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밖에 모르는 남자
디자이너들이 예상한 내년 봄은 온통 핑크색 세상입니다. 2020년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에 등장한 핑크 퍼레이드.
유행 혹은 트렌드의 탄생 배경은 다양합니다. 때로는 특출한 디자이너의 아이디어가 순식간에 전 세계에 퍼질 때도 있고,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팝 스타의 스타일이 대세가 되기도 합니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디자이너 여러 명이 동시에 비슷한 아이디어를 선보이는 것.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비슷한 디자인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할 때 우리는 새로운 유행을 감지하죠.
지난 6월 중순부터 7월 초까지 런던, 피렌체, 밀라노, 파리로 이어진 내년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에서 가장 눈에 띈 건 다양하게 등장한 핑크. 물론 다 같은 핑크는 아니었죠. 일명 밀레니얼 핑크라 불리는 연분홍부터 보라색과 경계에 있는 진분홍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핑크가 런웨이에 차례대로 등장했습니다. 서울의 멋쟁이에서 영감을 얻은 지방시의 클레어 웨이트 켈러는 복숭아색에 가까운 연한 분홍색을 선택했고, 알렉산더 맥퀸의 사라 버튼은 흔히 쇼킹 핑크라고 말하는 채도 높은 분홍색을 수트로 표현했습니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스포티한 아노락에 핑크색을 더했고, 톰 포드는 야성적인 레오퍼드를 분홍색으로 변환했죠.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간 디자이너도 있었습니다. 디올 옴므의 킴 존스는 아예 온통 분홍색 세상을 마련했습니다. 아티스트 다니엘 아샴(Daniel Arsham)이 마련한 세트는 온통 핑크 천지. 분홍색 모래가 깔린 런웨이부터 핑크색 시멘트로 완성한 조각까지. 좌석과 천장도 빠짐없이 분홍색이었습니다. 한편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라벤더밭에서 10주년 쇼를 선보인 시몽 포르트 자크무스는 런웨이 대신 푸크시아 컬러의 카펫을 깔았습니다. 600m에 이르는 핑크 런웨이는 그야말로 자크무스 그 자체.
갑자기 남성복이 분홍 세상이 되어버린 건 왜일까요? 어쩌면 지난 몇 년간 이어진 패션 속 성에 대한 경계가 무너진 신호라고 볼 수도 있겠죠. 혹은 더 이상 2020년의 남성성은 견고한 핀스트라이프 더블 브레스트 수트로 상징될 수 없다는 상징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더 이상 핑크 스웨터와 푸크시아 컬러의 팬츠를 입는 것이 남성성에 반하는 선택이 될 수 없는 것이죠. 또 다르게 바라보면 핑크야말로 가장 긍정적인 색상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연한 핑크 컬러인 ‘리빙 코랄(Living Coral)’을 올해의 컬러로 꼽은 팬톤은 그 이유를 이렇게 얘기했죠. “소비자들이 인간적인 상호작용과 사회적인 연결을 바라기 때문에 ‘리빙 코랄’이 상징하는 인간적이고 가슴 따뜻한 면이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적이고 희망적인 핑크의 세상은 이제 그 문을 열어 보였습니다. 그 세상에 들어설지 망설일지는 내년 봄 남성의 선택에 달려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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