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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콘 컴백을 기다리며, 그들이 이룬 숫자를 돌아봤다.
매일 케이팝 역사가 갱신되는 요즘이지만 유치원생들의 ‘사랑을 했다’ ‘떼창’만큼 강렬한 순간은 없다고 생각한다. 어디선가 “사랑을~” 만 흘러나와도 자동 재생 버튼을 누른 듯 꼬맹이들이 노래를 시작하는 현상. ‘사랑을 했다’가 세상에 나온 지 1년 반이 다 돼가지만 이 신기한 현상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아이콘이 누군지, 아이돌이 어떤 존재인지 모른 채 사랑받는다는 점에서 ‘사랑을 했다’는 동요와 동일선상에 놓인다. 그러니까 ‘사랑을 했다’는 음악은 세계 공통어라든가 음악은 마법과 같은 것이라는 명제를 증명한 압도적인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아이돌은 ‘보는 음악’을 한다는 고정관념을 넘어선 사례로도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사랑을 했다’가 21세기 후반 클래식 반열에 오를지는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세대를 아우르는 명곡을 창조한 당사자들은 올해 첫 컴백을 준비하며 기지개를 켜는 중이다. 하루 일과를 전하자면, 녹음, 스케줄, 녹음의 반복이다. 팬미팅이라든가 방송 프로그램 출연 같은 공식 스케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이 녹음으로 채워지는 상태다. 여행은 떠나기 전에 더 설레지만 아이콘이 컴백을 준비하는 마음은 ‘도 닦기’에 가깝다. “이제부터 쉬는 날은 없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준비할 때가 제일 힘들죠. 결과물이 있을 걸 아니까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죠.”(진환) 일상에서는 좀더 건강한 리듬을 가지고자 한다. 과거 저녁 7~8시에 기상해 하루를 시작한 B.I는 기상 시간을 자그마치 12시로 당겼다. 햇빛도 보지 못하고 작업실에 틀어박혀 음악 작업에 골몰했던 천재 작곡가의 요즘 가장 큰 관심사는 건강한 삶이다.
‘아이콘(iKON)’이라는 하나 된 이름으로 활동하지 않을 때 뮤지션으로서 골몰하고 있는 지점은 각자 다르다. BOBBY는 춤을 잘 추고 싶어졌다. 프리스타일 댄스다. “랩도 좋고 노래도 좋은데 요즘 무대에서 춤을 잘 추는 게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원래 가장 춤을 못 추는 멤버 중 한 명이거든요. 전에는 힘을 많이 빼고 췄다면 요즘은 멋있게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영상을 많이 찾아보는데 ‘Lit 댄스’라고 애들이 프리스타일로 추는 춤이 멋져 보여서 되게 좋아합니다.” BOBBY의 춤 파트너로 주로 동원되는 동혁은 춤과 목소리 톤에 신경 쓴다. “직접 짠 안무를 카메라로 찍어보며 연구하고 있어요. 목소리 톤도 관심사예요. 워낙 미성이라 노래마다 비슷한 느낌이 들어 다르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녹음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윤형과 찬우의 관심도 춤이다. 윤형은 트랩 그대로 추던 패턴에서 벗어나 힘을 빼고자 하고, 찬우는 춤추는 순간에 좀더 집중한다. “대충 춘다고 혼날 때가 많았거든요. 처음엔 몰랐는데 이제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다른 멤버보다 키가 커서 도드라져 보이는 부분도 있고. 그런 부분에 신경 쓰고 있어요.” 진환은 거시적이다. 근사하게도 멋을 얘기한다. “무대에서 멋과 라이브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원래 라이브를 못하지 않기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워 집중만 하면 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멋은 다양한 걸 담고 있잖아요. 멋지게 생길 수도 있고 멋있는 동작을 할 수도 있고. 요즘에는 제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준회는 손가락에 박인 굳은살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루에 1시간씩 기타 연습을 빠뜨리지 않는다.
B.I의 머릿속은 다소 복잡하다. 아이콘의 노래 대부분을 작사, 작곡, 프로듀싱해오고 있는 그는 새로운 영감을 찾고 있다. “작년에 노래를 너무 많이 만들어서 할 말이 없어요. 발매된 노래 말고도 너무 많이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올해는 작업을 쉬고 채우러 다니고 있습니다. 작년에 사람들을 정말 못 만났는데 사람들도 좀 만나고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술도 좀 마시고. 술을 잘 못 마시는데 요즘 좀 늘었어요. 네, ‘이슬톡톡’ 맞습니다. 예전에는 한 캔이 넘어가면 취했는데 요즘은 한 캔 반도 거뜬해요.”
