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봄
체코의 겨울은 어둡고 길고 또 춥다. 긴 겨울의 한복판에 봄이 한 자락 스며들었다. “믿을 수 없는 색의 향연”, “믿을 수 없이 세련되고 우아한 실루엣”이라는 물총새 같은 후일담이 쏟아져 나왔다. 프라하에서 열린 김혜순 한복 패션쇼. 봄이 거기 있었다.
프라하 블타바강 자락에 밤이 이슥했고 바람은 물기를 머금은 채 차가워졌다. 조핀 궁으로 들어서는 자동차의 미등이 흘리는 붉은 기운이 가로등 불빛과 엇갈린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공산국가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름 슬라브 섬. 꼬리를 무는 차량과 사람으로 들썩이기 시작했다.
18세기에 오스트리아 황제가 자신의 어머니 이름을 따 궁을 지었다는 것은 이 궁전의 연회장에서 1878년 드보르자크가 콘서트를 했으며 베를리오즈, 리스트, 차이콥스키도 이곳에서 공연을 했다는 것을 알자마자 그저 표지판에 써 있는 정보로 박제되었다. 체코 전역에서 들리는 듯한 <나의 조국>의 작곡가 스메타나는 자신의 작품 초연을 이곳 조핀 궁에서 치르곤 했다는 얘기까지 듣자, 문을 미는 손바닥, 마룻바닥에 대는 발바닥 하나도 영광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걸려 있는 태극기, 한복. 화가 신균이의 작품 <달> 앞에서 달맞이를 하고 있는 한복을 입은 인형 하나까지. 애국심의 본적지는 명치 끝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안에서 들려오는 한국어 “아니야, 아니야, 훨씬 좁게 걸어야 해”. 애국심의 파동이 그 세기를 벌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복 패션쇼 리허설 중 외국 모델이 원삼을 입고 파워 워킹을 한 게 분명했다. 한복 디자이너 김혜순이 재차 통역자에게 얘기했다. “위엄 있게 걷는 게 빠르게 걸으라는 게 아니라고!”
이렇게 큰 패션쇼는 해본 적이 없다는 조핀 궁의 기획 실무 담당관은 연신 머리에서 땀을 찍어 눌렀다. 조명도 음악도 연회에 가능한 수준, 원하는 스펙트럼이 없었다. 천장은 가늠할 수 없이 높고 벽화는 화려하고 정교했다. “샹들리에는 18세기 것일까요?” 주체코 대사관의 박민우 서기관은 영접과 의전 준비로 정신없는 채로 웃어주는 예의로 대답을 대신했다. 더 큰 샹들리에, 더 화려한 샹들리에는 있겠지만 더 낭만적인 샹들리에는 없을 것 같았다. 차이콥스키도 드보르자크도 다 등지고 있었을 대롱거리는 불빛 아래에 2018년 한국의 한복 디자이너 김혜순이 날렵한 레깅스 차림으로 서 있었다. 스타일리스트 서영희가 일찌감치 화보 촬영을 끝내고 와 부드러운 눈빛을 나눈다. 조명과 음향을 걱정하는 현장 프로듀서에게 두 거장은 웃으며 채근하지 않는다. Show must go on!
