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깊은 김남길의 집
김남길의 집에는 마당이 있다. 작품, 공헌, 사람 등 많은 것을 품을 만큼 넉넉하며, 늘 햇빛이 마당을 타고 깊이 들어와 따뜻하다.
플랫폼이 많아진 만큼, 어느 때보다 많은 드라마를 제작, 방영하고 있어요. 그중에도 드라마 <열혈사제>에 끌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톨릭 사제, 형사, 살인 사건, 공조수사라는 소재가 다소 익숙한데요.
작품을 선택하는 결정적 요소는 스토리예요.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명확해야죠. <열혈사제>는 우리의 삶을 과하지 않게 반영해요. 일반적으로 사제 하면 구마 의식을 보여주며 귀신이나 악령에 특별한 퇴치 능력이 있는 것처럼 묘사하잖아요. 실제 그러기도 하겠지만 <열혈사제>에선 악령이나 신보다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트라우마를 겪은 사제가 등장하는데, 그 캐릭터의 성질도 신선했어요. 보통 사제라면 온화하고 점잖게 묘사되는데, 여기는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죠.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소시오패스라 여겨지는 살인자를 연기하긴 했지만, 분노조절장애는 더 드라마틱한 감정 변화를 보여줘야 할 것 같은데요. 특정한 증상을 가진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준비한 부분이 있나요?
분노조절장애에 대해 물어보고 다녔어요.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는 병이라고 하더군요. 말 그대로 분노 조절이 안 되는 것인데, 자칫 ‘버럭’ 연기로만 보일까 봐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지인들이 너랑 닮았으니까 걱정 말래요. 미술감독님, 조감독님과 헌팅을 가고, 액션 합을 상의하던 중에도 “이건 남길이네”라고 하시더라고요. 이전 드라마인 <명불허전>, 영화 <해적〉을 연기할 때도 주변에서 “딱 너네”라는 말을 들었거든요. 불합리를 거침없이 얘기하는 스타일이라 그런가 봐요. 말할 때 차분하지 못하고요. 지금 인터뷰도 그래요. 좀 친해지면 목소리 데시벨이 훨씬 높아지죠.
불의를 참지 못한다니, 공감 능력이 뛰어나단 거네요.
그렇지도 않아요. 연기할 때를 보죠. 많은 배우가 대본만으로도 감을 잡지만, 저는 제 안의 작은 것을 가져와 극대화해서 연기해요. 그래서 캐릭터가 왜 슬픈지, 왜 화를 내는지 조금이라도 이해되지 않으면 버겁 더라고요. 그런 부분에선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죠.
<열혈사제>는 이명우 피디(<귓속말>, <펀치> 연출)와 박재범 작가(<김과장>, <굿 닥터> 극본)가 참여합니다. 시나리오도 중요하지만 작가와 연출진이 누구인지도 변수인데요. 두 분의 어떤 면에 끌렸나요?
박재범 작가님의 세계관은 희화적이고 밝아요. 심각한 주제인데 이렇게 말장난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비틀어서 표현하죠. <김과장>도 기득권에 던지는 메시지를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비꽜죠. 소재의 무거움을 환기시킬 줄아는 분이죠. 이명우 감독님은 <열혈사제>의 베이스가 코미디라 조금 어려워하셨어요. 본래 유머러스한 분이지만 그동안 진지하게 파고드는 작가님들과 작업해오셨으니까요. 무엇보다 주제를 일관성 있게 끌고가려는 분이라 좋아해요. 감독님, 작가님과 종종 이런 모의를 해요. “시청률은 조금 뒤로 미뤄두고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를 명확히 하자.” 비속어로 얘기하면 “쪽팔리지 말자”라고요. 또 함께 하는 성균이, 하늬, 고준이 좋은 배우이자 사람들이에요. 드라마든 영화든 되게 힘든 작업이니까 누가 함께 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하죠. 사진 찍을 때도 편안함에서 깊이가 나오잖아요. 좋은 관계에서 일의 시너지가 난다고 생각해요. 성균이는 집도 먼데 자꾸 불러낸다고 뭐라고 하지만요. 하하.
