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의 2인자, 비르지니 비아르는 누구인가?
얼마 전 열린 샤넬 오뜨 꾸뛰르 피날레에서 칼 라거펠트 옹을 볼 수 없었습니다. 1983년부터 2018년까지 35년 동안 단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상황에 패션계에서는 온갖 추측이 난무했는데요. 당일 오후 WWD가 전한 샤넬 측 발표에 따르면 “무슈 라거펠트가 피날레 인사를 하기에는 너무 피곤해서, 하우스의 스튜디오 디렉터 비르지니 비아르에게 자신을 대신해 신부와 함께 게스트에게 인사해줄 것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원래는 10시에 열린 첫 번째 쇼에서 칼 라거펠트가 나타나지 않자 12시에 열리는 두 번째 쇼에 등장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죠. 하지만 12시가 가까워질 무렵, 두 번째 쇼에도 참석하지 못한다는 뜻을 담은 “무슈 라거펠트의 빠른 회복을 바란다”는 짧은 메시지가 전달됐습니다.
어쨌든 이 시점에서 우리의 관심은 칼 라거펠트의 건강보다도(미안하지만) 그를 대신해 웨딩 수영복 차림의 비토리아 체레티와 피날레 인사를 한 여인의 정체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디렉터 비르지니 비아르죠. 그녀는 지난 30여 년 동안 칼 라거펠트 곁에서 샤넬이 패션계의 파워 하우스로 순조롭게 운영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칼의 오른팔, 칼의 비밀 무기라고도 불리는 인물입니다.
스모키 아이, 창백한 안색, 길고 부스스한 머릿결, 어딘가 미스터리한 분위기. 전형적인 파리지엔의 외모지만 그녀는 프랑스 서부 디종의 실크 원단 사업을 하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모나코 왕국 레니에 왕세자의 집사였는데요, 1987년에 부모님 이웃의 추천으로 샤넬에 인턴으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칼 라거펠트가 샤넬에 합류한 지 4년이 되는 해였죠. 하지만 사실 그녀에게는 다른 꿈이 있었답니다.
“패션계에 매력을 느끼긴 했지만 되고 싶은 건 무대의상 디자이너였어요. 영화 ‘까미유 끌로델’로 유명해진 영화 의상 디자이너 도미니크 보그(Dominique Borg)의 어시스턴트로 처음 일을 시작했습니다. 영화 일을 하면서 상상도 못한 이들을 만나게 됐죠. 이자벨 아자니, 브루노 뉘탕(Bruno Nuytten),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등등. 키에슬로프스키 감독과는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한 그의 영화 ‘세 가지 색: 블루’와 ‘세 가지 색: 화이트’ 의상을 담당하면서 함께 작업했고요.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원래 영화와 연극 의상 디자이너였습니다. 샤넬과 끌로에에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한 칼을 만나기 전까지는요. 그를 만나면서 패션에 집중하기로 마음먹게 됐어요.”
샤넬에 인턴으로 입사한 후 그녀가 처음 일한 곳은 오뜨 꾸뛰르 자수 공방 ‘르사주’였고 얼마 되지 않아 자수 공방의 책임자가 됐습니다. “르사주 가는 걸 정말 좋아했답니다. 지금도 르사주에 갈 때면 그때 느꼈던 것처럼 똑같이 즐거워요.” 1992년, 칼 라거펠트는 끌로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겸직하게 됩니다. 그리고 비아르에게 끌로에에서 일할 것을 제안하죠. “어차피 칼과 함께 일하는 거라서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어요. 어머니와 이모가 끌로에 드레스를 즐겨 입었고 나 또한 좋아했으니까요.” 1997년까지 5년 동안 끌로에에서 일한 그녀는 스텔라 맥카트니가 끌로에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면서 다시 샤넬 하우스로 복귀합니다. “돌아올 때는 오뜨 꾸뛰르 코디네이터로 돌아왔어요. 2000년이 되면서 RTW 컬렉션에도 관여하게 됐고 팀도 커졌습니다.”
이제 그녀는 RTW, 크루즈, 공방 컬렉션과 꾸뛰르를 포함해 1년에 총 여덟 개 컬렉션을 관장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역할은 칼의 스케치를 기본으로 공방, 아틀리에와 함께 컬렉션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 “팀을 꾸리고, 공급자를 연결하고 원단을 고릅니다. 물론 칼과 피팅도 보죠.” 비아르는 라거펠트가 색연필과 파스텔로 직접 그린 스케치를 받는 즉시 컬렉션 준비 작업에 착수합니다. 각각의 샤넬 컬렉션이 얼마나 많은 룩을 포함하는지 생각해보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비아르와 칼은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고 합니다. 매일 만나지만 칼은 비아르에게 또 전화하고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스케치를 보내죠. “완벽한 공생 관계랄까요. 우리의 관계는 매우 ‘근본적’입니다. 서로에게 가장 깊이 영향을 미치는, 진정한 우정입니다.”
비아르가 처음으로 라거펠트와 함께 피날레에 모습을 드러낸 지난 2018년 5월, 2019 크루즈 컬렉션 직후 그녀가 머지않아 칼 라거펠트의 뒤를 이을 거라는 소문이 연기처럼 피어올랐습니다.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시리즈 ‘D-7 카운트다운’ 샤넬 오뜨 꾸뛰르 쇼 편에서 라거펠트도 이렇게 말하죠. “비르지니는 나뿐 아니라 아틀리에, 하우스 전체를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입니다”라고요. 그동안 라거펠트의 후임자로 수많은 디자이너의 이름이 거론됐습니다. 왕관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비아르에게 돌아갈까요? 만약 샤넬이 지난 30여 년간 하우스에 헌신한 그녀를 선택한다면, 하이패션계 최고의 위치를 점하는 샤넬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몹시 궁금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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