50명의 모델이 처음 입어보는 한복에 들떠 있는 대기실은 후끈하고 소란스러웠다. 신나는 코스튬 파티에라도 온 듯 연신 촬영하고 곧이어 업로드. 여기저기서 뜨거운 반응이 진동으로 울려왔다. 한국어가 좋아 한국 유학을 다녀왔다는 모델 에이전시 매니저는 바구니를 돌려 모두의 휴대폰을 수거했다. 그리고 체코어로 그들에게 무언가를 역설했다. 한국어로 되묻자 한복, 특히 궁중 한복의 느낌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 느낌은 어떤 것일까? “어렵지 않아요. 여기는 궁전이죠. 몇백 년 전에 여기에 왕과 왕비가 살았던, 그들이라면 어땠겠냐고 했어요. 무대 밑에 당신의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고. 국민을 사랑하고, 국민에게 존경받는 왕족이 걷는다고 생각하라고요.” 완벽한 설명, 다시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다시 김혜순의 ‘위엄 있고 인자하게’를 강조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밖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주체코 대사관이 체코 건국 100주년과 국경일을 기념해 연 행사라 체코의 정부 요인, 인근 국가의 외교사절, 언론인들로 가득했다. 체코어, 독일어, 영어, 한국어가 리드미컬하게 섞이고 한국에서부터 날아간 막걸리 사절단이 이들의 흥을 돋우고 있었다. 한국 음식을 마련하고 있다는 첩보가 없이도 연회를 준비하는 궁전의 조리실에서는 불고기, 잡채, 갈비 냄새가 새어 나와 익히 정보를 입수한 후각세포에 들러붙었다. 잔칫집이었다. 문승현 대사는 분홍빛 두루마기를 입고 인사를 나누느라 분주한, 그야말로 잔치를 베푼 주인이었다. 양국의 국가를 한국 테너와 체코 소프라노가 번갈아 불렀고 잔칫집 주인의 정겨운 인사말이 있었다. 그리고 암전. 쇼가 시작되었다. 조선의 왕실 의상으로 시작해, 한국무용가 네 명이 추며 나온 황진이, 미인도, 바람의 옷까지 한국의 아름다움이 총망라된 30분의 쇼가 찰나처럼 지나갔다. 다시 약하게 불은 꺼졌고 모델들은 흰 무명을 씌운 등을 들고 무대 위로 쏟아져 나왔다. 불 밝힌 미래, 어떤 시작. 그것이 양국의 수교, 문화의 교류였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많은 수의 모델, 다채로운 색의 향연과 상관없이 오붓하고 따뜻했다. 객석은 어느새 다 일어서 있었다. 한국의 가을 하늘 같은 파란 비단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은 김혜순이 손을 모으고 허리를 접었다. 박수는 우레 같았다. 모델들은 옷을 갈아입으려 하지 않고 모두 계단으로 몰려 내려갔다. 함께 사진을 찍고 그 밤을 이어갔다. 의전도 영접도 불필요해진 아름다움의 대향연 앞에서 체코 정부 요인들은 생황을 든 기생으로 분한 한국무용가 이현과 사진을 찍느라 줄을 섰고 드라마 <황진이>의 OST를 구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승현 대사는 “체코의 이전까지도, 감히 말하자면 이후에도 없을 완벽한 행사였습니다. 한국인의 문화 자랑을 톡톡히 했습니다”라고 했다. 체코여서도 한복이어서도 조핀 궁이어서도 아닌 아름다움에 취해 모두가 행복한 시간이 여물고 있었다. 아무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막걸리는 동이 났다. 흥취가 오른 뺨을 서늘한 달빛이 위무했다. 동유럽의 밤은 깊고 느리게 흘러가는 중이었다.
프라하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 힐끗 그녀의 입국 카드가 보였다. 직업을 적으라는 작은 네모 안에 정갈한 이탤릭체가 가득하다. HANBOK designer. 한복을 대문자로 썼다. 그래서 김혜순에게 물었다.
‘한복’을 왜 다 대문자로 썼나?
한복은 한복이라서. 세계 어디에서나 한복은 한복이어야 하니까. 코리안 코스튬 말고 한복. 발음을 할 수 없어도 어렵사리 따라 하는 소리로라도 한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모르긴 해도 한글의 서체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도 그랬을 것이다. 한글 디자이너. 이건 순우리말이 좋아서 하는 말 같은 게 아니다. 고유한 것을 고유하게 부르기로 한 세계적인 원칙과 다를 것이 없는 얘기다.