김성균 씨와는 작품으론 처음 만나네요.
성균이와는 사람 교집합이 많아요. 하정우 형이나, 사나이픽처스 대표님, 여러 감독님들께 하도 얘길 들어서 만나기 전부터 친숙했어요. 성균이가 악역도 많이 해서 혹시나 했는데, <응답하라 1988>의 그 캐릭터예요.
제작진과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자”라고 모의 했다고 말했죠.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
드라마나 영화가 사회적으로 메시지를 던지자고 작정하진 않잖아요. 이번 드라마도 오락성을 가미하죠. 다만 기본적으로는 특정 단체의 이익을 위해 희생되는 개인이나 소수 단체를 얘기하고 싶어요. 제가 연기한 남자는 군인일 때 조직으로부터 버림받아요. 자본주의 사회, 사회주의적 집단의 피해자가 되죠. 하지만 사제가 되고서도 변한 건 없어요. 이런 폐해는 특정 집단에 국한된 게 아니라 사회에 만연하니까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가 어떤 부분에선 선진국 반열에 올랐지만, 아직 미숙한 부분이 많고, 나은 세상으로 가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고 있어요. 다행히 이런 문제를 끄집어낼 수 있는 여건이니까 우리가 해보자는 거죠. 영화 <무뢰한> 때도 비슷한 얘기를 많이 했어요.
김남길 씨 필모그래피에서 <무뢰한>을 가장 좋아해요. 영화의 주 시간대인 새벽의 다양한 푸른빛도 좋았고, 배우 김남길의 눈빛이 가장 담백하지만 슬프게 나온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하, 그래요? <무뢰한>의 메시지가 어떤 부분에선 잘 드러나지 않아서 사람들이 물어보곤 해요. 저는 시나리오를 이렇게 분석했어요. 남자가 볼일을 보다가 손에 묻은 소변 냄새를 맡는 장면이 있어요. 자신은 다를 줄 알았는데, 똑같이 냄새 나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장면이죠.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방관하는 우리도 무뢰한이 아닐까 싶어요. <열혈사제>에서도 특정 집단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희생자뿐 아니라 그것을 방관하는 자들을 얘기하고 싶어요. 그런데 영화는 시나리오가 한 편으로 나와 있어서 메시지가 명확하지만, 드라마는 길게 펼쳐지면서 처음 의도와 달라지기도 해요. 문득 다 그만두고 멜로로 갑시다, 할 수도 있고요. 이런 인터뷰를 해서 드라마를 빼도 박도 못하게 하고 싶어요. 하하.
요즘엔 시청자의 취향도 다양하고, 안일한 공식을 따르지 않는 드라마를 선호해요.
최근에 본 드라마 가운데 <나의 아저씨>가 최고였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집에 아무도 없으면 옆집에서 들어오랬어요. 엄마 시장 가셨으니 돌아오실 때까지 있으라고요. <나의 아저씨>에서도 정희네 가게에 모여서 정을 주고받잖아요. 드라마 보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니까요. 사회가 변하면서 우리도 달라졌지만, 본질은 안 그렇잖아요. 잊고 있던 걸 일깨워준 드라마죠. 또 배우들이 고루 주목받아서 좋았어요. 드라마를 하면 배우 단체 카톡방을 만드는데, 작은 역할이라도 소외되지 않게 노력해요. 똑같은 구성원이고, 서로 끌어줘야 좋은 작품이 나오잖아요. 잘난 배우라도 혼자 할 수 없어요. <나의 아저씨>는 드라마가 공동체 작업임을 보여준 작품이죠.
주연 한둘이 도드라지기보단, 역할의 비중을 고루 분배하는 작품이 많아졌죠.
