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산드라 초이의 지미 추

2018.12.05

산드라 초이의 지미 추

지미 추를 클래식한 하이힐의 대명사에서 동시대적 슈즈 레이블로 탈바꿈시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산드라 초이. 다이아몬드 스니커즈 론칭 이벤트를 위해 서울을 찾은 그녀와의 Q&A.

당신은 젊을 때부터 지미 추에서 일했어요. 처음 하이힐을 신던 때를 기억하나요? 

지미 추는 96년에 설립됐어요. 그 당시 지미 추는 사실 뮬로 유명했답니다. 슬리퍼처럼 뒤가 없는 구두 있잖아요? 그게 내가 처음 접한 제대로 된 하이힐이었죠. 굽 높이는 당시 유행하던 6.5cm였어요. 사실 6.5cm면 키튼힐이죠, 스틸레토나 하이힐이라고 할 만한 높이는 아니에요. 일곱 살 때 조그만 흰색 메리제인 슈즈를 신었는데 힐이 정말 요만했답니다. 한 5cm 정도? 어린 여자아이에게는 그것도 하이힐이니 그게 나의 첫 하이힐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어쨌든 어른이 되고 난 다음에 처음 접한 건 96년, 6.5cm 높이의 뮬이었어요. 참고로 내가 신을 수 있는 가장 높은 하이힐은 10cm랍니다.

슈 디자이너니까 선호하는 굽의 높이와 모양이 있겠죠.

일단 높은 걸 좋아해요. 10cm 정도? 굽은 두툼한 것과 얇고 날렵한 것 둘 다 좋아요. 그렇지만 디자인에서 비율에 대한 취향은 명확합니다. 룩이 과장돼 보이길 원한다면 앞코가 뾰족하고 뒤도 날렵하게 쭉 뻗어서 신발이 길어 보여야 하죠. 우아해 보이고 싶다면 힐의 형태가 곡선을 그리는 게 좋아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신을 수 있고, 믿을 수 있고, 불안하지 않고, 자신감을 줄 수 있는 힐이죠. 그리고 굽의 바닥을 가장 신경 쓰는데, 바닥에 닿는 부분이 견고해야 하거든요. 왜냐면 나는 걷는 걸 좋아하고 빨리 걸으니까요! 신발이 나를 소유하는 게 아니라 내가 신발을 소유하는 게 정말 중요해요.

힐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요?

하이힐을 신으면 특별한 기분이 들어요. 특정한 느낌이나 분위기를 연출할 수도 있고요. 아무래도 일로서 슈즈를 대하다 보니 내가 꼭 신지 않더라도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갖고 있는 것도 많답니다. 아마 지금 소장한 신발이 대략 800켤레 정도 될 거예요. 우리는 1년에 6번 컬렉션 작업을 하는데 컬렉션을 할 때마다 신발이 더해져서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단순히 디자인이 마음에 들거나 그 시즌을 기념하기 위해 갖기도 하거든요. 보통 한 차례의 컬렉션에서 20켤레 정도 골라요. 20켤레씩 6시즌이면 1년에 120켤레씩, 지미 추에서 20년 넘게 일했으니 셀 수 없이 많겠죠?

가지고 있는 슈즈 중 가장 오래된 건 어떤 건가요?

지미 추가 나를 위해 공방에서 직접 손으로 만들어준 슈즈예요. 레퍼런스용으로 산 비비안 웨스트우드 슈즈도 오래됐죠. 내가 하는 일과 연관돼 있기도 하고 당시를 추억하는 대상이기도 해요. 갑자기 어제 리움 미술관에서 본 금으로 된 슬리퍼가 떠오르네요. 5세기에 만들어진 거였는데(5~6세기에 신라에서 만들어진 금동 투각 신발) T자 패턴으로 금판에 구멍이 뚫려 있었어요. 톰 포드가 만들 만한 슬리퍼라고 농담했는데 아주 아름다웠어요. 골든 퍼포레이티드 슬리퍼! 나는 슈즈가 건축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기능적인 동시에 아름답게 디자인해야 하니까요.

신발이 그 사람의 성격을 말해준다는 이론을 들어본 적 있어요?

그 이론은 여자보다 남자한테 더 맞는 것 같은데. 난 항상 남자는 시계와 신발로 알 수 있다고 말하곤 해요. 어떤 남자는 이런 신발을 신는데, 이런 신발은 가끔 믿을 수가 없거든요! 우리는 슈즈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어요. 하이힐을 신으면 무의식적으로 자세가 달라집니다. 자세가 더 꼿꼿해지고 세상을 마주할 준비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요. 여자는 남자 옷을 오버사이즈로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남자 신발도 신을 수 있으니까 남자보다 선택항도 더 다양하죠. 그런 면에서 무엇을 신느냐가 그 사람의 성격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미 추의 핸드백 라인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해요.