때로 그런 생각도 든다. ‘우리 것 좋은 건 다 알겠다. 그런데 왜 그 좋은 것들이 모두 세계화가 되어야 하나, 좋은 것은 우리끼리만 알고 있으면 안 되나?’ 하는 치기 어린 생각 같은 것 말이다.
언젠가 기사를 하나 읽었는데, 우리처럼 남의 평가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도 드물다는 얘기였다. 늘 외국인에게 한국에서 가장 놀라운 것, 좋은 것, 재미있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묻는다고. 나는 그게 남의 평가에 연연해 하는 국민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예전부터 좋은 건 나눴다. 물론 슬픈 것도 나눴지만. 좋은 걸 더 좋게 많은 사람에게 누리게 하고 싶은 게 우리 민족성이다. 아주 오래전으로 올라가 ‘홍익인간’까지 가지 않아도 좋은 것을 보여주고 같이 알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우리에게 있다.
당신에게 한복도 그런 것인가? 유독 당신은 해외 행사가 많다. 당신을 소개하는 한 프로그램을 보고 깜짝 놀랐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파리 루브르 박물관, 유엔 본부 같은 유수의 장소부터 케냐, 세이셸, 폴란드, 핀란드 할 것 없이. 당신의 한복 쇼를 열지 않은 나라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한복은 한국인의 정신이 그대로 드러나는 옷이다. 다만 기후의 변화에서 체온을 유지하고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기능으로서의 옷이 아니다. 한복은 한국 문화를 엿보게 하는 바로미터로 충분하다. 내가 몇 톤이나 되는 컨테이너를 항공으로 띄우며 모든 쇼 초대에 기쁘게 응하는 것은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 몇 날 며칠 앉혀놓고 말해도 알아들을까 말까 하는 것을 몇십 분 한복 패션쇼로 바로 각인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서다.
한복의 무엇이 사람들을 그렇게 매료시킨다고 생각하나?
구조적으로 아름답고 시각적으로 조합이 다양한 옷이다. 한복의 기본 치마저고리만 놓고 봤을 때만 해도 그렇다. 기능마다 다채로운 속옷, 거기에 켜켜이 입는 겉옷, 장신구까지 입는 그 과정 자체에 빠져든다. 한 번도 입지 않던 한복을 행사 때 입으려면 가슴은 답답하고 걸음은 불편하지만 어쩐지 다르게 걷는, 다르게 웃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설명하기 아주 어려운 어떤 매력이 한복에 스며 있다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해외에서 쇼를 할 때 반드시 외국인 모델을 쓴다. 그리고 한국무용가들이 꼭 나타난다.
한복은 한국인이 입었을 때 가장 아름답다. 그건 얼의 문제니까. 그러나 옷으로만 놓고 보면 한복은 인종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잘 어울린다. 아름다운 건 조건 없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아프리카에서는 흑인 모델을, 유럽에서는 백인 모델을 쓴다. 한복은 피부색으로 입는 게 아니다. 한국무용가들이 반드시 나오는 구성은 좀 다른 얘기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복이 가장 근사해 보이는 순간은 정한이 들어 있는 한국 춤, 한국음악과 함께했을 때다. 이건 앞서 말한 “좋은 건 누구에게나 언제나 어디에서나 다 좋다”와 통하는 얘기다. 옷만 보여주는 것에서 떠나 그 옷이 주는 흥과 기운을 함께 보여주고 싶어 꼭 그녀들과 함께한다. 폭이 좁은 치맛단을 말아 쥐고 부채를 들고 어깨춤을 추는 기녀의 모습을 보면 그 춤사위가 크지 않은데도 모두 반하고 만다.
드라마 <황진이> 때부터였던 것 같은데 당신의 옷을 보고 사람들은 한복이 입고 싶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궁중 한복이 아닌데도 압도적인 치장과 정제된 서정이 함께한다고도 했다. 당신에게서 남다른 기생이 태어났다.