보는 분들이 바뀐 덕분이에요. 미드나 일드도 많이 보고,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이 열리면서 안일한 콘텐츠는 살아남을 수 없게 됐죠. 그것도 모르고 뒤떨어진 분들이 있어요. 그게 고집스러운 장인 정신이면 좋은데 아집이죠. 안타까워요. 저는 예전 선배들이 선두에서 이끌어주길 바라요. 세상이 바뀌었다고 이전의 감성이 폐기 처분되는 건 진짜 별로예요. 그들이 있기에 우리가 지금까지 온 거잖아요. 노래도 70, 80, 90년대로 거슬러 들어보면 정서적으로 와닿듯이, 그 시절을 지금도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린 모두 옛날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저는 이미 옛날 사람이고요.
인터뷰마다 자신을 ‘옛날 사람’이라 하더군요.
요즘 친구들이 함축된 단어를 많이 쓰잖아요. 어려워서 거의 못 알아들어요. 어떨 땐 아는 척하면서 인터넷으로 찾아봐요.
저도 얼마 전에 ‘아싸’라는 단어를 알았어요.
와, 저는 처음 들어요. 세종대왕께서 노하시겠는데요. 하하.
이지훈의 ‘왜 하늘은’ 같은 노래를 좋아하신다고요. 예전 노래를 즐겨 듣나 봐요?
요즘엔 지방 촬영 가면 차 안에서 듀스, 서태지 노래를 자주 들어요. 습관이거나 향수죠. 요즘 노래는 빨라서 따라잡질 못하겠어요.
연기 감정을 잡을 때 음악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고요.
그런 때도 있죠. 영화 <어느날>을 찍을 때는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OST 중에서 린 씨가 부른 노래를 들었어요. 영화에서 죽은 아내의 아픔을 상기하는 연기를 할 때 도움을 받았죠. 우연히 감정과 노래가 톱니바퀴처럼 맞아 돌아간 거지, 늘 그렇진 않죠.
집에 오디오나 영화 상영 기기는 번듯하게 구비하는 편인가요?
전혀요. 쇼핑에는 아예 관심이 없어요. 쇼핑이 뭐죠? 백화점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안 나요. 가본 지 10년 넘은 것 같아요. 늘 트레이닝복 차림인데, 이마저도 팬들이 선물해준 것을 돌려 입는걸요. 물욕이 많이 없어요.
원래 그런 편인가요, 아니면 어떤 계기로 바뀐 건가요?
20대 초·중반까진 엄청 꾸몄어요. 뭐 하나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어느 순간 의미가 없더라고요. 그때 즈음 트레이닝복을 입었는데 너무 편한 거예요. 이게 나를 표현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아디다스에서 아이돌을 모델로 쓰는 거 보니 배 아프더라고요. 트레이닝복은 내가 진짜 잘 표현할 수 있거든요. 하하.
브랜드에 이런 취향을 알려야겠네요.
저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잘 안 하잖아요. 사생활을 자주 보여주고, 영향력도 있어야 하는데, 맨날 숨어버리죠.
정말 페이스북도 2006년 이후로 멈췄고, 다른 SNS도 없더라고요. “SNS는 인생에서 가장 쓸데없는 짓”이란 표현도 했던데요. 배우는 작품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에선가요?
자신을 어필하는 세상이 맞고, 우리 직업이 그래야 하기도 하죠. 전 좀 불편해요. 주변에서 다들 시간 날 때마다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더라고요. 남의 사생활을 보든지, 내 것이 아닌 삶으로 허세를 부리든지 하려고요. 나 이렇게 잘 산다고 자랑하고 아픈 것까지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 좀 그래요.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중요한 거잖아요. 근본은 나인데 말이죠. 그럴 시간에 자신에게 집중하거나, 아예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낫지 싶어요.
일기를 꾸준히 써온 이유도 그 때문인가요?