핸드백을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기능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백 내부를 실용적으로 구성하는 게 중요하죠. 용도별로 크기가 다른 내부 포켓과 클립, 열쇠를 걸 수 있는 고리 등. 브랜드에서 핸드백은 포괄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이미지를 주는 아이템이니까요. 특정 디자인의 가방은 어떤 브랜드 것인지 알 수 있잖아요? 지미 추 디자인의 특징은 트위스트가 가미된 디테일이고 난 카멜레온처럼 변화무쌍한 가방이 좋아요. 지미 추에는 ‘캘리(Callie)’라는 이름의 가방이 있는데 아주 심플한 플랫 백이에요. 하지만 스트랩을 이용해서 만두 모양으로 만들 수도 있답니다! 일반적으로 핸드백은 입체적이고 각진 형태라고 생각하지만 캘리는 아무거나 담을 수 있고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어요. 그 점이 마음에 듭니다.

지금까지 22년을 지미 추에서 보내면서 가장 힘들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어떤 직업이든 좋은 시기와 힘든 시기가 있기 마련이죠. 우리 회사가 경제 위기에 타격을 받은 시기가 있었어요. 하지만 내 성격의 장점은 솔직하게 불평을 하다가도 불평을 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금세 불평을 멈춘다는 점이죠. 나의 철학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를 잘 알자’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내가 통제할 수 없어요. 하지만 나와 우리 팀이 만드는 것, 내가 펜으로 종이 위에 그리는 것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죠. 어려운 시기가 지나고 회사가 회복세로 돌아섰을 때 나와 우리 팀은 어떤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는지, 시장에 어떤 새로운 것을 선보일 수 있는지 고민했어요. 그게 정치인이 아닌 디자이너로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요.

다른 브랜드에서 포지션 제안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요?

그건 비밀이에요! 난 늘 이런 생각을 한답니다. 그런 제안을 받았을 때, 내 삶이나 내 커리어에서 이곳을 떠나지 말아야 할 아흔아홉 가지 이유가 있다고요. 지미 추에서 22년을 보냈고, 그중에는 설립자와 보낸 시간도 포함돼 있어요. 그리고 여전히 내가 할 일이 많다고 믿죠. 이 회사 안에는 매우 긍정적인 기운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뭉치고, 브랜드와 사람들을 뭉치게 하는 힘이 있죠. 나는 우리 모두가 연결돼 있다고 믿어요. 회사 차원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끌어내는 것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구성원 모두와 조화를 이루고 개개인이 성장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인스타그램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당신에게도 인스타그램은 영감의 원천인가요?

나 역시 그렇습니다. 여전히 책을 좋아하지만 책장을 넘겨본 다음에는 결국 덮어서 책장에 꽂게 되니까요. 인스타그램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에요. 그렇지만 세뇌되거나 일회용 이미지의 홍수에 파묻히기 쉽죠. 예전에 친구와 사진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20년 전 사진가들의 사진이 훨씬 강렬하고 깊은 인상을 남긴다는 내용이었어요. 요즘 이미지는 순간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아요. 상징적이거나 기억에 남는다고 할 만한 게 없죠. 어쩌면 우리 주위에 이미지가 지나치게 많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인스타그램에 매우 많은 영향을 받지만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모든 것이 너무 빠르잖아요.

그 수많은 이미지를 고르고 거르는 기준이 있나요?

내 스마트폰에도 수많은 사진이 저장돼 있어요. 그렇지만 그중에서 끝까지 머릿속에 남는 건 한두 개의 이미지죠. 그런 것이 의미가 있는 거예요. 컬렉션 작업을 할 때 왜 새로운 것을 더 만들어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곤 해요. 또 다른 것을 더 만들어내야 하는 이유가 필요하죠. 그 이유를 이미지에서 찾기도 합니다. 지금 매장에서 판매하는 크루즈 컬렉션을 예로 들면 크루즈 시즌은 고객을 즐겁게 만들고 디자인으로 유혹해야 하는 시기예요. 2019 크루즈 컬렉션 작업을 할 당시 무드 보드를 채운 것은 1972년 로스차일드의 초현실주의 파티 사진이었어요. 파티에 초대된 사람들은 모두 드레스업했지만 일반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죠. 왜냐면 모두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처럼 보여야 했거든요. 조금 이해하기 힘들지만 매력적이면서 글래머러스하고 트위스트가 가미된 거예요. 그 스토리를 보여주기 위해 크루즈 컬렉션도 화려한 파티지만 독특하게 변주한 디자인으로 구성했습니다.

마지막 질문이에요. 당신의 두 딸 피닉스와 사이언은 어떤 신발을 좋아하나요?

피닉스는 바다와 대양에 관련된 건 다 좋아해요. 지구와 환경보호에도 관심이 많죠. 아마도 바다에 관련된 디자인을 좋아할 텐데, 아주 활동적이라서 강하고 기동성 있는 신발을 좋아할 거예요. 둘째인 사이언은 보다 섬세한 여자아이예요. 다섯 살인데 반짝이는 걸 좋아하고, 레고 쌓기를 즐긴답니다. 주말이면 모든 방이 사이언이 쌓은 레고 댐, 레고 집, 레고 공원으로 가득 차곤 하죠. 기술자 같기도 하지만 소녀스러워요. 분명 장식이 많은 신발을 좋아할 거예요.

    에디터
    송보라
    포토그래퍼
    이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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