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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이 단절된다는 것

2019.02.27

경력이 단절된다는 것

출산과 육아로 경력을 단절당한 여성들이 과거를 없던 일로 지우고 저임금 단순직으로 사회로 돌아온다. ‘M자 곡선 그래프’가 전한 일하는 여성들의 인생.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고 BTS가 <타임>지 표지에 등장하는 동안에도 절대 바뀌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 여성의 연령별 고용률이다. 대학교를 졸업하는 20대 중후반 최고치를 찍었다가 30대에 출산과 육아로 일터를 떠나면서 최하치로 뚝 떨어졌다가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운 40~50대에 다시 재취업하며 솟아오르는 패턴.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뱀처럼 M자형을 그리는 형국이다. 여자들의 커리어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사이 남자들은 정상이 평평한 분지(20~50대 고용률 90% 이상)를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U자를 뒤집어 그리는 것보다 M자를 쓰는 일이 힘들듯, 대한민국 노동시장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일하기 힘들다. 이유는 하나다. 여성은 아이를 낳거나 낳을 가능성이 있으며 주된 양육자 역할을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앞만 보며 트랙을 달리는 동안 여성들은 세탁기, 냉장고 허들을 넘어 똥 기저귀 지뢰를 피해가며 달린다. 그 과정에서 넘어지거나 트랙 밖으로 나가떨어지거나 기권하는 선수가 생긴다. 이탈자로 그려진 M자 곡선. 여성의 경력 단절을 상징하는 서글픈 곡선이다.

‘경력 단절 여성’은 정부 기관이나 법령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다. 정의는 ‘혼인, 임신, 출산, 육아와 가족 구성원의 돌봄 등을 이유로 경제활동을 중단하였거나 경제활동을 한 적이 없는 여성 중에서 취업을 희망하는 여성’이다. ‘경단녀’라는 준말이 더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경단남’으로 응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단어는 출산과 육아와 돌봄이 여성의 몫인 현실을 정면으로 보여주고 있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경력 단절 여성’을 입력하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경력 단절을 경험하는지 수치와 통계로 보여주는 기사가 무수히 떠오른다. 첫아이를 임신한 뒤 직장 여성 66%가 하던 일을 그만두거나 다른 일을 한다. 변호사, 의사, 국회의원도 피해갈 수 없다. 얼마 전에는 ‘황제마저 피하지 못한 출산 경력 단절’이라는 제목을 단 세레나 윌리엄스의 기사도 있었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다. 주변을 둘러본다. 중·고등학교 친구들 모임, 대학교 동아리 모임, 직장 동기 모임이 모두 표본 집단이 되고 사례가 된다. 과거 나는 그녀들과 실력과 성과로 조직에서 경쟁했지만 지금은 남편의 월급, 육아를 도와줄 가족의 유무, 부모의 재산, 쌍둥이 출산 여부 같은 조건이 더 중요한 요인임을 매일 경험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운’ 좋게도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엄마가 계셨지만, 얼마 전 퇴사를 결정한 동료에게는 그런 ‘운’이 없었다.

퇴사를 고민하던 동료가 남긴 말이 있다. “차라리 아이 키우는 게 끝이면 좋겠어.” 언젠가 아이는 자랄 테지만 남편의 월급만으로 생계가 유지되지 않거나 이혼 같은 변수가 생겼을 때 과연 우리는 어떤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을까. 언제든 누구로도 대체될 수 있는 단순 업무 외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이 있을까. 얼마 전 방영하기 시작한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의 여주인공은 잘나가던 카피라이터였다. 이혼 후 찜질방 아르바이트, 마트 계산원 일을 하며 사무직 면접을 보지만 그녀를 받아주는 회사는 없다. 결국 그녀는 이력서에서 학력과 경력을 지운다. 그리고 출판사 경영지원팀 입사에 성공한다. 미드 <영거>에서는 경력 단절 후 재취업을 위해 40대 나이를 20대로 속이는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경력을 삭제하거나 나이를 속이거나. 경력 단절 여성이 저임금 단순노동직이 아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과거로 회귀뿐이었다. 드라마라서 가능한 재취업이었을까. 드라마적 요소는 20대보다 어려 보인 배우의 얼굴뿐이었다.

