소설도 이제 세계시장에서 당당히 겨룰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한국 문학 번역 사업을 추진해서 얻은 결과만은 아니다. 한국 영화가 전 세계 영화계에서독특한 입지를 다졌듯이 곧 한국 소설도 입지를 다질 것이고 그다음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어쩌면 케이팝 돌풍처럼 ‘케이드라마’돌풍이 일어날 수도 있다. 넷플릭스로 인해 좋은 이야기는 국가와 언어를 초월해서 상업적인 가치로 전환된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인디 문화 잡지 편집장을 하다가 얼떨결에 소설가가 된 후 10여 년을 견뎌왔다. 문학상을 받으면서 데뷔했지만 사실 소설이 무엇인지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가 없었다. 재미있는 소설을 쓰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했지만 도대체 뭐가 재미있는 소설인지 알 수가 없었다. 생계를 위해 차라리 웹소설을 쓸까 진지하게 고민도 했다. 하지만 넷플릭스에 푹 빠진 후 나는 좀더 진지하게 소설을 잘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다른 매체에서 담을 수 없는 진짜 소설다운 소설을 써야 한다. 열심히만 쓰는 것은 소용없다. 아무리 노를 저어도 방향성이 없으면 어디에도 닿지 않듯이, 세상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외면한다면 소설가는 쉽게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MOVIE MEETS STREAMING
- 에디터
- 김나랑
- 포토그래퍼
- 임한수
- 글쓴이
- 서진(소설가)
- 프랍 스타일리스트
- 한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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