아이콘은 작년에 국내에서 세 번 컴백했다. ‘사랑을 했다’로 대변되지만 ‘죽겠다’ ‘이별길’까지 이별 3부작은 슬프고 아름다운 서사를 이뤘다. 우리가 사랑할 때 얘기하는 것들이었다. 데뷔 초 실력 있는 힙합 그룹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던 이들은 감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그룹이 됐다. 사랑할 때 몽글몽글한 느낌의 정체를 ‘갈비뼈 사이가 찌릿찌릿한 느낌’으로 표현했고, 헤어진 후 심정을 ‘외로운 이별길’로 표현했다. 먼 훗날 오늘을 돌아봤을 때 아이콘의 음악이 그 시절 그 느낌을 환기시켜줄 것이다. 시대의 감성을 대변하는 음악이란 그런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역사를 살지만 누군가는 그 역사를 표현한다.
정상에 오른 뮤지션들에게는 부담이 남는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왔다는 생각만 했을 뿐 음악 하는 데 부담을 가져본 적 없던 B.I는 ‘사랑을 했다’를 의식하고 있다. “예전에는 집에 가만히 있으면 할 일 없는 백수 같았어요. ‘놈팡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꼴 보기 싫었거든요. ‘사랑을 했다’ 이후에는 여유와 기품이 생겼죠. 사실 크게 달라진 게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부담이 생겼어요. 뭘 하든 ‘사랑을 했다’가 항상 머릿속에 있어요.” 멤버들은 과거 인터뷰에서 ‘사랑을 했다’가 정상을 찍었을 뿐 아이콘이 정상은 아니라고 여러 번 얘기했다. “아이콘이라는 그룹을 많이 알지는 못했던 게 현실이니까요. 팬 여러분들은 저희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지만 대중들의 시선과 인지도를 이 노래를 통해 많이 느꼈어요. 아이콘을 좀더 알리기 위해서 개개인이 활동을 더 많이 하고 매력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동혁)
그 깨달음을 행동으로 바로 옮긴 멤버는 막내 찬우다. 지금 그룹 아이콘에서 가장 큰 화젯거리는 찬우의 유튜브 ‘찬우살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더 잘 알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구독자 수가 40만 명을 넘어섰다. 인지도를 높이고자 했던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음은 물론, 아이콘 전체 활동에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냈다. “찬우가 쏘아 올린 공이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가져왔죠. 최근에 미국 공연 갔을 때 찬우 덕분에 굉장히 큰 행사에 참여했어요. 포트나이트라는 게임에 찬우 캐릭터가 출시돼 엄청 유명한 프로 게이머와 게임을 했거든요. 아이콘을 해외에 알리는 데 좋은 역할을 했습니다.”(동혁) 찬우의 단독 매력에 푹 빠진 구독자들은 불쑥불쑥 등장하는 다른 아이콘 멤버들을 볼 수 있어 즐겁기만 하다. 목표를 이룬 찬우는 구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적극 아이디어를 내는 등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쉴 때는 쉬어야 하는데 항상 카메라를 들고 있어 형들에게 미안하죠. 그래도 형들이 정말 많이 도와줘요.”(찬우) 요리를 잘하기로 소문난 윤형도 요리 콘텐츠 유튜브 채널을 오픈한다. “예전에는 저보다 아이콘이 먼저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나로 인해 아이콘을 알게 되는 사람들도 있구나, 내가 좀더 잘돼야겠다는 생각에 유튜브를 시작했어요. 찬우는 멤버들 눈치를 보며 찍고 있지만 저는 막 들이댈 예정입니다.”
데뷔 5년. 단합 대회는 언제 가냐고 건넨 농담에 “얼마나 더 단합해야 하냐”고 되묻는 중견 그룹이 됐다. 숙소는 더 이상 떠들썩하지 않지만 자연스럽고 편하다. 멤버들 사이에 갈등이 언제 있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성인이 되고 20대 중반을 넘는 형들도 생기다 보니까 다들 조금씩은 철이 들었어요. 서로 다 아니까 알아서 싫어하는 것들은 피해주고, 누군가 갑자기 왜 그러지 싶어도 눈치껏 이해해요. 배려가 몸에 배어 있다고 해야 할까요.” 윤형은 철이 들었다고 여긴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았어요. 제가 항상 맞다고 생각했고 표현했어요.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걸 깨달았어요.”