예전에는 글을 많이 썼어요. 국문학과에 가고 싶었죠. 입 밖으로 꺼내면 날아가지만 글로 쓰면 묵혀뒀다 결국 내 것이 되는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일기를 썼죠. 그땐 1년, 10년 단위로 계획도 세웠는데, 요즘엔 그러지 않아요. ‘오늘 하루를 잘 살자’로 바뀌었죠. 눈앞의 것을 충실히 쌓으면 언젠가는 달라지리라 생각해요.
이전에 쓴 장기 계획 중에 기억나는 게 있나요?
20대 중반에 쓴 건데,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 부문에서 남우주연상을, 칸이나 베를린 영화제 등 권위 있는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자고요. 또 ‘싫으면 싫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되자’라고도 썼어요. 요즘은 너무 그래서 문제죠. 앞으론 유연해지려고요.
군 복무 기간 외에는 매년 두세 편씩 꾸준히 작품을 해왔어요.
올해는 영화 <기묘한 가족> 촬영이 끝나고, 다음 영화에 들어가기까지 7~8개월을 쉬었어요. 고민이 많았거든요.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들었으니까요. 다른 배우도 진짜로 좋아하는 일임에도 나와 안 맞는 것 같다, 다 상관없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거예요. 저는 연기보다 사람 문제로 힘들었어요. 사람과 부딪치며 일하는 분들은 알겠지만, 모두에게 옳고 좋을 순 없잖아요. 요즘은 그 기준이 더 애매해져서 지쳤고, 관두고 싶었어요. 하지만 확실히 현장에 가면 좋더라고요. 스포트라이트를 떠나서 계속 현장에 있다는 자체로 감사하기로 했어요. 매번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면서 임해요.
영화 <기묘한 가족>의 소개 페이지에 들어갔더니 이런 댓글이 있더군요. “김남길은 영화와 드라마가 동시에 흥행하고 있는 지금, 또다시 새 작품으로 바로 현장에 복귀한다. 보통 이미지 소비를 핑계로 CF 찍으며 긴 공백기를 보내는 게 보통인데. 스타로 떴지만 이제는 정말 천생 배우. 개인적으론 그의 40대, 50대도 기대된다.”
저도 CF 찍으면서 작품은 1년에 한 번 하면 좋겠네요. 하하.
면전에서 칭찬을 못 듣죠? 영화 <무뢰한>에서 최고였다고 말할 때도 얼굴이 빨개지더니 지금도 그러네요. 급히 농담하면서 딴 얘기로 넘기고요.
혈액이 얼굴로 쏠려서 빨간 거예요. 운동할 때처럼요. 하하. 배우로서 한 작품을 잘 마무리하는 자체로 고마운데,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니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영화 <기묘한 가족>은 신인 이민재 감독의 작품인데요. 어떤 점을 믿고 합류했나요?
시나리오가 별로면 안 하죠. B급 정서가 굉장히 좋았어요. 영화라고 하면 〈무뢰한>처럼 메시지를 던지는 예술영화와 팝콘 무비로 나뉘곤 하죠. 두 개 중 하나를 고르려니 피로한 상태에서, <기묘한 가족>은 상식을 비트는 작품이라 마음에 들었어요.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이런 정서가 저랑 잘 맞아요.
이전에 “영화는 돈을 내고 선택해서 보기 때문에 그 값어치를 충분히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 메시지가 명확해야 한다”고 말했죠. 여기서 조금 유연해진 건가요?
너무 그러다 보면 대중이나 배우나 지칠 것 같아요. 메시지든 뭐든, B급이든, 상업이든, 돈을 내고 시간을 할애하는 매체의 특성상 우선 잘 만들어야죠. B급 영화니까 좀 후져도 편하게 와서 보라고 할 순 없잖아요? 예를 들면 영화 <김씨 표류기>처럼 메시지는 명확하고 표현은 후지지 않게요.
영화 <클로젯>은 한창 촬영 중이죠? 윤종빈 감독, 하정우 배우가 제작하는 영화라 관심이 큰데요. 아무래도 이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겠죠?
