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목수
아홉 개 의자로부터 안락함, 아름다움, 편리함을 느꼈다. 그 가운데 성별은 없었다.
어디에 갖다 놔도 기삿거리로 만들어주는 놀라운 마법의 단어가 있다. ‘여자’다. 아무리 심심해 보이는 제목에도 ‘여자’만 붙이면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예를 들어보겠다. ‘과학자로 살아가기’와 ‘여자 과학자로 살아가기’, ‘셰프의 고백’과 ‘여자 셰프의 고백’, ‘트럭 운전사의 여행’과 ‘여자 트럭 운전사의 여행’. 어떤가? ‘여자’만 붙였을 뿐인데 갑자기 희비극을 오가는 드라마가 펼쳐지며 고난과 역경의 땀 냄새가 진하게 풍기지 않나. 남자 과학자는 흔하지만 여자 과학자는 그렇지 않고, 남자 셰프는 다수이지만 여자 셰프는 소수이며, 남자 트럭 운전사는 당연하지만 여자 트럭 운전사는 그렇지 않은 탓이다. 수많은 직업의 기본 전제는 남자이기에 여자에게는 ‘여자’라는 수식어가 필요하다.
성수동에 자리한 신촌살롱에서 5월 15일까지 우드플래닛과 공동 기획으로 열리는 전시 <최소의 의자; 展>의 주인공은 여자 목수 9인이다. 단행본 <여자목수> 출간을 앞두고 제목 그대로 ‘최소의 의자’라는 공통된 주제를 목수 각자가 자유롭게 풀어냈다. 6월에 출판 예정인 <여자목수>는 목수라는 직업과 삶의 상관관계를 일상적 관점에서 바라본 책이다.
전시 중인 의자에서는 목수들의 단단한 시선을 만나 볼 수 있었다. 김규의 ‘둥근’에는 항아리 그 자체가 의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발상의 전환이 돋보였고, 장식장처럼 보이는 김수희의 ‘선, 형’은 선이 낳은 조형미가 빛났다. 이미혜의 ‘Arch1’은 납작하게 접히는 반전이 있었다. 무성의 성질을 띤 의자로부터 엿보인 건 쓰임새를 챙긴 영리함과 창의적인 디자인, 나무를 대하는 세심한 손길이었다. 여자 목수 아홉 명은 완전한 기능인이었다.
‘여자 목수’ 하면 <심슨네 가족들>의 마지 심슨이 떠오른다. 에피소드마다 셀 수 없이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는 그녀는 목공에 엄청난 재능을 보인다. 하지만 그녀를 마주한 고객들은 문을 쾅 닫으며 말한다. “여자 목수에 대한 편견은 없지만, 굿바이!” “당신이 임신하면 내 욕조의 반을 내줘야 할 것 아니오. 불임이라고 말해도 안 속아!” 결국 호머 심슨이 목수인 척 고객을 대하고 마지는 캐비닛 속에 숨어 있다가 그들이 사라진 사이 부리나케 나와 신명 나게 일을 해낸다. 마지는 자신이 만든 근사한 목재 침대에 누워 말한다. “정말 불공평해요. 나도 남자들만큼 잘할 수 있는데.”
최근 개봉한 영화 <콜레트>와 <세상을 바꾼 변호인(On the Basis of Sex)>에는 남편의 이름으로 책을 내야 했던 여류 작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와 하버드 로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끝끝내 로펌에 취직하지 못한 여자 법조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나온다. 고작 50~100년 전 일이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일,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해온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 길다. 편견에 맞선 수많은 이들의 용기로 여자라서 할 수 없는 일은 다소 줄어들었다. 실제로 여자 목수 아홉 명은 여자라서 힘든 점보다 목수라서 힘든 점이 더 많다고 말한다. 물론 사회적 편견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공방에 찾아와 가구를 구경하며 “만든 분은 어딨어요?”라고 묻고, 직업으로 인정하기보다 당연히 취미로 하리라 여긴다. 20년 넘게 여자 목수를 둘러싼 시선을 몸소 겪은 유진경은 여자 목수로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아예 존재를 부정해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고 말했다. 집 짓는 현장에서 여자 목수를 위해 방이나 화장실을 따로 마련해줄 배려심을 가진 사업주는 전무했다.