멤버들 사이에 새롭게 생긴 케미스트리 역시 존재한다. 다들 하나같이 BOBBY와 동혁을 꼽았다. “요새 둘이 작업을 많이 해요. 음악 스타일도 비슷해진 것 같아요. 특히 식성이 제일 잘 맞는 것 같더라고요. 미국 음식을 좋아하는데 일본까지 가서도 둘이 피자집에 가더라니까요.”(준회) 동혁은 B.I와 춤 연습 시간이 늘었다. “데뷔 초까지만 해도 형이 리드했는데 한빈이 형이 춤을 내려놓아서 요즘은 제가 리드하고 있어요.(웃음) 한빈이 형은 자꾸 뭘 해보라고만 합니다.”(동혁) 진환은 찬우를 꼽았다. “요즘 찬우랑 ‘케미’가 좋아졌어요. 혼내면서 쌓인 정이 또 있거든요. 사실 진짜 안 맞는데 안 맞기 때문에 생기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요즘 같이 밥도 자주 먹어요.”
아이콘으로 지내온 시간은 무엇을 무겁게 하고 무엇을 가볍게 했을까. “무대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그동안 저도 모르게 사람들 시선을 신경 쓰고 있었나 봐요. 내가 잘하는 게 뭘까 생각하니 연습에 무게가 생겨요. 좀더 예민하게 연습하고 있어요.”(동혁) “입이 무거워지는 것 같아요. 말수가 적어졌고 뭔가 시도하려다가도 좀더 생각하게 돼요. 강아지를 너무 키우고 싶지만 강아지가 사람보다 일찍 죽는다고 생각하면 섣불리 키울 수 없어요. 예전엔 무대에 올라갈 때 긴장했는데 최근엔 전혀 안 하는 것 같아요.”(BOBBY) “옛날에는 쓸데없는 걱정에 마음이 무거워지고 현실적인 생각을 많이 안 해서 마음이 가벼웠는데 이젠 반대가 됐어요. 현실적인 문제에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있어요.”(준회) 무엇보다 멤버 각자가 행복해야 아이콘으로서 즐겁게 활동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진환은 ‘소확행’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품고 산다. “행복은 멀리서 찾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많은 걸 시도하고 있어요. 수영도 하고 스쿼시도 하고 칵테일 만들기도 배우면서 재미를 찾는 중이에요. 그래야 일도 더 능률적으로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뜨거운 계절이 되면 돌아올 아이콘은 올해 일어났으면 하는 일로 북미 투어를 꼽았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서다. 아이콘은 2017년 <보그>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웰메이드 케이팝 그룹. 한국에서 볼 수 없는, 트렌디한, 퓨처리스트’라고 정의했다. 지금도 방향성은 변함없다. B.I는 대중음악계의 미륵불이 되고 싶다는 말로 표현을 정정했다. “‘사랑을 했다’로 한 계단 정도 올라갔을 뿐 올라갈 계단은 아주 많습니다. 고행길이라도 계속 직진할 겁니다.” 인터뷰 말미, BOBBY는 전 세계인의 행복을 기원했다. “개인적으로도 아이콘으로도 온 세상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입니다.” 지금 우리에겐 존 레논이나 마이클 잭슨처럼 세계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은 노래를 부르는 뮤지션보다 진심으로 우리의 행복을 빌어주는 뮤지션이 더 필요하다. 아이콘은 미래를 지향하며 동시대를 산다. 아이콘은 우리의 아이콘이다.
* ‘사랑을 했다’는 음악 방송 11관왕(<쇼! 챔피언> 1회, <엠카운트다운> 3회, <뮤직뱅크> 1회, <쇼! 음악중심> 3회,
- 에디터
- 조소현(피처 에디터), 김미진(패션 에디터), 이소민(Sub)
- 포토그래퍼
- 박종하
- 스타일리스트
- 지은
- 헤어
- 임정호
- 메이크업
- 김부성
- 세트 스타일링
- 최서윤 (Da;r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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