옷의 힘이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옷도 내가 했는데 광대의 옷을 입으면 광대가, 곤룡포를 입으면 왕이 된다. 걸칠 수 있는 옷이 바로 그 사람인 것이다. 남다른 기생을 옷으로 만들어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황진이>를 준비하며 기녀에 관한 공부를 한참 했다. 사료를 이 잡듯 하고 권번에 올라가 있는 마지막 기생까지 수소문해 어렵사리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또 나눴다. 술을 따르고 몸을 파는 기녀가 아닌 연예인으로서의 기녀가 있었고 트렌드세터, 트렌드 리더, 요새 말로 ‘인싸’로서의 기생을 보여주고 싶었다. 권문세도가의 안주인들이 따라 입고 싶게 만드는 옷매무새, 색감과 옷감의 절묘한 조화, 온갖 재기까지. 다행히 의도가 맞아떨어져 큰 사랑을 받았다. 펜디와 백 디자인도 하고 드리스 반 노튼은 저고리를 가져가 패턴을 떠 쇼를 했다. 고마운 일이 매일 벌어졌다.
방금 끝난 프라하 조핀 궁에서의 쇼도 화젯거리가 많았다. 외국인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견장에 별을 달고 나타난 벽안의 무관이 한국어를 쓰는 나를 보고 “케이팝도 있고 한복도 있고 너는 참 좋겠다!”라며 악수를 건넨 일이었다. 아직 행사장 안에서는 알리의 구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문화의 힘이다. 그 사람은 정말 부러워서 그런 것 같았다. 나보고도 그랬다. 하하. “이런 전통 위에 BTS까지 있다니.” 그런 말을 했다. 자랑스러웠다. 한복을 알고 입고 만들어 입힐 수 있는 한국인이라는 것이.
<보그>와 촬영한 화보는 어땠나?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순간이겠구나’ 하는 마음이 계속 들었다. 해도 뜨기 전에 <보그>와 한복을 위해 문을 열어주는 프라하 궁, 300개도 넘는 그 무거운 의자를 모두 움직여 주릿대 치마를 말아 쥔 한 컷을 만들어내는 스태프들, 검은 성벽, 화려한 성 안, 그림처럼 어울리는 한복의 실루엣과 컬러의 조화를 보며 정말 기뻤다. 이런 경우를 인생의 모먼트라고 한다고 하던데 그런 것을 쟁여온 기분이다.
한복을 통해 다시 가지고 싶은 ‘모먼트’가 있나?
중세 배경의 영화에서 본 작은 광장, 정말 지나다니는 사람이 누군지 다 아는 그렇게 작은 마을의 소박한 광장에서 우리 음악, 이희문의 <한국남자>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옷을 입은 우리 춤꾼 몇. 그리고 정갈하게 꾸려진 우리 한복 갈아입을 곳 하나. 원하는 사람 모두 내가 직접 다 입혀주고 사진도 찍어주는 것이다. 한복이라고. 이건 쓰개치마. 이건 배자, 이건 버선 하면서. 한국이 동북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전쟁이 있고 월드컵도 있고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들어는 본 것 같은 나라로 알아도 좋고 몰라도 좋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정서인 유쾌함이 함께 흐르고, 아름다움에 관한 관대한 동의 같은 것이 있는 한바탕 축제 같은 것을 해보고 싶다. 흥겹지 않겠나!
한복이 세계화가 되는 것은 한복 위에 케이프를 쓰고 토트백을 드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에 나는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아오자이 아래 진을 입은 것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기모노 위에 모피 코트를 입는 것도. 분명 단초는 될 수 있지만 그것은 폭넓은 공부를 더 많이 한 다음 세대에게 부탁하고 싶다. 일단 전통이 전통으로서도 충분히 각광받을 수 있는 상태. 그 상태를 위해 늙어가나 늙을 수만은 없는 사람으로 그걸 간절하게 해두고 싶다.
- 포토그래퍼
- 조기석
- 글쓴이
- 조경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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