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일렁이는 무지개
서울에 무지개가 일렁이는 단 하루. 무지개색 양말을 신고 광화문광장을 걸었다.
언젠가 퀴어 페스티벌에 가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다.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버버리를 떠나며 런웨이에 올린 마지막 패션쇼 때문이다(내가 <보그> 사무실 한복판에서 일하고 있음을 감안해주길). 전통의 상징 같았던 체크무늬에 무지개를 더해 런웨이를 온통 무지갯빛으로 물들인 디자이너는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창의력의 근본입니다. 버버리에서 나의 마지막 컬렉션은 성 소수자(LGBTQ+) 커뮤니티를 포함한 전 세계의 젊은이들을 위한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거대한 패션 왕국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인터뷰와 무지개 모피 망토를 국기처럼 감고 런웨이를 뛰었던 카라 델레빈의 피날레는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한 번쯤 나는 ‘행동’함으로써 그의 철학을 지지하고 싶었다.퀴어 페스티벌의 시즌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건 행사 개최를 막아달라는 보수 단체의 집회 금지 가처분 신청서다. 누군가는 알람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그랬다. 광장을 둘러싼 갈등은 한 달 가까이 이어졌지만 6월 1일 서울광장의 주인공은 서울퀴어문화축제였다. 반대가 효과가 없진 않았다. 현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축제를 즐기러 간다는 생각을 조금도 못했기 때문이다. 기대라기보단 시위 현장에 나갈 때와 같은 긴장을 느꼈는데 퀴어 페스티벌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를 보던 기억 때문인 듯했다(지난해 처음 막을 올린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에도 반대 세력으로 축제가 지연되었다). 하지만 시청역 지하철 출구로 나오는 순간, 바로 깨달았다. 뉴스가 많은 것을 생략했다는 걸. 마주한 풍경은 신천지였다. 서울광장에는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고 경찰이 바리케이드를 둘러싸고 있었다. 요새 같았다. 옆에서는 한창 난타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빨간 모자를 쓰고 군복을 입은 세력들은 힘차게 북을 두드리며 외쳤다. “퀴어 축제 척결!” 그 옆으로 사람 몸만 한 십자가를 진 사람이 지나갔다. 십자가에는 바퀴가 달려 있었다. “동성애 박멸! 동성애 퇴치! 깨끗한 한국! 할렐루야” 같은 문구는 충격적이었지만 충돌은 없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질서 정연하게 험악한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광장은 온통 무지갯빛이었다. 거대한 무지개 깃발이 광장을 가로질렀다. 무대에선 공연과 연설이 이어졌고 마련된 부스는 자그마치 74개였다. “모든 사람은 그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든, 누구를 사랑하든 공정한 기회를 제공받아야 한다”고 공동 입장을 밝힌 캐나다, 덴마크를 비롯한 9개국 주한 대사관,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 국내 인권 단체와 종교 단체, 퀴어 유튜버와 포털 사이트 카페, 전날 거리 홍보까지 불사한 구글 코리아, 평소 소수 인권 평등을 위해 다양한 캠페인 활동을 전개하는 러쉬 코리아까지. 모두 귀를 기울이고 메시지를 전하기 좋은 날이었고 후원을 위해 줄을 서는 날이기도 했다. 나 역시 약간의 후원금을 내고 굿즈를 받았다. 무지개 패턴 양말로 갈아 신고 핑크색 프라이드 뱅글을 손목에 끼웠다.