윤종빈 감독에 대한 믿음은 없는데요? 하하. 공포라는 소재가 끌렸어요. 이전에는 멜로, 공포가 시즌별로 다양했는데 요즘엔 많이 사라졌죠. 윤종빈 감독, 하정우 형처럼 영화에서 나름 방귀 좀 뀐다는 놈들이 공포영화를 만든다니, 그 자체로 취지가 좋잖아요. 공포영화는 보는 게 무섭지 찍을 때는 굉장히 재밌다고 해서 기대 중이에요.
독립영화도 많이 보나요? 요즘 발군의 작은 영화가 눈에 띕니다. 개인적으로 <소공녀>가 좋았고, <폭력의 씨앗> <죄 많은 소녀> <박화영> 등이 주목받았죠. 인상적이었던 독립영화나 감독이 궁금해요.
요즘엔 시간이 없어서 잘 보지 못했어요. 하고 싶은 말은 이른바 ‘독립영화스럽게’ 찍으려 해서 좀 불편하단 거예요. 단편영화나 독립영화 시장이 갖는 힘은 앞으로 성장할 작품이나 배우, 감독이 나올 토대인데, 당장 이 한 편으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듯한 느낌의 영화가 많아요. 편하고 자유롭게 만들면 좋을 텐데요. 제가 유럽단편영화제 위원장을 하고 있어요. 이들 작품이 너무 특별하고 미칠 듯이 좋아서 기립 박수 칠 만하지 않아요. 소소하고 일상적인 소재로 웃음을 자아내죠. 무거워지려는 압박에서 벗어나 환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유럽단편영화제 위원장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길스토리’라는 시민 단체를 하면서 성북구청장님과 대화를 했어요. 그 일대에 예술인들이 많이 살고 조금 나가면 대학로도 있으니까 예술을 활성화할 거리를 찾다 영화제를 기획했죠. 티켓 팔아서 돈 벌려는 게 아니라 좋은 단편영화를 대중이 접하도록 돕는 거예요. 이제 3년 정도 참여했어요.
‘길스토리’는 2013년 4월에 김남길 씨가 설립했죠. 문화예술 캠페인으로 사회 공헌을 하는 비영리 민간단체라고 들었어요. 홈페이지에서 그간의 활동을 봤습니다. “각박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여유를 갖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양도성, 북촌, 남해 등의 길을 소개하고, 태풍 하이옌에 피해를 입은 필리핀 아이들에게 구호 키트를 전하고, 그들의 가족사진을 촬영했습니다. 6년여 동안 활동하면서 처음에 꿈꾼 바를 어느 정도 이뤘나요?
사회부 기자분도 길스토리와 관련해서 종종 인터뷰를 요청하는데 꺼리곤 해요. 길스토리는 거창하게 큰길을 가자는 게 아니라 작은 목소리로 조용히 움직이는 단체거든요. 눈에 띄는 족적을 남기기보다 사람들의 인식을 조금씩 바꾸는 데 의의를 둬요.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도록 돕는다면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가리란 믿음이 있거든요. 근데 어떤 성과를 남겼다고 인터뷰에서 얘기하려면 불편해요. 그저 앞으론 제가 없더라도 길스토리 자체로 굴러가게 하려고요. 내 도움이 필요하면 참여하지만 길스토리가 가진 힘으로 움직이게 하고 싶어요.
그래도 김남길이란 이름이 동력이 돼야 좋을 것 같은데요.
대기업 후원 제안도 많이 들어오지만, 배우의 유명세를 이용한 홍보성이 많아요. 내가 속했다고 길스토리를 다른 쪽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경계하죠. 지금까지 팬들이나 같은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분들의 후원, 제 사비로 운영하는 중이에요. 물론 해오면서 중간중간 힘들 때도 많았지만 계속 걸어가려고요. 돈이 없어서 그만두는 게 ‘쪽팔리거든요’. 하하.
- 에디터
- 김나랑
- 포토그래퍼
- 안주영
- 헤어
- 백흥권
- 메이크업
- 김수빈
- 스타일리스트
- 황혜정, 권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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