여자 혼자 조립하기 힘들다, 여자가 왜 굳이 목수를 하려고 하느냐, 위험한 직업이다. 처음 목수로 일하려고 할 때 주위에서 건넨 우려는 목수가 되고 나서 해결책을 찾았다. 그녀들은 남자보다 힘이 약하다는 태생적 약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목공을 하며 힘을 써야 하는 순간은 매 단계마다 일어난다. 조립할 때 힘이 달리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고, 배송은 전문 업체를 활용한다. 가구를 들기 힘들 때는 스스로 몸을 지렛대처럼 사용하고, 백인 남성을 기준으로 만들었음이 분명한 도구가 불편할 때는 손에 맞는 도구를 직접 제작해 사용하기도 한다. 계단을 오르고 걸레질만 해도 숨차던 몸은 변했다. 손가락 마디가 두꺼워지고 팔뚝에 삼두근이 잡히며 지문은 인식되지 않을 정도로 닳았다. 그녀들의 몸은 목공에 적합하게 단련되었고 그 변화는 성장의 다른 표현이다.
한편 여자 목수 아홉 명 중 첫 번째 직업을 목수로 삼은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사회가 우리에게 심어놓은 편견에 대해 생각해본다. 시대별로 선호하는 직업이 달라지곤 하지만 여자아이들의 희망 직업에 목수는 등장하지 않는다. 나는 자라면서 단 한 번도 지금 앉아 있는 의자, 밤이면 몸을 누이는 침대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 오버올을 입고 전기톱에 시선을 고정한 채 톱밥을 휘날리며 나무를 절단하는 건 힘이 센 누군가의 일로 여겼다.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건물을 짓거나 자동차나 비행기를 모는 건 남자의 직업이라고 했다. 누군가를 보살피거나 소통하거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일은 여자가 잘한다고 했다. 여자들은 자연스럽게 핑크 칼라 직종을 선택한다. 사회 평론가 루이스 하우가 만든 이 단어는 서비스, 보육, 미용, 어학, 보조 업무 등 여성의 일로 간주되는 직종 전반을 가리킨다. 면면을 살펴보면 쉽게 익혀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대부분이다. 누구로든 대체 가능하고 많은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은 임금이 낮다.
레시마 소자니는 저서 <여자는 왜 완벽하려고 애쓸까>에서 장난감을 갖고 놀면서 배우는 기술에 따라 좋아하고 잘해야 하는 것이 정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남자아이들의 장난감은 대근육 운동 기술과 공간 감각 기술의 발달을 돕고 여자아이들의 장난감은 소근육 운동 기술과 언어 발달, 사회적 교류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들었던 조언은 한결같았다. “남자답게 대담하고 용감해져야 해” 그리고 “여자답게 상냥하고 조신해야 해”. 운전이나 전자제품 수리에서 어려움을 토로하면 여자라서 못하니까 괜찮다는 면제권을 줬다. 그렇게 여자들은 육체적 도전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몸을 쓰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힘들면 그만둬도 된다는 보호 속에 도전하는 마음과 좌절을 극복할 수 있는 면역력이 사라졌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했던 시몬 드 보부아르의 말처럼 사회의 고정관념에 따라 원래 못하는 것이 늘어났다. 그렇게 우리는 잊었다. 신체적인 힘을 키우면 정신적으로도 더 용감해진다는 사실을.
목수라는 직업을 선택함으로써 여자 목수 9인이 되찾은 건, 스스로를 책임지는 능력이다. 나무를 고르는 일부터 디자인하고 설계하고 제작하는 모든 과정을 책임진다. 정직한 노동으로 새로운 창작물을 세상에 내놓는 일은 삶에 몰입해서 자신의 일을 즐기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이자 끊임없는 도전의 결과다. 유진경은 자신에게 필요한 대부분의 일을 남성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지만 여자 목수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목수 일을 통해 얻게 되는 지혜로 인해 문리가 트여 대부분의 일을 혼자 해낼 수 있다고 했다. 장현주가 목수로서 가장 뿌듯함을 느낄 때도 한계를 뛰어넘었을 때다. 구름은 “목수란 나무라는 재료로 삶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사람들의 삶에서 필요한 것들을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사람. 이토록 순수한 목적에 젠더가 끼어들 일은 애당초 없었다.
‘여자 목수’를 둘러싼 여자 목수들의 생각은 다양하다. 장현주에겐 자신을 알리는 키워드로 존재한다. 여자들이 안전하게 목공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여자 목수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사용한다. 김규는 젠더리스가 되려면 젠더가 있다는 걸 아는 게 먼저고 그러다 보면 남녀 구분이 사라지는 날도 오리라 믿는다. 앞으로도 한동안 목수라는 직업에는 여자라는 수식어가 계속 따라다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여자 목수’로부터 기삿거리로서 호기심보다 통쾌함을 느낀다. 그렇게 다들 여자의 일이 아니라고 말리던 일을 즐겁게 하다니. 체력적으로 강인해지고 보람도 찾고 돈도 벌다니. 스스로 가능성을 증명해낸 그녀들은 삶의 개척자다. 유진경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선전포고로까지 들렸다. “이제 여자 목수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됐습니다.”
- 에디터
- 조소현
- 포토그래퍼
- 이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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