나치가 홀로코스트에서 성 소수자들을 탄압하기 위해 사용한 핑크색과 검은색은 성 소수자들의 연대를 상징한다.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부스를 누비며 가장 놀란 건 ‘성인 성 소수자 당사자’만 생각하던 내 머릿속의 단순함과 편협함이었다. 광장엔 청소년 성 소수자가 있었고 성 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가 있었으며 LGBT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무성애자가 있었다. 당사자가 아니지만 성 소수자 차별에 반대하고 지지와 연대를 표현하는 앨라이가 있었고, 담론조차 형성되지 않아 더욱 소외감을 느끼는 지방에 거주하는 성 소수자가 있었다. 멍하니 서 있던 그때, 한마디 적겠느냐며 누군가 사인펜을 건넸다. 눈앞에는 무지개 하트 태극기가 있었다. 사인펜을 만지작거리는데 옆에서 있던 참가자가 메시지를 적어 내려갔다. 펜 끝에서 나온 문장은 “엄마 나 여자 좋아해”였다. 그러니까 이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속 이탈리아 북부 크레마 지방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다. 공개적으로 포용의 기쁨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크리스토퍼 베일리도 있지만 대부분은 “엄마 나 여자 좋아해”라고 말할지 말지 수천, 수억 번씩 고민하며 밤을 지새운다. 결국 나는 아무 말도 적지 못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거리 행진으로 이어졌다. “개최 역사상 처음으로 광화문광장을 지나갑니다! 누구든 어떤 존재든 두려워하지 말고 행진하세요!” 무지개 요새의 문이 열렸고 퀴어 인권을 지지하는 라이더들의 집단 ‘레인보우 라이더스’를 시작으로 차량 10여 대가 차례대로 출발했다. 서울광장부터 종각역, 광화문광장을 돌아 다시 돌아오는 4.5km 코스. 경찰들은 길을 내어 우리를 안내하고 보호하는 호위 무사 같았다. 퍼레이드 차량 무대에 선 댄스 팀은 내일이 없는 듯 열정적으로 춤을 췄고 참가자들은 환호하며 뒤를 따랐다. 행진은 광화문광장에 도착할 때 정점에 이르렀다. 해방을 맞은 듯 뛰고 또 뛰었다. 깃발을 흔들고 몸을 흔들었다. 미 대사관 외벽에 걸린 무지개 현수막이 등장하자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세상이 바뀌는 현장에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지만 함께 춤을 추진 못했다. 즐길 자격이 없다는 마음도 강했던 것 같다. 소설가 박상영은 서울퀴어문화 축제 프로그램 북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누군가는 왜 하필이면 대낮의 길에서 축제를 벌이느냐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축제를 벌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 예전보다는 사정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비주류, 소수자의 위치에서 가시화되지 않은 퀴어들이 도시 한복판,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날이, 바로 퀴어문화축제다. 그러니까 왜 하필 거리에서, 광장에서 ‘퀴어 됨’을 전시하느냐는 질문은 모순이다. 퀴어문화축제는 퀴어들의 섹슈얼리티를 가장 밝은 곳에 ‘전시’하고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축제이며, 동시에 존재 증명이자 투쟁의 장이다.” 차별인지 알아보려면 주체를 바꿔보라고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나의 조건을 대입해봤다. 여자라서 승진에서 누락되었다면? 황인종에게 물건을 팔지 않겠다고 한다면? 기혼자 페스티벌은 안 보이는 데서 하라고 한다면? 존재의 부정이자 차별이자 혐오다. 평등은 여전히 도전 과제인 게 맞다.
웹툰 작가 민서영에게 그날의 기분에 대해 물었다. “LGBTQ+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뜻하는 의미에서 참석했어요. 워낙 축제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평소에는 사회적 시선 때문에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고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시청 안 공간에서만큼은 자유롭고 행복해 보여 저도 덩달아 행복해졌어요.” 민서영은 축제에 가기 전 손뜨개로 브라 톱을 떴다. “가슴 한쪽은 헤테로섹슈얼을 의미하는 블랙 & 화이트, 다른 한쪽은 LGBTQ+를 의미하는 무지개색이에요. 주류인 헤테로섹슈얼과 퀴어가 함께할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는 의미로 만든 옷이었어요. 그리고 하의로는 훈민정음 패턴의 한복을 입었어요. 한국에서 그 꿈이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의미였답니다.” 그러니까 무지개 티셔츠를 입는다는 건, 무지개 모자를 쓴다는 건, 무지개 메이크업을 한다는 건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반대하고 권익 향상을 바란다는 걸 의미한다. 옷은 메시지고 그 사람의 언어다.
무리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새삼스럽게 서울퀴어문화축제의 목적을 검색했다. 웹사이트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한국 사회에 성 소수자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알리고 성 소수자와 관련 문화 콘텐츠 향유에 따른 제약을 해소하며, 성 소수자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 해소와 인식 변화를 이루기 위함.” 사실 나는 지인 여럿에게 행사에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끝끝내 동행자를 찾지 못했다. 청명한 6월의 토요일 오후. 플리 마켓에 가야 했고, 캠핑도 가야 했으며, 아들딸을 돌봐야 했다. 무수한 선택지가 있었고 관심 없는 행사에 할애할 시간은 없었다. 혐오하거나 배척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이해나 응원도 없었다. 동성애는 죄악이니 회개하라고 찬송가를 부르는 집단보다 이들의 반응 속에 2019년 서울의 현주소가 있었다. 2000년 50명으로 시작한 서울퀴어문화축제가 20회를 맞았다.
- 에디터
- 조소현
- 포토그래퍼
- Dusan Rel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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