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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가구 생애

2018.10.25

일인가구 생애

나이 든다는 건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약해진다는 걸 의미한다. 1인 여성 가구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태다.

이토 시오리(Ito Shiori) 감독의 다큐멘터리 에는 고독사 센터 청소부를 직업으로 삼은 여성 미유가 나온다. 그녀는 의뢰가 들어오면 방독면과 보호 장비를 착용한 후 고독사가 발생한 집으로 출동, 죽음의 흔적과 유품을 청소한다. 시체로부터 흘러나온 액체로 물든 바닥을 뜯어내고 구더기를 박멸하며 집 안 곳곳에 남겨진 손톱, 머리카락 뭉치 따위를 치운다. 가위표가 쳐진 달력을 보며,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갈겨쓴 메모를 보며,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상상한다. 다음 사람이 이사 와도 될 정도로 깨끗이 치우고 나면 임무는 끝이다. 다시 말하지만 영화가 아니다. 일본에 실제로 존재하는 센터이며 그곳에 근무하는 직원이다.

‘화려한 싱글’이라는 수식어 없이 1인 가구를 단독으로 언급하는 일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영화 <싱글즈>를 개봉한 2003년 즈음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1인 가구의 급증은 베이비 붐 이후 가장 큰 인구 변동임을 들어 우리 사회를 ‘싱글턴(Singleton)의 시대’로 명명했다. 그리고 지금 1인 가구가 가장 높은 비율(28.6%, 2017년 기준)을 차지하는 사회가 됐다. 다만 변화가 생겼다. 34세 이하 1인 가구의 비율은 줄어든 반면 35세 이상 가구의 비율은 늘었다. 과거 젊은 층이 1인 가구의 증가를 유도했다면 지금은 중년과 노년 인구가 그 증가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물론 여기엔 ‘자발적 1인 가구’ ‘어쩌다 보니 1인 가구’ ‘어쩔 수 없이 1인 가구’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1인 가구의 생애주기는 성인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중·장년기를 거쳐 노년기로 넘어간다.

사회는 더 이상 1인 가구를 비정상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1인 가구는 걱정이 많다. ‘나이 들어 병들면 누가 날 돌봐주지?’ ‘집도 없는데 직장에서 잘리고 나면 뭘 먹고살지?’ ‘맥도날드 할머니가 미래 내 모습일까?’ 같은 공포가 문득문득 찾아온다. 1인 가구에게는 지금 누리는 자유와 1인분의 책임감이 훗날 가난과 외로움으로 되돌아오는 상황이 어떤 공포 영화보다 무섭다. 시대를 앞서갔던 예술가 나혜석조차 이혼 후 사회적으로 배척당한 뒤 거리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나. 불안감은 ‘근대적 여성관을 주창하면서 왜 그녀는 노후 대비에 소홀했던가’ ‘어째서 1인 여성 가구로서 모범을 보여주지 못했나’ 하는 원망에까지 이르고 만다. 나이 든다는 건 신체적, 경제적으로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힘이 약해진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는 1인 가구의 존립을 위한 전제 조건을 위협한다.

1인 여성 가구는 더 취약하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은 <서울 1인 가구 여성의 삶 연구>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기대수명이 긴 반면 취업 기회 부족으로 노년에 낮은 경제적 지위와 건강 수준을 보인다고 밝혔다. 여성 노동의 가치 저평가로 인한 낮은 경제적 지위는 독자적 노후 자립 준비 부족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위 세대 얘기다. 하지만 현재도 남녀 임금 격차는 여전히 존재한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34.6%였다. 지난 17년 동안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 자리를 놓친 적이 없다. 이 차이는 우리가 훗날 노년이 되었을 때 더욱 생생하게 느껴질 것이다.

