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이의 마음을 울린 김혜자의 대상 수상 소감
“TV 부문 대상! <눈이 부시게>의 김혜자 님 축하드립니다!”
제55회 백상예술대상이 열렸던 지난 1일 밤, 서울 강남구 코엑스. ‘TV 부문 대상’ 시상자로 나선 배우 하지원과 윤계상은 긴장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수상자의 이름이 적힌 봉투를 든 하지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김혜자의 이름을 외쳤습니다.
지난 3월 종영한 JTBC <눈이 부시게>는 주어진 시간을 다 써보지도 못하고 잃어버린 여자의 이야기로 많은 이들의 ‘인생 드라마’로 등극하며 사랑받았죠. 그리고 극의 중심에는 바로 그녀, 김혜자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호명하자, 무대 밑 배우 대기석에 앉아 있던 김혜자는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함께 드라마에 출연했던 한지민은 김혜자의 손을 꼭 잡았고, 주변에 있던 후배 배우들 역시 축하 인사를 전했습니다.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오른 김혜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상을 받고 마이크 앞에 섰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드라마 연출진과 작가진에게 고마움을 전한 김혜자는 자신만의 특별한 소감을 공개했습니다. 바로 그녀에게 큰 의미와 상을 안겨준 <눈이 부시게>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내레이션이었는데요, 그녀는 아무리 외우려 해도 자꾸 잊어버려 대본을 찢어왔다며 수줍게 대본 두 장을 꺼내 들었습니다.
수많은 연기자의 거울이자, 길이자, 엄마 같은 존재였기 때문일까요. 김혜자가 내레이션을 읽기도 전부터 한지민, 김혜수, 조우진 등 배우들은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저는 시청자 여러분께 너무 감사해요. 우리는 위로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인생 드라마를 만나게 해줘서 고맙다고 얼마나 말씀을 해주시는지, 정말 시청자분들께 감사하다는 말 꼭 하고 싶었어요.”
짧은 인사로 말문을 연 김혜자는 준비해온 내레이션을 소녀 같은 모습으로 읽어 내려갔습니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콤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오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 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김혜자의 떨리는 목소리에 후배 연기자들과 현장에 있던 관중들은 눈물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습니다. 진정성 그리고 마지막 명대사로 대신한 깊은 울림. 이 모든 게 연기 경력 55년이 지나도록 최고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그녀만의 ‘품격’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 오래, 더 많은 작품에서 배우 김혜자를 만나볼 수 있기를!
- 에디터
- 오기쁨(프리랜스 에디터)
- 포토그래퍼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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