경력 단절 여성은 복지 정책 중 사각지대에 있다. 갓난아이를 키우며 불면의 밤을 보낼 때 아이가 언젠가는 자란다는 사실을 잊듯 많은 정책이 어린아이를 둔 워킹맘에 맞춰져 있다. 어느 정도 아이를 키우고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려는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을 ‘덜’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사회는 육아와 양육에 고군분투한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공백의 시간으로 여긴다. 저널리스트 조앤 리프먼은 “고용주들이 경력 단절 여성을 ‘투명 인간’ 취급한다”고 표현했다. 경력 단절을 경험한 물리학자 세어네이드 리의 에세이에는 솔직한 항변이 담겨 있다. “면접을 볼 때마다 나이 때문에 힘들 것 같다는 이야기를 수차례 들었다. 도대체 왜? 스물일곱 살 때보다 판단력도 좋아졌고 업무에 적용할 만한 경험도 풍부히 쌓았다. 다양한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여러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며 마감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내 나이나 경력을 장점이나 창의력, 유연성을 보여주는 징조로 보기보다는 애당초 가망 없다는 증거로 받아들인다.”

경력 단절 여성에게 빚지며 성장한 사회는 경력 단절 여성에게 이중적인 시선을 보낸다.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임에도 개인의 선택에 따른 현상으로 여긴다. 임신 사실을 말했을 때 미묘하게 일그러지던 상사의 얼굴, 출산휴가 사용으로 업무가 과중된 동료의 원망, 야근과 출장으로 육아에 소홀할 때마다 찾아오는 죄책감, 베이비시터 비용과 별 차이 없던 월급과 같은 무수한 순간은 별개가 된다. 그래서 재취업하고자 하는 여성은 ‘일 대신 가족을 선택해놓고 굳이 다시 일하려고 하는 여성’ 혹은 ‘나이 들어서도 안정적인 삶을 꾸리지 못한 불쌍한 아이콘’이 된다. 재취업하고자 하는 이유가 돈이 필요해서든,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함이든 폄하 섞인 시선이 존재한다. 그녀들에게 허락되는 자리는 시간제 단순노동직뿐이다. 조직 진입을 거부당한 여성들은 스스로 이 문제를 끌어안는다. 서점 여성 처세 섹션에 꽂힌 <엄마 말고 나로 살기: 경력 단절의 시간을 넘어 다시 세상 속으로> <아내, 노트북을 열다> 같은 책이 그 고군분투의 기록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익스플레인: 세계를 해설하다> 시리즈 중 ‘왜 여성은 더 적게 받는가’ 편에서 경제 연구원 베로니크 드 루지는 웃으며 회고한다. “시간적으로 압박을 받은 것은 상사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집에 있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에 15분 만에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아이가 있기 때문에 나는 훨씬 나은 직원이 되었다.” 컨설턴트 출신 폴레트 라이트는 경력 단절 여성과 일하는 방법으로 ‘사무실에 책상을 내주고 일주일 내내 얼굴을 내밀게 하지 말고 그냥 일거리를 던져주고 언제까지 끝내야 한다고 이야기만 해주길’ 권한다. “세계경제 빈곤 퇴치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여성의 잠재력을 활용하는 것일 것”이라는 르완다 정치가 발렌타인 루그와비자의 말처럼 경력 단절 여성은 준비된 미활용 인력이다. 이들의 가능성을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적 장치와 지원이 따라야 한다. 기업이 경력 단절 여성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이들 기업을 정부가 지원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나는 지인의 사례를 통해 똑똑히 목격한 적이 있다. 이혼 후 생계를 어떻게 꾸려야 할지 막막해하던 친구는 한 기업의 특별 채용을 통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확보했고 지금은 가장과 양육자의 역할을 동시에 해나가며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고 있다. (해당 기업의 경력 단절 여성 채용은 중단된 상태다. 정부 지원이 줄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경력 단절이라는 거대한 문제 앞에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절망스럽다. 아이를 낳은 이래 육아와 돈벌이라는 짐을 짊어진 채, 내리는 순간 즉사하는 쳇바퀴를 달리는 기분으로 살아왔다. 매달 손에 쥐어지는 아동 수당 10만원으로는 감히 풀 수 없는 어려움이다. 어쩌면 앞으로 단절될 경력조차 없을지 모를 다음 세대까지 생각하면 절망감은 더 깊어진다. 가족의 도움으로 1차 경력 단절 위기를 넘겼지만 보육과 교육 사이에 놓인 초등학교 시기가 오면 다시 한번 깊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지금 바라는 건, 그때 내리는 선택으로 경력을 단절당하는 게 아니라 유보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에디터
    조소현
    일러스트레이터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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