사회학자 노명우는 저서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에서 단언한다. 가난한 사람은 혼자일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고. 집단으로부터 스스로 물러날 수 있는 결심을 할 수 있는 계층의 하한선은 중산층이라고 말이다. 경제적 자율성이 없다면 사회적 자율성도 지킬 수 없다.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1인 가구로서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도 독립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경우는 가족으로부터 ‘엄마론’이든 ‘결혼 자금 명목’이든 목돈을 빌려 집을 산 경우에 한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던 여자에게 절대적으로 결핍된 요소 두 가지. 자기 일에만 몰두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과 의존적인 삶을 살지 않도록 해줄 수 있는 고정소득. 그 두 가지가 해결되어야 1인 가구는 옅게나마 안정적인 미소를 띨 수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집이란 밤사이 아바타라도 풀어 업무 시간을 두 배로 늘려도 내 것이 될 수 없는 환상 속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고 1인 가구의 상당수는 어차피 내 집 마련을 할 수 없다는 패배감에 젖어 있다. 게다가 국가는 집에 관한 한 1인 비혼 여성에게 호의적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시프트는 중산층이 타깃이었고 공공 임대주택 정책 역시 비혼 여성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수년 전 여성 전용 임대주택이 나온 적 있으나 3~4명이 공동으로 거주하는 방식이었고 통금 시간도 있었다. 과거 스웨덴처럼 1인 가구를 위한 주택 100만 채를 나라가 ‘쏘는’ 일은 대한민국 삼면 바다에서 땅이 솟아나지 않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1인 가구가 노년에 대해 가진 또 다른 걱정은 건강이다. 우리 부모님은 늘 “안 아픈 게 자식 도와주는 거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는데 이는 1인 가구가 노년에 아플 경우 어떤 상황에 처하는지 알려주는 예고편 같다. 물론 ‘병원비로 집 한 채 날려먹은 친척 이야기’도 잊지 않으신다. 사소하게는 도저히 손이 닿지 않는 부위가 견딜 수 없이 가려운 순간부터 도움을 청할 겨를 없이 쓰러져 치료 시기를 놓치는 상황까지 1인 가구에게는 숱한 위험이 산재해 있다. 통계청의 ‘2017년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거동이 불편해서 병원에 가지 않는 노인 1인 가구도 12.1%에 달한다. 결혼한 형제자매보다 운신이 자유롭다는 이유로 부모 부양의 책임을 지는 1인 가구도 많다. 일본에서는 이를 칭하는 단어도 존재한다. ‘독신(獨身) 개호’다. 개호에 지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부모를 살해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이미 사회문제로 다루고 있다.

독신 입양에 관심을 가지는 1인 가구가 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평생 혼자 살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자 하는 심리가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1인 가구에게 입양 절차는 엄격하고 까다롭다.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독신 입양에 대한 문의는 늘고 있지만 실제로 성사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이는 근본적인 노후 대책이 될 수 없다. 자식은 간병인이 아니고 가족은 애초에 외로움을 달래주는 존재가 아니다.

결혼 생각이 전혀 없는 친구들끼리 모인 술자리에서 밤 12시만 넘어가면 늘 하는 얘기가 있다. “늙으면 다 같이 모여 살자. 지방에 땅 사서 건물 짓고 싱글 실버타운을 만드는 거야.” “방 하나는 극장처럼 꾸미자. 진짜 옛날 영화부터 최신작까지 다 갖다놔야지.” “싸울 수 있으니 화해의 방도 만들어야 함.” “참, 고양이랑 강아지도 키워야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면 노년의 풍경이 제법 괜찮게 그려진다. 그 와중에 대단히 실질적인 노후 대책을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보험 수혜자를 모두 조카로 돌려놨어. 그리고 조카한테 각서를 받았지. 사망 보험금 다 갖는 대신 내 병 수발 들어주기로.” “나는 실비 보험에 ‘간병인 지원금’ 항목을 추가했어. 한 달에 1만원 정도만 더 내면 되더라고.” “참, 나 이런 보험 들었으니까 혹시라도 내가 병원에 실려가면 병원에 얘기해줘.” 이 정도까지 얘기가 나오면 ‘그래, 고독사 하는 일은 없겠지. 똑같은 처지의 친구들이 이렇게 많은데.’ 막연한 희망에 다들 기분 좋게 집에 돌아가곤 한다.

술자리 만담에서 등장한 거주 형태는 주거 공동체다. 코하우징, 셰어하우스와도 비슷하다. 개인의 독립성을 포기하지 않고도 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네트워크이자 연대다. 하지만 지금도 실버타운은 존재한다. 상상 속 실버타운과 비교했을 때 ‘친한 사람들끼리’와 ‘좋아하는 것이 손 닿는 곳에 있는 환경’만 빠져 있을 뿐이다. 물론 지방에 땅을 사고 건물을 지어야 하는 돈도 우리 상상 속에 생략되어 있다. 노년의 걱정은 모두 돈으로 직결된다. 위더스자산관리 이세진 이사에게 1인 가구의 노후 대비 방법에 대해 물었을 때 가장 먼저 돌아온 대답은 사실 “그만 쓰세요”였다. 1인 가구로 산다는 건 호텔 방에 한 명이 자든, 두 명이 자든 방값은 똑같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일이다. 월세, 생활비에 ‘묶음 할인’ 효과를 볼 수 없다. 그녀는 소득이 있는 1인 여성 가구들이 막연하게 품는 ‘어떻게 되겠지’ 같은 희망이 노후 대책에 방해가 된다고 말한다.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집, 노후, 건강은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혼자서 집을 사는 게 힘들다고 사회만 탓해서는 안 돼요. 결혼한 사람도 청약 당첨은 힘들어요. 거주 안정을 위해 무조건 부동산에 도전해야 합니다. 보험도 재편해야죠. 1인 가구가 왜 사망 보험금이 필요한가요. 그 친구분, 조카가 배신하면 어쩔 건가요. 종신보험 들 필요 없고 실비 보험 위주로 정리하세요.”

노년의 1인 가구에게 발생할 수 있는 어려움은 사실 개인이 모두 감당해야 할 건 아니다. 개인이 독립적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보조해주는 보호망이 있는 사회가 가장 교과서적 대안이겠지만 서울시의 1인 가구 지원 대책은 2012년을 마지막으로 크게 검색되지 않는다. (당시 싱글 여성 전용 안심 주택 개발, 무인 택배 시스템 도입, 일자리 연계 인턴십 제도, 싱글 여성 커뮤니티 지원 목표를 발표했다.) 병원 퇴원 후에도 모니터링을 하겠다, 고독사 예방을 위해 공영 장례를 도입하겠다, 1인 가구와 동네 이웃을 연결하겠다 같은 방안을 지자체를 중심으로 조금씩 발표하고 있지만 우리가 국민연금이 구원해주지 못하는 사회에서 노년을 맞이할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건 있다. 노년의 1인 가구에게 발생할 수 있는 어려움은 가족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원래 우리의 삶은 혼자로도 완성형이어야 한다. 인생은 결혼이나 가족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괜한 부재감으로 해야 할 일을 미루기 때문에 발생하는 마음속 지옥이자 실질적 어려움이다. 수입이 있는 지금, 원하는 미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현실적인 대비를 시작하기만 해도 일단은 충분하다. 1인 가구가 상상하는 최악의 비극 고독사는 이 순간에도 발달 중인 스마트한 IT기술이 막아줄 테니 걱정 말고. 변두리 바닷가 마을에서 자그마한 마당을 가꾸고 낚시하고 만화책 읽으며 유유자적하는 노년을 상상해본다. 지금 누리는 것을 그때도 욕망하지 않는다면 이루지 못할 것도 없지 싶다. 통계청은 2035년 1인 가구 비율이 68%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에디터
    조소현
    포토그래퍼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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